bloody hot thick soup

잡기 2003. 11. 1. 18:17
동네를 헤멨다. 쌀이 떨어져서 밥을 해먹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며칠 전에는 싸고 맛 좋은 순대국밥을 먹었고 또 며칠 전에는 꽤나 보기 드물었던, 깔끔한 갈비탕을 먹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눈도 안 움직이겠지? 음식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슬기 해장국이나 먹으러 가자. 어린 시절 냇가에서 달팽이를 잡았다. 잡은 달팽이를 들고 집에 가면 맛있고 고소한 달팽이 국을 끓여줬다. 펜치로 달팽이 끄트머리를 따고 쪽쪽 맛있게 빨아 먹은 기억이 났다.

요란하게 선전하는 음식점에서 파는 지극히 깔끔하기 짝이 없는 다슬기국의, 몇 마리 안되는 희박한 다슬기의 밀도를 상상하고 마음이 변해 가던 길에서 돌아섰다. 집에 가서 김치찌게를 끓여 먹기로 결심했다. 시장에서 두부 반 모와 돼지고기 약간, 파 따위를 사고 집 근처에서 쌀 한 푸대를 샀다. 그리고 성장기 청소년 음료 '한뼘 더 일팔칠일육팔'을 잡았다. 성장기 청소년 음료 먹고, 간바레.

달팽이는 자웅동체의 생물체다. 민달팽이는 껍데기가 없다. 반면, 다슬기는 자웅이체다. 폐디스토마의 중간 숙주인데 날 것으로 먹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내가 어린 시절에 기억하고 있는 달팽이는 다슬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기다가 또 졌다. 한숨을 쉬다가 정말 그럴까 싶어 다시 검색해 보았다.

다슬기는 우리나라 냇물에 흔한 연체동물입니다.
심산유곡의 깨끗한 냇물에서부터 강, 호수,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이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서식합니다. 이름도 많아서 고둥, 민물고둥, 골뱅이, 고디, 소라, 달팽이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다슬기로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고둥은 연체동물 가운데서 나선모양의 껍데기를 가진 3백60여종의 동물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고, 소라는 바다에 사는 고둥류 전부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달팽이는 육지에 사는 연체동물을 말하는 것이고 골뱅이, 고디 등은 고둥의 사투리입니다.

그러냐? 그랬다. 강원도에서는 다슬기를 달팽이라고 불렀고 냇가에 가면 나륵이 많이 달린 놈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동강다슬기 -- '다슬기가 하는 일은 민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강이나 연못, 개울, 호수 등 물 속의 정화작업을 하여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슬기가 하는 일이 민물 고기의 먹이가 되는 거야?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주면서 봉사하고? 생각이 깊군.

길거리에서는 조심했어야 한다. 지나가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안 그럼 정강이 곁에서 맴돌며 놀아 달라고 따라오고 달겨드니까. 강아지, 고양이, 그리고 일부 사람, 전부 그런 족속이다. 왜들 그럴까. 저혼자 고독을 즐기면서 재밌는 상상이나 하고 히죽히죽 미친놈처럼 웃게 내버려두지. '사토라레'에서 주변에 자신의 사념파를 뿌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일본어로 된 생각을 알아 먹기 쉽게 드러내 놓고 다니는 젊은이가 등장했다. 가끔은 내 마음이 타인에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계산해 보니 여자 한 명이 적어도 세 마리 이상의 남자를 바보로 만드는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양념을 만들었다. 간장에 마늘 간 것과... 생강, 생강이 없구나. 고춧가루를 넣고 돼지고기를 버무렸다. 김치는 물에 씻어 썰었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았다. 양파를 썰어 넣고 물을 부어 소금으로 간을 맞추며 끓였다. 파와 두부를 넣어 천천히 보글보글 끓였다.

혼자 즐기기에 아까운 상상 -- 행책의 리스트는 영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하지만 머리에 제대로 칩이 박힌 사람은 저런 글은 안 쓴다고 생각했다.

10월 31일, 매년 10월 31일이면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 이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노래 잘 듣고, 시월 마지막 날에 돈 세탁을 했다.

김치 찌게는 성공작이었다. 존나게 맛있었다.
우두커니 황량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시 잤다.
깨어났다.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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