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난 뭐냐/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기계의 도움을 받아 '난 뭐냐/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ihong님의 의견에는 동감이지만 도구를 통한 감각의 확장이 의미하는 것은 오감 이상을 체험하자는 것이지 전적으로 기계에 의존하여 기계가 제공하는 제한된 감각을 수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 흄, 칸트 등 구닥다리들은 인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하이데거를 인용하는 것을 잊었다. 현실은 거기서 선호, 선택의 문제가 되겠고. 물리적인 현실을 '선호'하거나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온갖 바보스러운 철학에도 불구하고 행복 추구를 결코 단념한 적이 없었다. 그점이 중요하다. 개중에는 어떻게든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쓴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가 거의 비슷한 주제(현생 인류의 지지부진함)를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분자생물학을 통해 신생인류의 인위적인 발생을 추진하지만, 방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말투: 서구가 한창 자멸해 가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게 가능성이 있을 리 없었다. 적어도 십 년 전부터 우엘벡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호머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가망이 없다고. 빌어먹을 원숭이 자손들은 절대로 전쟁을 중단하지 않을 꺼라고. 자기 얼굴이나 후려갈길 것이지. 그리고 어제 전쟁반대를 다짐하며 피켓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어떤 원숭이들 때문에 희망을 가진 적은 없었다고. 우엘벡은 저번주에 읽은 황야의 이리가 추구한 방식을 비웃었다. 뭐 어차피 헤세도 자기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후기소설에서는 황야의 이리에서처럼 개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지적은 적확했다. 독일인들은 유머감각이 적어서 인생을 퍽이나 고달프게 살고 있다는 점. 자기들이 반쯤은 이리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 자, 헤세와 우엘벡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헤세가 히피와 비트족이 판을 치던 시대에 히피들이 읽은 어떤 종류의 이데아라면 우엘벡은 적어도 자기가 쓴 소설의 절반 이상을 히피들을 희롱하고 욕보이는데 소비했다.
하루 1-2시간 짜리 명상 요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우스워 보였다. 하시시로 헤롱거리면서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도 상당히 우스웠다. 베트남 중이나 달라이 라마는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체험이 아닌 것으로부터 시시껄렁한 자기만족을 얻었다. 하여튼 정신의 가치에 대해 떠드는 놈치고 침대에 자빠져 누워 도대체 인류가 왜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최소한 내가 만난 히피들은 좀 얘기가 진전되면 횡설수설하기 바빴다. 그들을 그들의 생각과 어리석은 감정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비우고 다니는 여행자들 보다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생각도 좀 해본 족속들이었다.
직장 생활도 안하고,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끔 인간과 세계를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이럴진대, 나머지 사람들은 그 점에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을까? 없다. 내 절망적인 추산에 따르면 인류의 90% 이상은 아무 생각없이 살아 있다.
오늘 ytn 티비 프로그램 캠페인을 보니, 5분 웃는 것이 5시간 웃는 것과 등가하단다. 그래서 어떤 초등학교 애들이 정신병자처럼 웃는 모습을 10여초 보여줬다. 참 웃기는 캠페인이었다. 웃음이 5시간 운동한 것과 등가하다느니 운운하려면 섹스 한 번 하면 천미터를 전력질주한 것과 등가하다는 얘기도 해야지. 그래, 열나게 웃고, 섹스 열나게 하고, 건강식품 존나게 쳐먹어대면서 건강에 관해 신경증환자처럼 바르르 떨며 히스테리를 부려야 트랜드에 맞지 않을까? 그렇다. 다리가 찢어지더라도 트랜드를 쫓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니들이나 많이 해라. tv 광고에나 나오는 있지도 않은 욕망을 쫓고 허영심에 젖어 개같은 문화소비자인 채로 자신이 없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하면서 같은 레인을 타고 동 시대를 주행하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만끽해라.
나츠시마 나나코가 나오는 드라마, 얼음의 세계를 보면서 코드 리파이닝을 하고 있다. 나나코는 여전히 교사질을 하고 있었다. 자막을 보다가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허걱 하고 말았다. 어째서 50살은 먹은 아줌마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오는걸까. 그것도 10년 전에나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일본 드라마에는 항상 음악이 흘러 나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음악은 거의 멎지 않고 흘러나왔다. '얼음같이 비정한 세계에서 나는 그것을 찾았다. 확실히 찾았다' 라고 중얼거린다. 극 중반이니까 찾을 때도 된 것이다.
기다리던 S3C2440칩이 나온 듯. 매스 프로덕션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쓴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가 거의 비슷한 주제(현생 인류의 지지부진함)를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분자생물학을 통해 신생인류의 인위적인 발생을 추진하지만, 방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말투: 서구가 한창 자멸해 가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게 가능성이 있을 리 없었다. 적어도 십 년 전부터 우엘벡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호머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가망이 없다고. 빌어먹을 원숭이 자손들은 절대로 전쟁을 중단하지 않을 꺼라고. 자기 얼굴이나 후려갈길 것이지. 그리고 어제 전쟁반대를 다짐하며 피켓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어떤 원숭이들 때문에 희망을 가진 적은 없었다고. 우엘벡은 저번주에 읽은 황야의 이리가 추구한 방식을 비웃었다. 뭐 어차피 헤세도 자기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후기소설에서는 황야의 이리에서처럼 개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지적은 적확했다. 독일인들은 유머감각이 적어서 인생을 퍽이나 고달프게 살고 있다는 점. 자기들이 반쯤은 이리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 자, 헤세와 우엘벡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헤세가 히피와 비트족이 판을 치던 시대에 히피들이 읽은 어떤 종류의 이데아라면 우엘벡은 적어도 자기가 쓴 소설의 절반 이상을 히피들을 희롱하고 욕보이는데 소비했다.
하루 1-2시간 짜리 명상 요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우스워 보였다. 하시시로 헤롱거리면서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도 상당히 우스웠다. 베트남 중이나 달라이 라마는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체험이 아닌 것으로부터 시시껄렁한 자기만족을 얻었다. 하여튼 정신의 가치에 대해 떠드는 놈치고 침대에 자빠져 누워 도대체 인류가 왜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최소한 내가 만난 히피들은 좀 얘기가 진전되면 횡설수설하기 바빴다. 그들을 그들의 생각과 어리석은 감정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비우고 다니는 여행자들 보다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생각도 좀 해본 족속들이었다.
직장 생활도 안하고,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끔 인간과 세계를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이럴진대, 나머지 사람들은 그 점에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을까? 없다. 내 절망적인 추산에 따르면 인류의 90% 이상은 아무 생각없이 살아 있다.
오늘 ytn 티비 프로그램 캠페인을 보니, 5분 웃는 것이 5시간 웃는 것과 등가하단다. 그래서 어떤 초등학교 애들이 정신병자처럼 웃는 모습을 10여초 보여줬다. 참 웃기는 캠페인이었다. 웃음이 5시간 운동한 것과 등가하다느니 운운하려면 섹스 한 번 하면 천미터를 전력질주한 것과 등가하다는 얘기도 해야지. 그래, 열나게 웃고, 섹스 열나게 하고, 건강식품 존나게 쳐먹어대면서 건강에 관해 신경증환자처럼 바르르 떨며 히스테리를 부려야 트랜드에 맞지 않을까? 그렇다. 다리가 찢어지더라도 트랜드를 쫓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니들이나 많이 해라. tv 광고에나 나오는 있지도 않은 욕망을 쫓고 허영심에 젖어 개같은 문화소비자인 채로 자신이 없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하면서 같은 레인을 타고 동 시대를 주행하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만끽해라.
나츠시마 나나코가 나오는 드라마, 얼음의 세계를 보면서 코드 리파이닝을 하고 있다. 나나코는 여전히 교사질을 하고 있었다. 자막을 보다가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허걱 하고 말았다. 어째서 50살은 먹은 아줌마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오는걸까. 그것도 10년 전에나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일본 드라마에는 항상 음악이 흘러 나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음악은 거의 멎지 않고 흘러나왔다. '얼음같이 비정한 세계에서 나는 그것을 찾았다. 확실히 찾았다' 라고 중얼거린다. 극 중반이니까 찾을 때도 된 것이다.
기다리던 S3C2440칩이 나온 듯. 매스 프로덕션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