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들렀더니 반납 일자를 넘겨 12월 6일 이후에나 책을 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바빠서 도서관 들를 시간이 없었다. 하루종일 파이프를 쓸까 아니면 쉐어드 메모리에 큐를 사용할까 아니면 db를 사용할까 거기에 세마포어를 쓸까 커스텀 스핀락을 만들어 쓸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갖가지 불행한 상상을 하느라 머리 꼭대기에 늘 안개가 끼어 있고 수염도 제대로 못 깎고 밥도 제때 못 먹고 있는 처지인데, 어떤 작자가 프리랜서가 낭만적이고 자유롭고 시간이 펑펑 남아도는 것처럼 부러워 하면 멕시칸 넥타이질을 해버리고 싶다.
http://hanbill.com에 의료보험료를 자동 이체 신청해 놓았으나 자동 이체가 등록되지 않았다. 등록 신청은 20일 전에 했다. 자동 이체 신청과 더불어 email 고지 신청을 했는데 email로 고지서가 오긴 왔다. 자동 이체가 안되었으니 온라인으로라도 입금하려고 보니, 지로 번호와 사용자 번호를 email에 적어 보내지 않았다. hanbill.com에 들어가 고지서를 확인해 보려고 했으나 볼 수 없었다. 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괴상한 처지가 되었다.
민원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https://www.egov.go.kr 에서 민원 서류 발급 신청을 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2통 밖에 신청하지 않았는데 4통이 신청된 것으로 나왔다. 일반 우편으로 보내면 1000원 미만이 되어 금액이 너무 작아 처리할 수 없다고 사이트가 염소처럼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등본 2통 떼는데 1600원이나 하는 등기로 부쳐야 했다. 그런데 처리 안된 줄 알았던 1000원 미만의 민원 서류가 나중에 처리가 된 것으로 나왔다. 자기들 실수로 2통 더 '신청'(?)한 것은 봉투 안에 차액만큼 동전을 넣어 보내주겠다는 친절한 동사무소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행정 업무의 복잡함과 번거로움을 인터넷까지 몸소 확장해 주신 듯 했다. :)
순박하고 천진한 삶이란...
우거지 상을 하고 그동안 바빠서 못본 밀린 잡지들을 들쳐 보았다. 마이크로 소프트웨어가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았다고 적혀 있었다. 과월호의 표지 이미지를 나열해 놓았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지는 1983년 5월호 까지였다. 그 이전 것들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그럼 내가 마소를 본지 20년째라는 얘기네? 허거덕. 그런데 전혀 발전이 없었잖아. 발전이...
역산하니 14-15살때 처음 프로그래밍을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당시엔 나도 신동 소리를 듣고 다녔다. 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사막에 서 있을 때 생각이 났다. 여행도 끝났겠다 집에 돌아가봤자 지루하고 밥맛 떨어지는 비루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초인이 되고자 했던 수백만 가지 방식 중 내 방식은 다른 수백만 가지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해피하게 콱 죽어버리자. 라고 생각했다가... 그냥 돌아왔다. 베두윈을 만났다. 내가 사막을 가리키자 그도 사막을 가리켰다. 피차 말은 안 통하고, 나는 거기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한 것이고 그는 거기로 갈 꺼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해석의 자유다. 낄낄 병신같이 웃다가 사막에서 돌아왔다. 어차피 조진 인생 그동안 갈고 닦은 재능을 적어도 한두 사람쯤 행복하게 해 주는데 쏟아붓자고 마음 먹었다. 실패로 점철된 삶을 바라보면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매니지먼트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다. 개발 과정에서 소스 코드를 볼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마소지의 어떤 양반 말을 들어보니 35세가 프로그래머의 정년이라나? 아직도 그런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라니! 놀랍잖아! 뭐, 더 프로그래밍을 못하게 되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청소부나 아파트 관리소 직원이 될 작정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런 코드를 보면 행복해졌다.
int bitcount(long x)
{
int n = 0;
if (x)
do
n++;
while (0 != (x = x & (x - 1)));
return n;
}
섹시하다. 가슴을 팍팍 후벼낸다. 저 코드는 대략 18년 전쯤 애플의 롬 어셈블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전혀 발전이 없이, 배운 것 마저 잊어버리면서 내가 만들면 이렇게 지저분하고 저것 보다 속도가 1/2이나 느린 코드가 되었다:
int bitcount(long x)
{
int n = 0, i;
for (i = 0; i < sizeof(x) << 3; i++, x >>= 1)
n += x & 1;
return n;
}
반성하자. 술 그만 마시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겸허하게 배우자. 그래! 귀찮은 것들은 싹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거야!
'리눅스 저널'인지 하는 잡지는 주욱 둘러보니까 더 안 나와도 될 잡지 같아 보였다. 밥은 먹고 있을까?
면밀히 검토해 보았지만 가격대 성능비로 캐논 A70을 능가하는 카메라는 아직 안 나왔다. 그놈을 물망에 올려놓고 사려다가 자꾸 망설였다. 이전의, 지금은 망가진 산요의 mz 카메라가 좋아서 그렇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살라르 데 유우니를 돌아다닐때 나흘 동안 전기가 안 나오는 막연한 깡촌에서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던 카메라 중 유일하게 작동했던 디지탈 카메라다. 묵직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고작 영하 20도에서 얼어붙는 얍삽하게 생긴 400만 화소짜리 값비싼 소니 카메라를 비웃을만 했다. 하여튼 소니 제품 중 어느 것도 거침없는 사나이들의 세계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해 보였다. 소니 스타일은 나하고 영 코드가 안 맞았다. 그렇게 일년 동안 온갖 몰상식하기까지 한 험한 상황에서도 사진이 안 찍히는 등으로 심하게 망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A70의 전지 홀더에 4개의 aa 전지라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다. 과연 디지탈 카메라가 필요한가? 당분간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지금의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파고들기로 해보자. 머리 위에 먹구름을 하나 더 드리운 셈인가?
집 컴퓨터의 소비전력을 1w라도 줄이기 위해 안 쓰는 드라이브는 몽땅 전원을 빼 놓았다. cd-rom 드라이브 마저도. 하루 종일 무소음 잘만 방열판을 생각했다. 무소음이란,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 신호대 잡음비가 끝내주게 향상됨을 의미하고, 아울러 불필요한 잡음과 소비전력을 1w도 줄여보겠다는 짠돌 마인드에도 부합된다. 어참, 생각난 김에 짠돌이 까페에 가입. 다나와 대신 요즘은 불편해도 http://www.mosani.com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usb drive, 용산에 가면 늘 usb 드라이브를 흘낏흘낏 쳐다 보았다. 그러다가 최근 드라이브 마운팅을 지원하기 시작한 여러 mp3p에 관심이 갔다. usb drive 256MB 짜리가 75000원 정도라면, 그나마 눈에 띄는 제품은,
iRiver iFP-390T 220000원
i-BEAD 150M 230000원
후자는 리튬 폴리머 전지를 내장하고 있고 USB 포트에 바로 꽂아 충전할 수 있다. 상당한 매릿이다. 회의할 때 녹취가 가능하고, 랜이 불편한 환경에서 노트북과 컴퓨터 사이에 문서나 소스를 주고받을 때 써먹으면 편리할 듯 싶었다. 음악이야 늘 끼고 사니까. 인증서도 넣어 가지고 다니면 좋겠네. 이왕이면 부팅도 가능하게 만들어놓지 그랬어? 그럼 리눅스 커널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작업할 수 있을텐데. 256MB이면 임베디드 개발 환경이 가능할 것이다. gcc/g++ 하고 미니멀 라이브러리하고 개발 소스 전부를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만 보이면 usb 소켓에 꽂아 리눅스로 부팅해서... 작업이 끝나면 cvs에 살짝 올려두고... 아아... 생각만 해도 절로 흥분되는군! 그런데 22만원이면 구매한 중고 노트북의 절반 가격이고, 태국 편도 항공권보다 비싼 가격인데. 에잇 제기랄.
눈 여겨 보는 보드는 AMD cpu를 지원하는 것들. 보드를 평가하는 관건은 LAN이 내장되어 있고 WOL이 가능할 것. cpu는 AMD baton 2500를 점 찍었다. 인텔 cpu는 앞으로 쓸 일이 없을 듯. AMD cpu의 다중 파이프와 아키텍쳐 때문에 칩에서 일단, 열이 나건 말건 성능이 팬티엄 시리즈보다 좋고 가격대 성능비가 높다. 인텔 센트리노의 모바일 팬티엄이 사용하는 스피드스텝은 쓸데없이 희안하게 컨셉을 정해 놓아 영 신용이 안 가고 하이퍼 스레딩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보인다. 그걸... 최신 기술이라고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뻔뻔하게 주장하는 건가?
인텔이 추락하지 않는 한 가지 그럴듯한 이유는 AMD가 장사를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AMD 사장 왈: 센트리노는 쓰레기같은 기술이다. 일부분 동감, 쓰레기는 아니고, 그저 남들 다 하고 있는 것을 지금에야 하면서 네이밍을 잘해 장사해 보자는 수작이지. 거봐, 아무도 모르고 있었잖아? 아, 예전에 톰 아저씨 조차 AMD 아키텍쳐에 관해서는 무식을 드러냈다. 어떻게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지지할 수 있는지는 종교적 의문으로 남겨두자.
AMD가 노트북용 cpu를 만들지 않는 것은 기술력과는 무관하게 AMD의 자본 구조와 관련이 있을 듯 싶었다. 그들은 64비트 cpu 나왔다고 선전 엄청나게 하고 있지만 망할 것 같으니까 악에 받쳐서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런데, 노트북용 cpu라니? 상당히 바보스러워 보이는 칩 경쟁이 컴퓨터를 라디에이터로 만들어 케이스 안에 팬을 서너개씩 설치하게 만드는 짓을 사용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20세기 말 가장 웃긴 생쑈는 고성능 웍스테이션에 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pc 내부의 자작 수냉식 또는 펠티어 심지어는 값비싼 냉매 교환 냉각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과열' 경쟁이었다. 훗. 현실의 일부를 오도했다. 고도로 집적된 칩내 배선이 세선화 되면서 대량의 전류가 흐르면 당연히 막대한 열이 발생한다. 하하. 그냥 웃겼다.
디지탈의 알파 프로세서같은 것들. 알파가 처음 나왔을 당시 마치 리딩 엣지 교과서적 설계의 집대성을 보는 듯 했다. 400Mhz를 넘는 고성능 cpu가 설치된 웍스테이션에 쿨러 따윈 없었다. 뭐 나중에 서버에는 달긴 했지만. 그건 mips 프로세서가 처음 나왔을 당시나(어셈블리 북을 보고 엄청난 레지스터 파일에 놀랐고, 엄청나게 간단한 인스트럭션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컴파일러 만들려면 애 좀 먹겠는걸 하고), 6800/68000 cpu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 봤던 기분좋음 같은 것이었다. 인텔 cpu는 8008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밥맛 떨어졌다. 상당히 지저분하게 만든 cpu임에도 다들 그게 좋다고 극성이니... 인텔의 거지같은 잡동사니 세그먼테이션 모델은 적어도 5년 이상 소프트웨어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 요인이었다.
왜 괜찮은 cpu를 만들면서, 그런 괜찮은 기술은 하나같이 망해 버리는 것일까 <-- 여기에는 적당한 설명도 물론 있었다. 딜버트식 설명을 선호했다. 비즈니스 세계 전체가 멍청함을 그들의 생장 에너지로 사용하니까. 좀 더 일반화 시켜 인류 전체가 멍청하니까. 그리고 돈벌이에 애닳은 삶이나, 인류 전체를 멍청이로 치부하는 버거운 해석을 피하고 좀 더 '환경친화적'이고 사회적인 설명도 있지만 술자리에서나 힘껏 자유롭게 할 얘기 같아서 생략.
SDRAM PC133과 DDR SDRAM 2100 사이에 모듈 램의 호환이 안된다는 사실에 절망. 만일 업그레이드를 한다면 늦기 전에 램을 중고로 팔아 차액을 최소화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듯. 여러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해, 올 연말이 업그레이드 적기로 보인다. 개떼로 업그레이드 할 때 살짝 편승해서 부대이익을 누려야 만원이라도 절약하지. 하지만 컴퓨터 업그레이드 만큼 정말 쓸데없는 것도 없는데 단지 시기를 놓치면 비용이 얼마쯤 더 깨진다는 한심한 이유에서 업그레이드를 한단 말인가? 머리 위로 또다른 먹구름이 피어올랐다.
이러다가 연말에는 집구석에 짱박혀 피자나 배달해서 콜라와 욕구불만을 곁들여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키게 될 것 같은데. 돌파구는?
아아... 해본 놈은 안다. 허영과 지저분한 욕심을 DoD 스타일로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눈부신 해변,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한가롭게 페이퍼백을 넘기다가 저녁에는 맛 좋고 신선한 해산물과 시원한 맥주로 배를 채우는 낭만이 있긴 했다. 때마침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먼지가 되고 한없이 가벼운 영혼이 되어 파도를 넘고 대양을 건너 솟을 바람을 타고 산맥의 능선을 따라 구름까지 올라가 행성의 거대한 공허와 침묵을 음감할 것이다.
시뮬라시옹에 노자까지 맘대로 지껄이다가 이제는 언급도 잘 안 하는 젖같은 '매트릭스'식 표현으로; avoid 0, digitally high, logical true, simply 1, be the one, 완전함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대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베다와 우파니샤드와 불교가 합의를 본 바로 그 지점이 전기가 완전히 나간 해변에 있었다. 그때 내 옆에는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은하수가 어디 있냐고 묻던 진짜 바보가 있었고.
노래를, 빛나는 해변을, 영감을. 비애 말고.
Jethro Tull, Stormwatch, Elegy (3:33)
http://hanbill.com에 의료보험료를 자동 이체 신청해 놓았으나 자동 이체가 등록되지 않았다. 등록 신청은 20일 전에 했다. 자동 이체 신청과 더불어 email 고지 신청을 했는데 email로 고지서가 오긴 왔다. 자동 이체가 안되었으니 온라인으로라도 입금하려고 보니, 지로 번호와 사용자 번호를 email에 적어 보내지 않았다. hanbill.com에 들어가 고지서를 확인해 보려고 했으나 볼 수 없었다. 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괴상한 처지가 되었다.
민원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https://www.egov.go.kr 에서 민원 서류 발급 신청을 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2통 밖에 신청하지 않았는데 4통이 신청된 것으로 나왔다. 일반 우편으로 보내면 1000원 미만이 되어 금액이 너무 작아 처리할 수 없다고 사이트가 염소처럼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등본 2통 떼는데 1600원이나 하는 등기로 부쳐야 했다. 그런데 처리 안된 줄 알았던 1000원 미만의 민원 서류가 나중에 처리가 된 것으로 나왔다. 자기들 실수로 2통 더 '신청'(?)한 것은 봉투 안에 차액만큼 동전을 넣어 보내주겠다는 친절한 동사무소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행정 업무의 복잡함과 번거로움을 인터넷까지 몸소 확장해 주신 듯 했다. :)
순박하고 천진한 삶이란...
우거지 상을 하고 그동안 바빠서 못본 밀린 잡지들을 들쳐 보았다. 마이크로 소프트웨어가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았다고 적혀 있었다. 과월호의 표지 이미지를 나열해 놓았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지는 1983년 5월호 까지였다. 그 이전 것들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그럼 내가 마소를 본지 20년째라는 얘기네? 허거덕. 그런데 전혀 발전이 없었잖아. 발전이...
역산하니 14-15살때 처음 프로그래밍을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당시엔 나도 신동 소리를 듣고 다녔다. 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사막에 서 있을 때 생각이 났다. 여행도 끝났겠다 집에 돌아가봤자 지루하고 밥맛 떨어지는 비루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초인이 되고자 했던 수백만 가지 방식 중 내 방식은 다른 수백만 가지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해피하게 콱 죽어버리자. 라고 생각했다가... 그냥 돌아왔다. 베두윈을 만났다. 내가 사막을 가리키자 그도 사막을 가리켰다. 피차 말은 안 통하고, 나는 거기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한 것이고 그는 거기로 갈 꺼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해석의 자유다. 낄낄 병신같이 웃다가 사막에서 돌아왔다. 어차피 조진 인생 그동안 갈고 닦은 재능을 적어도 한두 사람쯤 행복하게 해 주는데 쏟아붓자고 마음 먹었다. 실패로 점철된 삶을 바라보면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매니지먼트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다. 개발 과정에서 소스 코드를 볼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마소지의 어떤 양반 말을 들어보니 35세가 프로그래머의 정년이라나? 아직도 그런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라니! 놀랍잖아! 뭐, 더 프로그래밍을 못하게 되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청소부나 아파트 관리소 직원이 될 작정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런 코드를 보면 행복해졌다.
int bitcount(long x)
{
int n = 0;
if (x)
do
n++;
while (0 != (x = x & (x - 1)));
return n;
}
섹시하다. 가슴을 팍팍 후벼낸다. 저 코드는 대략 18년 전쯤 애플의 롬 어셈블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전혀 발전이 없이, 배운 것 마저 잊어버리면서 내가 만들면 이렇게 지저분하고 저것 보다 속도가 1/2이나 느린 코드가 되었다:
int bitcount(long x)
{
int n = 0, i;
for (i = 0; i < sizeof(x) << 3; i++, x >>= 1)
n += x & 1;
return n;
}
반성하자. 술 그만 마시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겸허하게 배우자. 그래! 귀찮은 것들은 싹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거야!
'리눅스 저널'인지 하는 잡지는 주욱 둘러보니까 더 안 나와도 될 잡지 같아 보였다. 밥은 먹고 있을까?
면밀히 검토해 보았지만 가격대 성능비로 캐논 A70을 능가하는 카메라는 아직 안 나왔다. 그놈을 물망에 올려놓고 사려다가 자꾸 망설였다. 이전의, 지금은 망가진 산요의 mz 카메라가 좋아서 그렇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살라르 데 유우니를 돌아다닐때 나흘 동안 전기가 안 나오는 막연한 깡촌에서 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던 카메라 중 유일하게 작동했던 디지탈 카메라다. 묵직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고작 영하 20도에서 얼어붙는 얍삽하게 생긴 400만 화소짜리 값비싼 소니 카메라를 비웃을만 했다. 하여튼 소니 제품 중 어느 것도 거침없는 사나이들의 세계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해 보였다. 소니 스타일은 나하고 영 코드가 안 맞았다. 그렇게 일년 동안 온갖 몰상식하기까지 한 험한 상황에서도 사진이 안 찍히는 등으로 심하게 망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A70의 전지 홀더에 4개의 aa 전지라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다. 과연 디지탈 카메라가 필요한가? 당분간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지금의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파고들기로 해보자. 머리 위에 먹구름을 하나 더 드리운 셈인가?
집 컴퓨터의 소비전력을 1w라도 줄이기 위해 안 쓰는 드라이브는 몽땅 전원을 빼 놓았다. cd-rom 드라이브 마저도. 하루 종일 무소음 잘만 방열판을 생각했다. 무소음이란,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 신호대 잡음비가 끝내주게 향상됨을 의미하고, 아울러 불필요한 잡음과 소비전력을 1w도 줄여보겠다는 짠돌 마인드에도 부합된다. 어참, 생각난 김에 짠돌이 까페에 가입. 다나와 대신 요즘은 불편해도 http://www.mosani.com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usb drive, 용산에 가면 늘 usb 드라이브를 흘낏흘낏 쳐다 보았다. 그러다가 최근 드라이브 마운팅을 지원하기 시작한 여러 mp3p에 관심이 갔다. usb drive 256MB 짜리가 75000원 정도라면, 그나마 눈에 띄는 제품은,
iRiver iFP-390T 220000원
i-BEAD 150M 230000원
후자는 리튬 폴리머 전지를 내장하고 있고 USB 포트에 바로 꽂아 충전할 수 있다. 상당한 매릿이다. 회의할 때 녹취가 가능하고, 랜이 불편한 환경에서 노트북과 컴퓨터 사이에 문서나 소스를 주고받을 때 써먹으면 편리할 듯 싶었다. 음악이야 늘 끼고 사니까. 인증서도 넣어 가지고 다니면 좋겠네. 이왕이면 부팅도 가능하게 만들어놓지 그랬어? 그럼 리눅스 커널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작업할 수 있을텐데. 256MB이면 임베디드 개발 환경이 가능할 것이다. gcc/g++ 하고 미니멀 라이브러리하고 개발 소스 전부를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만 보이면 usb 소켓에 꽂아 리눅스로 부팅해서... 작업이 끝나면 cvs에 살짝 올려두고... 아아... 생각만 해도 절로 흥분되는군! 그런데 22만원이면 구매한 중고 노트북의 절반 가격이고, 태국 편도 항공권보다 비싼 가격인데. 에잇 제기랄.
눈 여겨 보는 보드는 AMD cpu를 지원하는 것들. 보드를 평가하는 관건은 LAN이 내장되어 있고 WOL이 가능할 것. cpu는 AMD baton 2500를 점 찍었다. 인텔 cpu는 앞으로 쓸 일이 없을 듯. AMD cpu의 다중 파이프와 아키텍쳐 때문에 칩에서 일단, 열이 나건 말건 성능이 팬티엄 시리즈보다 좋고 가격대 성능비가 높다. 인텔 센트리노의 모바일 팬티엄이 사용하는 스피드스텝은 쓸데없이 희안하게 컨셉을 정해 놓아 영 신용이 안 가고 하이퍼 스레딩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보인다. 그걸... 최신 기술이라고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뻔뻔하게 주장하는 건가?
인텔이 추락하지 않는 한 가지 그럴듯한 이유는 AMD가 장사를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AMD 사장 왈: 센트리노는 쓰레기같은 기술이다. 일부분 동감, 쓰레기는 아니고, 그저 남들 다 하고 있는 것을 지금에야 하면서 네이밍을 잘해 장사해 보자는 수작이지. 거봐, 아무도 모르고 있었잖아? 아, 예전에 톰 아저씨 조차 AMD 아키텍쳐에 관해서는 무식을 드러냈다. 어떻게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지지할 수 있는지는 종교적 의문으로 남겨두자.
AMD가 노트북용 cpu를 만들지 않는 것은 기술력과는 무관하게 AMD의 자본 구조와 관련이 있을 듯 싶었다. 그들은 64비트 cpu 나왔다고 선전 엄청나게 하고 있지만 망할 것 같으니까 악에 받쳐서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런데, 노트북용 cpu라니? 상당히 바보스러워 보이는 칩 경쟁이 컴퓨터를 라디에이터로 만들어 케이스 안에 팬을 서너개씩 설치하게 만드는 짓을 사용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20세기 말 가장 웃긴 생쑈는 고성능 웍스테이션에 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pc 내부의 자작 수냉식 또는 펠티어 심지어는 값비싼 냉매 교환 냉각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과열' 경쟁이었다. 훗. 현실의 일부를 오도했다. 고도로 집적된 칩내 배선이 세선화 되면서 대량의 전류가 흐르면 당연히 막대한 열이 발생한다. 하하. 그냥 웃겼다.
디지탈의 알파 프로세서같은 것들. 알파가 처음 나왔을 당시 마치 리딩 엣지 교과서적 설계의 집대성을 보는 듯 했다. 400Mhz를 넘는 고성능 cpu가 설치된 웍스테이션에 쿨러 따윈 없었다. 뭐 나중에 서버에는 달긴 했지만. 그건 mips 프로세서가 처음 나왔을 당시나(어셈블리 북을 보고 엄청난 레지스터 파일에 놀랐고, 엄청나게 간단한 인스트럭션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컴파일러 만들려면 애 좀 먹겠는걸 하고), 6800/68000 cpu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 봤던 기분좋음 같은 것이었다. 인텔 cpu는 8008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밥맛 떨어졌다. 상당히 지저분하게 만든 cpu임에도 다들 그게 좋다고 극성이니... 인텔의 거지같은 잡동사니 세그먼테이션 모델은 적어도 5년 이상 소프트웨어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 요인이었다.
왜 괜찮은 cpu를 만들면서, 그런 괜찮은 기술은 하나같이 망해 버리는 것일까 <-- 여기에는 적당한 설명도 물론 있었다. 딜버트식 설명을 선호했다. 비즈니스 세계 전체가 멍청함을 그들의 생장 에너지로 사용하니까. 좀 더 일반화 시켜 인류 전체가 멍청하니까. 그리고 돈벌이에 애닳은 삶이나, 인류 전체를 멍청이로 치부하는 버거운 해석을 피하고 좀 더 '환경친화적'이고 사회적인 설명도 있지만 술자리에서나 힘껏 자유롭게 할 얘기 같아서 생략.
SDRAM PC133과 DDR SDRAM 2100 사이에 모듈 램의 호환이 안된다는 사실에 절망. 만일 업그레이드를 한다면 늦기 전에 램을 중고로 팔아 차액을 최소화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듯. 여러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해, 올 연말이 업그레이드 적기로 보인다. 개떼로 업그레이드 할 때 살짝 편승해서 부대이익을 누려야 만원이라도 절약하지. 하지만 컴퓨터 업그레이드 만큼 정말 쓸데없는 것도 없는데 단지 시기를 놓치면 비용이 얼마쯤 더 깨진다는 한심한 이유에서 업그레이드를 한단 말인가? 머리 위로 또다른 먹구름이 피어올랐다.
이러다가 연말에는 집구석에 짱박혀 피자나 배달해서 콜라와 욕구불만을 곁들여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키게 될 것 같은데. 돌파구는?
아아... 해본 놈은 안다. 허영과 지저분한 욕심을 DoD 스타일로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눈부신 해변,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한가롭게 페이퍼백을 넘기다가 저녁에는 맛 좋고 신선한 해산물과 시원한 맥주로 배를 채우는 낭만이 있긴 했다. 때마침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먼지가 되고 한없이 가벼운 영혼이 되어 파도를 넘고 대양을 건너 솟을 바람을 타고 산맥의 능선을 따라 구름까지 올라가 행성의 거대한 공허와 침묵을 음감할 것이다.
시뮬라시옹에 노자까지 맘대로 지껄이다가 이제는 언급도 잘 안 하는 젖같은 '매트릭스'식 표현으로; avoid 0, digitally high, logical true, simply 1, be the one, 완전함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대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베다와 우파니샤드와 불교가 합의를 본 바로 그 지점이 전기가 완전히 나간 해변에 있었다. 그때 내 옆에는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은하수가 어디 있냐고 묻던 진짜 바보가 있었고.
노래를, 빛나는 해변을, 영감을. 비애 말고.
Jethro Tull, Stormwatch, Elegy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