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겐노데쓰

잡기 2003. 12. 10. 03:47
번번이 golden section notes를 노트북에 설치한다는 것을 잊었다. 인디언들이 자신의 기나긴 이름과 조상의 역사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머리 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더도 덜도 없는 완벽한 포터빌리티를 쌩으로 구현하고 있다면, 나는 정보를 인터넷에 분산 저장해 놓고 그것들을 잃어버릴 때마다 기억을 잃어버렸다. 각종 잡스승들의 충고에 따라 생각없이 살아 골빈 놈이 된지도 오래되었다. 골빈 놈이 되어 행복하긴 한데,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자꾸 잊어버리는 상황이 그다지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adr = (adr & 0xff0000) | ((adr & 0x7fff) << 1);

오늘 한 일은 저것이 전부였다. 하드웨어의 수정을 가장 적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 최종 결과가 간단하지만 아폴로 13호를 지구로 귀환시키기 위해 골판지로 필터를 만드는 것에 필적하는 노력이 들었다. 라고... 엄살을 부려본다.

얼마전에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 위키를 사용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생각난 김에 적자.

wikix의 '누가 위키를?' 이란 글을 보았다. 나는 wikiX가 일없이 복잡하다고 욕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 글이 그날 바로 wikix의 rss syndicate page에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쪽 팔리게. wikiX는 여러 위키 중에 아마도 유일하게 매크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했다. wikiX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지만 나하고는 개념이 안 맞았다. 대신 moniwki를 한동안 보고 있었다. gyparkwiki 수준의 편리함을 수용한다면 그쪽으로 옮길만 했다. 속도가 매우 빨랐다. gyparkwiki는 perl을 사용하므로 서버 부하가 있고 rcs를 사용하지 않아 코딩으로 때운 부분이 많다. gyparkwiki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그 정도면 만족스럽고 훌륭했다. 손에 익은 위키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편하게 여겨지는 걸까? 글쎄다.

블로그와 위키:

위키는 제2세대 웹, 블로그는 3세대 웹이라 칭해짐. 훗날 별 대책없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 궁리만 하는 시멘틱 웹같은 이모 저모 뜯어봐도 '개소리' 같아 보이는 기술이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하면 사정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블로그의 장점: 개인화 지향, 저널링(온라인 일기장)
위키의 장점: team base, term base, versioning, journaling.

방식의 차이: 위키는 블로그와 달리 협업 모델을 지향. 개인이 위키를 사용한다면 마인드맵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블로그는 뭘 하자는 건지 성격이 빈약. 그래서 늘 아이덴티티 문제에 시달린다. 이제는 다들 귀찮은지 생각을 관두고 블로그질에 열중하는 모양새.

블로그의 단점: 텀이 없음. 에디터가 빈약. 단순한 카테고리. 보면 볼수록 정 떨어지고 시시하다. 개개인이 만들어 놓은 지저분한 블로그 페이지를 볼 때면 더더군다나. 아. 내 페이지도 거기에 해당하나? 그게 무슨 상관이야? 말이라도 똑바로 해야지.
위키의 단점: 개나소나 에디트할 수 있다? 그걸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별로 없거나, 아예 없음. 위키 덕에 2년 동안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지 않게 되어 아래한글과 microsoft word 사용법을 잊어버릴 지경이 되었는데, 평생 사용할 것 같은 지극히 종속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도구라는 단점이 있다.

블로그의 특장점: 비즈니스 모델을 갖다 붙이기 좋음. 소위 빨지산 블로거들은 비즈니스 모델에 대단히 심한 닭살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커뮤니티 사이트에 시원한 탈출구가 되었다. 나하고는, 그리고 블로그질을 하는 다른 사람들 하고 별 상관없는 얘기인데 왜 블로그의 '철학'을 배반한다며 싫어하는걸까? 블로그가 그렇게 신성한건가? 취향 탓이겠지.

위키의 특장점: 애당초 '백과사전'을 지향했던 원래 목표와는 달리, robot exclusion rule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검색 엔진에서 조차 외면당했다. 상당히 끝내주는 장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위키와 블로그는 개념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그런데 위키를 개인화하면 어떨까. 위키를 공동작업의 문서도구로 사용하면 어떻게 되나. 블로그를 보고 있노라면 매트릭스 1편에서 각자의 꿈 에너지를 빨아 먹으며 유지된다는 기계가 생각났다. 블로그질을 한다는 이유로 헌혈하듯이 봉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블로그질 하는 사람들의 하루에도 수천 개가 넘는 글 중 영양가가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예전 하이텔의 큰마을(?) 게시판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정보 사냥개의 입장에서는 블로그처럼 신호대 잡음비가 처참한 케이스도 없어 보였다. 큰마을(젠장 이름이 생각안나네)처럼 글빨 좀 있으면 논객 소릴 듣는다. 논객의 여러 특수성 마저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나는 왜 온라인에 일기장을 쓰나? 블로그질을 하면 전화질을 안 해도 된다. 내가 살아 있으며, 심지어 잘 살아있다는 것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매체는 없다. 그래서 내 블로그는 마지막 엔트리 하나만 출력되고 커멘트에 응답도 안한다. 내용도 없고 주제도 없다. 살아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소리만 들리는 정도다.

아참,
고객관리는 사양.


인간이란 말의 상당히 멋진 점은 인과 인 사이에 너른 공간이, 텔레파시나 그것보다 기술적으로 후진 전파로 충만한 공간이 있음을 상정하기 때문이었다. 7000년 중국 역사에서 선인은 인간이 무얼 의미하는 지를 직관했고 그것이 당분간(7000년) 영원하다는 사실에 자족했으리라 짐작한다. 공간이 있기에 텔레파시가 통할 수 있고(궤변이다), 공간이 있기에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워 지거나 멀어지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하여튼 그래서 비록 중국인들이 자국에서 떡머리로 지저분하게 돌아다녀도 인간이란 단어를 발명한 천재성만큼은 인정했다. 그에 반해 서양의 men은 m과 n 사이에 e가 볼썽사납게 끼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human은 한숨소리처럼 들렸다.

블로그를 잠자는 중에 다 써 버려서 더 쓸 것도 없다. 꿈속에서 뭔가를 하면 다음날 작업량이 줄어 기분 좋긴 한데, 블로그까지 쓸 건 없었잖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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