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죽일 놈들

잡기 2003. 12. 17. 04:19
"A = A + 1을 평가하면 어떤 값이 나오지?" 라고 물었다.
"A + 1이요" 라고 대답했다.

3초간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그러니까 A = A + 1을 평가하면 어떤 값이 나오는 거야?" 라고 참을성있게 묻는다. "A + 1이죠" 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심난해지고 말았다. 정확한 산술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질문은 논리적으로 옳고 답변은 엄밀하게 정확했다. 러셀이 풀었는지 튜링이 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기만 했다.

드디어 보드와 타이밍을 맞췄다. 빙고. 하이 파이브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 했다. 왜 하나. 당연히 맞아야 하는건데. 짜장면을 시켜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 샤워하고 맥주 한 잔 마셨다. 일이 잘 되어 기분이 좋아서 A + 0을 발견한 탓인지 계산만큼은 항상 정확했던 인도의, 인도 영화 동영상을 봤다.

Chitra, Raat Ka Nasha (6:50) 17MB

파키스탄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선물로 준 cd에서 가공한 동영상. 카불에서 만든 불법복제 cd. -_-; Asoka, 인도를 통일한(다시 말해 인도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던) 위대한 아쇼카 왕의 일대기를 담은 2001년 영화. 인도에서는 영웅이나 다름없는 샤루 칸 Shahrukh Khan과 카레나 카푸르 Kareena Kapoor 주연. 춤, 노래, 음악, 화려함, 재미, 감동 그 어떤 면에서도 헐리웃 뮤지컬은 인도 영화보다 재미가 없다.

개중 '바바'는 가장 재밌게 본 인도 영화였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외수 책에 그런 말이 있었다.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쳐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쳐 죽였다. 어... 그런데 깜빡 잊고 나를 쳐 죽이는 것을 잊었네?'


영화가 아주 끝내줬다. 사진은 벽에 그려놓은 대형 포스터. 다리 곁의 핏자국은 저 신성한 사진에 어떤 새끼가 빤 뱉어놓은 자국. 영화가 하도 재미있어서 맨날 저 폼을 흉내내고 다녔다. 지각있는 시민들이라면, 대번에 알아보고 나를 바바라고 불렀다.


2002년 9월 7일 오후 10시 24분 촬영. 의젓하군. 여차하면 우주도 구하겠는걸?

성수로 66번 몸을 씻고 쓰디쓴 잎을 입술에 문 채 지성소에서 그들의 쳐죽일 신을 만난 날. 평생 잊지 못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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