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이야

잡기 2004. 2. 7. 22:06
eouia님의 구더기... 뭐라는 글을 읽다가 생각난 김에 블로그 코리아에서 탈퇴하려고 들어갔더니 탈퇴 메뉴가 안 보인다. '블로그 없음'으로 바꿨다. 도메인 옮기고 나서 조횟수가 줄고 코멘트가 줄어 기뻤다. 조만간 호스팅을 옮기긴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난다. 구글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robot exclusion rule을 작성해야 할텐데... 더글러스 호프스테터가 자기 초월에 관해 말하다가 언급했던 우스운 역설이 생각났다. 신은 자기도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을까? 앵무새처럼 중얼거리자면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아티클 수 128개, 코멘트 513개에 대한 답글 22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나 나는 별 일 없고, 행복하니, 부담 없이 블로그질 하자.

일전 대낮,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Watching My Life Go By가 Watching my life go away로 보였고, keeping me human이 keeping me inhuman으로 보였다. 내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일본과의 30분 시차가 한국인을 일본인보다 언제나 30분 늦은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언젠가는 인체생리와 전자기술의 진보로 시각(time)을 느낄 수 있게 될 것 같다. 전 인류가 시간을 '느끼고' 싱크로나이즈 닭질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교보에서 가이드북을 두 권 샀다. 전에 시공사에서 날더러 가이드북 써볼 생각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체질상 가이드북을 쓰면서 여행하긴... 좀 그렇다. 하여튼 Just Go 시리즈가 그래 나왔다. 팔라완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마닐라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일주일에 하나 밖에 없다. 일단 바클라란에서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코스를 잡았다. 언젠가 방콕에서 만난 여행자가 필리핀에 있는 개인 소유의 작은 섬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이 안 난다. 게코와 뱀들이 우글거리는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지상 낙원이라던데.

수학 유전자(math gene)의 앞 장(적어도 반 이상)은 몹시 지루했다. 책이 지루한 이유는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얘기를 적어도 책의 반, 150페이지가 넘어가는 동안 늘어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리하고 친절한 해설보다는 책을 압축해서 100 페이지 이내로 요점 정리 했더라면 읽기 편했을 것이다.

책을 찾게 된 동기가 자연어와 기계어, 그리고 수학 사이에 모종이 결연이 있다는 막연한 추측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였다. 옛날 김씨 아저씨와 대화하던 중 그가 그 셋 중 둘은 관계가 없거나 무관하거나 그 관계가 희미하다고 말했다. 셋 사이의 공통점이 없었더라면 배우고 체현하는데 힘들었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 역시 언어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언어 구조, 수학 구조가 근본적으로 대뇌에 고착된, 프로그래밍된 '형태/형식'이라는 주장이다. 해설을 위해 증거가 아닌 논리를 사용한 것이 부적절해 보이지만(그 분야에 증거라고 할만한 두터운 퇴적층이 있어야지), 그와 비슷한 생각을 어렴풋이 품고 있다. 역시 증거는 없다.

숫자들 사이의 균질성, 동등성을 배우고 숫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숫자를 대체하는 상징적인 체계, 즉 대수를, 추상화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후로는 두 자리 덧셈도 어려워하는 바보가 되었지만. 대칭성, 자기 유사성, 반복성 등과 논리와 사실을 기술하는 자연어 표현이나 그것보다 좀 더 엄밀한 논리적 표현양식(수식)이 상호 유사하다는 점. 저자의 주장은 과도한 외삽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자신이 외삽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윤씨 아저씨는 나처럼 하드웨어를 잘 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도 본 적 없다. 술 먹다가 간다며 일어나길래 하는 수 없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캐나다인과 동석했다. 쉐인이라고 하는 친구였다. 소주에 콜라를 타 마셨다. 아니면 그 반대던가. 그와 오, 아, 리얼리? 세 마디만 사용했음에도 대화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술을 만들어 먹는 친구다. 맥주 마시러 가자고 끌고 나왔다. 중간에 사라졌다. 아침에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가 간밤에 먹은 것들이 올라올 것 같아서 숙소로 황급히 돌아왔다. 두통약을 먹고 자다가 일어났다. 해장국 집에 다시 가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그날밤 눈이 아주 많이 왔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 동남아 인기 스타 장동건을 이제사 처음 본다. 실미도 보다 재미있다. 한국인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머리가 홱 돌아버린 영화가 이다지도 많이 나오는걸까? 영화가 남 얘기 같지 않다. 마지막 장면의 신파가 나오는 동안, 저 불필요한 장면은 왜 넣었을까 생각 하면서도, 여긴 한국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사무실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