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잡기 2004. 2. 11. 00:46
노트북을 꽤 알뜰하게 사용해 왔다. 기차를 타면 차량 중에 맨 앞 칸과 맨 뒷칸에 220V 컨센트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지하철 역이나 공공 장소를 잘 살펴보면 청소부 아줌마들이 사용하는 전동 청소기구를 꽂을 수 있는 아웃렛이 있어서 어댑터를 끼우고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다. 아웃렛에 어댑터를 꽂아 놓고 쭈그리고 앉아 블로깅을 하는... 좀 불쌍한가?

파나소닉의 신 제품 노트북은 배터리 사용시간이 무려 7시간에 달했다. w2b가 스펙상으로 5시간, 실제로 동영상을 볼 때 3시간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스펙의 7시간은 적어도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갈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니콘 공유기에 있는 문제로 추정되었던, 지나치게 많은 포트를 한꺼번에 사용하면 공유기의 성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상은 푸르나에서 오버넷으로 교체하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여전히 집의 공유기로는 특정 서버 포트 스캔 따위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지만.

이번이 몇 번째일까. 유무선 공유기를 네 번째로 산다. 새로 옮긴 사무실에서 사용할 용도로 용산에 들러 14만 5천원 짜리 OvisLink AirLive WL-5404AR를 샀다. 주인장이 오비스링크 공유기를 어떻게 알고 사냐고 물었다. 되는대로 첫 눈에 띄는 제품을 골랐다고 대꾸했다.

새로 지은 용산역. 어디서 많이 본듯한 디자인.

집을 나서기 전에 구매할 공유기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다. 인터넷을 뒤져봐야 하는데... 이럴 때는 한 달 사용료 15000원 짜리 넷스팟 아이디가 아쉽다. 주변의 누군가 한 사람만 총대를 매면 다수가 행복해지는데 말이야.

어쩌면 좋지. 난감하네... 아, 방법이 있다. 시도해 보자. 상가 1층에 놓인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펴들고 site survey를 해서 발견된 ap 또는 유무선 공유기에 차례차례 접속을 시도해 보았다. 실패. 실패. 실패. 무응답. 실패. 빙고. 걸려 들었다. WEP 암호화를 사용하지 않는 어느 매장의 유무선 공유기가 잡혔다. 용산 터미널 상가의 노트북 매장들은 전시하는 노트북의 무선랜을 시연할 목적으로 유무선 공유기를 즐겨 사용한다.

앉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인터넷을 공짜로 사용하며 구매할만한 유무선 공유기를 뒤졌다. 눈에 띈 것이 오비스 링크의 WL-504AR, 유선에서 95Mbps의 throughput이 나오고 100MBps FTTH 서비스인 ntopia에 접속해서 테스트해 본 사용기가 있었다. 802.11b와 802.11g가 혼재된 네트웍에서도 대역폭의 희생을 일으키지 않는 기술을 사용. 껍데기는 촌스러워 보인다. 가격대는 145k에서 259k 사이, 가장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게가 선인상가 21동에 있다. 필요한 정보를 다 모았기에 노트북을 접고 일어나 가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헌혈차가 눈에 띄었다. A형 혈액을 급히 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여행 중에 만난 외국인과 얘기 도중(그도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체내에서 피가 빠져 나가면 마치 고산증과 유사한 증세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좋은 일도 해 볼 겸, 정말 그런지 실험도 해 볼 겸, 무료로 피 검사도 받아볼 겸, 용기를 내서 문을 밀고 불쑥 들어갔다. 사실 피 뽑는 것이 무서워서 여태까지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설문 항목 중에 최근 1년 이내에 말라리아가 있는 지역에서 머문 적이 있냐는 항목과 B형 간염 여부를 묻는 질문이 있었고 aids 감염 여부를 탐문했다. 자신있게 '아니'라고 적고, 대답했다. 400ml쯤 피를 빼는 동안 대롱이 간지러워서 몸을 뒤틀었다. 처음에는 피가 쩨쩨하게 흘러 나가서 힘을 잔뜩 주어 피 빠져 나가는 속도를 초당 10ml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좀 더 노력하니까 15ml까지 가능했다. 피를 빼고 난 후 계단을 오를 때 힘이 들었고 머리가 멍하다. 고산의 희박한 대기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본분을 다하지 못해 헐떡일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갑작스럽게 졸음이 밀려와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졸았다.

책상을 들여 놓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컴퓨터를 올려놓는 등, 사무실 셋업이 대충 끝났다. 15층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 빨면서 바라본 야경이 가관이었다. 디스코, 나이트, 백화점, 롬살롱 등등이 네온사인을 번쩍였다. 사각형 밖에 눈에 띄는 것이 없는 서울 근교 계획 도시가 이런 것이었구나.

"짜장면~~~" -- 영화, '오! 브라더스' 중. 이사가 끝나고 먹는 꿀맛 짜장면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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