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guys, i have to say this.. My boyfriend has tried some penis enlargement pills and he's a new person since than. The confidence..., the courage!!' 때되면 한두번씩 올라오는 코멘트. 용기도 생기나?

혼인신고서를 들고 구청에 갔다. 인터넷에서 관련 내용을 뒤져보면 의견이 분분했다; 혼인 신고서를 두 통 작성해야 한다는 말이 있고 세 통이라고도 하고 네 통이기도 했다. 혼인 신고서에 개인의 사적인 정보를 적는 부분이 있었다. 직업 란에 무직이라고 적어놓고 잠시 흐뭇했다. 수백만 청년 실업자 중에 하나가 된 것이다. 외롭지 않다. 아내의 도장과 신분증을 가져 오란다. 어찌어찌 해서 넘어갔다. 혼인 신고서에 증인 2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한 명만 적어 놓았다. 그것 때문에 '서류 미비'로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혼인 신고가 5분 안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닌가 보다. 오늘. 11:40am 집에서 출발. 12:03pm 구청 도착. 12:13pm 까지 기다리고, 12:22pm에 혼인신고를 끝냈다.

어느 나라에나 하나쯤은 꼭 있었던 괴테 학회(goethe institute)가 독일 문화원이었다. 그 동안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빵이 없어 굶어죽을 판인 나라에 어째서 괴테를 연구하는 학회가 있을까, 궁금한데 한 번 가볼까? 하고. 괴테 학회를 (괴테보다 더 위대한) 괴델 학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읽을 책이 없어 멍하니 서가를 둘러보다가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remaking the world)'를 다시 읽었다. 헨리 페트로스키를 테크널로지계의 계관시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지극히 편협한 한 장르에서 벗어나 여러 기술 분야에서 삽질하는 위인들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얼마전에 노벨 경제학상, 노벨 문학상, 노벨 평화상 등 보기에도 쓸데 없어 보이는 분야에 관한 상이 존재하는 것을 시답잖게 생각하여 몇몇 사람들과 불평을 교환했다. 그러고 보니 페트로스키의 글을 두어개 더 읽은 것 같다.

'사고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확신이고 이를 막는 것은 걱정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구였다. 페트로스키의 관점에 공감하고 그의 글을 재밌게 읽는 처지에서 그가 인용한 이 문장이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챕터가 거듭됨으로서 확인할 수 있었다. 걱정은 사고를 저지른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술자가 사고(모험)를 저지르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처지니까.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는 프로그래밍 교양서적들과 달리 페트로스키의 책에서는 기술자의 기술보다 기술자가 처한 사회적 여건과의 끊임없는 투쟁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기술을 하찮게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양반, 글이 그렇게 재미는 없지만(어쩌면 번역 때문?) 정말 마음에 든다.

얼마전 구매한 책 중에 '남극 탐험의 꿈'이 끼어 있었다. 저자의 '지질학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삽화가 많지 않아 그다지 재미가 없었는데 (암석을 삽화없이 어떻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책에는 사진을 좀 넣은 것 같다. 책 몇 페이지를 떠들어 본 결과로는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지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우나에 갔다가 로비에서 어떤 아줌마가 서성이는 모습을 보았다. 잘못 봤는가 싶어 몇 번이나 다시 쳐다 봤지만 아줌마였다. 왜 남탕에 아줌마가 있는 걸까. 사우나의 한쪽 통로에 있는 불가마를 통해 들어온걸까. 옷을 벗어야 하는데... 망설여졌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고 아즘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남자들의 알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육보시 하는 셈치고) 팬티를 내렸다. 외면한다. 여자가 맞다.

지하철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한눈 팔고 걷다가 젊은 친구의 어깨를 치고 제풀에 뒤로 자빠졌다. 일어서더니 욕설을 늘어 놓았다. 젊은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지나갔고 그의 옆에서 걷던 친구가 조심하세요 하고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열이 받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주위에 모여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같이 세상이 어떻다느니, 화를 내고 있었다. 얼이 빠진 채, 황급히 달아나는 젊은이들을 쳐다 보았다. 달아날 이유도, 화를 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양쪽 다 똥 밟은 것 같다.

사회는 왜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변치않는 의문이었다.

기술자에게 지식애와 지적 풍토는 있을지언정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없다는 점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수퍼 시디와 44Khz, 그리고 디지털 레코드의 음질에 관한, 이른 바 기술적으로는 결론이 뻔한, 무의미한 논쟁을 나눴다. 4년 만에 만나 아저씨와 논쟁을 벌이는 것 외에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언어적 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피차 여자를 좋아했다. 그점만큼은 일치를 보았다.

오늘 한 일은 Pentium III 600Mhz를 800Mhz로 오버클러킹하고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이것을 TV와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두번째, 서브PC의 CPU 쿨링팬을 대체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가로 3inch x 세로 3inch, 높이 1inch 짜리 쿨링팬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저항을 달아 쿨링팬에 인가되는 전압을 낮춰 팬의 속도를 조절하는 편이 나을까? 슬림PC의 부족한 슬롯을 채울 수 있는 8만원짜리 PCI 카드보다는 비용이 저렴한 5만 3천원짜리 TV encoder가 낫다고 결론 지었다. 그래서 작년 말부터 하고 싶어했던 업그레이드는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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