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un di ujung rumput

잡기 2004. 3. 16. 15:56
집 정리하다가 반명함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내 책 어딘가에 살짝 꽂아놓아 두었던 것 같은데 사진 속의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일이 부담스럽다. 머리도 아프고, 왠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다.

여행은 차이가 아닌 동질성을 찾는 과정이다. 라고 2001년 2월 말 무렵 말레이지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병으로 신음하던 중 노트에 적어놓았다. 차이도 동질성도 자아 발견도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절대적인 고독이었다. 도움을 원치도 않았고, 그래서 늘 방황했다. Di Lalang은 말레이어로 no를 뜻한다고 노트에 적혀 있었다.

보라색 쥬스, 갈색 쥬스 따위 어딘가 미심쩍은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어쩌다 발견한 빛 바랜 종이 노트에 적어 놓은 작은 단서들, 기록들이 재밌긴 했다.

여행할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을 감추고 평소처럼 슬쩍 자기 얘기만 늘어 놓았는지 찾아보려고 홈페이지를 뒤져 보았다. 기억이 사라지듯 기록도 사라졌다. 기록을 보면 그 때 일을 완전하게 재생할 수 있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문장의 몇몇 지표를 통해 보간 하면 마른 도랑에 물이 흘러 복잡한 지류를 만들어 내듯이 기억이 재생되었다. 그런 것들은 표지만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 동남아를 돌아다닐 때 메모만 남기고 여행기를 작성하지 않았다. 언젠가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왜 쓰나, 써서 뭘 하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