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 샷, 완 킬

잡기 2004. 3. 21. 14:57
별 내용도 없는데 밭작물을 망치는 두더지처럼 여기저기 들쑤셔 원치않는 링크를 걸어놓는(블로그 때문에 더 심해졌다) 검색엔진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늘어나서 홈페이지에 로버트 배제 규칙을 만들어 넣었다. 몇몇 검색엔진들이 deep search를 시작하려는 안 좋은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서칭 엔진에서 홈페이지가 검색되면 '최병렬 개새끼'라고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다. 가뜩이가 가세가 기울고 있는데 사이버 수사대인지 사이버 검색대인지 하는 작자들이 잡으러 와서 무거운 벌금을 메길 지도 모르니 조심, 또 조심.

전전날 술 먹고 뻗어 하루를 공쳤다. 짐 들어오길 기다리다가 다음 날도 공쳤다. 오후에 온다는 짐이 오후 4시가 넘도록 안 와 멍하니 영화나 보고 있으려니 심심하다. 그 다음날은 하는 수 없이 열심히 일 했다.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광화문에 갔다. 5시쯤 도착했다. 행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스피커 만큼은 우렁차게 쾅쾅 울려 퍼지고 있었다. 2-3시간쯤 앉아 있다가 추위 때문에 방광이 오그라들어 일어섰다. '시민 축제' 라고 했다. 탄핵이 어이없는 짓거리라는 점에는 맞장구를 치지만 행사에 적응이 안 된다. 왜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 왜 나는 사람들과 입을 맞춰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쳐야 하는가. 왜? 왜냐하면 시민이 뭉쳐 한 목소리를 내야 '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떼거리 문화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엾은 행사 진행자의 구호에 맞춰 단조롭고 바보스러운 '문화 행사'의 식순에 따라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구호 외치고, 같은 노래를 30번쯤 불렀다. 같은 노래를 30번쯤 부르다 보니까 마치 매스 게임을 하는 듯 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놈팽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씩 일어나 마이크를 붙들고 한참 욕설을 퍼붓던 3.12 밤 여의도 행사 때보다도 현장감이 없고 재미도 없었다.



민주 수호에 대한 열망으로 추위를 무릅쓰고 광화문까지 나와 밤 늦게까지 버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행사장으로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김홍신을 만났다. 어렸을 적에 인간시장을 꽤 재미있게 읽었고 벌레 죽이기나 사회 개혁은 모름지기 장총찬의 방식이 적합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법, 제도, 질서, 평화, 타협, 합의, 토론 이런 것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사자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지켜보다가 늙어 죽은 후 손주 대 쯤에나 실현되겠지. 그래도 투정 부리지 말고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 김홍신 아저씨 더러 사인 좀 해달라니까, 옆의 보좌관이 사인하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흔쾌히 사인해 줬다. 대체, 사인은 왜 해 달라고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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