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때문에 두 번 잠에서 깨었다. 며칠 전부터 똑같은 꿈을 꾼다. 점점 세부 묘사가 나아지고 있다. 수백 미터의 엄청난 해일이 산을 넘어 모로코의 어떤 거리를 덮쳤고 길거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물벼락을 맞고 죽었다. 고 생각했는데 깨어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물에 쩔은 생쥐인 채로 공황 상태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버스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지만 같은 꿈을 여러 차례 꾸면서 요령이 생겼다. 그 다음부터는 해일이 밀려올 때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 둔 상태였다. 전신을 강타하는 물은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 때문에 지저분하고 탁했다. 부러진 나무가 눈알을 파고들 땐 죽을 맛이었다. 그럭저럭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즐기긴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깨어나면 이미 죽은 자들과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우왕좌왕했다. 버스는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놓치면 끝난다. 그리고 다시 물벼락 맞고 죽으러 갔다. 왜 나와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할까. 같은 꿈을 계속 꾸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들국화, 다시 이제부터 2:16
아름다웠던 날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에 갈 길 잊었네. 돌아볼 수도 없이 찾아갈 수도 없이 내 눈은 발끝만 보고 있네. 나는 이제 어디쯤 온건가, 아직도 대답은 들리지 않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쯤 온 건가, 내 눈은 햇빛에 어지러운데. ... 다시 가야겠지. 다시 가고 싶어.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으니.
두 아저씨들과 보안에 관한 얘기를 예전에 했다. 성문, 지문은 위조가 쉬웠다. 홍체 인식도 눈알을 뿝은 다음 싱싱하게 보전 하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 이를테면 한 인간의 면역 글로블린의 형태와 나노 머신을 이용해 보안장치를 만드는 것이 훗날 가능할 것만 같다. 면역 글로블린 결합이란 문과 집이 일종의 항원, 항체가 되는 것이다. 나노머신은 자신과 꼭 맞아 떨어지는 열쇠가 아니면(마치 면역 글로블린처럼) 서로 싸운다, 파괴한다, 먹어치운다. 집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눈알을 굴리거나 목소리를 내거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다. 피부의 모공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나노 머신 연기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자 마자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이 문가의 인식장치에 스며 들어가 일정한 순서대로 키를 조립하면, 다시 말해 우두커니 문 앞에 서있기만 하면 문이 열린다. sequence scent라고 이름붙였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거리를 일정하게 돌아다니며 그 거리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나노머신을 하나 하나 체내에 축적한 후 집에 다다라야 문이 열리는 '문학적인'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거리를 걷거나, 그 자신의 생활 습관과 정서적 변화에 의해 형성된 패턴이 유기적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애인을 만나고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를 돌아다니고 피트니스 센터에 들르고 도서관과 할인매장에 들르는 패턴이다. 그리고 어느날은 비를 맞고 상처받고 지친 몸으로 문 앞에 선다. 자신을 바꾸고 자신이 바뀌어 영영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이 그러나 열린다. 김추자, 무인도 3:48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자.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우후~~~~~ 갑자기 생각난 수년 전 제주 여행기 (아아오에 아우아우에, 마우이, 또는 바람의 아오테아로아 등 흰색과 푸른색의 경쟁 조건)
사랑이 식은 후 상대에게 느끼는 미세한 감정은 그 격렬함에 있어 알러지와 유사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공평한 여행길에서마저도 침착함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경험을 오래토록 잊어버리고, 가끔은 다시 생각났고, 던져버리고 싶었다. 영혼이 빠져 나가듯 면역계가 방심하고 기만당하고 항원을 찾지못해 사라지면서 주기적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일정한 강도의 보안 상태를 유지하려면 환경을 유연하게 재해석하고 적응해왔던 그 모든 과정에 대한 기억 전부가 필요했다. 아니면 지질로 이루어진 세포막이 서서히 용해되고 배터리의 황산 용액이 바깥으로 새어나가 듯이 세포질의 용액은 졸졸 흘러나가다가 종국에는 미이라처럼 바짝 말라 죽을 것이다. 난감.
오지혜(와이키키 브라더스), 사랑 밖에 난 몰라 3:00
아름다웠던 날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에 갈 길 잊었네. 돌아볼 수도 없이 찾아갈 수도 없이 내 눈은 발끝만 보고 있네. 나는 이제 어디쯤 온건가, 아직도 대답은 들리지 않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쯤 온 건가, 내 눈은 햇빛에 어지러운데. ... 다시 가야겠지. 다시 가고 싶어.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으니.
두 아저씨들과 보안에 관한 얘기를 예전에 했다. 성문, 지문은 위조가 쉬웠다. 홍체 인식도 눈알을 뿝은 다음 싱싱하게 보전 하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 이를테면 한 인간의 면역 글로블린의 형태와 나노 머신을 이용해 보안장치를 만드는 것이 훗날 가능할 것만 같다. 면역 글로블린 결합이란 문과 집이 일종의 항원, 항체가 되는 것이다. 나노머신은 자신과 꼭 맞아 떨어지는 열쇠가 아니면(마치 면역 글로블린처럼) 서로 싸운다, 파괴한다, 먹어치운다. 집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눈알을 굴리거나 목소리를 내거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다. 피부의 모공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나노 머신 연기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자 마자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이 문가의 인식장치에 스며 들어가 일정한 순서대로 키를 조립하면, 다시 말해 우두커니 문 앞에 서있기만 하면 문이 열린다. sequence scent라고 이름붙였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거리를 일정하게 돌아다니며 그 거리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나노머신을 하나 하나 체내에 축적한 후 집에 다다라야 문이 열리는 '문학적인'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거리를 걷거나, 그 자신의 생활 습관과 정서적 변화에 의해 형성된 패턴이 유기적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애인을 만나고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를 돌아다니고 피트니스 센터에 들르고 도서관과 할인매장에 들르는 패턴이다. 그리고 어느날은 비를 맞고 상처받고 지친 몸으로 문 앞에 선다. 자신을 바꾸고 자신이 바뀌어 영영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이 그러나 열린다. 김추자, 무인도 3:48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자.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우후~~~~~ 갑자기 생각난 수년 전 제주 여행기 (아아오에 아우아우에, 마우이, 또는 바람의 아오테아로아 등 흰색과 푸른색의 경쟁 조건)
사랑이 식은 후 상대에게 느끼는 미세한 감정은 그 격렬함에 있어 알러지와 유사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공평한 여행길에서마저도 침착함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경험을 오래토록 잊어버리고, 가끔은 다시 생각났고, 던져버리고 싶었다. 영혼이 빠져 나가듯 면역계가 방심하고 기만당하고 항원을 찾지못해 사라지면서 주기적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일정한 강도의 보안 상태를 유지하려면 환경을 유연하게 재해석하고 적응해왔던 그 모든 과정에 대한 기억 전부가 필요했다. 아니면 지질로 이루어진 세포막이 서서히 용해되고 배터리의 황산 용액이 바깥으로 새어나가 듯이 세포질의 용액은 졸졸 흘러나가다가 종국에는 미이라처럼 바짝 말라 죽을 것이다. 난감.
오지혜(와이키키 브라더스), 사랑 밖에 난 몰라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