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도전한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크루즈 미사일 제작 편. 유인촌이 프로그램 마지막에서 한 말; '세계 무기 시장에 당당하게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이 프로그램의 늘 봐도 뻔한 포맷과 자랑스러운 한국인에 대한 자화자찬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게 된다.

며칠 두통에 시달리느라 한밤중에도 광자로 충만한 거리에서 머리가 아팠다. 그렉 이건의 소설에 나오는 아이디어가 굉장하다고 생각했다가, 곰곰히 거슬러보니 나도 10년 전에 스페이스 오페라의 아이디어로 써먹으려고 스케치했던 그것이었다. 중성자의 퀴크를 '꼬셔서' 진공에서 10^-33짜리 작은 구멍을 만들어 전자화된 인격을 다른 우주로 전송한다는... 뉴로맨서 류의 사이버펑크 양아치 소설이나 사이비 외계 종교 따위를 언급하는 소설에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고 대다수 SF작가들이 어째서 전자기술과 컴퓨팅에 관해서는 머저리같기만 할까 강렬한 의문과 회의를 품었던 시기였다. 매크로와 마이크로가 사방으로 쫙쫙 뻗어가는 그의 발산적인 소설을 읽는 것은 기쁨에 겨워 십이지장을 떨면서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것과 흡사했다. 이 작자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데 정말 천재적이다. 게다가 왠간하면 시원하게 우주를 뽀작내는 그의 스케일에 항상 존경심을 품었다.

최근 게시물을 몰아서 읽다가, 행책 사장의 시대착오적인 판단에 관해 뭔가 한 마디 할까 하다가, 70년대에 고착된 정서적 기억의 고고학적 답습을 공격하는 것은 본의 아닌 인신공격이 될 것 같다 관뒀다. 애당초 sf팬덤의 독자층을 흡수하려는 기획 의도가 없었으면서 이제와서 팬덤의 무관심을 경험하자 그들의 사랑과 관심을 구걸하는 것은 의아했다. 그는 마치 행책sf가 출판사를 자극해서 sf도 한번 내볼까 생각하는 출판사가 생겼다고 믿고 있지만 글쎄다, 문학은 뒈졌고 실용서 외에 출판시장에서 볼만한 꺼리가 없어진 즈음 그들은 굳이 행책sf의 날라리스러운 자극이 없었어도 대안을 다각도로 모색했을 것이다. 극소수의 기획자와 번역자의 견해와 권고만을 수용했기에 그가 생각하는 실제로 느슨하게만 존재하는 팬덤에 대한 오해는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다. 출판사의 출판 행위를 비즈니스라기 보다는 자기만족에 겨운 자위 행위로 평가하는 나로서는 출판사의 사정을 고려해 줘야 할 의무나 측은지심이 없을 뿐더러, 나같은 sf팬은 행책sf의 출범 초부터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 했다거나, 일단의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행책 사장님 혼자 하는 착각은(그리고 그것의 원인 제공을 한 어떤 인간의 희안한 상상력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가 메말랐고 냉소적이고 독설이나 늘어놓는 놈이라서 일까? 재밌는 관점이다.

르 까레의 소설을 각본으로 사용한 동명의 Tailor of Panama를 tv에서 상영한다는 정보를 보고 부러 기다렸지만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내가 뭘 잘못 본 것일까. 내 기억력은 정말... 누비고 다니던 파나마 시가지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보고 싶었다. 우편 주소는 커녕 거리 이름 마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비 맞으며 무식하게 헤메다닐 때가 그립다. 꾸스꼬의 숙소 앞 층계 맡에서 일본인과 앉아 최대한 불량스럽게 코카잎을 씹었다. 집에서는 살떼냐를 만들어 먹으려다가 워낙 복잡해서 그냥 만두를, 아니 만두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젠장, 반죽만 해도 힘겨운데 언제 감자를 갈고 있어?



그리스도의 수난은 바벨 2세보다 재미가 없었다. 예수가 죽은 후 2000년 동안 벌어진 갖은 곤혹스러움과 피비린내와 생난리를 생각하면. 채찍으로 두들겨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부러 영화로 봐야 할까? 봤다.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이제는 시시하기만 한 바벨 2세를 봤다. 다시 본 '지구로'도 시시했다. 피부에 물을 뿌려도 새싹 하나 돋아나지 않을 것만 같은, 300백년전에 죽어 삭막한 풍경의 일부가 된 태백산 꼭대기의 주목처럼 말라 비틀어진 채 동시다발적으로 정서적 사막화가 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감정은 없다. 기억났다. 황가에게 몇 번이나 같은 얘기를 늘어 놓았다. 이 비참한 세계에는 웃을 일이 거의 없어. 하지만 여자들은 그래도 웃지. 그게 여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야. 라고.

정리하면,

* 딴 세상에는 웃을 일들이 있다. 여자가 없어도 되고.
* 다른 세계에 여자마저 있으면 금상첨화다.
*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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