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프

잡기 2004. 5. 30. 04:08
자기 일을 좋아한다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일에 사로잡혀 있고, 한주간 세금에 관해 이것저것 공부한 덕택에 머리가 몹시 아팠다. 머리가 몹시 아파서 통 안 먹던 술을 마셨다. 술집 마담 누나가 우리집에서 자고 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니 별로 믿는 사람도 없었다. 집에 누가 자고 가는 것에는 비교적 관대해 옛날에 내 자취방에는 송구스럽지만 뉘신지 모르는 팔도 사나이들이 마른 명태처럼 사이좋게 일렬로 누워 자기도 했다. 아무래도 집안에 여자를 끌어들이려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그런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날 좋아하던 여자애들이 구름처럼 많았다고 말하면 아내는 거짓말로 생각하면서도 내심 내가 바람을 피울까봐 집요하게 추궁했다. 구름처럼 많았다? 뻥이다. 연애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해서 사랑에 빠지는지, 어떻게 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하다 못해 여자를 꼬시려고 도끼질, 작업을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주로 한 것은 달아나기 였고 수십년을 자기 등짝에 채찍질을 하며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지냈다. 사실상 매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매력이 있다고 하는 계집애들의 착각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영화를 봐야 찔끔 눈물이 나오는 정도로 차갑고 정이 없어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접근을 꺼리는 편이었다. 이런 사람이 결혼을 했으니 오죽 신기할까?

아내가 아니었다면 여행 중에 만날 지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국적을 굳이 따지지 않았고 나이나 미모, 지성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여행이 무서운 점은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의 공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 상태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가면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좋았을 터이지만 그런 발랑 까진 거짓말은 메스꺼워서 할 수 없다. 내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더더더 무서웠다.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어떤 꼴이 될지 소름끼치게 잘 알고 있었다(지금보다 백만 배는 더 멋있는 놈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는 나를 통해 꿈꾸던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내가 훨씬 더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아내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아내의 자아는 진을 속이고 사막에서 훔친 것이 아니다.

[펜더이야기] 조선시대 노총각 노처녀 -- 국가는 노총각, 노처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국가가 실력이 없어 못하는 일에, 나는 모범을 보이고 원한의 매듭을 풀었다.

python과 php 따위 스크립트 언어의 성능을 테스트해 보았다. 비표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영 마음에 걸렸고, 파이썬이 충분히 빠르다면 갈아탈 생각이었다. 캐시와 파이프라인, 지능적인 분기 예측 때문에 벤치마크 테스트는 날이 갈수록 복잡하게 짜야 되지만 그저 단순한 뺑뺑이만으로도 충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어쨌건 바이트 코드의 인터프리트 속도가 루프를 돌릴 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시스템 함수는 어떤 언어라도 대동소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테스트를 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php는 우리가 만든 사제 언어보다 2배 빨랐고 파이썬은 3 배 느렸다. 테스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눈을 비비고 수차례 테스트를 반복했다. 결론: 파이썬 만큼은 완전히 제외. 특별한 장점이 없으며, 탁상용 계산기 정도로 쓰면 알맞겠다. 그런데 대체 파이썬이 빠르다는 평소의 생각은 어쩌다가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오랫만에 y 아저씨와 함께 길손에 들렀다. 날이 선선하고 기분 좋았다. 가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연 것 같은데, 삼치 맛은 여전했고 히레도 괜찮았다. 딱 한 잔 하기 좋은 술집이지만 가기에는 영 내키지 않는 것이 밤마다 손님들이 너무 바글거렸다. 확장 개업 했음에도 여전했다. y 아저씨의 나이를 아무도 몰랐다. y 아저씨는 루이스 캐롤이 아니라서 자기 나이를 알아맞출 수 있는 퍼즐을 만드는 등의 유머감각은 떨어졌다. 옛날 옛날에 나이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하던 나이 든 남자가 살고 있었지요. 루이스 캐럴이란 필명으로 글을 쓰던 작자인데 그의 취미 생활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바칠 말장난으로 가득 찬 싯귀와 퍼즐을 밤새 만들어 갖다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꼬마애가 캐롤에게 나이를 묻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퀴즈를 냈지요~~ 1893년 작년에 너의 나이는 내 나이의 꼭 두 배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내 나이가 네 나이의 세 배였을 때는 언제였을까? 이 문제는 한국의 중삐리들에게는 누워서 떡먹기지만 한창 뛰어놀 어린 여자애가 풀기에는 조금 벅찼던 모양인지 소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비율이 더이상 무의미해지지요~~~ 해가 뜨고 달이 차듯 함께 늙어가는 것이지요~~~ 음. 재미없군. 나이 같은 건 알아서 뭐하나. 귀찮지.

어젯밤 피카드처럼 얼 그레이만 마시는데다 상당히 훌륭한 pda를 가지고 있어 기분 나쁜 장씨와 얘기 도중 체리 키보드 얘기가 나와 내친 김에 용산에 들러 키보드를 구매했다. 메커니컬 타입은 명품 소리를 들을만 하지만 타이핑할 때 소음이 워낙 심해 사무실에서 쓰기는 영 꽝이다. 이전 키보드는 7000원 짜리 맴브레인 타입으로 키감이 구린 중국제 싸구려 키보드였는데 일년도 채 안 되어 키캡의 실크 스크린이 벗겨지고 한 번도 안 닦아 꼬질꼬질하기 그지 없다. 새로 산 키보드는 노트북 키보드 같은 팬타그래프 타잎인데 del, ins, bs, home 키의 위치가 묘해서 적응하는데 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오른쪽에 ctrl키가 없다. 더 끔찍했던 것은 용산의 매장을 전전하다가 본 genius의 19e가 내가 산 i-rocks 6130보다 키감이 훨씬 쫀득쫀득하고 훌륭하더라는... 충동구매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는데, 이미 사버렸으니 후회해도 늦었다.

토요일이고 해서 심청전을 들으며 프로그래밍을 했다. 아내가 꺼내놓은 cd를 보니 예전에 내가 구워줬던 것이다. 카이로였다. 일본인들이 바글거리는 베니스 호텔(술탄이었던가?)에서 궁상 떨다가 거기 컴퓨터에서 우연찮게 복사한 것이었다. 아아, 카이로의 무슨 대학을 왔다갔다 했었는데... DJ. Yusef, ???, ???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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