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ered reality

잡기 2004. 6. 22. 23:24
어젯밤에 맥주 마시고 아침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몸이 약해졌다는 것, 의지에 따라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서글프기 짝이 없다. 가사가 거시기한게 참 계집애스럽지만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네들과 함께 눈물을 닦으면서; Nicole Flieg, A Little Peace (3:00) -- 우리는 바람 속에 나부끼는 깃털 같은 존재지요. 백조의 깃털일까? 참새, 닭들과 마찬가지로 백조도 조류다.

이전에 있던 메인스트림(제1금융권) 통장을 모두 정리해서 MMF와 상호저축은행으로 재분배했다. MMF의 수익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상호저축은행은 시중 이율이 3.5%를 유지하고 있을 때 1년 약정 6.5%라는 이율이 돋보였다. 신추가금전신탁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 투자성향은 '중립적'이 아니라... 아무도 알 수 없다. 휴면 계좌만 정리했는데도 10여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가방의 지퍼를 수리했다. 사물에 아무런 애정이나 집착을 보인 적이 없는 내가 이 가방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자기 아들이 사이버 검색 뭔가를 학교 숙제로 받았다며 1999년 미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다섯 문제 중 하나란다. 찾다가 못 찾아서 날더러 대신 찾아달라고 하던데, 지식인한테 물어보면 될 것을 왜 내게 물을까 의아했다. 찾아주기야 했지만 지각있는 어른이 왜 애들 숙제를 대신 해주는 것이고, 그런 류의 인터넷 검색은 30이 넘어 안팎으로 맛이 가고 만사가 시들해진 사람보다 똘똘한 애들이 더 잘해내지 않을까 싶었다. 술집에서 술 먹다 말고 4대 sf상이 뭐냐고 묻길래 의아스럽긴 하지만 네 가지 유명한 상을 말해 줬더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자기 마누라한테 전화를 해서 지식인을 뒤져 보더니 내 말이 맞아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묵묵무답. 지식을 인터넷에 방만하게 분산해 놓은 상태라 머리속에는 레퍼런스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생각을 통해 재조립, 재생산할 수 있는 재료가 너무나 적어 뜻밖에도 입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는 왠지 개소리로 들렸다. 또는, 이미 생각이 끝난 것들은 최종 결론만을 알고 있기에 그 과정이 지닌 무수한 선택지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잃어버린 지식은 다시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들 모두가 사실은 단 한 가지, 삶을 목적으로 전용되어 왔던 것이라도 이제는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설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지금의 '지식'이나 '정보'가 호사꺼리인지라. -- 이를테면, 김씨 아저씨가 날더러 Ted Chiang의 소설 중 뭘 읽었냐고 물었다. 읽긴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재미가 없으면 잊어버렸다. 더 기억해서 뭣하나. 값비싸고 오류가 잦은데다 용량이 제한적인 메모리를 쓸데없는 것들로 채워둘 수는 없는 형편이라.

술집에서 만난 아저씨와 얘기하다가 레이저 포인터를 얼떨결에 받았다. 수입해서 판매하다가 쫄딱 망했다고 한다. 3km라는 믿을 수 없는 통달거리를 자랑한다던데, 확산폭을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한 그것의 참용도는 i love you 필터를 끼우고 63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한강에 i love you라는 글자를 새겨 옆에 있는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것인데, 술집에 앉아있던 아가씨들은 그런 것에 시큰둥했다.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방비엔의 알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마침 술집에 계셨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따리의 넘버쓰리 gh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는 말을 들었다. 따리에서 빈둥거리며 사장님과 여러가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말 타고 돌아다니다가 최근에 다리가 부러졌다나? 후훗. 따리에서 창산까지 말 타고 기어 올라갔던 기억이 났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개울가에서 조선족 아저씨와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비단 아저씨도 가게에 들르는 것 같다. 진정한 사나이, 아니 미친놈만 갈 것 같은 타클라마칸 횡단을 같이 해보자고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었다. 악마의 발톱처럼 피부를 할퀴는 모래바람 속에서 비틀비틀 낙타를 몰고가는...

밀린 영화들 보기. 투모로우, 페이첵, 기타 등등. 얼마전 TV의 출발 비디오여행인지 하는 프로그램에서 투모로우의 '작품 해설' 겸 예고편을 미리 봐서인지 딱하게도 더 볼 것이 없었다. 하품을 한참 하다가 나왔다. 달말에 상영할 i, robot의 예고편을 보니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킬빌, 킬빌2는 영 재미가 없었고 맨 온 파이어하고 스파이더맨2를 기다리는 중. 오늘은 헬보이와 데스티네이션2를 보다가 자기로. 꿀꿀한 노래는 집어치우고, England, Garden Shed, Midnight Madness (6:59) -- 언제 들어도 지겹지 않은 몇 안되는 (내 생각에) 프로그레시브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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