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문희준

잡기 2004. 7. 27. 01:44
오이 세 개만 먹고(오이는 천원에 세개씩 판다. 맨날 사봐서 안다) 락 음악만을 추구한다는 문희준이란 가수에 관한 얘기를 귀국하고 나서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열을 내고 신나 했다. 무뇌충이라고 놀렸다. 시사에 어두워서 무뇌충이 문희준인지도 몰랐다. 락 음악을 수십 년 들으면서도 자타가 주장하는 락의 저항정신인지 뭔지 하는 것들은 겉멋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이 좋아서 딴따라가 되었으면 딴따라질이나 열심히 하면서 자기도 기쁘고 남들도 기쁘게 해주면 그만이지. 딴따라스러운 전인권은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아무튼 걔들만 유난히 슬프고 상처받고 열 받아서 절망하고 발광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어 월급 안 줘도 좋으니까 제발 컴퓨터만 만질 수 있게 해주세요 했던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나는 프로그래밍 세계의 '저항정신'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건방지고 오만했다. 재수없어서 문희준의 음악은 안 듣지만 그 아이도 하고 싶은 일이나 맘껏 하면서 살길. '얘들아... 난 맨정신이 싫거든... 그냥 노래나 한곡 할께... 나 이렇게 살아...' 간만에 파마머리 뚱땡이 전인권 노래나 들어볼까? 관두자. 구질구질하다.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곡으로; Le Orme, Uomo Di Pezza, Gioco Di Bimba (3:02)

십 년 전의 나는 무척 가난했다. 가난하지만 전인권처럼 행복했다. 지금은 먹고 살만 하지만 그때보다 더 가난하다고 느낀다.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한동안 시간이었으나 지금은 오로지 게으름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pda를 pc와 싱크하니 소설 보다 재밌는 뉴스기사를 늘상 보게 되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게임도 하고, 메모를 기록하고 mp3를 듣는다. 마치 수 년 전 pda가 내 일상의 일부분이자 모든 것이었던 때처럼. 보네것의 '갈라파고스'를 빌려 읽다가 만 기억이 나서(재미가 없어서) 다시 빌렸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원더우먼, 슈퍼맨 등 악당들을 때려잡고 언제나 시민과 정의의 편을 들어주던 수퍼 히로들에게 한국 경제를 부양할 능력은 없을 것이다. 그놈들이 착하다는 것이 문제다. 갈라파고스의 첫 장은 이런 고백으로 시작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믿어. 사람들 속 마음은 사실 착한 거라고 - 안네 프랑크(1929 - 1944)

유사장님은 착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우리'는 참새들처럼 늘 이렇게 짹짹거렸다; 착한 놈들은 돈 못 벌어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진화의 사다리 타기를 하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진화의 사다리 타기에서는 자주 꽝이 나온다. 착하건 말건.

아시모프, 풀 하우스, 파업, 버스노선 개편, 정치적 올바름 -- 왠지 신나 보인다. 그래도 여지없이 '꽝'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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