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a가 돌연 충전이 되지 않아 살펴보니 싱크 케이블의 usb vcc(또는 vdd)를 브릿지 해 놓은 점퍼 선이 끊겨 있었다. 집에서 고치려니 시간이 없어 사무실로 인두와 땜납을 들고 가서 이어 붙였다.
진단 프로그램을 작성하면서 되레 하드웨어 에러 수만 잔뜩 늘려 놓아 팀에게 미안했다. 약속대로 일주일 교육, 일주일 페어 프로그래밍, 그리고 일주일 후에 완성했다. 프로그램을 완성한 그들은 내게 고마워했다. 그들 스스로가 특정한 환경에 처한 탓에 한 번도 발현된 적이 없는 재능을 그제서야 발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 여자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거나, 쉽게 말해 불가능했다. 항상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안되는 걸까. 초기 조건은 여성들이 훨씬 우수한데.
일주일에 책을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까. 많아봤자 고작 다섯 권이다. 주5일 근무니까. 하지만 안 읽었다. 이번주엔 세 권만 읽었다. 잊어버리고 있던 revelation space나 마저 읽어야겠다.
어제는 가지 않아도 될 일에 괜히 끼어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네 종류의 교통기관을 이용하고 후덥지근한 더위에 연신 학학 거리다가 두 시간 동안 영업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소릴 떠들며 한가한 양반과 잡담을 늘어놓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신도림-신대방 구간에서 오던 지하철이 인명 사고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을 네 번쯤 들었다. 그 방송을 선선히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가장 꼴보기 싫었던 그 표정들은 여전했다. 지친 듯, 지겨운 듯, 순종적이면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듯한 일견 메스꺼운 도회적 무관심.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늦어지는 지하철을 기다리지 않고 등을 돌려 1호선, 3호선으로 차례로 갈아탔다. 집에 열두 시쯤 도착했다. 후덥지근하다.
기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프린트해서 말끔히 튀어나오는 승차권의 차량 번호와 좌석 번호가 크고 진하게 인쇄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매번 기차를 타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차량의 몇번째 좌석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곳 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자기는 그 정도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맨눈으로 글자가 보인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한시간쯤 비유적 표현을 들며 설명하다가 내릴 때가 되어 내렸다. 설명은 영 꽝이었다. 누구나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 직업에 대한 그간의 사고가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시끄러운 할멈한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게 설명하는 일, 틈틈히 짱구를 굴려보자.
아내가 메신저 꺼두는 것을 잊어버려 불쑥 말을 걸어온 네덜란드에 산다는 자칭 에릭이라는 친구와 대화했다. 한국어는 대체 어디서 배운걸까... 그녀의, 냉정하고 시큰둥하고 만사가 귀찮은 남편하고 대화하는 기분은 또 어땠을까? 물을 퍼담는 풍차가 멎으면 네덜란드는 물에 잠기지 않을까? 꼬르륵 하고.
진단 프로그램을 작성하면서 되레 하드웨어 에러 수만 잔뜩 늘려 놓아 팀에게 미안했다. 약속대로 일주일 교육, 일주일 페어 프로그래밍, 그리고 일주일 후에 완성했다. 프로그램을 완성한 그들은 내게 고마워했다. 그들 스스로가 특정한 환경에 처한 탓에 한 번도 발현된 적이 없는 재능을 그제서야 발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 여자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거나, 쉽게 말해 불가능했다. 항상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안되는 걸까. 초기 조건은 여성들이 훨씬 우수한데.
일주일에 책을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까. 많아봤자 고작 다섯 권이다. 주5일 근무니까. 하지만 안 읽었다. 이번주엔 세 권만 읽었다. 잊어버리고 있던 revelation space나 마저 읽어야겠다.
어제는 가지 않아도 될 일에 괜히 끼어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네 종류의 교통기관을 이용하고 후덥지근한 더위에 연신 학학 거리다가 두 시간 동안 영업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소릴 떠들며 한가한 양반과 잡담을 늘어놓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신도림-신대방 구간에서 오던 지하철이 인명 사고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을 네 번쯤 들었다. 그 방송을 선선히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가장 꼴보기 싫었던 그 표정들은 여전했다. 지친 듯, 지겨운 듯, 순종적이면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듯한 일견 메스꺼운 도회적 무관심.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늦어지는 지하철을 기다리지 않고 등을 돌려 1호선, 3호선으로 차례로 갈아탔다. 집에 열두 시쯤 도착했다. 후덥지근하다.
기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프린트해서 말끔히 튀어나오는 승차권의 차량 번호와 좌석 번호가 크고 진하게 인쇄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매번 기차를 타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차량의 몇번째 좌석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곳 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자기는 그 정도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맨눈으로 글자가 보인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한시간쯤 비유적 표현을 들며 설명하다가 내릴 때가 되어 내렸다. 설명은 영 꽝이었다. 누구나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 직업에 대한 그간의 사고가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시끄러운 할멈한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게 설명하는 일, 틈틈히 짱구를 굴려보자.
아내가 메신저 꺼두는 것을 잊어버려 불쑥 말을 걸어온 네덜란드에 산다는 자칭 에릭이라는 친구와 대화했다. 한국어는 대체 어디서 배운걸까... 그녀의, 냉정하고 시큰둥하고 만사가 귀찮은 남편하고 대화하는 기분은 또 어땠을까? 물을 퍼담는 풍차가 멎으면 네덜란드는 물에 잠기지 않을까? 꼬르륵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