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일요일, 용산에 가서 중고 핸드폰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업자에게서 분실보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잃어버린 핸드폰은 24만원짜리를 24개월 할부로 구입한 것인데 아직 할부 기간이 끝나지 않아 해당 사항이 없단다. 잔금으로 치러야 할 것이 17만원 가량. 10만원 미만으로는 쓸만한 중고 핸드폰을 구하기 힘들어 보인다. 인터넷에서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KTF 콜센터에 전화하니 분실보상이 가능하단다. 대리점에 들러 기계를 구입하려고 하자 분실보상을 해줄 수 없단다. 다시 콜센터에 전화하니 분실보상은 엄연히 가능하단다. 다른 대리점에 들러 기계를 구매하려니 역시 안된단다. 이번에는 대형 대리점에 들러 분실보상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안 된단다. 그래서 콜센터 직원을 연결해 주었는데 대리점 직원 말로는 자기들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권한. 좋은 말이지.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KTF ever e-3300 기계(내 경우에 가장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 이걸 구매하기로 마음먹었지만)을 주문했다. 13만 7천원, 꽤 괜찮았는데 결정적으로 자기들은 분실보상을 해줄 수 없단다.

된다, 안 된다. 임대폰 빌릴 때하고 상황이 비슷하다. 전화질을 3일쯤 하다가 슬슬 귀찮아서 KTF 플라자에 들렀다. 임대폰을 반납하면서 분실보상에 관해 알아봤다. 자기들 플라자에서 가능하단다. 그러고 여러가지 기계를 내 놓는다. 전번 기계의 할부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비싼 핸드폰을 구매하려니 살 떨려서 지금껏 싼 것들만 알아보고 다녔는데 플라자에서 가장 싸다는 것이 23만원이다. 시중보다 무려 십여만원이 비싸다. 23만원 짜리는 영 꽝이라서 그보다 나은 것을 고르려니 팬텍의 K-1200 기종, 허접한 단말기 주제에 26만 7천원 짜리.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다시 물어봤다. 콜센터에서는 분실 보상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그 대리점까지 알려줬는데 대리점에만 가면 분실보상이 안된다고 말하더라. 왜 그러냐, 플라자 여직원 왈, 콜센터 직원은 몰라요. 분실보상이 되는 곳은 여기 플라자 뿐입니다. 그럴리가.. 전화기를 들고 대질확인을 해 보려고 콜센터에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다. 플라자 직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수 없이 여기서 단말기를 구입해야 할 것 같다. 플라자 직원은 10만원 가량을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붙여 요령있게 할인해 주었다. 다른 이통사로 전환하려는 사용자를 막기 위한 보상할인 제도라나? 그래도 16만 7천원이고 가격에 비해 기계의 허접스러움은 여전했다.

5분쯤 통화하자 핸드폰에서 소리가 뚝뚝 끊긴다. 큐리텔 단말기는 전부(2개 밖에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그 모양인 것 같다. 슬슬 이러면 안되는데 싶어졌다. 이 기계를 들고 또 as센터를 들락거려야 한단 말인가? 구입 후 14일 이내에 환불이 가능하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니 애가 닳아서 KTF 웹 사이트에 들어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email을 보냈다. 답장이 왔다. 분실 보상 판매는 플라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리점에서도 가능하다고 앵무새처럼 다시 반복한다. 좋다. 그럼 환불하겠다. 행여 분실보상이 안되면 미납금 17만원을 갚고 다른 이통사로 이전하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아직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임대폰, 분실보상 두 가지 경우를 합쳐 대략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차라리 분실보상이 안된다고 말했다면,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찾을 가망이 거의 없다고 일찌감치 말해 주었더라면 2주를 이렇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허접한 서비스로 2주를 엿먹인 KTF를 계속 사용해야 하나? 실용적인 의문이다.

아내가 두더지처럼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에 지쳤다며 버스를 타 보잔다. 그러기로 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원효로. 어떻게 가야 하지? 예전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살고 있는 은평구, 서대문구, 일산 등지는 지역 코드 번호가 7이다. 달리 말해 대충 방위를 정한 후 버스 번호의 앞자리가 7인 버스를 찾아보면 된다. 있다. 7016번이 용산 부근에서 신촌까지 지나간다. 탔다. 내렸다. 배가 고파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떡볶기를 시켜 먹고 방금 내린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다른 버스를 탔다. 연결편이므로 요금을 더 내지 않았다. 새로 바뀐 버스체계의 좋은 점이다. 아무 것도 몰라도 집에서 동대문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점.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옳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 전번 술자리에서 모 사장을 칭송했다. 그는 집을 네 채나 가지고 있는데 이번 부동산 법 개정 때문에 거의 폭격을 맞다시피 한 사람이지만 똥 씹은 표정으로 펼치는 그의 주장은, 노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익에 합치되지 않지만 옳은 것을 주장하면서 손해를 감내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계속 그러하길. 수고~

오래된 농담: 세상에는 오직 10 종류의 사람들만이 있다. 바이너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there are only 10 types of people in the world: those who understand binary, and those who don't.) 코코를 이용해 컴파일러를 만들긴 만들었는데 expression을 lvar euqal rexp 형태로 나타내는 것이 나을 지 rexp로만 설정하고 assignment를 구문으로 사용하는 것이 나을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구현은 후자 쪽이지만, 아무래도 전자가 c 관행에 어울린다. 후자의 경우 LL(1) parser라서 bnf구문의 left order conflict가 생겼고 resolve가 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음.. EBNF를 지원하는 보다 자유로운 LALR 파서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농담만큼이나 실용적인 의문이다.

방문자를 배려하는 블로그, 이 양반의 주장에 따르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친절한 블로그는 그만한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꺼이 그 댓가를 치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이유로 손님에게 불친절한 블로거가 딱하게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등'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나는 작년 2003 블로기 어워드에서 감히 남들이 넘볼 수 없었던 단독 경쟁으로 '유아독존' 부문 에서 상을 받았던 사람이다. 하하.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면 인격에 문제가 많은 나도 물론 게시판질을 한다. 이렇게;


갈 데가 없어 하플에 들렀습니다. '아이 재미없어. 재밌는 거 없어?' 라고 말하는 호미니드는 확 자살해 버리기는 커녕 지구 어디에서나 활발하게 입을 놀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옛날에 루시퍼 원리로 빅 히트를 친 바 있는 데이빗 블룸의 '집단 정신의 진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먹이가 풍부한 지역에서 번성하던 박테리아 군집체에도 위기는 어김없이(늘 그렇듯이) 닥친다. 기근, 아사 상태에 이른 군집체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포자를 파견해 주변 지역을 탐색하며 먹이를 활기차게(아, 아닌가? 절망적으로 미친듯이) 찾는데, 성공적으로 먹이를 발견한 SCV는 자신의 고향에 그 내용을 리포트하는 화학물질을 발산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실패한 포자는 자신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화학물질을 방출하며 죽어간다는군요. 군집체는 탐색에 실패한 포자의 메시지를 받고 그에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냄새라고 할 수 있겠죠. 비슷한 군집생활을 하는 인간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그와 유사한 펑션과 더불어 문화적 밈을 통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거지요. 가령, 우울증에 빠진 놈이나 미친 놈 또는 실패한 놈들은 집단의 시각에서 봤을 때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할 일종의 지표가 되는 생물학적 시그널을 자기도 모르게 외부에 발산하게 되는데, 그래서 우울한 놈은 점점 더 우울해지고, 미친 놈은 계속 미쳐가고, 재미가 없는 놈은 점점 더 재미가 없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단의 생명력의 본질인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런 종자 중 실패자는 집단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생물학적인, 집단에 내재된 메카니즘이 있다는 뜻이지요. 댁이 아주 싫어할 것 같지만 나는 히히덕 거리면서 즐기며 나름대로 해석해 본 블룸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재밌어져라 죽고싶지 않으면.


메시지가 분명하지만 타인에게 나는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인간이 되어야 할 환경압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재밌어지거나 앞서가거나, 시련을 극복하거나, 훌륭해지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진화상의 이익 내지 목적은 교미와 번식의 성공인 것 같다. '사회적인' 블로그가 설마 무의식적으로 교미와 번식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제목이 무척 흥미롭다.

* 프랭크 오스키,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
* 노구치 하루치카, 오래 살고 싶으면 감기에 걸려라

한달동안 열댓 권의 책을 읽었다. 읽어야할 SF는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파퓰라 사이언스에 최근 SF의 추세에 관한 기사(Is Science Fiction about to go blind?)가 실렸다. 소개된 SF 작가들의 면면이 약간 지겹긴 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Charles Stross, Cory Doctorow, Greg Egan, Vernor Vinge, Neal Stephenson, 모두 프로그래머다. 이건의 신간 Schild's Ladder에는 양자 그래프 이론이 나온단다. 양자 그래프 이론은 현직 물리학자들도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이론이란다. 양자 그래프 이론이 뭐지? 이건이야 말로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 엎친 데 덮친 격인 SF작가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면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하고 달성 가능한 쉬운 목표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면을 잘 만들기 위해 한 3년쯤은 노력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고난 감각도 없는 주제에 너무 자신만만한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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