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용산에 들러 떨이로 파는 만원짜리 300W 파워 서플라이를 샀다. 노트북 상가에 들러 이런 저런 모델을 쳐다봤다. NEC Versa S820 155만원, Toshiba Portage R100 중고 150, 소텍 7180C가 110여만원, TG삼보 Averatec 3200 BR100이 120만원. 도시바 포티지가 개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런 저런 노트북을 구경하면서 최종적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에버라텍 3200으로. nbinside에서 최근에 필드 테스트를 했고 사용기가 여럿 올라와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게 2kg이 그저 마음에 걸릴 뿐이다. 견딜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파워를 조립했다.
토요일 점심 무렵 다나와를 뒤적여 보았다. 에버라텍 3200의 최저가가 125만원으로 나와 있다.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현금가로 113만원까지 해 준단다. 돈을 찾아 타이거노트에 들러 512MB로 업그레이드 해서 123만원에 기계를 샀다. 한 시간쯤 가게에서 물건이 오길 기다렸다. 북간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집에서 나뒹굴던 SDRAM PC133 256MB 짜리 2개를 팔아 88000원을 받았다. 노트북 살 때 그 돈을 보탰다. 가지고 있는 리브레또를 처분하면 50만원 가량 받을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그리 비싼 돈 들인 것도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한 시간쯤 노트북을 들고 왔다갔다 해 보니 2kg짜리 3200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리브레또는 팔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대체할만한 노트북을 사게 될 때까지 주욱 가지고 있으면서 사랑해 줄 것이다.
리브레또로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10GB의 하드 디스크에는 farscape 시리즈가 담겨 있었고 오고 가면서 8인치 와이드 스크린으로 드라마 감상을 해왔다. 가는 길에 한 편, 오는 길에 한 편씩.
3200의 셋업에 들어갔다. windows xp pro.를 설치하고 프로그래밍을 할만한 환경으로 만들어 놓고 고스트로 백업을 떠 놓았다. 그동안 고스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파티션을 통째로 떠서 네트웍의 다른 서버에 올려두었다가 리스토어가 가능했다. 근 한달 동안 차례로 맛이 가는 컴퓨터들의 인스톨과 셋업에 시달리다보니 별 수 없다. 하드 디스크를 무조건 c와 d로 나누고 c에는 os와 사용자 프로파일과 프로그램 파일즈만 넣어두었다. 그렇게 구조를 심플하게 만들어 놓자, 백업 사이즈도 1-2기가 바이트, 고스트 백업 시간은 3분 가량이면 끝났다. 진작 사용할껄.
3200의 디자인은 영 아니다. 그렇지만 가격대 성능이 상당히 좋은 스펙이다. 키보드가 팬타그래프 타잎이 아니라 낯설다. 키보드 레이아웃이 영 꽝이라서 특수키를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키보드의 왼쪽 약지가 닿는 부분이 약간 떠 있어서 타이핑할 때는 착, 착, 하는 심벌즈 소리가 났다. 교환해야 하는데 용산까지 가기가 귀찮아서 뜯기로 했다. 헉... 그런데 이놈에 나사에 산화 도료가 묻어 있는 것 같다. 나사를 빼자 마자 새파랗게 물이 들었다. 나중에 as 받을 때 뜯은 티가 나서 골치 아프겠는걸. 설상가상으로 엉뚱한 나사 하나가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박혀 버렸다. 빼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안 빠진다. 어쨌건 키보드와 기판 사이에 명함을 한장 살짝 집어넣으니까 이격이 사라져서 키보드는 제대로 칠 수 있게 되었다. 셋업에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배터리 칼리브레이션에 4시간, 팬 속도 칼리브레이션에 10분 더 걸렸다. 하루가 그렇게 가버렸다. 컴퓨터 이름은 아내의 아이디로 정했다.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아내와 춘천에 나들이 갔다 왔다. 오고 가면서 에버라텍으로 파스케이프를 두편 봤다. 서울로 돌아 올 때는 입석이었는데, 자리를 잘 골라잡아 ac 아웃렛이 있어 충전도 하고 고스트 백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일도 좀 하고 내장 cd-rw로 일한 내용을 cd로 한 장 구웠다. 열이 좀 나긴 하지만 백만원대 초반의 올인원 서브노트북(2kg짜리가 어떻게 서브'급' 노트북인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으로는 만족스럽다. 100만원대 노트북에 802.11g가 내장되어 있다. 그건 정말이지 큰 매릿이다. 집을 포함해 돌아다니는 곳 어디에서나 무선랜을 안 쓰는 곳이 없는 실정이니.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althlon xp-m 모바일 프로세서의 스피드를 사용자가 임의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에디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영화보는데는 클럭 스피드가 굳이 빠를 필요가 없었다. 영화 보는 내내 타스크 매니저의 cpu 인디케이터는 20% 미만이었다. 프로세서 상한 스피드를 1.5GHz가 아닌 그 절반인 800Mhz로 설정해 두고 액정 밝기를 글자가 보이는 수준으로만 할 수 있다면 배터리 소모량을 많이 줄여 배터리만으로도 3-4시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일반적인 사용에 2시간 30분 가량. 그동안 얼마나 업그레이드를 안 했는지 새로 산 노트북이 집안에 있는 3대의 컴퓨터 클럭 스피드를 몽땅 합친 것보다도 빠르다.
새로 산 노트북으로 김씨 아저씨가 부탁한 ARS 자동 응답 프로그램을 짰다. 카드 영업점 실적 조회를 위한 ARS 서비스를 모뎀을 이용하여 자동화하는 것인데, 거래처와 출력 일자, 실적 정보를 받을 팩스 번호 따위를 자동 응답하는 자동응답 시스템에 막무가내로 자동 응답하는 프로그램이다. 안방의 전화선을 뽑아 한 시간쯤 쭈그리고 앉아 '현장' 작업해서 데이터 파일로부터 입력을 받아 간단한 막무가내 스크립트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워낙 간단해서 한 시간이면 작성할 수 있다고 떵떵거린 탓이다. 그런데 3시간 걸렸다. 자기가 만든 덫에 자기가 걸린 꼴이다. 강력한(?) 스크립트 컴파일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덕택에 헤이즈 모뎀 호환 명령어군(워낙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짜봐서 아주 지긋지긋한) 중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재미있는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삽질의 댓가로 얻은 극히 사소한, 문자 한 글자 분량의 정보다.
조사장의 견해에 따르면 별볼일 없는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도 그 사람이 만족하기만 한다면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사용자가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 치고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허덕이는 시간 때문에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는 프로그램들이 부지기수로 많다고 했다. 내가 그의 견해에 일부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굳이 기술자라고 자처해야 할 명분이나 당위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거나, 간단히 말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자란 것이 날이 갈수록 싫어졌다. 문희준 병이랄까? 앞으로 아티스트로 불리우고 싶다. 돈은 안되고 삽질에 느는 것은 담배와 술 뿐이니. 황가의 주장에 따르면 요즘 아트가 개판인 이유는 예술가들이 술을 덜 처먹어서 그렇다고, 예술이 술에서 꽃피운다는 것을 몰라서 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듯 했다. 문학이 뒈진 이유는 소설가들이 예전만큼 술을 안 처먹어서 그렇다는.
김씨는 내가 sf판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시절을 그리워한 나머지 뭔가 부흥회스러운 사업을 다시 하게 될 꺼라고 굳게 믿었다. 다른 김씨는 내가 어린애처럼 산다고 윽박질렀다. 또 다른 김씨(봉당 아저씨)는 내가 자기현시욕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라 현실을 왜곡하고 직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서, 헛똑똑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첫번째와 세번째 김씨는 비판적이라 바쁘고 자기 중심적인 일에 몰두한 탓에 미처 발굴하지 못했던 내 실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도움이 많이 되어서 히히히 웃었다. 아이, 언더스탠드.
언더스탠드를 반쯤 읽었을 무렵이었던가? 김씨를 희롱하는 글을 쓴 후 언더스탠드의 마지막까지 읽다가 오해사기 딱 좋겠군 하고 골을 쳤다. 언어유사적이고 치명적인 키워드 트리거를 언더스탠드를 보고 난 다음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꼴이 되었다. 나라면 테드 치앙과 달리 호르몬 k의 투여 때부터 그것을 건드렸을 것 같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데리다가 죽었다니, 일단 명복을 빌어주고, 그가 지은 쓸데없는 여러 저작물을 무덤에 그와 함께 묻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아내의 경각심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auction에서 23000원 짜리 전자저울을 주문했다. 아내의 건강을 염려해서 예전에 auction에서 구매한 8000원 짜리 아날로그 온습도계는 안방 온도 24도, 습도 55%의 눈금을 한달째 변함없이 유지해서 그 성능의 의심스러웠다. 아내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아내를 위해 구입한 디지탈 체온계는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했다. 내가 냉정한 편이라서 그런지 겨드랑이 온도가 늘 36도 밖에 안 나왔다. 클리에의 싱크 케이블이 맛이 가서 벌써 15일째 핫싱크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 pdazzle.co.kr에서 14000원 짜리 케이블을 구매했다. 핸드폰의 cd/atm용 적외선 포트가 작동하지 않아 큐리텔 센터에서 os를 업그레이드했다. 되는지 안되는지 자기(기술자)도 모르겠으니 부디 한번 atm에 가서 테스트해 달란다. 리브레또를 드디어 오늘 우체국에서 소포로 부쳤다. 택배회사들이 언제부터 배송에 2-3일씩 걸리고 배송예약을 당일 하지 못하게 되었고 노트북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체국에서 소포로 부칠 때는 컴퓨터 부속이라고 속였다. 한 일년 오프로드에서 개고생을 한 노트북이니 집어던진다고 망가지지 않을 꺼라고 자신하지만, 모를 일이다.
이렇듯이, 나날이 드럽게 바쁘다 보니 자기정체성을 유지할 시간은 남아있지 않다. 또한, 20-20khz의 가엾은 떨림에서부터 공중을 누비는 88-108Mhz의 떨림, 빛으로 충만한 세계, 사방에서 파핑하는 2.4Ghz CDMA적인 떨림까지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떨림으로 가득 차 있건만, 전자파 차폐복을 입고 다니다보니 주변의 떨림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떨림이 있어야(떨려야)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난 안 떨릴 생각이다.
옆집의 망할 다람쥐는 자나깨나 쳇바퀴를 돌았다. 삐그덕 삐그덕. 놈은 인간과 만족스러운 유대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 같다. 교훈을 심어줄까? 주입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
토요일 점심 무렵 다나와를 뒤적여 보았다. 에버라텍 3200의 최저가가 125만원으로 나와 있다.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현금가로 113만원까지 해 준단다. 돈을 찾아 타이거노트에 들러 512MB로 업그레이드 해서 123만원에 기계를 샀다. 한 시간쯤 가게에서 물건이 오길 기다렸다. 북간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집에서 나뒹굴던 SDRAM PC133 256MB 짜리 2개를 팔아 88000원을 받았다. 노트북 살 때 그 돈을 보탰다. 가지고 있는 리브레또를 처분하면 50만원 가량 받을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그리 비싼 돈 들인 것도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한 시간쯤 노트북을 들고 왔다갔다 해 보니 2kg짜리 3200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리브레또는 팔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대체할만한 노트북을 사게 될 때까지 주욱 가지고 있으면서 사랑해 줄 것이다.
리브레또로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10GB의 하드 디스크에는 farscape 시리즈가 담겨 있었고 오고 가면서 8인치 와이드 스크린으로 드라마 감상을 해왔다. 가는 길에 한 편, 오는 길에 한 편씩.
3200의 셋업에 들어갔다. windows xp pro.를 설치하고 프로그래밍을 할만한 환경으로 만들어 놓고 고스트로 백업을 떠 놓았다. 그동안 고스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파티션을 통째로 떠서 네트웍의 다른 서버에 올려두었다가 리스토어가 가능했다. 근 한달 동안 차례로 맛이 가는 컴퓨터들의 인스톨과 셋업에 시달리다보니 별 수 없다. 하드 디스크를 무조건 c와 d로 나누고 c에는 os와 사용자 프로파일과 프로그램 파일즈만 넣어두었다. 그렇게 구조를 심플하게 만들어 놓자, 백업 사이즈도 1-2기가 바이트, 고스트 백업 시간은 3분 가량이면 끝났다. 진작 사용할껄.
3200의 디자인은 영 아니다. 그렇지만 가격대 성능이 상당히 좋은 스펙이다. 키보드가 팬타그래프 타잎이 아니라 낯설다. 키보드 레이아웃이 영 꽝이라서 특수키를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키보드의 왼쪽 약지가 닿는 부분이 약간 떠 있어서 타이핑할 때는 착, 착, 하는 심벌즈 소리가 났다. 교환해야 하는데 용산까지 가기가 귀찮아서 뜯기로 했다. 헉... 그런데 이놈에 나사에 산화 도료가 묻어 있는 것 같다. 나사를 빼자 마자 새파랗게 물이 들었다. 나중에 as 받을 때 뜯은 티가 나서 골치 아프겠는걸. 설상가상으로 엉뚱한 나사 하나가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박혀 버렸다. 빼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안 빠진다. 어쨌건 키보드와 기판 사이에 명함을 한장 살짝 집어넣으니까 이격이 사라져서 키보드는 제대로 칠 수 있게 되었다. 셋업에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배터리 칼리브레이션에 4시간, 팬 속도 칼리브레이션에 10분 더 걸렸다. 하루가 그렇게 가버렸다. 컴퓨터 이름은 아내의 아이디로 정했다.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아내와 춘천에 나들이 갔다 왔다. 오고 가면서 에버라텍으로 파스케이프를 두편 봤다. 서울로 돌아 올 때는 입석이었는데, 자리를 잘 골라잡아 ac 아웃렛이 있어 충전도 하고 고스트 백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일도 좀 하고 내장 cd-rw로 일한 내용을 cd로 한 장 구웠다. 열이 좀 나긴 하지만 백만원대 초반의 올인원 서브노트북(2kg짜리가 어떻게 서브'급' 노트북인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으로는 만족스럽다. 100만원대 노트북에 802.11g가 내장되어 있다. 그건 정말이지 큰 매릿이다. 집을 포함해 돌아다니는 곳 어디에서나 무선랜을 안 쓰는 곳이 없는 실정이니.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althlon xp-m 모바일 프로세서의 스피드를 사용자가 임의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에디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영화보는데는 클럭 스피드가 굳이 빠를 필요가 없었다. 영화 보는 내내 타스크 매니저의 cpu 인디케이터는 20% 미만이었다. 프로세서 상한 스피드를 1.5GHz가 아닌 그 절반인 800Mhz로 설정해 두고 액정 밝기를 글자가 보이는 수준으로만 할 수 있다면 배터리 소모량을 많이 줄여 배터리만으로도 3-4시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일반적인 사용에 2시간 30분 가량. 그동안 얼마나 업그레이드를 안 했는지 새로 산 노트북이 집안에 있는 3대의 컴퓨터 클럭 스피드를 몽땅 합친 것보다도 빠르다.
새로 산 노트북으로 김씨 아저씨가 부탁한 ARS 자동 응답 프로그램을 짰다. 카드 영업점 실적 조회를 위한 ARS 서비스를 모뎀을 이용하여 자동화하는 것인데, 거래처와 출력 일자, 실적 정보를 받을 팩스 번호 따위를 자동 응답하는 자동응답 시스템에 막무가내로 자동 응답하는 프로그램이다. 안방의 전화선을 뽑아 한 시간쯤 쭈그리고 앉아 '현장' 작업해서 데이터 파일로부터 입력을 받아 간단한 막무가내 스크립트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워낙 간단해서 한 시간이면 작성할 수 있다고 떵떵거린 탓이다. 그런데 3시간 걸렸다. 자기가 만든 덫에 자기가 걸린 꼴이다. 강력한(?) 스크립트 컴파일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덕택에 헤이즈 모뎀 호환 명령어군(워낙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짜봐서 아주 지긋지긋한) 중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재미있는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삽질의 댓가로 얻은 극히 사소한, 문자 한 글자 분량의 정보다.
조사장의 견해에 따르면 별볼일 없는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도 그 사람이 만족하기만 한다면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사용자가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 치고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허덕이는 시간 때문에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는 프로그램들이 부지기수로 많다고 했다. 내가 그의 견해에 일부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굳이 기술자라고 자처해야 할 명분이나 당위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거나, 간단히 말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자란 것이 날이 갈수록 싫어졌다. 문희준 병이랄까? 앞으로 아티스트로 불리우고 싶다. 돈은 안되고 삽질에 느는 것은 담배와 술 뿐이니. 황가의 주장에 따르면 요즘 아트가 개판인 이유는 예술가들이 술을 덜 처먹어서 그렇다고, 예술이 술에서 꽃피운다는 것을 몰라서 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듯 했다. 문학이 뒈진 이유는 소설가들이 예전만큼 술을 안 처먹어서 그렇다는.
김씨는 내가 sf판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시절을 그리워한 나머지 뭔가 부흥회스러운 사업을 다시 하게 될 꺼라고 굳게 믿었다. 다른 김씨는 내가 어린애처럼 산다고 윽박질렀다. 또 다른 김씨(봉당 아저씨)는 내가 자기현시욕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라 현실을 왜곡하고 직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서, 헛똑똑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첫번째와 세번째 김씨는 비판적이라 바쁘고 자기 중심적인 일에 몰두한 탓에 미처 발굴하지 못했던 내 실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도움이 많이 되어서 히히히 웃었다. 아이, 언더스탠드.
언더스탠드를 반쯤 읽었을 무렵이었던가? 김씨를 희롱하는 글을 쓴 후 언더스탠드의 마지막까지 읽다가 오해사기 딱 좋겠군 하고 골을 쳤다. 언어유사적이고 치명적인 키워드 트리거를 언더스탠드를 보고 난 다음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꼴이 되었다. 나라면 테드 치앙과 달리 호르몬 k의 투여 때부터 그것을 건드렸을 것 같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데리다가 죽었다니, 일단 명복을 빌어주고, 그가 지은 쓸데없는 여러 저작물을 무덤에 그와 함께 묻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아내의 경각심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auction에서 23000원 짜리 전자저울을 주문했다. 아내의 건강을 염려해서 예전에 auction에서 구매한 8000원 짜리 아날로그 온습도계는 안방 온도 24도, 습도 55%의 눈금을 한달째 변함없이 유지해서 그 성능의 의심스러웠다. 아내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아내를 위해 구입한 디지탈 체온계는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했다. 내가 냉정한 편이라서 그런지 겨드랑이 온도가 늘 36도 밖에 안 나왔다. 클리에의 싱크 케이블이 맛이 가서 벌써 15일째 핫싱크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 pdazzle.co.kr에서 14000원 짜리 케이블을 구매했다. 핸드폰의 cd/atm용 적외선 포트가 작동하지 않아 큐리텔 센터에서 os를 업그레이드했다. 되는지 안되는지 자기(기술자)도 모르겠으니 부디 한번 atm에 가서 테스트해 달란다. 리브레또를 드디어 오늘 우체국에서 소포로 부쳤다. 택배회사들이 언제부터 배송에 2-3일씩 걸리고 배송예약을 당일 하지 못하게 되었고 노트북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체국에서 소포로 부칠 때는 컴퓨터 부속이라고 속였다. 한 일년 오프로드에서 개고생을 한 노트북이니 집어던진다고 망가지지 않을 꺼라고 자신하지만, 모를 일이다.
이렇듯이, 나날이 드럽게 바쁘다 보니 자기정체성을 유지할 시간은 남아있지 않다. 또한, 20-20khz의 가엾은 떨림에서부터 공중을 누비는 88-108Mhz의 떨림, 빛으로 충만한 세계, 사방에서 파핑하는 2.4Ghz CDMA적인 떨림까지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떨림으로 가득 차 있건만, 전자파 차폐복을 입고 다니다보니 주변의 떨림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떨림이 있어야(떨려야)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난 안 떨릴 생각이다.
옆집의 망할 다람쥐는 자나깨나 쳇바퀴를 돌았다. 삐그덕 삐그덕. 놈은 인간과 만족스러운 유대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 같다. 교훈을 심어줄까? 주입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