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

잡기 2004. 10. 20. 18:52
...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흘러갔다. 하드웨어 설계에 관여하게 된 후부터 일거리가 많이 늘어났고 테스트할 것들도 늘어났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비해 하드보일드한 테스트 절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이 상당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엔지니어와 술자리에서 몇 가지 cpu 기술의 구현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분기 예측이나 파이프 라이닝, 수퍼 스칼라, 코드/데이터 캐시, 라이트백, 버스트 리드 사이클 따위를 얘기하자 애초부터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해보면 말이 어렵지 되게 쉬운건데... 100메가에서 작동하는 cpu를 거의 1기가 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이건 코어 테크널로지가 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는 내 입장이 꽤 한심해 보였다. 나는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다. 하드웨어의 커버리지를 넓히기 위해, 애당초 떵떵거려던 대로 소프트웨어에서 대부분의 구현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결과가 말해준다. 그놈에 결과에 다들 흥분했다. 이제 단지 클럭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류의 희망들이 오고갔다. 수개월 전과 달리 모던 cpu 디자인에 관해 떠들어도 이제는 경청해들 주셨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데 2년이 걸릴 꺼라고 얘기했다. 1년은 다음 1년 동안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금도 없고 다섯명 뿐인 회사에서 베이스라인이 별로 없는 기술자들끼리 모여 공상과학소설같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기실 나는 별다른 희망을 품지 않았다. 이 바닥에 뛰어들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은 탓도 있고 날이 갈수록 돌대가리가 되어가는 이 믿음직 스럽지 못한 두뇌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 그랬다. 공포스럽다. 학습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지금, 하드웨어로 전업함으로서 소프트웨어로부터 따뜻한 거리감을 유지 해보자는... 능력으로 따지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기술자다. 하지만 이 필드에 뛰어들자 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헤엄쳐 다닐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아이디어가 펑펑 튀어나왔다. 꿈속에서 프로그래밍을 했고 꿈속에서 솔루션을 찾았다. 최근에 재밌는 꿈을 꾸었다. 일은 힘들어도 무척 즐겁고 재밌다. 나이 30이 다들 넘은 기술자들끼리 서로 닭대가리라고 불렀다. 닭짓으로 따지면 나를 따라올 자가 없으므로 나는 그들의 닭사모 회장이 되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내게서 자꾸 다른 것을 보려고 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능력 같은, 관심 없고 익사이팅한 테크널로지하고는 거리가 먼 프로젝트 관리나 매니징, 여기저기서 찌꺼지를 모아 쌓아놓은 광범위한 지식의 쓰레기들, 협상 능력 따위.

공장에서 내가 가장 즐겨하는 작업은 드릴질과 드라이버질 따위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것들은 대단한 경력을 요구하는 고급 노가다였는데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내는 사람들 중에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들은 bga를 수리하고 smd 캡을 인두로 찍어 기판에 순식간에 납땜하는 아줌마들이었다. 같은 작업을 수십년째 하다보니 그들은 도통한 것이다. 아, 나는 앉은 자리에서, 매번 작성하는 더블 링크드 리스트 코딩도 제대로 못해 몇 번씩 디버깅을 해야 하는데... 십 년 넘게 그짓을 하고도 손가락이 엉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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