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5

잡기 2004. 10. 31. 00:47
바빌론 5를 다시 보기 시작. 안드로메다 시리즈는 좀 있다가 봐야 할 듯. 들판에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 같은 안드로메다 시즌 1을 거의 끝냈지만 보면 볼수록 속이 메스꺼워서 더 보고 있자니 영 마음이 괴롭다. 

바빌론 5, burial의 한 장면. 이 장면의 대사가 이랬다.

"from the stars we came, and to the stars we return. from now until the end of time... we commit the body to the deep." -- 건조한 톤, 한 사기꾼의 죽음과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그의 장례식에 어울리는 대사.

"typical human lifespan is almost 100 years. but it's barely a second compared to what's out there. wouldn't be so bad if life didn't take so long to figure out. seems you just start to get it right, and then... it's over." -- 이어지는 의사의 진부한 견해.

"it doesn't matter. if we lived 200 years, we'd still be human. we'd still make the same mistakes."

"you're a pessimist." -- 그런 걸 대사라고 하냐?

"i am Russian, doctor. we understand these things." -- 역시! 그녀는 정통 러시안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돌아다닐 때 러시아 여행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왠지 죽이 맞을 것 같은데.

바빌론5는 여러 면에서 스타트랙이나 다른 sf 시리즈와 구분이 되는 sf물이다. 마치 배틀스타 갤럭티카가 아직도 그것에 견줄만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바빌론5를 다시 보니 10여년 전에 보고 흥분했던 그래픽이 영 구질구질해 보였지만(당시에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제대로 관람하지도 못했다) sf라면 마땅히 지녀야할 delicacy가 충실히 구현되어 있었다. 구질구질함을 말하기 앞서 스타트랙의 그래픽을 함 살펴보면,





우주선의 규모로 보아 진행방향에 놓인 수상쩍은 더스트의 디스터번스 패턴은 저렇게 나올 수가 없다. 행성의 얼음 띠에 반사되는 보이저의 음영을 보라. 스타트랙은 뽀대에 워낙 신경 쓰는 나머지 대원들이 셔틀을 타고 돌아다닐 때도 안전수칙을 개무시하기 일쑤일 뿐더러 등장하는 모든 외계인들이 산소를 흡입하는데다가 모든 민샤라급 행성의 대기는 인간이 호흡가능한 가스로 가득차 있었다. 외계인 외양의 허접함은 착잡한 감정마저 불러 일으켰다. 최근의 엔터프라이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외계인을 보면 스타트랙 세계에서 외계인들의 모습에 결코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제작자들의 강력한 신념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헛소리를 나불대는 벌컨성인이 꼭 한 명씩 타고 있다. 바빌론5의 비슷한 장면들; 시간 관계상 보다가 아무거나 찍었다.


보라. 선장이 안전벨트를 메고 있을 뿐더러 헬멧도 제대로 착용했다.


자세 제어 분사 묘사도 제대로 되어있다. 표류 중인 우주선을 낚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20초씩이나 보여주고 있다.

메디컬 에머전시 상황에서 외계인은 확실히 격리되어 있을 뿐더러 보안요원이 프로토콜을 개무시하지 않는다. 바빌론5가 보여주는 묘사의 섬세함은 각본, 연출과 그래픽 작업에 최소한 뭘 좀 아는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스토리를 즐기기에 무리없는 연출을 한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지 바빌론5의 디테일이 스타 레이팅 파이브 짜리 완벽한 sf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이게 11년 전에 만들어진 sf라니... 다시, 스타트랙으로 돌아가서, 스타트랙 보이저 선장 캡틴 제인웨이가 지성이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외계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는 이렇다.




아아... 과학과 생명에 대한 정열로 불타는 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건질만한 장면이 많기로는 farscape를 따라올 sf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각본, 연출, 설정의 여러 면에서 바빌론5는 상대적으로 그 이후에 나온 sf를 초라하게 만들어 주셨다. 한국에 바빌론5의 팬들이 몇백 명이나 있을까? 문답무용. 우주적 쓸쓸함이 잔인하게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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