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잡기 2004. 11. 19. 15:55
기차 타러 가다 말고 돌아왔다. 집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에 들어가기가 뭣해서 점심 먹으러 도서관에 갔다. 점심 시간 까지 한 시간쯤 서가에서 게길 생각이었는데 게기다가 엊그제 실크 로드 얘기 도중에 나온 '나는 걷는다'를 빌렸다. 첫장을 읽고 마음에 들었다.

2년 전 여행을 시작할 때 오다 가다 만난 일본인과 실크로드에 관한 얘기를 했다. 실크로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악마의 땅이라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매력을 느끼는 정도 였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너무 늙기 전에. 짚차 말고 낙타 사서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다는 망할 놈에 모래바람을 맞으며 걸어 가고 싶은 곳이다. 옛 실크로드 상의 도시는 다른 루트가 개발되면서 사막에 파 묻히고 잊혀졌다. 이제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여행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죽을 고생을 해야지만 느낌이 오는 것 같다 -- 둔해진 것이다.

실크로드를 비단 장수가 다니던 길로 우습게 알았던 나로서는 여행하면서 차츰 쌓여가는 지식을 통해 그것이 말 그대로 인류가 수만년의 진화 기간 동안 무수하게 왕복하던 동서 문명의 교차로임을 깨닫게 되었다 --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천년이 아니라 수만년 동안 쌓인 문명의 역사와 족적이 천연덕스럽게 눈앞에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심지어는 불쑥 말을 걸며 수천년 묵은 삐끼질 까지 할 때 기분이 어땠겠나.

서가를 둘러보다가 2002년 씰크로드학이란 아주 두꺼워서 읽기가 두려운 책이 출간되었음을 알았다. 가기 전에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만날 때마다 함께 실크 로드 얘기를 하는 비단 아저씨가 차린 '비단길 여행사'의 개업식이다. 비단 아저씨하고는 언젠가 낙타 빌려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기로 했다. 개업식에 뭘 선물해야 하나. '씰크로드학'이 좋겠지? 좀 있다가 서점에 나가 봐야지.

거기 말고도 갈 곳이 많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코바까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야 할텐데... 한민족과 관련이 깊다는 바이칼 호의 어떤 섬에 있는 무당집에도 들러보고 싶고,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호랑이 처럼 사나운 러시아 처녀를 만나 당하고 싶기도 하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도 가보고 싶고, 백두산에도 가보고 싶고,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여행은 내게 역사에 관해 실낫같은 관심을 주었지만 그래도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 상호 교류가 없었던 폐쇄적인 문명의 답답한 모습은 영 물고 싶은 미끼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던 페도라 3가 드디어 나왔지만 설치할 컴퓨터가 없다. 궁리하다가 virtual pc와 vmware를 테스트 해 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꿨겠지만 얼마 전에 산 노트북은 cpu가 무려 2ghz나 되니까. virtual pc는 왠지 장난감 같았고 페도라 코어를 설치한 다음 실행하려니 그냥 맛이 갔다. vmware에서는 설치가 15분 가량 걸렸다. text mode에서 developement 킷과 몇 안되는 것들만 설치했는데도 1gbytes 가량이나 되었다. 거기에 arm 크로스 컴파일러를 설치 하고 작업하던 소스를 컴파일 해보니 잘 된다. 이제는 이동 중에도 작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도 보고. 노트북 하나 산 걸로 생활이 바뀐다는 게 꽤 재밌긴 했다. 일 년 동안 마구 쓰다가 본전 뽑고 버릴 각오로 산 것 임에도.



점심 때인데 먹을 것이 없어 인스탄트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조개와 야채를 넣으니까 얼큰한 게 그럴듯했다. 그런데 칼국수를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되나. kalguksu? knife-noodle?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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