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

잡기 2005. 7. 11. 01:46
씬시티: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루트거 하우어, 그외 기타 등등 한물간 느와르 액션 배우들이 완벽한 만화 삘로 제대로 후까시 잡았다. 오케바리 캐스팅. 별점 준다면 4/5 정도. 챈들러가 시작했지만 챈들러의 멜랑콜리에 일찌감치 싫증을 느낀 탓인지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피가 펑펑 튀는 하드고어 하드보일드 액션물이 체질에 맞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기생 오라비 녀석이나, 주둥이질에 여념 없어 금새 싫증 나는 오따꾸 스타일의 양아치 타란티노가 낀 것이 내 딴에는 '옥에 티'다. 로드리게즈 잘 한다!

시네큐브에서 하는 '인 디스 월드'를 제끼고(여행하면서 실시간으로 볼만큼 봐서 날 더운데 심지어 영화까지 보면 울화만 치민다) 신나는 블록버스터 액션물인 우주전쟁을 보기로 했다. 스필버그가 감독이라니, 궁상스러울 것 같아 그 점이 좀 마음에 걸린다.

집에서 20분 걸음, 새로 생긴 CGV 불광점은 어떤 양반이 디자인한 것일까? 돗대기 시장이 컨셉인 듯 라운지가 영 정신 사납다.

우주전쟁 전반부에서 아내는 EMP 벼락을 맞고도 차도 중앙에 차가 멈춰서 있지 않고 주인공이 탄 차가 쌩쌩 잘만 달린다고 불평을 늘어 놓았고(분사 밸브와 초크를 CPU보드로 제어하는 대부분의 차량은 멎지만 배터리와 스타팅 모터, 그리고 아날로그 기기들로 들어찬 옛날 자동차들이 멎을 이유는 없고 EMP가 그렇게 원거리까지 작용하지도 않는다) 후반부에서는 수류탄 두 개로 어이없이 무너지는 트라이포드에 낄낄 웃었다. 덕택에 우주전쟁이 아내에게 먹혀 들어갈 만한 구석은 없고 시종일관 코메디스러웠나 보다. 난 안 그랬다.

전쟁터로 달려가 죽을 줄 알았던 녀석을 영화 종반에 멀쩡히 살아 있었다. 죽었어야 한다. 배 타는 씬에서 주인공은 아들딸 잡고 마을 구석으로 미친듯이 달려갔어야 했다. 저러고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영화 본 사람들 의견은 악평 일색이지만 나는 트라이포드의 침공에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지구인들을 입 벌리고 정신없이 쳐다봤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 외계인의 공격에 맥없이,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무너지는 인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 나쁜 감정이야 알 바 아니고 스필버그가 무슨 정치적, 철학적 함의를 담은 영화를 제작해 왔다는 것인지는 의문이고, 스토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중요해진 건지 의문이고, 스필버그식 가족애가 여기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 이런 생각은 영화가 끝난 후에야 든 것이다. 보는 내내 정신없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쩌다보니 운좋게 살아 남은 서바이벌 게임이었고 나는 줄곳 내가 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실시간'으로 궁리했다. -- 덕택에 몰입 잘 되었다.

탐 크루즈 연기 훌륭했다. 그... 문근영처럼 유명한 다코다 패닝이 공포에 질린 꼬마 계집애였던가? 별 관심 없고, 없어도 괜찮은 배역인데 왜 끼워 넣었을까, 그래서 다들 스필버그의 '가족애'에 격분하게 된 것 아닌지 몰라.

어쨌건 올해 본 블럭버스터물 중 최고다. 당위와 갈등, 명분,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전쟁 류의 대량학살과는 달리 인간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에서 설정을 따져가며 근심걱정할 여지가 없었고 재난의 효과적인 디스플레이에 압도되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모르겠다, 외계인은 그저 닥치는 대로 죽였다 -- SF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재난은 그저 현실과 상당히 유리된 초현실적인 공상일 뿐이겠지만 태어나서 줄곳 지구인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괴이하고 초현실적인 SF'만' 줄줄이 섭렵한 나같은 작자에게 트라이포드가 인류를 신나게 작살내는 씬은 의외로 시원하고 신선하게 잘 먹혀 들어간다. 내가 기억하는 원작과는 꽤 다르지만(오글비가 저런 바보로 나오지 않았다) 등장하는 외계인의 침공은 인간이 힘겹게 맞짱 떠가며 동지애, 인류애 운운하며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미생물에 의해 어이없이 당하는 것, 아무 문제없이 소화 잘 된다 -- 댁이나 생각 많이 해라.

루카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당대 최고의 바보, 스필버그가 이번에 한 껀 해냈다. 잘했다 스필버그. 구질구질한 ET 같은 거 찍으면서 아까운 인생 낭비 하지 말자고, 오케이? 총평: 진득진득하고 무더운 장마철의 시원한 블록버스터! [우주전쟁] 추락하는 스필버그에게는 날개가 없다. -- 내 눈에는 몹시 외계인스러워 보이는, 어떤 양반의 바이아스 쫙 걸린 평

다운 받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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