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 집->응암역->월드컵경기장->반포대교->월드컵경기장->불광역->집 (38.5km)
* 주행시간: 2h6m
* 최고속도: 29.6kmh
* 평균속도: 16.4kmh
평가: 짐받이에 4kg 분량의 책을 싣고 평지만 줄곳 달렸다. 맞바람에서 17-19kmh, 바람을 등지고 22kmh가량을 꾸준히 유지. 짐 때문에 발이 무겁고 돌아와서 피곤했다. 비가 온 후 강변을 따라 펼쳐진 석양이 몹시 아름다웠다. 일주일 가량 한 셈인데 생각만큼 체력이 금방 좋아지지 않는다.
* 코스: 집->북한산성->의정부시 경계->다시 집 (33.4km)
* 주행시간: 1h27m
* 최고속도: 86.4kmh
& 평균속도: 17.2kmh
평가: 두 차례에 걸쳐 송추계곡 근처까지 왕복. 아무리 내리막에서 발질을 했다지만 최고속도가 86.4km가 나온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추측: gps가 일시적인 음영상태로 들어가 거리/시간이 점핑하면서(토끼 현상) 순간 최대속도가 잘못 계산되었다. 12ch gps이고 샘플링이 1s 단위라 단 몇 초 동안의 일시적인 음영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관찰한 최대속도는 44km였다. 집에서부터 의정부시 경계까지 꾸준히 오르막길이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2차례 주행, 한 번은 비를 많이 맞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이내가 20km 안팎이 되어 주행 연습을 하면서 생활권이 넓어진듯한 기분이다. 매일 오후 5시에 시작하여 7시쯤 끝낸다. 2주 전보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긴 했으나 특별히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니 근육이 붙는다거나 크게 운동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밥 먹는 양만 늘었다.
컨트롤: 범죄자에게 약을 먹여 그의 본성적 폭력성을 순화시킨다는 내용. 제목의 컨트롤을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보다가 나중에서야 무릎을 쳤다. 이렌 젠장, 그냥 시약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대조군(control)을 말하는 것이었잖아? 제목이 영화의 반전이다. 그게 전부였다. 영화를 이제는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만드는 건가? -_-
웰컴 투 동막골: 아내 말로는 연극이었다고 한다. 좀 더 잘 만들 것이지, 영화 끝나고 중얼거렸다. 연출이 의도했던 인문적이고 자연적인 공간(그들이 옳다고 믿는 일종의 히피즘(동막골이 그런 뜻이다) 또는 똥고집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습한 거부감 탓인지, 역사적 비극 앞에선 휴머니티가 환경과 생존에 대한 이해를 답보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판타지가 된다는 바로 그 생각을 연장한 영화다 -- 아무리 반복해도 모자란듯한, 인간성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그 머저리같은 경험과 인지의 똥덩이 같은 거대한 축적 말이다. 환상과 현실, 자연과 비자연의 대치, 융합, 교번의 도식을 그래서 좋게 보지 않는 것인지도. 좋은 플롯과 썩 괜찮은 연출로 양질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도 CG로 떡칠하고 '좋은 감정'을 슬며시 짜내는데야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 스미스의 찔찔 짜는 울음에 이르러 잠깐 공감했다. 거의 문학적 코드라 할 수 있는 광년이의 개입은 이해하지만서도 소총 몇 자루, 기관총 몇 자루, 박격포로 남북 '연합군'이 '광포'한 미제 전투기 네 대를 격추시키는 씬에 이르러서는 진정 이 영화가 넋빠진 환상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강원도 산간벽지(아마도 태백 부근인 것 같다)의 꾀죄죄함과 비루함이 '인간성' 하나만 믿고 환상적으로 각색될 수 있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을 터인데. 강원도를 뭘로 보는건지; 강원도 촌놈의 입장에서는 거부감 느껴지는 반시골스럽고 비시골스러운 풍경이기도 했다(비록 기억에 의해 왜곡된 환상적인 어린 시절이긴 하나, 내 시골은 늘 썩은 사료와 소똥 냄새가 함께 했다).
인터넷을 떠돌다가 영화 만든 작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동막골을 신비스러운 곳으로 만들자고 아주 굳은 결심을 한 것 같다. 호감 안 가는 아~주~ 굳은 결심!
redemption ark: 마지막이 약간 횅뎅그레 하지만(이 소설에서 가장 자주 쓰였던 형용사가 vast가 아닐까 싶긴 하다) 래널즈의 세심하게 묘사한 하드 SF적 묘사는 스타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늘 개무시하는 과학적 정합성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렉 이건이 도깨비같다면, 래널즈는 모래밭에서 소꼽놀이 하는 여자애처럼 세심하다 -- 많은 것들이 이 두꺼운 책에 있지만(670p. 아마 내가 읽은 SF중 가장 두꺼울 것 같다) 10g로 가속한 두 우주선의 추격전은 압권이다. 전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는 느리고 속 터지게 지루한 문장임에도(추격전이 거의 100p에 달한다) 흥미와 압박감을 준다는 점에서. 물리학자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가속 중인 우주선에서 발사한 무기의 상대론적 효과를 이렇게 자세하게(뭐 지루하달 수도 있고) 묘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과연 있기나 할까? 그리고 은근슬쩍 스토리는 왜 이 황량하고 광활한 우주에 생명체가 극히 드문 것인가 하는 공상적인 이유(설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에 대한 자문자답을 제시한다.
써 놓고 보니 누가 봐도 몹시 재미없을 것 같은 SF겠군. -_-
오랫만에 안드로메다 4기를 보는데 두어편 보다가 끝없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꺼버렸다. 안드로메다 만든 작자들인 자기들이 무슨 걸레를 만들어놓은 것인지 알고는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한심한 액션과 어설픈 스토리, 그렇다고 매력적인 주인공 하나 없고 한결 같이 웃기지도 않은 농담 쪼가리나 되는 대로 내뱉어대는 이 시리즈물이 대체 어떻게 7기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안드로메다 보다는 차라리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가 낫다. 그러다가, 아틀란티스의 주연 여류 과학자가 바빌론 시리즈에서 가장 시시한 캐릭터였던 딜런 역을 맡은 그 여자와 비슷해 보였다. 옳은 소리만 지껄이는 불행한 암탉 신세라는 점에서 정말 많이 닯아, imdb를 뒤져보니 각각 Mira Furlan, Torri Higginson이 배역을 맡았다. 흠. 무능력한 알파 암탉의 출연은 단순히 미국 SF 시리즈물이 지닌 유사점인 것일까?
MSG 의 진실 -- 모기불 아저씨가 썩 괜찮은 얘기를 하기 시작. MSG가 인체에 해로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리즈로 근거 자료를 제시할 수준은 못 되었다. 글루탐산 나트륨은 아시아 음식에서 '자연적으로' 예전부터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평생 먹게 되는 그것을 건강에 안 좋다고 먹지 말자고 하는 것을 대체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가 MSG를 싫어하는 딱 한 가지 이유는, 남들 말만큼, 모든 음식 맛을 평준화 시킨다는 것 정도다.
'텍스트 지향' 운동 -- 깬다. 물심양면으로 꾸준히 나라 걱정하는 조선일보나, 세상을 인간이 만족하는 그날까지 정원과 꽃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환경운동처럼 껍데기가 교조적이다. 버전 1.0은 그나마 뭔 소리인지 알아 먹겠고 확실히 반대할 수 있지만 1.1에 이르러서는 그렇잖아도 애매모호한 것을 순화시키면서 괴상해졌다.
1등.
헤헤
그렇다면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드
라
군
ㅅㅂㄴㄷ 또 시작이네
저런 간단한 댓글(부정확한 정보전달, 부정확한 표현, 의미 불명, 책임없는 문자질, 불건전, 불건강, 인터넷 자원의 낭비) 따위를 스스로나마 지양하자는 마음에 정이 가나? 난 안 간다(아마 블로그질하면서 뭔가를 똑 부러지게 표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쓰여진 텍스트의 질감과 농도를 그렇다면 평가할 수 있나? 글쎄다.
취지에 공감하지 않고, 대다수 인간이 '텍스트 지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믿지도 않는다. 새해 금연 결심처럼 글을 똑바로 잘 써서 인터넷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노라는(또는 공공장소에서 오줌을 눗지 않겠노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야 하고 싶은 사람이나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사물에 지점을 가지는 '언어'를 신뢰하지도 않고), 캥기는 구석이 있다. 어린 시절 인터넷 꿈동산에서 뛰놀 때는 인터넷이란 곳이 진지하고 참여하는데 기쁨을 느끼던, 볼만한 글이 많은 작은 세계 마을 같은 곳이었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나 소나' 다 하게 되니까 늘어나는 것은 쓰레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들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패킷 필터를 상상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나만 그런 생각했던' 것이 아닌, 교조적인 도그마를 지녔던 꼬마에게 낯을 붉히고 쪽팔려 하는 것이다.
블로그질을 통해서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은 없다.
MBTI 테스트를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하는 것 같은데 십수년 동안 INTJ와 INTP를 시계추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다. 이번에는 INTJ가 나왔다. 토정비결 보다야 약간 나은 신뢰성을 가진다고 믿는 MBTI 테스트 결과가 그래서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타고난' 과학자 타잎의 인물처럼 보이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평범한 취미가 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학자가 될 '경향성'은 따라서 내게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관찰 당하고 관심받기를 즐기는 불쌍한 여자들에게 첫 눈에 반하거나 지남철에 끌려오는 쇠조각처럼 이끌리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타인들의 성질을 긁고 울리고 웃기는 광대 같은 소질이나 언어에 상처받지 않는 특이한 기질은 외연이 가능한 유연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과학자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심지어 텍스트적이지도 않다. 텍스트에서 컨택스트를 읽는 것은 감정이입이라는 아마도 인간이 타고난 재능(gifted) 때문일 것이다. 계집애들 대부분이 어쩌다 사고로 잃어버린 초능력일지언정 그것에 경의를 표한다.
빈 서판식 생물학? 핑커가 책에서 한 주장이 맞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생물학을 더 이상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눈물 지었다.
'빈 서판'이 말하는 '환경'은 pc 같은 것을 굳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독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이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발현을 조장하는 우연한 사건의 조합 또는 그러한 사건의 조합가능한 다양성으로의 노출'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럴듯한 문명' 속에서 양질의 고등교육을 입수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은 노출과 발현의 '기회'를 증대시킬 따름이다 --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으면 IQ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상황에 직면해 문제를 좀 더 잘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고 끼리끼리 어울리다보니 INTP가 꽤 많아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우습게도 INTP, INTJ는 전 인류의 몇 % 내외라고 한다.
따라서 '적절하고 바람직한 교육(?) 환경'이란 것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 라고 생각한다; 초딩때 애들끼리 url 돌려보던 야동 때문에 자신의 본성에 눈을 뜬 아이는 예쁜 연애인과 한 번 해보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섹소폰에서 소질을 발견하고 밴드 활동 하다가 딴따라가 되어 대학에 특채로 들어가서 왠지 폼 나 보이는 외계 생물학을 전공하다보니 어쩌다가 학위를 얻어 미션 스페셜리스트 자격으로 화성 탐사에 참여했다. 거대한 샌드스톰 속에서 고장난 우주선을 수리 중 뇌내 산소 고갈로 죽음의 문전을 오락가락 하다가 느낀 존재한 적 없는 존재란 경외감 때문에 머리가 돌은 것으로 판단한 NASA는 그를 해고했다. 수십년 만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티벳에서 티벳 불교에 심취해 다람살라에 머물며 달라이라마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할 일 다한 기분이 들어 손자들에게 좋은 할아버지가 될 결심이 서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아들 내외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좌절하며 돌아서서 하는 수 없이 먹고 살아야겠기에 어스틴에서 어쩌다가 두부장사를 시작했는데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자극이 없는 말년은 시시했다. 환경에의 노출은 우연의 소지가 크고 유전 몇%, 환경 몇% 따위의 이상한 얘기와는 상관없다. 오히려 모험하는 이들(쇼부를 보겠다는 이들)이 절대적이고 심지어 터무니없어 보이는 간극을 극복하게 된다 -- 오독은 그렇게 발생하고, 심지어 예측조차 가능하다.
대개의 사람은 환경(생존)이 자신을 짓누른다고 생각하지(그래서 다양한 인생 경험이 적어 자기를 여덟 번 째로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해, '존재론적 이상향'을 찾는데 좋은 자극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분석적이고 심지어 논리적이기까지 하고 타인에게 가혹한 차가운 파충류라고 믿는 사람들은 내 인생을 드라이브 했던 가장 강력한 '힘'이 환경과 별 상관없는 열정과 의지, 또는, 로맨티즘이라는 것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마치 인간성과 사회와 국가가 그러해야 한다는 괴퍅한 믿음처럼. 그렇게 해서 생긴 오해와, 텍스트 지향 운동과, MBTI 테스트 결과와, 본성의 유전은 내게 서로 유관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쓰레기 같은 '환경'을)
-- 해병대 애들의 말로 추측.
휘리릭
쾅
철퍼덕
빠지지직
으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조심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피치못할 사고가 발생하여 길가에 엎어졌을 때;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있을까? 의문이다.
* 주행시간: 2h6m
* 최고속도: 29.6kmh
* 평균속도: 16.4kmh
평가: 짐받이에 4kg 분량의 책을 싣고 평지만 줄곳 달렸다. 맞바람에서 17-19kmh, 바람을 등지고 22kmh가량을 꾸준히 유지. 짐 때문에 발이 무겁고 돌아와서 피곤했다. 비가 온 후 강변을 따라 펼쳐진 석양이 몹시 아름다웠다. 일주일 가량 한 셈인데 생각만큼 체력이 금방 좋아지지 않는다.
* 코스: 집->북한산성->의정부시 경계->다시 집 (33.4km)
* 주행시간: 1h27m
* 최고속도: 86.4kmh
& 평균속도: 17.2kmh
평가: 두 차례에 걸쳐 송추계곡 근처까지 왕복. 아무리 내리막에서 발질을 했다지만 최고속도가 86.4km가 나온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추측: gps가 일시적인 음영상태로 들어가 거리/시간이 점핑하면서(토끼 현상) 순간 최대속도가 잘못 계산되었다. 12ch gps이고 샘플링이 1s 단위라 단 몇 초 동안의 일시적인 음영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관찰한 최대속도는 44km였다. 집에서부터 의정부시 경계까지 꾸준히 오르막길이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2차례 주행, 한 번은 비를 많이 맞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이내가 20km 안팎이 되어 주행 연습을 하면서 생활권이 넓어진듯한 기분이다. 매일 오후 5시에 시작하여 7시쯤 끝낸다. 2주 전보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긴 했으나 특별히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니 근육이 붙는다거나 크게 운동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밥 먹는 양만 늘었다.
컨트롤: 범죄자에게 약을 먹여 그의 본성적 폭력성을 순화시킨다는 내용. 제목의 컨트롤을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보다가 나중에서야 무릎을 쳤다. 이렌 젠장, 그냥 시약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대조군(control)을 말하는 것이었잖아? 제목이 영화의 반전이다. 그게 전부였다. 영화를 이제는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만드는 건가? -_-
웰컴 투 동막골: 아내 말로는 연극이었다고 한다. 좀 더 잘 만들 것이지, 영화 끝나고 중얼거렸다. 연출이 의도했던 인문적이고 자연적인 공간(그들이 옳다고 믿는 일종의 히피즘(동막골이 그런 뜻이다) 또는 똥고집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습한 거부감 탓인지, 역사적 비극 앞에선 휴머니티가 환경과 생존에 대한 이해를 답보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판타지가 된다는 바로 그 생각을 연장한 영화다 -- 아무리 반복해도 모자란듯한, 인간성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그 머저리같은 경험과 인지의 똥덩이 같은 거대한 축적 말이다. 환상과 현실, 자연과 비자연의 대치, 융합, 교번의 도식을 그래서 좋게 보지 않는 것인지도. 좋은 플롯과 썩 괜찮은 연출로 양질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도 CG로 떡칠하고 '좋은 감정'을 슬며시 짜내는데야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 스미스의 찔찔 짜는 울음에 이르러 잠깐 공감했다. 거의 문학적 코드라 할 수 있는 광년이의 개입은 이해하지만서도 소총 몇 자루, 기관총 몇 자루, 박격포로 남북 '연합군'이 '광포'한 미제 전투기 네 대를 격추시키는 씬에 이르러서는 진정 이 영화가 넋빠진 환상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강원도 산간벽지(아마도 태백 부근인 것 같다)의 꾀죄죄함과 비루함이 '인간성' 하나만 믿고 환상적으로 각색될 수 있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을 터인데. 강원도를 뭘로 보는건지; 강원도 촌놈의 입장에서는 거부감 느껴지는 반시골스럽고 비시골스러운 풍경이기도 했다(비록 기억에 의해 왜곡된 환상적인 어린 시절이긴 하나, 내 시골은 늘 썩은 사료와 소똥 냄새가 함께 했다).
인터넷을 떠돌다가 영화 만든 작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동막골을 신비스러운 곳으로 만들자고 아주 굳은 결심을 한 것 같다. 호감 안 가는 아~주~ 굳은 결심!
redemption ark: 마지막이 약간 횅뎅그레 하지만(이 소설에서 가장 자주 쓰였던 형용사가 vast가 아닐까 싶긴 하다) 래널즈의 세심하게 묘사한 하드 SF적 묘사는 스타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늘 개무시하는 과학적 정합성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렉 이건이 도깨비같다면, 래널즈는 모래밭에서 소꼽놀이 하는 여자애처럼 세심하다 -- 많은 것들이 이 두꺼운 책에 있지만(670p. 아마 내가 읽은 SF중 가장 두꺼울 것 같다) 10g로 가속한 두 우주선의 추격전은 압권이다. 전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는 느리고 속 터지게 지루한 문장임에도(추격전이 거의 100p에 달한다) 흥미와 압박감을 준다는 점에서. 물리학자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가속 중인 우주선에서 발사한 무기의 상대론적 효과를 이렇게 자세하게(뭐 지루하달 수도 있고) 묘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과연 있기나 할까? 그리고 은근슬쩍 스토리는 왜 이 황량하고 광활한 우주에 생명체가 극히 드문 것인가 하는 공상적인 이유(설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에 대한 자문자답을 제시한다.
써 놓고 보니 누가 봐도 몹시 재미없을 것 같은 SF겠군. -_-
오랫만에 안드로메다 4기를 보는데 두어편 보다가 끝없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꺼버렸다. 안드로메다 만든 작자들인 자기들이 무슨 걸레를 만들어놓은 것인지 알고는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한심한 액션과 어설픈 스토리, 그렇다고 매력적인 주인공 하나 없고 한결 같이 웃기지도 않은 농담 쪼가리나 되는 대로 내뱉어대는 이 시리즈물이 대체 어떻게 7기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안드로메다 보다는 차라리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가 낫다. 그러다가, 아틀란티스의 주연 여류 과학자가 바빌론 시리즈에서 가장 시시한 캐릭터였던 딜런 역을 맡은 그 여자와 비슷해 보였다. 옳은 소리만 지껄이는 불행한 암탉 신세라는 점에서 정말 많이 닯아, imdb를 뒤져보니 각각 Mira Furlan, Torri Higginson이 배역을 맡았다. 흠. 무능력한 알파 암탉의 출연은 단순히 미국 SF 시리즈물이 지닌 유사점인 것일까?
MSG 의 진실 -- 모기불 아저씨가 썩 괜찮은 얘기를 하기 시작. MSG가 인체에 해로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리즈로 근거 자료를 제시할 수준은 못 되었다. 글루탐산 나트륨은 아시아 음식에서 '자연적으로' 예전부터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평생 먹게 되는 그것을 건강에 안 좋다고 먹지 말자고 하는 것을 대체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가 MSG를 싫어하는 딱 한 가지 이유는, 남들 말만큼, 모든 음식 맛을 평준화 시킨다는 것 정도다.
'텍스트 지향' 운동 -- 깬다. 물심양면으로 꾸준히 나라 걱정하는 조선일보나, 세상을 인간이 만족하는 그날까지 정원과 꽃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환경운동처럼 껍데기가 교조적이다. 버전 1.0은 그나마 뭔 소리인지 알아 먹겠고 확실히 반대할 수 있지만 1.1에 이르러서는 그렇잖아도 애매모호한 것을 순화시키면서 괴상해졌다.
1등.
헤헤
그렇다면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드
라
군
ㅅㅂㄴㄷ 또 시작이네
저런 간단한 댓글(부정확한 정보전달, 부정확한 표현, 의미 불명, 책임없는 문자질, 불건전, 불건강, 인터넷 자원의 낭비) 따위를 스스로나마 지양하자는 마음에 정이 가나? 난 안 간다(아마 블로그질하면서 뭔가를 똑 부러지게 표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쓰여진 텍스트의 질감과 농도를 그렇다면 평가할 수 있나? 글쎄다.
취지에 공감하지 않고, 대다수 인간이 '텍스트 지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믿지도 않는다. 새해 금연 결심처럼 글을 똑바로 잘 써서 인터넷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노라는(또는 공공장소에서 오줌을 눗지 않겠노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야 하고 싶은 사람이나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사물에 지점을 가지는 '언어'를 신뢰하지도 않고), 캥기는 구석이 있다. 어린 시절 인터넷 꿈동산에서 뛰놀 때는 인터넷이란 곳이 진지하고 참여하는데 기쁨을 느끼던, 볼만한 글이 많은 작은 세계 마을 같은 곳이었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나 소나' 다 하게 되니까 늘어나는 것은 쓰레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들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패킷 필터를 상상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나만 그런 생각했던' 것이 아닌, 교조적인 도그마를 지녔던 꼬마에게 낯을 붉히고 쪽팔려 하는 것이다.
블로그질을 통해서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은 없다.
MBTI 테스트를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하는 것 같은데 십수년 동안 INTJ와 INTP를 시계추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다. 이번에는 INTJ가 나왔다. 토정비결 보다야 약간 나은 신뢰성을 가진다고 믿는 MBTI 테스트 결과가 그래서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타고난' 과학자 타잎의 인물처럼 보이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평범한 취미가 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학자가 될 '경향성'은 따라서 내게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관찰 당하고 관심받기를 즐기는 불쌍한 여자들에게 첫 눈에 반하거나 지남철에 끌려오는 쇠조각처럼 이끌리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타인들의 성질을 긁고 울리고 웃기는 광대 같은 소질이나 언어에 상처받지 않는 특이한 기질은 외연이 가능한 유연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과학자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심지어 텍스트적이지도 않다. 텍스트에서 컨택스트를 읽는 것은 감정이입이라는 아마도 인간이 타고난 재능(gifted) 때문일 것이다. 계집애들 대부분이 어쩌다 사고로 잃어버린 초능력일지언정 그것에 경의를 표한다.
빈 서판식 생물학? 핑커가 책에서 한 주장이 맞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생물학을 더 이상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눈물 지었다.
'빈 서판'이 말하는 '환경'은 pc 같은 것을 굳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독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이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발현을 조장하는 우연한 사건의 조합 또는 그러한 사건의 조합가능한 다양성으로의 노출'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럴듯한 문명' 속에서 양질의 고등교육을 입수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은 노출과 발현의 '기회'를 증대시킬 따름이다 --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으면 IQ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상황에 직면해 문제를 좀 더 잘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고 끼리끼리 어울리다보니 INTP가 꽤 많아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우습게도 INTP, INTJ는 전 인류의 몇 % 내외라고 한다.
따라서 '적절하고 바람직한 교육(?) 환경'이란 것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 라고 생각한다; 초딩때 애들끼리 url 돌려보던 야동 때문에 자신의 본성에 눈을 뜬 아이는 예쁜 연애인과 한 번 해보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섹소폰에서 소질을 발견하고 밴드 활동 하다가 딴따라가 되어 대학에 특채로 들어가서 왠지 폼 나 보이는 외계 생물학을 전공하다보니 어쩌다가 학위를 얻어 미션 스페셜리스트 자격으로 화성 탐사에 참여했다. 거대한 샌드스톰 속에서 고장난 우주선을 수리 중 뇌내 산소 고갈로 죽음의 문전을 오락가락 하다가 느낀 존재한 적 없는 존재란 경외감 때문에 머리가 돌은 것으로 판단한 NASA는 그를 해고했다. 수십년 만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티벳에서 티벳 불교에 심취해 다람살라에 머물며 달라이라마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할 일 다한 기분이 들어 손자들에게 좋은 할아버지가 될 결심이 서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아들 내외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좌절하며 돌아서서 하는 수 없이 먹고 살아야겠기에 어스틴에서 어쩌다가 두부장사를 시작했는데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자극이 없는 말년은 시시했다. 환경에의 노출은 우연의 소지가 크고 유전 몇%, 환경 몇% 따위의 이상한 얘기와는 상관없다. 오히려 모험하는 이들(쇼부를 보겠다는 이들)이 절대적이고 심지어 터무니없어 보이는 간극을 극복하게 된다 -- 오독은 그렇게 발생하고, 심지어 예측조차 가능하다.
대개의 사람은 환경(생존)이 자신을 짓누른다고 생각하지(그래서 다양한 인생 경험이 적어 자기를 여덟 번 째로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해, '존재론적 이상향'을 찾는데 좋은 자극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분석적이고 심지어 논리적이기까지 하고 타인에게 가혹한 차가운 파충류라고 믿는 사람들은 내 인생을 드라이브 했던 가장 강력한 '힘'이 환경과 별 상관없는 열정과 의지, 또는, 로맨티즘이라는 것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마치 인간성과 사회와 국가가 그러해야 한다는 괴퍅한 믿음처럼. 그렇게 해서 생긴 오해와, 텍스트 지향 운동과, MBTI 테스트 결과와, 본성의 유전은 내게 서로 유관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쓰레기 같은 '환경'을)
-- 해병대 애들의 말로 추측.
휘리릭
쾅
철퍼덕
빠지지직
으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조심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피치못할 사고가 발생하여 길가에 엎어졌을 때;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있을까?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