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병맥주를 어떻게 해 먹어야 맛있을까. 아니면 국산 병맥주를 화공약품 같다고 느끼는 내 입맛이 영 황이던가. 여름 내내 큰 유리 글래스에 매끈한 얼음을 듬뿍 넣고 거기에 옅은 호박색으로 반짝이는 테카테를 술술 따라 마시고 싶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광장 곁 레스토랑에는 마리아치의 연주가 들려온다. 신선한 바람 냄새를 맡으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사방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고 탁자마다 꽃다발이 놓여 있다. 배 나오고 콧수염을 기른 휴머노이드 서비터가 다가와 탁자마다 촛불을 하나 둘씩 켠다. 오버차징의 다크포스가 희미하게 풍겨온다. 피곤한데 또 공정함으로 떡칠한 포스를 사용해야 하나?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번주 목요일에 돼지고기를 3kg 사서(너무 많이 사서) 지인들을 불렀다. 옥상에 올라가 휴대용 가스렌지를 놓고 돌판에 지져 먹는데, 맛이 없다. 비가 사랑사랑 내렸다. 늦게 오는 김씨 아저씨더러 올 때 숯을 사오라고 했다. 작년에 6천원인가 9천원인가 주고 숯불구이를 해 먹을 수 있는 가로 40cm x 세로 60cm 그릴을 싸게 사놓고 여름이 다 가도록 써먹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에 안 들어가고 개겼다. 인간은 늘 자연에 맞짱 떴다. 우산을 들고 나왔다. 젖어가는 종이로 숯을 태워 보려 애썼지만 연기만 뭉글뭉글 난다. 10분쯤 고생하다가 렌지에 숯을 구워 새빨갛게 타오를 때쯤 그릴로 옮겼다. 진작 이렇게 할껄. 날이 어두워져 가스 랜턴을 켰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 속에서 각자 우산을 든 채 지저분한 플라스틱 두부 상자를 엎어놓고 앉아 흐릿한 랜턴 빛 속에서 빗물 반, 소주 반 들어간 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숯불에 구우니까 돌판에 지질 때와 달리 꽤 맛있다. 입가심으로 얼린 맥주를 한 잔씩 했다. 다 먹고 나니까 비가 그쳤다. 누가 봐도 난이도 높은 처절 OTL 궁상일 것이다.
옥상에서 뭔가 구워 먹으려 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까 시원해서 좋다. 술이 안 취하고, 셋이서 2.5kg을 먹어 치웠으니 꽤나 먹은 것이다.
난 좋았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 자전거를 몰고 나가 63빌딩 맞은편에서 해 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저번 주에 빗 속에서 술을 마실 때 날더러 자전거 타는 걸 강요하지 말라고 김씨 아저씨가 주장했다. 강요한 것은 아니고 내가 본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지만 잘 된 적이 없다. 내가 뭘하든 다들 오지에서 죽어라고 고생만 한 줄 안다. 고생만 죽어라고 하고 감동과 기쁨은 쥐꼬리만큼 얻었으니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것이겠지?
저번주 목요일에 돼지고기를 3kg 사서(너무 많이 사서) 지인들을 불렀다. 옥상에 올라가 휴대용 가스렌지를 놓고 돌판에 지져 먹는데, 맛이 없다. 비가 사랑사랑 내렸다. 늦게 오는 김씨 아저씨더러 올 때 숯을 사오라고 했다. 작년에 6천원인가 9천원인가 주고 숯불구이를 해 먹을 수 있는 가로 40cm x 세로 60cm 그릴을 싸게 사놓고 여름이 다 가도록 써먹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에 안 들어가고 개겼다. 인간은 늘 자연에 맞짱 떴다. 우산을 들고 나왔다. 젖어가는 종이로 숯을 태워 보려 애썼지만 연기만 뭉글뭉글 난다. 10분쯤 고생하다가 렌지에 숯을 구워 새빨갛게 타오를 때쯤 그릴로 옮겼다. 진작 이렇게 할껄. 날이 어두워져 가스 랜턴을 켰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 속에서 각자 우산을 든 채 지저분한 플라스틱 두부 상자를 엎어놓고 앉아 흐릿한 랜턴 빛 속에서 빗물 반, 소주 반 들어간 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숯불에 구우니까 돌판에 지질 때와 달리 꽤 맛있다. 입가심으로 얼린 맥주를 한 잔씩 했다. 다 먹고 나니까 비가 그쳤다. 누가 봐도 난이도 높은 처절 OTL 궁상일 것이다.
옥상에서 뭔가 구워 먹으려 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까 시원해서 좋다. 술이 안 취하고, 셋이서 2.5kg을 먹어 치웠으니 꽤나 먹은 것이다.
난 좋았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 자전거를 몰고 나가 63빌딩 맞은편에서 해 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저번 주에 빗 속에서 술을 마실 때 날더러 자전거 타는 걸 강요하지 말라고 김씨 아저씨가 주장했다. 강요한 것은 아니고 내가 본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지만 잘 된 적이 없다. 내가 뭘하든 다들 오지에서 죽어라고 고생만 한 줄 안다. 고생만 죽어라고 하고 감동과 기쁨은 쥐꼬리만큼 얻었으니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것이겠지?
아내가 나하고 여행을 같이 다니지 않게 된 것도 사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퀴퀴하고 값싼 숙소나 돌아다니고 죽어라고 걷기만 해서다. 별일 없으면 하루종일 걷는다. 그렇게 걸어서 돌덩이만 잔뜩 있는 곳에 도착하여 알렉산더 더 싸이코와 헬레니즘이 어쨌고 아람어와 향료길이 어쩌고 천연 요새로서의 카즈네의 가치 따위의 얘기나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니까 더더욱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 위대한 고대도시, 다마스커스에서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맛이 가서 현기증을 느끼며 거리를 정처없이 헤메는 동안, 그는 숙소에서 여독에 지친 몸을 뉘었다. 향료 시장을 보았다.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하게 잡담을 늘어놓는 수크의 상인들을 보았다. 언덕에 늘어선 고대의 집들을 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매연을 보았다. 삼천년 전의 바로 그 방식으로 구리 등잔을 장식하는 장인을 보았다. 이 땅에 전해진 이집트식 문간 장식을 보았다. 그리스 정교와 유태인과 무슬림과 가톨릭과 크리스찬이 한 구획에서 사이좋은 이웃처럼 함께 지붕을 맞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 경악스럽게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우마야드 모스크! 어떻게 해서 그것들이 '관광화'되지 않고 아직까지 원형 그대로 전승될 수 있었을까? 이스탄불에서 본 동서양의 융합은 이미 박물관의 말라 비틀어진 미라였는데. 터키에서 본 그리스는 폐허였는데! <-- 이렇게 적으면 좀 나아 보이려나? 메스껍군.
그야...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과정의 '역학'도, 길을 벗어난 모험도, 길가의 인연도, 길 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도. 내 여행 주제가 사랑과 모험이었고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남들 생각하는 바대로 고생만 죽어라고 하고 감동과 기쁨, 그리고 현기증은 쥐꼬리만큼 얻었을 뿐이겠지.
엊그제는 술 먹다가 무지개를 보고 흐뭇했다. 곧이어 김씨 아저씨가 지나가는 전두환을 봤다길래 술맛을 잃었다.
일요일에는 그 동안 밀린 책들을 읽었고 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최근엔 늘 그랬다. 옛날에 한 울티마에는 브리타니아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리며 지겨워 하는 모습이 있었다.
저녁에 책을 덮고 유선방송의 낚시채널에서 '사할린 원정 연어 제물 낚시'를 구경했다. 그는 두 종류의 미끼를 사용했다. 맑고 투명한 물 속으로 연어들이 떼지어 상류로 올라간다. 산란철이다. 인적이 없다. 그의 곁에 곰 발자국이 생생하게 찍혀 있다(이런 젠장할). 저녁에는 물고기 내장을 들어내고 깨끗이 씻은 후 잎으로 싸고 진흙을 발라 구워 먹었다. 하루 종일 낚시질 해서 두 마리를 간신히 낚는다.
종종 낚시 채널을 구경했다. 그들은 고생만 열나게 하고 많은 경우 실패한다. 모기에 물리고 곰에 쫓기고 미끄러져 물에 엎어지고 꾸벅꾸벅 졸다가 낚싯대가 떠내려가고 계곡에서 고립되고 파도에 휩쓸리고 배멀미로 웩웩 거리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해서 간신히 한두 마리 낚는다. 거의 한 시간 동안(실제로는 하루종일) 그들은 물고기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소가 적당한지, 먹이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지 온갖 종류의 가설과 체득한 지난 경험을 얘기한다. 낚시질이 끝나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고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껄껄 웃으면서 애기한다. 잡은 고기는 '캐치 앤 릴리즈' 원칙대로 풀어준다. 방송이라서 그럴까? 나 같으면 연어알을 꾹 짜내 쌈 싸 먹고, 회 뜨고 ,구워, 레몬즙을 뿌리는 등 온갖 음식을 다 해먹었을 것이다. 어떻게 잡은 고긴데.
등산 채널이 없는 것이(안 나오는 것이) 다행이다.
여행 채널이 없는 것도(안 나오는 것도) 다행이다.
낚시는 낚는 물고기나 있지, 여행이나 등산이나 자전거 여행은 TV 화면으로 보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어떤 분야든, 생고독이 기본인 아웃도어 장르는 카메라가 피사체에 닿으면 마치 매크로적 불확정성 원리처럼 만사가 확 뒤틀어진다. 그뿐이랴. 글로 읽으면 더 시시하기만 하다. 왜 시시할까? 가볼 만한(가 보고 싶은) 장소에 서 있던 그들이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 한국 소설도 재미가 없어서 안 읽는데 글도 제대로 못 쓴 걸 읽으면 재미가 있겠나. 본인이나 보람차고 재미있겠지. 글에는 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아무리 사진을 쑤셔 박고 빼놓은 것 없이 세심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각자가 하는 여행은 각자의 경험과 사고가 반영되는 것이라 글을 읽는 독자가 간접적으로 느끼고 상상한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착시는 그렇게 생긴다.
인도 여행 초기에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보고 인도에 온 사람들이 많다. 워낙 재밌게 써서 인도가 정말 그런줄 알고 온 사람들이다. 대단한 글이다. 아주 가끔 여행자들은 류시화가 쓴 글의 폐해를 얘기한다. 류시화가 워낙 '그럴 듯 하게' 묘사해 놓는 바람에 인도에서의 체험이 류시화를 통해 '투영'되는 것이다. 차라리 안 읽고 왔더라면 '몇 페이지 몇째 줄에 류시화가 써 놓은 바로 그것'이 아니라 훨씬 생생하고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길바닥에서 얻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킹피셔 맥주병으로 머리를 맞고 기절한 여행자도 있다.
인도여행에 얽힌 아주 오래된(사실 아직도 그 얘기가 나와 이제는 지긋지긋한) 괴담이 하나 있는데, 인도 남자가 접근해 여자 여행자에게 수면제를 먹여 납치한 다음 팔 다리를 잘라 사창가에서 방에 가둬놓고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종된 한국 여성 여행자를 그 사창가에서 봤는데 자기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더라... 뭐 그런 얘기.
여자애가 인도 어느 지방을 여행 중 사망했다. 며칠 후에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불확실하고 며칠 동안 숙소에 방치된 시신이 더운 날씨에 썩어가기 시작해 부모님이 시신을 이송할 때까지 한국인 몇몇 사람들이 얼음을 사다가 담궈 놓았다. 실화다. 몇 명이 함께 인도에 놀러갔는데, 그 중 한 친구가 기차에 매달려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쐬고 있다가 목 윗부분이 없어졌다. 어디 부딪혀 부러진 것이다. 그걸 발견한 동행들은 넋이 나갔다. 역시 실화다. 신문에는 몇 줄 안 나오지만 여행지에서는 여행자를 통해 이 얘기 저 얘기를 구체적으로 듣는다. 사지 잘라서 사창가에 팔아넘긴다는 얘기는 사실 여부가 확인된 적 없다. 아무튼 저런 여행자 얘기가 내 얘기도 될 수 있는 정도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한 것이다.
올 봄에 미얀마 여행 가면서 들고간 것이라곤 프린트물 달랑 하나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유적지 정보 외에는 쳐다보지 않았다. 아내가 하도 뭐라고 해서(가이드북 없으면 시체 같은? 글쎄 내 자평에 신뢰성이 없겠지만 나는 준서바이벌 전문가고 사람 사귀는 일에 불편이나 어려움을 겪어본 적 없다. 음... 상대가 불편하겠지) 이번에는 숙소, 레스토랑, 교통수단에 관한 사전 정보 없이 돌아 다녔다. 그랬더니 사람은 떼로 만났는데 별 정보가 없고 재미도 없었다. 혼자 돌아다니는게 편하다. 여행자들 만나서 여행 얘기 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 탓도 있다 -- 마치 두 오따꾸가 만나 오뎃사 작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왈가왈부 하는 것 처럼 들려서.
굳이 안 그래도 만날 사람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편하다. 눈빛 한 번 오고가면 대화의 절반이 끝나는 종류의, 피차 귀찮게 말 안 걸어도 되는 사람들. 웨얼 아 유 고잉? 투 만달레이. 아이 씨. 하우 어바웃 유? 암 고잉 투 방콕 투모로우. 굿 럭. 굿 럭. 헤이, 두 유 노 웨얼 아 캔 파인드 굿 레스토랑? 저스트 아웃사이드 프람 디스 게스트하우스, 유 윌 씨 더 베스트 레스토랑 인 타운. 더 네임 이즈... 아이 씽크... 베어 리얼리 라이크 데드 피셔맨스 미트. -끝- 깔끔하고 콘텐트풀하군.
여행은 스스로 해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은 저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고생 죽어라고 했던 부분은 만국공통이다 -- 따라서 여행기에 고생한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여행하면서 혼자 재처리 농축되고 단물빠진 질긴 껌처럼 고독을 잘근잘근 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먹지도 공감하지도 않을 부분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기에 '아름답다'느니 '감동적이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단 한 두 문장을 굳이 장황하게 늘려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취향에 안 맞는다. 고로, 내 여행기에는 고생한 얘기만 있다.
갈 생각 없는 사람은 생각 없는 시체가 되도 어디 안 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보고 듣고 느낄 감수성이 애당초 있던 것이... 그만 입 다물고,
너나 잘 하세요
-- 친절하기 짝이 없는 금자씨
잘 하자.
그래서 저 위대한 고대도시, 다마스커스에서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맛이 가서 현기증을 느끼며 거리를 정처없이 헤메는 동안, 그는 숙소에서 여독에 지친 몸을 뉘었다. 향료 시장을 보았다.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하게 잡담을 늘어놓는 수크의 상인들을 보았다. 언덕에 늘어선 고대의 집들을 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매연을 보았다. 삼천년 전의 바로 그 방식으로 구리 등잔을 장식하는 장인을 보았다. 이 땅에 전해진 이집트식 문간 장식을 보았다. 그리스 정교와 유태인과 무슬림과 가톨릭과 크리스찬이 한 구획에서 사이좋은 이웃처럼 함께 지붕을 맞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 경악스럽게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우마야드 모스크! 어떻게 해서 그것들이 '관광화'되지 않고 아직까지 원형 그대로 전승될 수 있었을까? 이스탄불에서 본 동서양의 융합은 이미 박물관의 말라 비틀어진 미라였는데. 터키에서 본 그리스는 폐허였는데! <-- 이렇게 적으면 좀 나아 보이려나? 메스껍군.
그야...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과정의 '역학'도, 길을 벗어난 모험도, 길가의 인연도, 길 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도. 내 여행 주제가 사랑과 모험이었고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남들 생각하는 바대로 고생만 죽어라고 하고 감동과 기쁨, 그리고 현기증은 쥐꼬리만큼 얻었을 뿐이겠지.
엊그제는 술 먹다가 무지개를 보고 흐뭇했다. 곧이어 김씨 아저씨가 지나가는 전두환을 봤다길래 술맛을 잃었다.
일요일에는 그 동안 밀린 책들을 읽었고 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최근엔 늘 그랬다. 옛날에 한 울티마에는 브리타니아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리며 지겨워 하는 모습이 있었다.
저녁에 책을 덮고 유선방송의 낚시채널에서 '사할린 원정 연어 제물 낚시'를 구경했다. 그는 두 종류의 미끼를 사용했다. 맑고 투명한 물 속으로 연어들이 떼지어 상류로 올라간다. 산란철이다. 인적이 없다. 그의 곁에 곰 발자국이 생생하게 찍혀 있다(이런 젠장할). 저녁에는 물고기 내장을 들어내고 깨끗이 씻은 후 잎으로 싸고 진흙을 발라 구워 먹었다. 하루 종일 낚시질 해서 두 마리를 간신히 낚는다.
종종 낚시 채널을 구경했다. 그들은 고생만 열나게 하고 많은 경우 실패한다. 모기에 물리고 곰에 쫓기고 미끄러져 물에 엎어지고 꾸벅꾸벅 졸다가 낚싯대가 떠내려가고 계곡에서 고립되고 파도에 휩쓸리고 배멀미로 웩웩 거리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해서 간신히 한두 마리 낚는다. 거의 한 시간 동안(실제로는 하루종일) 그들은 물고기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소가 적당한지, 먹이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지 온갖 종류의 가설과 체득한 지난 경험을 얘기한다. 낚시질이 끝나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고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껄껄 웃으면서 애기한다. 잡은 고기는 '캐치 앤 릴리즈' 원칙대로 풀어준다. 방송이라서 그럴까? 나 같으면 연어알을 꾹 짜내 쌈 싸 먹고, 회 뜨고 ,구워, 레몬즙을 뿌리는 등 온갖 음식을 다 해먹었을 것이다. 어떻게 잡은 고긴데.
등산 채널이 없는 것이(안 나오는 것이) 다행이다.
여행 채널이 없는 것도(안 나오는 것도) 다행이다.
낚시는 낚는 물고기나 있지, 여행이나 등산이나 자전거 여행은 TV 화면으로 보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어떤 분야든, 생고독이 기본인 아웃도어 장르는 카메라가 피사체에 닿으면 마치 매크로적 불확정성 원리처럼 만사가 확 뒤틀어진다. 그뿐이랴. 글로 읽으면 더 시시하기만 하다. 왜 시시할까? 가볼 만한(가 보고 싶은) 장소에 서 있던 그들이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 한국 소설도 재미가 없어서 안 읽는데 글도 제대로 못 쓴 걸 읽으면 재미가 있겠나. 본인이나 보람차고 재미있겠지. 글에는 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아무리 사진을 쑤셔 박고 빼놓은 것 없이 세심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각자가 하는 여행은 각자의 경험과 사고가 반영되는 것이라 글을 읽는 독자가 간접적으로 느끼고 상상한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착시는 그렇게 생긴다.
인도 여행 초기에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보고 인도에 온 사람들이 많다. 워낙 재밌게 써서 인도가 정말 그런줄 알고 온 사람들이다. 대단한 글이다. 아주 가끔 여행자들은 류시화가 쓴 글의 폐해를 얘기한다. 류시화가 워낙 '그럴 듯 하게' 묘사해 놓는 바람에 인도에서의 체험이 류시화를 통해 '투영'되는 것이다. 차라리 안 읽고 왔더라면 '몇 페이지 몇째 줄에 류시화가 써 놓은 바로 그것'이 아니라 훨씬 생생하고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길바닥에서 얻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킹피셔 맥주병으로 머리를 맞고 기절한 여행자도 있다.
인도여행에 얽힌 아주 오래된(사실 아직도 그 얘기가 나와 이제는 지긋지긋한) 괴담이 하나 있는데, 인도 남자가 접근해 여자 여행자에게 수면제를 먹여 납치한 다음 팔 다리를 잘라 사창가에서 방에 가둬놓고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종된 한국 여성 여행자를 그 사창가에서 봤는데 자기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더라... 뭐 그런 얘기.
여자애가 인도 어느 지방을 여행 중 사망했다. 며칠 후에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불확실하고 며칠 동안 숙소에 방치된 시신이 더운 날씨에 썩어가기 시작해 부모님이 시신을 이송할 때까지 한국인 몇몇 사람들이 얼음을 사다가 담궈 놓았다. 실화다. 몇 명이 함께 인도에 놀러갔는데, 그 중 한 친구가 기차에 매달려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쐬고 있다가 목 윗부분이 없어졌다. 어디 부딪혀 부러진 것이다. 그걸 발견한 동행들은 넋이 나갔다. 역시 실화다. 신문에는 몇 줄 안 나오지만 여행지에서는 여행자를 통해 이 얘기 저 얘기를 구체적으로 듣는다. 사지 잘라서 사창가에 팔아넘긴다는 얘기는 사실 여부가 확인된 적 없다. 아무튼 저런 여행자 얘기가 내 얘기도 될 수 있는 정도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한 것이다.
올 봄에 미얀마 여행 가면서 들고간 것이라곤 프린트물 달랑 하나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유적지 정보 외에는 쳐다보지 않았다. 아내가 하도 뭐라고 해서(가이드북 없으면 시체 같은? 글쎄 내 자평에 신뢰성이 없겠지만 나는 준서바이벌 전문가고 사람 사귀는 일에 불편이나 어려움을 겪어본 적 없다. 음... 상대가 불편하겠지) 이번에는 숙소, 레스토랑, 교통수단에 관한 사전 정보 없이 돌아 다녔다. 그랬더니 사람은 떼로 만났는데 별 정보가 없고 재미도 없었다. 혼자 돌아다니는게 편하다. 여행자들 만나서 여행 얘기 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 탓도 있다 -- 마치 두 오따꾸가 만나 오뎃사 작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왈가왈부 하는 것 처럼 들려서.
굳이 안 그래도 만날 사람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편하다. 눈빛 한 번 오고가면 대화의 절반이 끝나는 종류의, 피차 귀찮게 말 안 걸어도 되는 사람들. 웨얼 아 유 고잉? 투 만달레이. 아이 씨. 하우 어바웃 유? 암 고잉 투 방콕 투모로우. 굿 럭. 굿 럭. 헤이, 두 유 노 웨얼 아 캔 파인드 굿 레스토랑? 저스트 아웃사이드 프람 디스 게스트하우스, 유 윌 씨 더 베스트 레스토랑 인 타운. 더 네임 이즈... 아이 씽크... 베어 리얼리 라이크 데드 피셔맨스 미트. -끝- 깔끔하고 콘텐트풀하군.
여행은 스스로 해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은 저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고생 죽어라고 했던 부분은 만국공통이다 -- 따라서 여행기에 고생한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여행하면서 혼자 재처리 농축되고 단물빠진 질긴 껌처럼 고독을 잘근잘근 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먹지도 공감하지도 않을 부분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기에 '아름답다'느니 '감동적이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단 한 두 문장을 굳이 장황하게 늘려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취향에 안 맞는다. 고로, 내 여행기에는 고생한 얘기만 있다.
갈 생각 없는 사람은 생각 없는 시체가 되도 어디 안 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보고 듣고 느낄 감수성이 애당초 있던 것이... 그만 입 다물고,
너나 잘 하세요
-- 친절하기 짝이 없는 금자씨
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