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질 백날 해봤자,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을 고작 2년 동안 몇백 개 안 되는 에피소드로 이해할 수 없다. 는 가정을 바탕에 두고 있다. 알 수 없을까? 에르디시는 가기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그래프를 연구했다. 잠시 수학사에 길이 남을 그 할아범에게 안부 인사하고. 뇌의 시냅스 접합은 초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무작위적으로 구성되는 그래프와 같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시 아무렇게나 시냅스 하이웨이가 뚫리면서 언어와 의식과 이성이 개미집처럼 형성된다 -- 음악을 듣고 글을 보고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면서 현란한 색채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는 타인의 언어와 사고로부터 찬란한 색깔의 향연을 보는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이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언덕을 넘으면 펼쳐질 새로운 풍경을 기대하고 있다 -- 그래서 남의 블로그질을 관람하는 심심한 사람들도 많다. 어떤 말더듬이 오타쿠가 독신남 게시판 사람들의 성원과 도움을 받아 연애하면서 거듭 사는 얘기가 '전차남'인데, 간판 음악이 어? 어디서 많이 듣던건데? ELO, Twilight (3:42) 전차남은 오타쿠, 인터넷 찌질이들에게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셈인가?


이 하한선은 일상 생활에도 있다. 인간이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에는 언제나 하한선이 있다. ... 그래서 나는 적어도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는 하한선이 없다고 말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점잖은 타입보다는 그걸 솔직히 밝히는 뻔뻔하게 솔직한 타입을 좋아한다. ...

-- 말하지 않은 현실의 하한선 중. 이 양반 글, 틈이 생기면 읽으면서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즐겼다. 순수하게, 재밌다. 그런데 쿨한(정말 썰렁하다) 여류 마초물인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재간된 건가?


이 엔트리의 제목인 '어쩌다 떠오른 씬의 집합'은 '말하지 않는 현실의 하한선'에 대한 정확한 대척점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핵심어휘와 구결은 반말로 끝나는 것이 올바르다: 역설적으로 '하한선이 없는' 뻔뻔한 블로그질을 하는 나로서는 지금 하는 짓에 결맞는 비유가 있긴 하다... 타인을 희롱하는 일을 관둔 것처럼 자신을 희롱하며 즐기는 것도 관둬야겠지? 생략. 그 대신 뉴턴 역학 만큼이나 세간에 유명한 법칙;

1. 너는 이길 수 없다.
2. 너는 본전도 건질 수 없다.
3. 너는 이 바닥을 떠날 수 없다.

도박의 법칙, 오타쿠의 법칙, 로또의 법칙, 게시판의 법칙, 프로그래밍의 법칙, 게임의 법칙, 생명의 법칙, 연애의 법칙, 등등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227k원 주고 LCD 모니터를 하나 샀다. 스펙을 교차 비교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17인치, dvi, 8ms, 300칸델라, 명암비 700:1, 삼성 패널. 마누라는 델 모니터보다 스펙이 더 좋은 그 모니터를 쳐다보더니 구리다고 말한다. 델 모니터에 비해 값이 훨씬 싸니까. 마누라가 사준다는 거니까, 주도면밀하게 훈련된 합리적 이성으로 대들지 않고 무시했다. 이제는 대낮에 일 하다가 햇빛에 반사된 흐릿한 모니터 화면 때문에 창문에 블라인더를 치고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55k원 주고 dvd+-rw 드라이브도 하나 샀다. dvd-r 미디어 가격이 장당 280원, 용량은 4.2GB, 작업한 파일들+홈페이지 백업하면 2.1GB쯤 되니까 280원에 값싸게 백업할 수 있겠다. dvd-r 미디어가 그렇게까지 싸진 줄은 몰랐다. 그러나 dvd-r은 다른 용도로 쓰기로 하고, 백업용으로 재기록 가능한 dvd+rw 미디어를 열 장 더 샀다. 장당 950원.

용산 가서 한 시간 만에 30만원 쓰고 손이 덜덜 떨렸는데 '여기서 담배 피우면 첫 적발시 만원, 두번째 이만원, 세번째 삼만원 -- 상우회 일동' 게시물 앞에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진정했다. 벌금은 차수마다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메기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벌금이 덜 바람직하고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내라고 하면 개길 것 같다.

길에서 내 나이 또래의 네팔 사람을 만났다. 모르는 길을 묻길래 그냥 보내기 뭣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가는 길을 알려줬다. 네팔의 또라이 국왕이나 또라이 마오이스트 때문에 네팔리들 고생이 많다. 담배 한 대 권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고맙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절한다. 한국에서는 개, 고양이, 제 3세계 외국인들은 사람을 피해 기가 죽어 빌빌 거리는 경향이 있다. 그나저나 올해 복날 즈음해서 먹은 개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몇 년 만에 입에 착착 달라붙는 쫄깃하고 제대로 된 수육을 즐겼다. 네팔리가 묻던 길이 그... 줄 서서 먹는다는 맛있는 개고기 집이 있는 공덕 부근이다.

손수 목욕하고 동거동락한 애완견도 털 뽑고 삶으면 그냥 고기다. 잘 키워 잡아먹는 닭이나 30년간 외양간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동거동락하며 정을 나누고 끝내 죽어서도 쓸모가 생기는 소(고기)를 연상하면 되지 싶다. 어렸을 적에 도살 구경을 하고, 손수 먹거리를 '제작'하며 자라서인지 살아서 꿀꿀 거리는 돼지와 마트에 진열된 포장된 베이컨을 굳이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마누라가 내 눈에 가끔 살기가 돈다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기는 아니고, 무언가를 긍정적이고 맛있게 바라보는 건강하고 생생한 삶의 증거가 눈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뒷골목 갱들과 찌질이들은 자기가 그런다고 타인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룰이 있다.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긍정적이고 맛있게 바라보는 건강하고 생생한 삶의 증거'가 눈을 통해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