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도로 일주

잡기 2005. 8. 28. 22:02
가을이다. 올해 독서는 흉작이다.

1박 2일로 강화도에 갔다 오려고 했으나 아내가 연극 보자고 해서 혜화동에서 재미없는 연극을 보고 술을 마셨다. 비단 아저씨는 내가 고민해서 산 자전거인 라레이 기종을 알고 있었다. 저가 모델로 쓸만하단다.

일주일 동안 자전거를 안 타서 몸이 찌뿌둥하고 할 일 안한 기분이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자. 아침 일곱시에 일어났는데 비가 내린다. 아욱국을 끓여 해장하고 눈 좀 붙였다가 다시 깨니 비가 잦아든 상태다. 재빨리 도시락 싸서 집을 나섰다. 자전거 타면서 비를 맞았다. 곧 그쳤다.

반포대교 부근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30번씩 꼭꼭 씹어 먹었다. 30번씩 씹어 삼키면 아무리 보리밥이라도 잘 분쇄되어 방구가 안 나오리라 기대하면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간간이 떨어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비에 천막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내가 도시락을 꺼내 먹자 못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침을 꿀꺽 삼킨다. 열두시 이십분. 희롱하는 것처럼 30번씩 천천히 씹으며 냄새를 풍겼다. '정직한' 아이들은 제 부모더러 밥 먹자고 성화다.

음식의 향과 맛을 내는 성분은 지방에 녹아 있는데 이빨로 음식을 분쇄할 때마다 음식 속의 지방 기포가 터지면서 향이 입 천정을 타고 올라가 콧구멍의 세포를 자극한다. 그래서 미식가는 음식을 느긋하게 오래오래 씹는다. 그들은 30번이라고 말했고, 과학자들도 30번 정도라고 말한다.

반포대교 앞에서 공사중인 구조물에서 미끄러졌다. 제동력은 좋은데 접지력이 떨어지는데다 빗물에 젖은 철판 급경사라 자전거가 뒤틀렸다. 패달에서 발을 떼고 날아서 스파이더맨처럼 멋지게 착지했다. 물병은 저만큼 날아갔다. 안 다쳤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스파이더맨 역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강북쪽 길은 아기자기하고 햇살에 줄곳 노출되면서 거의 평지인 반면, 강남쪽은 구릉이 있고 그늘이 많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이나 애들이 많아 강북 강변도로에 비해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많다. 강남쪽이 전반적으로 물이 좋다. 진작 오는건데. 진작 와서 확 박아버리고 인연의 씨줄 날줄을 새콤하게 엮어보는 건데.

탄천을 지나고 천호대교를 지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광나루 반환점에 이르렀다. 불광천 입구에서 한 시간 30분 걸렸다. 페달링을 거의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38.62km 지점. 평균속도 25kmh. 놀랍군.


GPS TrackMaker로 뽑은 이동 경로

돌아오는 길은 줄곳 맞바람이라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다리가 뻐근하고, 강남 사람들은 잘 먹어서인지 평균 19kmh로 달리는데도 그들에게 줄곳 추월 당했다. 잠실에서 포도맛 폴라포 하나 사 먹고 여의도에서도 하나 사 먹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천정에 멀끔히 떠 있어 살이 탄다. 날이 흐릴 줄 알고 모자를 안 들고 왔다. 오줌 눗고 화장실 거울을 보니 봉두난발 도깨비 같다.

사람과 차량으로 바글거리는 성산 대교에 이르렀다. 아침에 보고 온 자전거 도로 지도에는 성산대교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것 같은데 주위를 한 동안 빙빙 돌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에라이... 자동차들을 따라 자동차 도로로 들어서서 성산대교로 올라타 인도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다리를 건넜다. 강북쪽 성산대교에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풍력 발전기인지 바람개비가 돌고 있는 하늘 공원에 올라갈까 하다가 저번 주에 자전거 자물쇠를 잃어버려 자전거를 주차할 수가 없어 집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줏어온 한강 자전거-인라인 코스. 클릭하면 원본 크기. 이런 지도를 다 만들다니... 흐뭇하다.

역촌역 근처의 김치말이 국수집에 들렀다. 함병헌 김치말이 국수 체인점 같은데, 어렸을 때 먹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가족과 예전 옆집이 모두 평안도 사람들이다. 예전에 먹었던 것은 이렇게 화려한 음식이 아니다. 지독하게 소박하고 시큼하고 위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음식점에서 먹은 김치말이 국수는 갖가지 부재료 때문에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5천원 받는다. 14가지 부재료 탓이겠지 싶다.

마치 포호아에서 먹어본 쌀국수 같달까? 한국의 포호아 국수는 무슨 궁중요리 같다. 베트남에서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육수를 붓고 고명으로 고기 한 점 얹어 내 주면, 숙주와 파와 고수를 내 손으로 대충 집어 지저분한 사발에 듬뿍 담아 조그만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후루룩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 길거리에서 먹던 2000동 짜리 국수(130원)가 한국에서 포호아식 궁중요리가 되면 8천5백원이 된다. 맛은 포호아가 낫다. 포장마차에서 2-3천원에 팔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했더니 모니터 앞에서 졸았다. 마누라가 얼굴 팩 해주고 흰 머리를 뽑아주고 다리를 주물러줬다. 수퍼 가서 우유 사오라고 말했다. 단백질이 필요하다.

주행거리 79.4km, 주행시간 4h20m, 평균속도 18.6kmh, 최대속도 29.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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