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geocaching)

잡기 2005. 9. 11. 20:18
패달에서 계속 들리는 뚝- 뚝- 소리에 신경이 쓰여서 자전거 가게에 들러 어디가 문제인지 물어 보았다. 젊은 친구 말로는 bottom bracket의 나사가 헐거워져서 그렇단다. (그렇지? 패달, 디레일러, 체인링 문제는 전부 아니었으니까!) BB를 뜯으려면 공구가 있어야 하는데... 크랭크 공구, BB 공구, 몽키 스패너, 이렇게 셋이 필요하다. 공구를 또 사야 하나? 그 나사 조이는데 얼마나 드냐고 물으니 정비까지 해서 만오천원 달란다. bb 뜯어서 그리스 바르고 조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난 공구가 없다. 안 좋은 시츄에이션이다. 그 동안 몇 번이나 했지만 한 번도 정확하게 맞지 않았던 기어 조정을 bb 조이는 김에 부탁했다.

BB를 뜯어보니 일체형 하우징(몰딩?)이 안된 것이다. 중국산으로 보인다. 물어보니 자기 생각도 그렇단다. 값비싼 자전거들이 즐비한 값비싸보이는 샵이라 내 자전거는 정말 싸구려로 보였다. 수리하는 중에 이것 저것 물었다. 저 크로몰리(크롬 몰리브덴 합금 같다. CrMo라고 적힌 걸 보니) 프레임은 얼마에요? 200이요. 비포장 다운힐에서 하도 덜컹거려 앞 쇽 앱저버를 갈려고 하는데(내껀 스프링이다) 유압식으로 갈면 얼마에요? 못해도 40 들죠. 타이어를 저런 섹시하게 오동통한 것으로 바꾸려면 얼마에요? 한 쌍이 50 정도 됩니다. 디스크 브레이크는요? 60 정도 됩니다.

날도 덥고 해서, 그만 묻기로 했다.

BB에 그리스를 바르고 다시 끼운다. 잘 봐뒀다. 타보니 뚝-뚝- 하는 소리는 사라졌다. 게다가 비비를 조이기만 했는데 기어가 마술처럼 딱 맞아 떨어져 더 조정할 필요가 없단다. 그렇다면 여태 내가 조정해 놓은 것이 맞다는 것인가? 그럴리가... 난 손재주가 없는데...

정비료가 만오천원이라니 속이 쓰리다. 자전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나간다. 심지어 처음 샀을 때보다도. 그런데 bb 나사 헐거워지는 것을 조이려면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샵에 들르는 것이 좋단다. 슬픈 소식이다. 무슨 강아지 키우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가게에 같이 있던 아줌마는 차 지붕에 자전거 행어를 달려고 왔다. 자전거 탄 지 한 달쯤 되었단다. 내가 핸들바를 라이져 타잎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하니 아줌마는 그냥 일자 쓰라고 말하면서 왜 시트가 높아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시트가 핸들바보다 높으면 등이 구부러지고 배가 움푹 들어가면서 팔이 자연스럽게 핸들에 걸치게 되어 어깨가 안 아프단다. 핸들바를 가볍게 잡으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충격도 없고. 아, 그랬구나. 팔을 일자로 뻗어 핸들을 잡았고 마치 팔을 서스펜션처럼 사용한 탓에 손바닥이 몹시 아프고 손목이 꺽여 무리가 갔다. 아줌마는 자전거 잡지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단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들어와 체인 한 토막만 끊어달라고 한다. 요철을 지나면 체인이 난데없이 다른 톱니에 올라타 있단다(자동 기어 변속?). 뒷 디레일러의 장력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절대 술 안 마셨다고 말하면서 사장님을 찾는다. 그러면서 일제 시대 때 자전거의 각 부위 명칭을 어떻게 불렀는지, 술냄새 풍기는 자기를 무시하는 기사 말고 나한테 일일이 설명해 준다. 나는 그에 상응하는 영어식 명칭을 대꾸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째서 자전거 부품 이름이 몽땅 영문이고 누구나 그걸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다리가 뻐근해서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올림픽 공원에서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했다. 기둥에 박을 찰라에 브레이크를 잡고 슬쩍 비껴가는 것이다. 한 30분 연습하니 브레이크 감은 잡히지만 그래도 막판에 몇 번 박던가 스쳐가는 중에 바엔드가 긁힌다. 한계제동은 더 많이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에는 회절 연습을 했다. 좁은 길에서 직각으로 꺽이는 길로 회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퉁이 길을 패달이 지면에 닿을락 말락하는 정도로 뺑뺑이 돌았다. 회전하면서 패달링을 멈추면 안되니까. 비포장에서 하면 백퍼센트 슬립했다.

잔디밭에 들어갔다가 턱에서 브레이크를 잘못 잡아 몸이 앞으로 펑 튕겨 나갔다. 손발을 뗀 자전거는 뒤가 들리면서 180도 공중제비를 돌았다. 멋지게 발부터 착지했지만 시급히 몸을 굴려 뒤에서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덥쳐오는 자전거를 피해야 했다. 콰당. 야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튼튼한 자전거라 마구 굴려도 된다. 포장길의 좌회전 구간에서 괜히 앞 브레이크를 잡아보았고, 앞 바퀴에 락이 걸려 꺽인 핸들이 밀리면서 옆으로 자빠졌다. 일부러 만든 상황이지만 15kmh 가량의 속도에서도 다양한 사고가 날 수 있다. 도로였다면 큰 사고감이다. 팔꿈치가 까지고 왼쪽 무릎에 멍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팔,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공평하게 멍들고 까진 셈이 되었다.

운동신경이 영 꽝이니 이렇게라고 기본적인 연습을 해야지, 일전에 같은 속도에서 컨트롤에 밀려 할아버지한테 앞을 내준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뼈도 못 추릴 것은 확실하고 깡이 늘어 도로 주행 속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매점 앞에 앉아 잠시 쉬면서 음료수 한 병 마셨다. 한 친구가 앞 바퀴 들고 달리는 연습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자주 자빠진다. 고생한다. 석양이 참 멋지다.

공장에서 기판을 들여다보니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사업성이야 사장님들 세 분이서 알아서 판단할 문제고 내게 떨어질 돈이 안 될 것 같아(사업참여? 현찰이 오고가야 하지. 객기는 사라졌다) 적당히 우회해서 빠지겠다고 말했는데 알아들은 건지 모르겠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나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한다. 기분이 좀 그래서 술잔만 기울였다.

코로나 한 병 시켜놓고 느긋하게 사람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김씨 아저씨는 날이 갈수록 모임을 주관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봉사 및 정치 활동 때문인지 그의 뒤통수에는 후광이 번쩍였다. 김씨 아저씨가 www.nyxity.com에 들어가 이 문구를 봤을 지는 의문이다. '출판계의 규칙은 SF 팬들이 가장 이상하다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SF 팬 중 상당수가 자신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꽤 많은 수가 아마도 정말 외계인일 것이다. 염세주의자가 옳고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싶으면 SF 모임에 가보라. - 피터 게더스,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

염세적인 외계인들의 모임이라... 참가하셨더라면 자리를 빛내주셨을 대게 외계인, 랍스터 외계인의 다리를 하나 하나 뜯어서 빨아 먹는 상상을 했다. ... 버본 스트레이트에 향긋한 커피를 곁들이니 희안하게 궁합이 맞았다.

GPS를 좀 더 잘 활용해 보려고 compeGPS를 다운 받았다. 구글 맵과 나사의 여러 지도 프로젝트에서 지도를 얻어와 경로와 겹쳐 실제 사진과 3d 맵으로 보여준다.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보다는 gps 가진 사람들 끼리 보물찾기(지오캐싱)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북위 36.245523, 동경 126.72383 지점에 음란물 cd를 묻어 놓고 지오캐싱 닷 컴에 위치를 공개하는 것이다. 보물을 발견하고 몹시 기뻐할 사람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오늘이 911인가? 짜장면 시켜먹고 그동안 미루고 있던 보물찾기 놀이를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인데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www.geocaching.com에 들어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를 찾아봤다. gps에 좌표를 입력한 다음 자전거를 몰고 달려갔다. 아파트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에 거의 이르렀다. 땀에 절었다. 아줌마 두 분이 돗자리 펴고 앉아 있다. 아줌마들 주변을 왔다갔다 했다. 오락가락 할 때마다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다. 낯 뜨겁지만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여긴 한국이기 때문에 산 한 가운데 아줌마 둘이 돗자리 펴놓고 앉아 부동산 얘기하며 막거리를 마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누군가 처음 이 산에 와 본 나한테 길을 묻는 것은 워낙 익숙해서 자연스럽기 조차 했다.



어처구니 없는 장소에서 드디어 발견. 왼쪽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사진에 나왔네?



보물을 찾으면 내꺼가 되는 거라 믿고 흐뭇한 마음에 발견한 것을 통째로 들고 내려 오다가 집에 들고 가기 전에 버릴 것은 버리자 하는 마음에서 약수터에서 발견한 '반찬통'을 까 보았다. 안에는 돈 되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고 잡동사니만 빼곡하게 차 있다.



땀 흘리면서 표고차 120m의 산을 올라왔는데 이게 뭔가.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로그북이란 것이 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교환 시스템이라 이거지... 낚시의 캐치 앤 릴리즈처럼 발견한 기쁨만 누리고 다음에 찾아오는 사람을 위해 내용물의 일부를 가져가거나 내 것을 남겨두는 것이다.

로그북에 심드렁한 메시지 하나 남기고 그걸 들고 다시 산을 올라갔다. 원래 장소에 그대로 갖다 놨다. 로그북에는 외국인들이 남긴 20여개 가량의 영문 로그가 있다. 그리고 트레블 버그라 불리는 것도 있다(왼쪽의 군바리 인식표처럼 생긴 것). 지오 캐싱에서 대략 6$에 판매하는 것인데 그걸 꺼내 다른 보물을 숨겨놓은 곳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트래블 버그는 어떤 때는 수십개 국가를 떠돌아다니는 일종의 히치하이커가 되기도 한다. 여기있는 것은 뉴저지에서 온 것이다.

한국에는 대략 40여군데의 지오캐싱 웨이포인트가 있다. gps가 없으면 거의 찾기가 불가능하지만 gps를 산 꼬마 녀석들이나... 심지어 어른 마저도 전세계적으로 환장하는 게임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괜찮은 scenic spot을 알려줄 수 있겠구나 싶어 근간 북한산 어느 바위 구석에 나도 하나 남겨놓겠다.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취미가 하나 더 생긴 셈인가?
gps 하나로 몇 년 동안 참 많이 울궈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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