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 알고리즘

잡기 2005. 9. 23. 00:07
밀리기 전에 블로그나 써두자.

블로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글루를 쳐다보고 있으면 가끔 아는 사람의 글을 본다. 그건 별로 흥미로운 구석이 없지만, 내가 어쩌다 아는 A와 내가 어쩌다 아는 B는 서로 모르는 일도 많고 둘은 각자의 블로그에서 댓글을 쓰면서 논쟁하기도 한다. 팔짱 끼고 둘 중 누구의 알고리즘이 우세할지 구경한다.

아내가 놀러 다니는 사무실에서 아내가 자전거 타는 연습한다며 자전거를 얻어 놓았다. 그 자전거를 인사동에서 끌고 왔다. 헤드셋이 흔들리고 뒷 브레이크 레버가 망가지고 기어 변속이 잘 안된다. 두어 달 전부터 스포시엘 자전거를 사줄까 생각했다. 내 자전거보다 비싸다. 그러나 가볍고 작다.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은 물론 스킨 스쿠버를 겁내는 아내를 보면 안쓰럽다. 그의 남편은 싸기만 하면 몸이 부서질 때까지 뭐든지 다 하는데.

6600원 짜리(우송료 포함) 우의를 하나 샀다. 그럭저럭 괜찮다 싶은 것은 OK New 시에라 XS 자켓이지만 일전에 우의 입고 바지가 젖으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싸고 가벼운 것이 장땡이다.

우의를 테스트해 볼 겸 빗속에서 자전거를 몰았다. 위험해서 속도를 내지 못하겠다. 자전거는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다. 공구가 다시 걸리적거린다. 이 김에 제대로 갖출까? 으음. 20만원 주고 산 내 자전거가 저가 자전거보다는 그나마 좋긴 좋구나. 자하문 터널을 거쳐 홍제 방면으로 나와 불광동 까지 고개가 셋이다. 21단 기어이긴 하지만 어쩐지 무늬만 그런 것 같고 변속을 해도 변속한 기분이 안 든다. 우의는 그 가격치고는(우송료 포함!) 그럭저럭 쓸만하다. 싼 게 좋다.



바람이 불면 후드가 벗겨지고 모자를 안 썼더니 면상이 젖는다. 황씨는 이거 보고 살지 말지 알아서 해라.

infix 수식을 postfix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타넌바움 알고리즘이 있다. precedance를 어떻게 줄까 궁리했다. 8개의 연산자를 가진 3차 부울 연산식을 사용하여 스크램블러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며칠 후에 테스트에 들어갈 것이고 내 최근 역할은 그런 알고리즘이나 단순한 컴파일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vs.net으로 넘어간 후 처음으로 짜보는 프로그램이다. 적어도 십오 년 전에 짜 본 것을 오랫만에 다시 짠다. 그때는 뭐든 배웠고 지금은 뭐든 배우지 않고 필요한 것만 '응용'했다. 기본적인 알고리즘과 데이터형은 그것이 처음 발상된 이래 수천 년은 지속되기 때문에 말하자면, 영원하다.

생장하는 존재는 영원하지 못하다. 건축물의 내구수명은 유한하다. 알고리즘 따위의 이데아는 그런데 무한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우주가 내포한 근원적 구성 원리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좁게 정의하자면 인간 의식이 인지하는 통시적 구조 되겠다. 하지만 아내에게 슈뢰딩거 방정식을 설명해주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내는 생활 하고(사람을 살리고) 시대적 상황에 걸맞는 모랄을 고취할 수 있지만 아내가 죽고 내가 죽고 21세기 인류가 다 죽으면 모랄이 철철 넘치는 생활은 덧없이 사라지거나 변화한다. 수학과 알고리즘은 인류의 대뇌 생리가 획기적으로 바뀌어 인지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도식이 뻔해서 지겨워 보이는 정치경제 체계가 세월에 따라 변화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인식 구조에 포획되거나 수용되는 (상당히 저차원스러운) 수준을 항상 유지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의식의 언저리에 존재하는 맥거핀처럼 기만적이고 영원할 수 없지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의 '알고리즘'은 (조건절:현생인류의 의식체계가 잔존하는 한,) 영원할 수 있다. 철학적인 개념의 엄밀성 만한 정밀도를 갖췄지만 연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는 무의미하고 애매모호한 언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숨.

GPS Trackmaker와 Almap으로 작업하다가 거진 돌아버릴 것 같아서 이런 삽질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사이트를 전전하다가 알맵 SDK를 다운받았다. 두 지점을 입력하면 이미지 파일을 순서대로 다운받아 주는 간단한 플러그인을 작성했다. decimal degree 좌표계를 UTM 좌표계로 변환하는 식을 찾아 수식을 보고 프로그래밍 하다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왜 이리 복잡한가. UTM은 잘 되었다. 난 UTM이 마음에 든다.


이것 저것 우겨넣어서 어쨌든 프로그램을 다 완성해 돌려보니 저장한 각 이미지마다 미세한 차이가 발생했다. 구면 좌표를 평면에 투사하면서 발생하는 오차인지 아니면 알맵이 속도를 위해 정밀도를 일부분 희생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이걸로 반나절을 보냈다.

터틀도브의 '비잔티움의 첩자'를 읽다가 기분이 상했다. 마호멧이 크리스티안에 귀의해서 찬송가 만들다가 죽어 기독교 성인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원래 대체역사물이니 그렇다치고 매 챕터마다 그 얘기가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짜증이 돋기 시작했다. 마지막 편은 전편 어딘가에서 등장하던 페르시안 스파이가 사주하여 이콘을 부정하는 파와 허용하는 파 사이의 일종의 내부 종파전을 치루는 것인데,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슬람을 심하게 희롱하는 바람에 입에서 터틀도브 개새끼 라는 힘없는 바람소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괴짜경제학: 신문에 연재하던 컬럼 쪼가리 몇 개 모으면 책이 되는구나.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본 지라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다루는 소재가 대부분 흥미로운 얘기들이다. 그래도 책에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이 사용하는 언어가 중언부언 난잡하고(번역 탓일까?) 툭하면 일상 속에서 비일상을 제대로 눈 뜨고 바라보는 작가는 천재 운운하는 얘기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것은 고작 인센티브와 통계의 해석 뿐이었고 회귀분석에 관해 몇 줄에 걸쳐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는 '텍스트가 아깝지 않은가?'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은... 아무래도 팝아트 처럼 가벼운 경제 언저리 얘기보다는 징그러운 폴 크루그먼이 취향인 것 같다. 게다가 크루구먼의 컬럼이나 책은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잖아?

딜비쉬: 젤라즈니 스럽다. 감상평은 그것으로 끝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의 다른 글과 달리 마치 무협지처럼 완샷에 읽었다. 아니지, 이제사 드디어 젤라즈니를 제대로 읽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지난 한 달 열댓 권 쯤 읽었는데 당장 기억나는 책들은 이것 뿐이다. 일 하랴, 책 보랴, 건담 데스티니 보랴, 자전거 타랴, 나처럼 바쁜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저씨는... 이성관 30문 30답같은 설문도 한단 말인가... 댁이 하면 나도 한다.

1.당신의 성별은? 스파게티교도.

2.지금까지 모두 몇번 이성과 사귀어 보았습니까? n개요.

3.연상선호입니까?연하선호입니까? (남성의 경우 로리지온/누님연방) 털은 나야죠.

4.첫사랑은 몇 살때 해보았습니까? 첫사랑이라... 어린 시절 먹어본 동태찌게 맛에 대한 장식된 그리움 같은 거죠. 내 기억을 믿지 않아요.

5.현재는 어떤상황입니까? 커플지옥-솔로천국을 믿습니까? 곤조 깊은 내 지론은, 머리가 나쁜 연놈들은 사랑을 못한다 입니다.

6.이성을 볼때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빛. 시장에서 동태 고를 때처럼.

7.당신의 이상형에 대해 살짝 말해 주세요. 바로크적인 이성을 받쳐주는 건축적인 몸매/얼굴, 그리고 연금술에 재능이 있는 눈빛이 촉촉한 마녀.

8.이런 사람이 있으면 사귀고 싶다! ..라는 것이 있다면, 간단하게 말씀해주세요. 현세의 여성에게 보편적인, 미약한 환멸감을 느껴요.

9.당신에게 바람기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笑) 그래서 있을 리가 없지요.

10.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결혼은 이성을 사회에서 구제하는 모랄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붇는 배트맨의 정의사회 구현 같은 것이죠. 내 몸을 아끼지 말고 불쌍한 인생을 구제해 성불합시다.

11.결혼을 하게 된다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것은 무엇입니까? 연금술의 연성.

12.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하고싶은 일이 있나요? 함께 전설적이고 이니그마틱한 동태찌게를 만들어 먹죠. 그래봤자 저 멀리 지평선으로 달아난 추억 거북이를 쫓는 제논의 아킬레스 같은 심정이지만.

13.이런 이성만큼은 꼴불견이다...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신다면? 기아, 테러리즘, 환경주의, 사회 복지 그리고 분단의 비극적 현실이 만든 정치적, 사회적, 시대적 상황인 겁니다. 미친년은.

14.당신은 이성을 친구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따먹을 듯 따먹지 못하는 그 아슬아슬한 가상의 경계면에서 애틋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던데요.

15.헤어진 연인과 친구가 되는 일은, 가능할까요? 친구가 되기 수월쵸. 적이 되기도 쉽구요. 청승 맞아서 안 하는 편이.

16.누군가를 짝사랑 해 본적 있으십니까? 없어요.

17.아이돌 스타나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등등을 현실속에서도 실제로 좋아하고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아키타잎화된 이콘, 아바타에는 별로 관심 없어요.

18.사귀는 관계에 있어서, 스킨쉽의 한계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귓가에 속삭이는 언어가 좀 더 육즙이 흥건하죠.

19.계약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겁쟁이들이 잔대가리 굴린다쯤?

20.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거할 의향이 있습니까? 아뇨.

21.사랑때문에 눈물 흘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마음 아팠던 적은 있어요. 노.

22.지금 혹시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혹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없어요.

23.고백했다가 채여보신 적 있으신지... 여자한테 뭔가를 suggest/proposal 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 것은 거래처한테나 하는 거에요. :)

24.삼각관계를 겪어보신 적은? (꼭 사귀는 것이 아니더라도...친구와 함께 똑같은 사람을 좋아했었다거나..) 연적 말이에요? 로맨스의 꽃이죠.

25.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 좋아해 보신적이 있나요? 오래된 절구통이 깊지요.

26.만약 연인을 사귀게 된다면, 그사람의 과거라던가....예전의 사귀었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실 것입니까? 뒤가 약간 구린 편이라 할 말 없어요.

27.만약, 당신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게 된다면 어떻게 조치하실 겁니까?(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없더라도 상상해서 재미있게 대답해주세요.) 감가상각 면에서 내구연한이 다 된 것은 폐기처분해야죠. 자연재해'는 보험처리가 안 되구요, 안좋은 감정은 죽은 생선처럼 부패하기 쉬운데, 얼린 감정과 얼린 동태는 그래서 쿨한 것이에요.

28.지금까지 연애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혼자 히죽히죽 웃고 말겠어요. 이를테면 넣었다 빼는데 뻥~ 하는 와인 콜크 따는 상쾌한 소리가 나서 무척 신기하고 재밌어서 갖가지 실험을 했다는 종류의 얘기를 댁 같으면 자유롭게 할 수 있겠어요?

29.당신에게 있어 사랑(혹은 이성이라던지...사귐이라던지,결혼에 대해)은 어떤것인지.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번식.

30.이 설문을 하면서 대답하신 답변들의 정확도....내지는 소감 한말씀. 행복한 번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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