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텍스 전자전 2005

잡기 2005. 10. 14. 23:50
한국-이란 축구 관전평: 당구냐?

KINTEX에서 열리는 한국전자전을 보러갔다. 그걸 보러 자전거 타고 온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수영복 입고 전시장에 들어간 사람도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많이 추웠다. 도우미 중 미녀가 많다고 하던데, 가보니 왠 걸. 낚였다.


남문의 횅한 자전거 보관대 앞에서.


중소업체 부스를 주로 돌아다녔다. 잡지 셋 무료구독권을 얻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부스 대여로 행사 기관 및 참여 업체를 심하게 등쳐 먹는 COEX를 벗어난 때문인지 올해는 중소업체들이 많이 참가했다. 전자전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중국 부스는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 LG 2층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얻어먹은 것 빼고 주요 3사 사이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둘러보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늦으면 집에 돌아가기가 어려워 하는 수 없이 서둘러 나왔다.

이런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봤어야 한다. 소비자 가전 말고, 여러 부품상들. 그나저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일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보고서 싫어하는 거야 기술자들의 일반적인 성향이니까 그렇다치고 프로젝트 매니징과 다큐멘테이션, 일정 관리, 버그 트래킹, 버전 관리 시스템, 매우 타이트한 시큐리티 등등을 꾸준히 갖추어 놓았지만 쓰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 혼자 들어가서 작업한다. 나도 매니징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강요하지 않았다. 몇 번 세미나를 하긴 했다. 한국의 회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원들에게 경영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같다. 나이 마흔살 먹고도 고집 센 바보 기술자처럼 구는 것도 일부분 그 탓이라고 본다. 연구 프로젝트 경영의 주 요소는 자금, 인력, 시간, 정보, 그리고 끝 없는 삽질이다. 삽질만 하면 편식이다.

사내 세미나만 열었다 하면 다들 지겨워 해서 이번에는 포맷을 상큼하게 바꿔 보았다. 120인치 프로젝터로 세미나 시작 30분 전부터 '연애의 목적'을 틀어줬다. 회의실이 어두우니까 다들 책상에 다리 올리고 드러눕다시피 앉아 멍하니 영화를 쳐다보았다. 파워 포인트 화면을 띄우자 당장 사방에서 야유가 들렸다. 세미나 집어치우고 영화나 봅시다~ 닥쳐 세미나 해야 돼!

그러고는 '프로젝트의 목적' 따위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당신들을 자원 취급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생산성 평가해서 단물만 빨아먹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려는 것이 아니다, 주간 레포트 쓰라고도 안 한다. 단지 자기가 무슨 일을 얼마나 시간을 들여 하는지 스스로 정리하고 조작 해 봐라, 심지어 윗대가리들은 이런 사이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라고 말했다. 이런 걸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도박-사기극이다.

그들은 세미나에 좀 심하게 감탄한 나머지, 사장한테 꼬발라서 나한테 인턴 사원 교육 전부를 맡겼다. 그게 저번 주의 일이다. 그런다고 나 혼자 고스란히 당하냐? 콧방귀를 뀌고 꼬바른 직원들에게 2개월 분량의 일정을 골고루 분배해서 나눠줬다. 새파란 스머프 같은 애들 가르치는 일인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몹시 재밌지 않겠냐? 꼬셨다. 낚였다. 인턴교육을 위해 내게 할당된 시간은 그래서 주당 6시간이다. 주당 6시간 하고 빡센 과제 줄줄이 내주면 일주일이 참 허겁지겁 갈 것이다.

사장은 사장 나름대로 나를 자기네 회사에 있는 사람도 아닌데 -장 취급하려 들었다. 한국의 제조업이나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과장이란 직함은 개근상 같은 것이다. 삽질 열심히 하면 오랜 기간 경험하고 학습해야 하는 경영 자질에 상관없이 개나 소나 붙여주는 의미없는 직함이다. 삽질하기 바빠서 뭘 학습할 시간도 없이 그냥 과장된다. 30먹은 유부남을 일하게 만드는 힘은 간단히 말해 '돈'이다. 지금 연봉의 두 배를 주면 사장 아저씨네 회사 관리자를 하겠다고 말했다. 간단히 나가 떨어졌다. 농담하는 줄 아는가 보다. 돈을 주면 비전을 보여 주겠다는데... 저렴한 가격에 모시겠다는데... 요즘은 진심이 안 통해.

연구개발은 제품 라이프사이클에서 미소한 부분이다. 똘똘한(또는 띨띨한) 기술자 몇 명이서 2년 정도 하면 성과는 어떻게든 나온다. 문제는 연구개발 이후다. 다음 세대까지 항상성을 유지하며 밀어 붙일 수 있는 튼튼한 구조와 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어떤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면 춤을 추던 시절부터 인간세계에 존재했던 그것을 매니징, 경영이라고 한다. 지금 있는 인력은 아마도 언젠가는 매니저가 될 것이다. 훌륭한 중간 관리자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우연찮게 한 시대를 풍미하는 밥맛 떨어지는 어떤 경영자의 싸이콜로지가 의심스러운 '카리스마'에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의지하는 류 말고.

오늘 다운받는 영화들:

* David Cronenberg의 A History of Violence (크로넨버그는 영 맛이 갔을까?)
* Jean-Christophe Grange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L'Empire des Loups
* Firefly의 극장판, Serenity
* The Prophecy Uprising, 그저 크리스토퍼 월큰이 나온다는 이유로...

기대작은 단연 Serenity. 기다렸다.



이 포스터는 독일 개봉때 쓴 것인가? 특이한 놈들이야. 그다지 비중 없는 여자애를 전면에 내세우다니. 저 아이는 그냥 은하계 전쟁의 핵심 키를 쥐고 있을 뿐인데. 즐기자고 보는 영화에 안 예쁜 건 죄악이지. 저 쾡한 대두 좀 봐!

아내 여행 보내줘야 하므로 돈 벌어야 하니까 이 사이트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래 광고도 좀 클릭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이씨 아저씨가 구글 광고로 백달라 벌었다고 자랑해서 배가 아프다. 백달라 벌면 이런 잡담 말고 컨텐트풀한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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