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새로운 맥주가 수입되었다. 시음회에서 한 잔 했다. 맛이 괜찮다. 사각 올리브 기름병처럼 생긴 1200ml짜리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있다. 케이스 가운데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WIZMEK이라고 써 있고 가격은 1500원이다. 분명 히트칠 꺼라고 생각했다. 꿈이었고 수상쩍다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위즈멕으로 검색되는 페이지가 거의 없다 -- 꿈 속에서 조어까지 지어내는구나. 가을 중반쯤 되면 잠이 길어져 더 많은 꿈을 꾸곤 했다. 깨기 전에 인터넷으로 반드시 검색해 보겠다고 마음 먹고 이름을 외워 두었다. 위즈멕은 아나사지가 추천했다. 왜 꿈 속에 쟤들이 나타나는 거지? 자빠져 잠이나 잘 것이지.
아내가 자전거를 배우겠단다. 그전에 몇 번 배워보려고 했는데 잘 안된 모양이다. 주말에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자전거 끌고 다니는 법을 가르쳐주고 안장에 다리를 걸치고 운동장 경주 트랙을 질질 끌고 다니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나 스스로 타게 되었다. 종종 쓰러진다. 그 상태로는 도로에 나갈 수 없지만 시작은 한 셈이다. 안 쓰던 근육을 썼던지라 이틀 동안 여기저기 쑤신다고 끙끙댄다. '자전거를 배워야 타는 사람도 있군. 세상은 참 넓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진도가 빨리 나간다며 만족스러워 한다.
인턴 사원들에게 내준 빡센 과제 결과물을 엊그제 받았다. 평가하길 현업에 투입하려면 6개월 정도 걸리겠다.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미흡하지만 프로그래밍이 재미있다니 아주 다행이다. 그러나 수습 기간인 두 달이 지나면 그들이 과연 남아있을 지 의문이다. 어제, 오늘은 과제를 두 개 내 주었고 시간은 마찬가지로 일주일을 주었다. 소스를 보면 소스를 만드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글하고 비슷하다.
오래 전에 김씨 아저씨와 얘기한 적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글에는 개인의 성향과 버릇 따위가 반영되어 일정한 양상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가 말했거나 내가 말했거나 아무튼 우리는 비슷한 지점에서 동감했다. 사실은 놀랐다. 아니, 이 양반은 정말로 게시물을 분석 했단 말인가? 나처럼 그렇게나 할 일이 없단 말인가? 하고. 그는 나처럼 주민등록번호부터 자신의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속이고 특정 사이트를 경유해 ip마저 속인 채 여기 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모닥불에 장작을 쑤셔넣는 등 장난을 즐긴 것 같다. 요즘은 인터넷에 더 이상 뭔가를 끄적이지 않았다. 때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것은... 작품이 작가의 인격에 반영된다! 는 점이다' -- 시마모토 카즈히코, 호에로펜
만든 아이덴티티는 나름대로 생장한다. 만든 아이덴티티 역시 그 나름의 열정과 임프레션을 가지고 있다. 개개의 꿈 속에서 내가 각각의 역할을 가지 듯, 아이덴티티가 여러 개로 나뉘어지는 것이나 현실 경계가 불투명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들이다. 시뮬레이팅된 환경이 실재에 투영될 때 기시감을 느끼면 열이 받거나 짜증나는 것이 문제다 -- 여러 번씩 반복 경험하는 실패와 실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옆 사람은 그럼 내가 또 이유없이 갑자기 지랄하는 줄 안다. 갑자기가 아니다. 각 지랄마다 설명하기 애매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나사지같은 것들이 눈앞에서 오락가락 하면 확 열이 뻗치는 것이다.
운동화를 사면 평균 4년 정도 신는 것 같다. 운동화 말고 등산화를 샀다. 정가 14만원짜리를 세일해서 7만원에 팔고 있는 고어텍스 등산화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이 신발을 신을 때는 쿨맥스 류의, 땀을 바깥으로 배출해주는 양말을 신을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런 문구도 적혀 있다: 고어텍스 멤브레인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발톱을 잘 깎고 신으세요. 비싼 신발은 이 모양인가? 아무렇게나 막 신고 다니던 1만원짜리 동대문표 운동화들이 그리워졌다.
씨없는 수박을 개발해 영웅 대접을 받았던 우장춘 박사는 씻거나 먹을 때 가장 걸리적거리는 과일인 포도에서 씨를 빼는 연구 업적은 정작 남기지 않아 어린 시절 나는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옛날 흥미진진한 책에서는 줄기에 토마토가 달리고 뿌리에 감자가 열리는 유전자 조작 식품과 태양광 발전으로 쌩쌩 하늘의 궤도를 달리는 미끈한 은색 자동차가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는데 요새 분위기는 그 반대다.
황소개구리를 먹어치우는 파리지옥, 왁스 코팅이 된 소나무, 고에너지 우주선을 포획하면 발광하는 꽃들, 수력 발전 시설을 대체하며 플랑크톤만 먹여도 전기를 생산하는 붕장어, 삼계탕 나무(그러니까 가지에 닭과 대추, 뿌리엔 인삼) 등을 내심 기대했던 처지에서 작금의 실태는 어린 시절 나름대로 품었던 꿈과 희망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쳐죽일 놈들이 순진한 어린아이의 꿈을 빼앗아 간 것일까.
현실적인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다이슨 구, zero point inertia engine까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좀 더 추락해서 세속적이 되면 마이크로 엔진, 맴브레인 센서, OLED 스크린, LED 조명, 페이퍼 디스플레이, P-RAM, 와이어리스 유비쿼터스 프리센스, 자기조직하는 시멘틱 웹, 내추럴 랭귀지 프로세싱 따위... 어린 시절 품었던 밝고 찬란한 미래세계에서 비하면 참, 한심하다.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 웹 저널의 기사, '끈이론은 우주만물의 원리가 될 수 있는가?' 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의 영재'를 읽다가; 잡담이잖아?
아내가 자전거를 배우겠단다. 그전에 몇 번 배워보려고 했는데 잘 안된 모양이다. 주말에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자전거 끌고 다니는 법을 가르쳐주고 안장에 다리를 걸치고 운동장 경주 트랙을 질질 끌고 다니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나 스스로 타게 되었다. 종종 쓰러진다. 그 상태로는 도로에 나갈 수 없지만 시작은 한 셈이다. 안 쓰던 근육을 썼던지라 이틀 동안 여기저기 쑤신다고 끙끙댄다. '자전거를 배워야 타는 사람도 있군. 세상은 참 넓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진도가 빨리 나간다며 만족스러워 한다.
인턴 사원들에게 내준 빡센 과제 결과물을 엊그제 받았다. 평가하길 현업에 투입하려면 6개월 정도 걸리겠다.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미흡하지만 프로그래밍이 재미있다니 아주 다행이다. 그러나 수습 기간인 두 달이 지나면 그들이 과연 남아있을 지 의문이다. 어제, 오늘은 과제를 두 개 내 주었고 시간은 마찬가지로 일주일을 주었다. 소스를 보면 소스를 만드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글하고 비슷하다.
오래 전에 김씨 아저씨와 얘기한 적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글에는 개인의 성향과 버릇 따위가 반영되어 일정한 양상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가 말했거나 내가 말했거나 아무튼 우리는 비슷한 지점에서 동감했다. 사실은 놀랐다. 아니, 이 양반은 정말로 게시물을 분석 했단 말인가? 나처럼 그렇게나 할 일이 없단 말인가? 하고. 그는 나처럼 주민등록번호부터 자신의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속이고 특정 사이트를 경유해 ip마저 속인 채 여기 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모닥불에 장작을 쑤셔넣는 등 장난을 즐긴 것 같다. 요즘은 인터넷에 더 이상 뭔가를 끄적이지 않았다. 때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것은... 작품이 작가의 인격에 반영된다! 는 점이다' -- 시마모토 카즈히코, 호에로펜
만든 아이덴티티는 나름대로 생장한다. 만든 아이덴티티 역시 그 나름의 열정과 임프레션을 가지고 있다. 개개의 꿈 속에서 내가 각각의 역할을 가지 듯, 아이덴티티가 여러 개로 나뉘어지는 것이나 현실 경계가 불투명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들이다. 시뮬레이팅된 환경이 실재에 투영될 때 기시감을 느끼면 열이 받거나 짜증나는 것이 문제다 -- 여러 번씩 반복 경험하는 실패와 실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옆 사람은 그럼 내가 또 이유없이 갑자기 지랄하는 줄 안다. 갑자기가 아니다. 각 지랄마다 설명하기 애매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나사지같은 것들이 눈앞에서 오락가락 하면 확 열이 뻗치는 것이다.
운동화를 사면 평균 4년 정도 신는 것 같다. 운동화 말고 등산화를 샀다. 정가 14만원짜리를 세일해서 7만원에 팔고 있는 고어텍스 등산화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이 신발을 신을 때는 쿨맥스 류의, 땀을 바깥으로 배출해주는 양말을 신을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런 문구도 적혀 있다: 고어텍스 멤브레인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발톱을 잘 깎고 신으세요. 비싼 신발은 이 모양인가? 아무렇게나 막 신고 다니던 1만원짜리 동대문표 운동화들이 그리워졌다.
씨없는 수박을 개발해 영웅 대접을 받았던 우장춘 박사는 씻거나 먹을 때 가장 걸리적거리는 과일인 포도에서 씨를 빼는 연구 업적은 정작 남기지 않아 어린 시절 나는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옛날 흥미진진한 책에서는 줄기에 토마토가 달리고 뿌리에 감자가 열리는 유전자 조작 식품과 태양광 발전으로 쌩쌩 하늘의 궤도를 달리는 미끈한 은색 자동차가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는데 요새 분위기는 그 반대다.
황소개구리를 먹어치우는 파리지옥, 왁스 코팅이 된 소나무, 고에너지 우주선을 포획하면 발광하는 꽃들, 수력 발전 시설을 대체하며 플랑크톤만 먹여도 전기를 생산하는 붕장어, 삼계탕 나무(그러니까 가지에 닭과 대추, 뿌리엔 인삼) 등을 내심 기대했던 처지에서 작금의 실태는 어린 시절 나름대로 품었던 꿈과 희망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쳐죽일 놈들이 순진한 어린아이의 꿈을 빼앗아 간 것일까.
현실적인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다이슨 구, zero point inertia engine까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좀 더 추락해서 세속적이 되면 마이크로 엔진, 맴브레인 센서, OLED 스크린, LED 조명, 페이퍼 디스플레이, P-RAM, 와이어리스 유비쿼터스 프리센스, 자기조직하는 시멘틱 웹, 내추럴 랭귀지 프로세싱 따위... 어린 시절 품었던 밝고 찬란한 미래세계에서 비하면 참, 한심하다.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 웹 저널의 기사, '끈이론은 우주만물의 원리가 될 수 있는가?' 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의 영재'를 읽다가; 잡담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