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쓰던 디지탈 카메라를 수리보냈다. 송료 포함 18000원의 수리비가 청구되었다. play와 shot 사이의 모드 전환에 관계된 2mmx2mm 짜리 SMT 스위치를 교체하는 것이다. 뜯어봤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고 있다. 부품값은 아주 비싸봤자 100원 정도 하겠지만 나머지 비용이 일종의 기술 및 시술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문가란 사람들은 그걸로 먹고 산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 나도 먹고 산다.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인정해야만 했다. 마치 왕년에 코볼로 프로그램 짜다가 부장된 사람이 자기 부하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며 자기가 짜면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면서 버그 하나 없이 끝내주게 잘 짤 수 있노라고 UML로 자기 할 바를 다하지 않으면서 떵떵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카메라는 5년 전에 구매한 SANYO DSC-MZ1이다. 카메라의 메커니컬 파트를 무식하게 설계해서(미안하다 산요 기술자들, 하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사실이잖아?) 전지를 엄청나게 잡아먹는다. 1년 동안 여행 다니면서 종종 고장이 났고 늘 이렇게 뜯어서 수리했다. 깡촌 오지에서 부품 입수는 커녕 인두조차 구할 길이 막막했지만 매 번 슬기롭게 극복했다. 이 카메라로 그때 찍은 사진들은 그래서 지금 봐도 고생한 기억이 난다. 저 사진을 찍기 전에 렌즈 드라이브 모터의 기어 박스에 모래가 끼어서 고생했지, 사막에서 셔터 스위치가 망가졌었지, 전지 홀더가 부러졌지, 우기의 지독한 습기 때문에 충전 컨덴서의 단자에 녹이 슬어 떨어져 나갔지, 잦은 충격으로 충전기의 배선이 끊겨 있었지, 기타 등등 온갖 고장들을 체험했다. 마치 다카르 랠리에서 간신히 삐걱삐걱 굴러다니는 자동차처럼 간신히 나와 산요 디지탈 카메라만 아는 여행을 끝냈다. 함께 들고갔던 리브레또30 역시 잦은 고장으로 거의 맛이 가기 일보 직전에 귀국했다. 귀국 후 사망했다. 유일하게 고장나지 않은 것은 신체와 Garmin GPS 뿐이다.
잘 고장나지 않는 튼튼한 마누라의 공식 요청으로(또는 불평으로) 김치 냉장고를 구입하기로 했다. 일단 김치 냉장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수납공간의 온도를 0C~-1C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제어계통의 일을 해 본 사람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스펙 조사를 시작했다. 스펙 조사를 하면서 놀랐던 것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전거처럼 제대로 된 스펙을 제시하는 제품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온도 편차 라던가 수납공간의 온도 전이 특성이나 벤치 마크 자료, 평균 전력 소모 그래프 따위 간단한 것들 마저. 생각해보니 거의 모든 소비자 가전 제품의 제품 스펙이 부실하다. 할아버지가 지포스 그래픽 카드의 3D 마크 점수를 달달 외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정에서 재밌는 일이다.
자사의 무의미한 선전 문구만 나부꼈다. 아내는 자신의 사설 통신망을 이용해 어떤 김치 냉장고가 좋은지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물었다. 딤채가 좋단다. 딤채가 왜? 무의미한 질문이다. 아줌마들이 왜 좋은지 설명하길 기대한다는 것은. UI, 디자인, 브랜드 파워, AS 서비스, 전통 따위 주관적이고 경우에 따라 편차가 심하며 정형적인 데이터와는 무관한 것들.
내 마이너적인 취향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한 제품을 선택하다 보니 대우의 김치 냉장고 FR-K193EM을 골랐다. 주변 기능이 충실하고 아내가 여러 사람에게 질의한 스펙(200리터, 3도어)을 거의 충족시켰다(192리터, 3도어, 개별 냉장/냉동, 전력소비등급 1등급). 가격이 싸다는 점이 가장 큰 매릿이다. 아줌마들이 선호하는 딤채와 비교해 거의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63만원 주고 샀는데 어느새 59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제품이 도착해서 설치하고 보니 어이가 없다. 버튼 몇 개 조작하다 보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어떻게 6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기계가 이렇게 간단할 수 있을까. 60만원이면 그 사양 복잡한 PC가 두 대다. 누군가는 UI의 승리라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김치냉장고의 주 사용대상이 아줌마들이다 보니 아줌마들의 '수준에 맞춰' 인터페이스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커스텀 설정이 없고 사용자의 매니아적인 취향을 전혀 무시한 이 단순한 인터페이스는(심지어 콤보 키도 먹지 않았다) 새 기계를 들여놓으면서 응당 즐겨야 할 조작의 기쁨을 앗아갔다 --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싫증이 났다. 소비자 가전의 70% 이상이 여성을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저 수치는 틀렸다는 단정적인 부정도 들었다. 90% 이상이란다. 여성, 또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생각하기를 즐기지 않는지 가전 제품 대다수의 기능이 한심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 것일까. 인류의 장래가 어두워 보인다.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젊은 처자가 자기 차례가 되자 창구에 묻는다 '11쯤에 부산 가려는데 한 장이요. 얼마에요? 몇 시간 걸려요?' 창구 직원이 대꾸하자 지갑을 열고 돈을 차근차근 꺼내 건넨 후 표를 받아 지갑의 한쪽 편에 넣고 잔돈을 차례대로 지갑에 채워 넣고 창구 앞을 떠난다. 다음 사람이 창구 앞에 선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 창구 앞에 커다란 판데기는 폼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기차 출발 시각, 도착 시각, 요금표가 붙어 있다. 한글로 적혀 있다. 아랍어가 아니라.
* 따라서 창구 앞에 다다르기 전에 미리 돈을 꺼내놓을 수 있다. 또는, 창구에서 카드 받는다. 카드 건네고 긁고 비밀번호 입력하면 끝이다.
* 시간은 왜 묻나? 머리 위에 다 써 있는데.
* 돈은 쓸어서 옆으로 옮겨 챙기고 뒷 사람이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도 있다. 창구는 보통 그러라고 동선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지하철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두리번 거리고 헤메는 사람들의 십중 팔구는 여자다. 뒤에 사람이 밀려 있건 말건. 길에서도 마찬가지고 자전거 탈 때도 그렇다. 뒤에서 벨을 울리건 말건 앞뒤옆 안 보고 당당하게 도로의 모든 면을 활용해 갈짓자를 그리며 제 갈 길을 '즐기며' 간다. 여중생 2+n명은 항상 도로 진행면에 수직해서 일직선을 이루고 걸으며 재잘거린다. 볼 때마다 특이한, '동물의 세계'다.
공중도덕이나 예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어떤 특성이 저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희안하게 여길 따름이다(그런데 암사자들도 저럴까?).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내가 성격이 모가 나서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을 일일이, 꼬치꼬치 따지며 욕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는 지구인을 일일이 방문해 모욕을 주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성질 더러운 건 널리 공인된 사실이라치고(이런 남자와 결혼하시다니,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마님), 기차표 사러 줄 서 있다가 단 1-2분 차이로 몇 번 표를 못 산 경험이 있다. 앞에 선 여성을 욕하진 않는다. 그저, 왜? 다.
왜?에 대한 적당한 답변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령은 그렇다: 각 줄에서 여자가 있는 갯수를 세어보고 여자가 가장 적은 창구로 간다. 그리고 앞에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여자를 인도의 흰 암소나 그들이 싼 소똥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다. 거리에 소똥이 잔뜩 널려 있다고 생각하면 심지어 인도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한다.
전문가란 사람들은 그걸로 먹고 산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 나도 먹고 산다.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인정해야만 했다. 마치 왕년에 코볼로 프로그램 짜다가 부장된 사람이 자기 부하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며 자기가 짜면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면서 버그 하나 없이 끝내주게 잘 짤 수 있노라고 UML로 자기 할 바를 다하지 않으면서 떵떵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카메라는 5년 전에 구매한 SANYO DSC-MZ1이다. 카메라의 메커니컬 파트를 무식하게 설계해서(미안하다 산요 기술자들, 하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사실이잖아?) 전지를 엄청나게 잡아먹는다. 1년 동안 여행 다니면서 종종 고장이 났고 늘 이렇게 뜯어서 수리했다. 깡촌 오지에서 부품 입수는 커녕 인두조차 구할 길이 막막했지만 매 번 슬기롭게 극복했다. 이 카메라로 그때 찍은 사진들은 그래서 지금 봐도 고생한 기억이 난다. 저 사진을 찍기 전에 렌즈 드라이브 모터의 기어 박스에 모래가 끼어서 고생했지, 사막에서 셔터 스위치가 망가졌었지, 전지 홀더가 부러졌지, 우기의 지독한 습기 때문에 충전 컨덴서의 단자에 녹이 슬어 떨어져 나갔지, 잦은 충격으로 충전기의 배선이 끊겨 있었지, 기타 등등 온갖 고장들을 체험했다. 마치 다카르 랠리에서 간신히 삐걱삐걱 굴러다니는 자동차처럼 간신히 나와 산요 디지탈 카메라만 아는 여행을 끝냈다. 함께 들고갔던 리브레또30 역시 잦은 고장으로 거의 맛이 가기 일보 직전에 귀국했다. 귀국 후 사망했다. 유일하게 고장나지 않은 것은 신체와 Garmin GPS 뿐이다.
잘 고장나지 않는 튼튼한 마누라의 공식 요청으로(또는 불평으로) 김치 냉장고를 구입하기로 했다. 일단 김치 냉장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수납공간의 온도를 0C~-1C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제어계통의 일을 해 본 사람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스펙 조사를 시작했다. 스펙 조사를 하면서 놀랐던 것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전거처럼 제대로 된 스펙을 제시하는 제품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온도 편차 라던가 수납공간의 온도 전이 특성이나 벤치 마크 자료, 평균 전력 소모 그래프 따위 간단한 것들 마저. 생각해보니 거의 모든 소비자 가전 제품의 제품 스펙이 부실하다. 할아버지가 지포스 그래픽 카드의 3D 마크 점수를 달달 외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정에서 재밌는 일이다.
자사의 무의미한 선전 문구만 나부꼈다. 아내는 자신의 사설 통신망을 이용해 어떤 김치 냉장고가 좋은지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물었다. 딤채가 좋단다. 딤채가 왜? 무의미한 질문이다. 아줌마들이 왜 좋은지 설명하길 기대한다는 것은. UI, 디자인, 브랜드 파워, AS 서비스, 전통 따위 주관적이고 경우에 따라 편차가 심하며 정형적인 데이터와는 무관한 것들.
내 마이너적인 취향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한 제품을 선택하다 보니 대우의 김치 냉장고 FR-K193EM을 골랐다. 주변 기능이 충실하고 아내가 여러 사람에게 질의한 스펙(200리터, 3도어)을 거의 충족시켰다(192리터, 3도어, 개별 냉장/냉동, 전력소비등급 1등급). 가격이 싸다는 점이 가장 큰 매릿이다. 아줌마들이 선호하는 딤채와 비교해 거의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63만원 주고 샀는데 어느새 59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제품이 도착해서 설치하고 보니 어이가 없다. 버튼 몇 개 조작하다 보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어떻게 6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기계가 이렇게 간단할 수 있을까. 60만원이면 그 사양 복잡한 PC가 두 대다. 누군가는 UI의 승리라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김치냉장고의 주 사용대상이 아줌마들이다 보니 아줌마들의 '수준에 맞춰' 인터페이스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커스텀 설정이 없고 사용자의 매니아적인 취향을 전혀 무시한 이 단순한 인터페이스는(심지어 콤보 키도 먹지 않았다) 새 기계를 들여놓으면서 응당 즐겨야 할 조작의 기쁨을 앗아갔다 --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싫증이 났다. 소비자 가전의 70% 이상이 여성을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저 수치는 틀렸다는 단정적인 부정도 들었다. 90% 이상이란다. 여성, 또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생각하기를 즐기지 않는지 가전 제품 대다수의 기능이 한심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 것일까. 인류의 장래가 어두워 보인다.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젊은 처자가 자기 차례가 되자 창구에 묻는다 '11쯤에 부산 가려는데 한 장이요. 얼마에요? 몇 시간 걸려요?' 창구 직원이 대꾸하자 지갑을 열고 돈을 차근차근 꺼내 건넨 후 표를 받아 지갑의 한쪽 편에 넣고 잔돈을 차례대로 지갑에 채워 넣고 창구 앞을 떠난다. 다음 사람이 창구 앞에 선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 창구 앞에 커다란 판데기는 폼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기차 출발 시각, 도착 시각, 요금표가 붙어 있다. 한글로 적혀 있다. 아랍어가 아니라.
* 따라서 창구 앞에 다다르기 전에 미리 돈을 꺼내놓을 수 있다. 또는, 창구에서 카드 받는다. 카드 건네고 긁고 비밀번호 입력하면 끝이다.
* 시간은 왜 묻나? 머리 위에 다 써 있는데.
* 돈은 쓸어서 옆으로 옮겨 챙기고 뒷 사람이 주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도 있다. 창구는 보통 그러라고 동선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지하철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두리번 거리고 헤메는 사람들의 십중 팔구는 여자다. 뒤에 사람이 밀려 있건 말건. 길에서도 마찬가지고 자전거 탈 때도 그렇다. 뒤에서 벨을 울리건 말건 앞뒤옆 안 보고 당당하게 도로의 모든 면을 활용해 갈짓자를 그리며 제 갈 길을 '즐기며' 간다. 여중생 2+n명은 항상 도로 진행면에 수직해서 일직선을 이루고 걸으며 재잘거린다. 볼 때마다 특이한, '동물의 세계'다.
공중도덕이나 예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어떤 특성이 저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희안하게 여길 따름이다(그런데 암사자들도 저럴까?).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내가 성격이 모가 나서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을 일일이, 꼬치꼬치 따지며 욕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는 지구인을 일일이 방문해 모욕을 주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성질 더러운 건 널리 공인된 사실이라치고(이런 남자와 결혼하시다니,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마님), 기차표 사러 줄 서 있다가 단 1-2분 차이로 몇 번 표를 못 산 경험이 있다. 앞에 선 여성을 욕하진 않는다. 그저, 왜? 다.
왜?에 대한 적당한 답변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령은 그렇다: 각 줄에서 여자가 있는 갯수를 세어보고 여자가 가장 적은 창구로 간다. 그리고 앞에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여자를 인도의 흰 암소나 그들이 싼 소똥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다. 거리에 소똥이 잔뜩 널려 있다고 생각하면 심지어 인도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