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것 같은 포맷에, 쓸만한 정보라고는 거의 없는데다, '인자하신 아버님과 푸근한 어머님 사이에서 이남 일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는 류의 자질구레한 자기소개서가 포함된 고리타분한 이력서로는 그가 엔지니어로서 어떤 지랄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자기소개서가 도움이 안된다. 인자하신 아버님과 다정한 어머님 사이에서 살인범, 강간범, 또는, 또라이로 성장한 케이스도 꽤 된다. 내가 알기론.
저런 이력서를 요구하거나(관리차원에서 정형화된 형식이 필요하다는 인사담당자의 말씀) 저런 이력서로 사람을 선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지 싶다. 얼굴 근육과 눈빛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여자들의 탁월한 인지 능력(뭐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에게는 보기 드문, 사회적으로 쇠퇴하고 억제된 능력이지만)은 면접할 때 쓸모가 있을 것 같다 -- 아줌마 여덟 명으로 면접팀을 구성해서 신선한 먹이감을 눈 앞에 가지고 놀며 점수를 메기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Q채널에서 입이 거친 처녀 몇 명이 신부학교에 들어가 고생하는 넌픽션 드라마가 나왔다. 신부 수업 백날 해봤자 '레이디'가 되긴 글른 아가씨들은 아줌마 셋의 가혹한 판정에 의해 쫓겨났다. 내가 아무리 잔인하다지만 저 아줌마들에 비하면 택도 없다.
-*-
내친 김에 하는 말이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내 눈알은 표정이 '풍부'해서 거짓말을 하면 누구나 제깍 알아차린다.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는 그래서 소설을 썼다. 소설은 딴 세상 얘기라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정말 활짝 펼쳐)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도 티가 안 나는 장점이 있지만 구상과 구현 등, 쓸데없는 노력이 많이 든다.
정사장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뜸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냐고 묻는다. 과거는 내 인생에서 가장 도움 안 되는 부분이다. 공들여서 설명하는 얘기를 한 시간쯤 듣다가, 여섯 대의 서로 별개인 서버가 경쟁하듯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시스템에 참을성을 잃고, 개념적으로 별게 없는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알기 쉽고 직관적으로 재구성해 주었다. 할 마음은 안 생겼다. 메추리와 몇 번 일해 본 적이 있는데 박봉에 시달리는 그 친구들은 공무원처럼 한가하게 일해서 뒷일을 감당키 어렵다. 물심 양면으로 황폐해진다. 무서운 똥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얼마 생각해요? 라고 묻길래 한 달에 700 주세요~ 네고는 안되요~ 라고 했더니 어 글쎄, 주겠단다. 어 그럼 안되는데. 어 시나리오대로 안 나가네? 하는 수 없이 소설을 썼다.
-*-
저녁에는 황씨와 술 마시다가 미래가 어둡다는 류의 얘기를 했다. 그건 내가 4년 전 소설 쓴답시고 '작가적 입장'에서 -- 한동안 유행하던 디스토피아적 관점에서 -- 관찰하다가 자본가에게 쉽게 정보 수집과 돈벌이를 가능케 하고 소비자의 동의없이 지껄이는 냉장고나 엘리베이터나 옥외광고나 수퍼 진열대나 카운터나 하다못해 착착 돌아가는 교통 시스템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RFID나 적외선, 무선 등을 이용한 비접촉식 인지체계는 거리에서 벌거벗고 다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지금 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본가의 돈을 살금살금 착취해서(이런 로맨틱한 측면도 있다) 파키스탄 난민 아이들이 한 겨울에 얼어죽지 않도록 보태주려고 했다. 결심이 흔들릴까봐, 담요 살 돈을 미리 보내놓고 그 액수를 노력과 근성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내 마음의 평화와는 상관없다. 거리에서 틈틈이 무선랜에 접속해 날뛴 결과 이틀 동안 40$을 벌었다. 액수가 아름답다.
그런데, 그저께 밤에 그 동안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러 들어갔더니 이상한 동의서가 불쑥 튀어 나왔다. 아, 녀석들은 돌대가리가 아니구나. 기특하게도 사용자의 악의적인 조작으로 인한 수익 발생을 차단하는구나. 역시 사업 제대로 할 줄 아는 믿을만한 기업이야 라고 경탄하면서 아쉽지만 이제 나쁜 짓은 그만 해야지 생각했다. 으쓱, 아용우노맛.
인류를 휩쓸었던 세형돌날 구석기 혁명이 알류산 열도를 건넌 후 베링해 양쪽에는 오직 황인종만 사람같이 생긴 사람(잉우알렛)이라고 주장하는 이누잇이 살게 되었다. 그들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백곰에게 한 방 맞아 머리가 평원 위를 호를 그리며 멋지게 날아갈 때 즈음이면 세상이 뭐 다 그런거지 라는 뜻의 '아용우노맛'이란 말을 중얼거렸다.
3천대로 구성한 클러스터는 페타 바이트 단위의 인덱스를 만든다. 그런 클러스터가 30개나 있고 일 년마다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그 회사의 멋지고 훌륭하고 인공지능적으로 섹시한 시스템에 순수한 감탄사를 탄식처럼 내뱉은 후 -- 폐속으로 유황가스가 들락거리는 느낌이지만 -- 새 마음으로 다시 로긴했다. 로긴했더니 엊그제 번 41$이 그대로 있다. 황금 주말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몇 번 더 작업하면 수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최소한 파키스탄 아이들 30명을 강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을텐데.
후회스러운 인생이다.
-*-
그건 그렇고, 외계인들이 납치해 가야 완치가 가능한 여러 알 수 없는 성인병들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직장인 김씨 아저씨에게 들은, 애를 끊는 듯한 처절한 싯귀를 직장인 이씨 아저씨에게 해줬다: 日職 集愛 可高 拾多
-*-
김씨 아저씨는 메신저로 간만에 연락했다. 그는 로또에 당첨되었다. 뭐라고 자괴감을 드러내건 그가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십수년 글 쓴답시고 살았고 그 만큼 쓸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 아인슈타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친척이야(relatives) 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더니 댁은 안 쓰쇼? 라고 묻는다. 인생을 즐기다보니 소설 쓸 생각이 안 든다.
SF는 일종의 애티튜드가 없으면 쓰기가 불가능한 장르다. 내게도 그것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긴 했다. 고삐리 시절부터 SF 쓰려고 노력했다. 십여년 동안 글쓰기 연습을 죽어라고 했다. 문제가 좀 있어서 해결하려고 천 단어 미만으로 문장을 구사하는 -- 발가락이 가려워도 긁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종류의 --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꾸준히 삽질하여 몇 년을 더 연습한 결과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흡족했고, 흡족했으니까 중단했다. 아용우노맛이지. 이거 열 번 더 중얼거리면 백 번은 말한 셈이다.
번외로, 서점에서 한국문학 코너에 들러 책을 들춰 보다가 늘 떠오르는 생각인데, 한국문학은 황무지에서 변사체로 썩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저런 이력서를 요구하거나(관리차원에서 정형화된 형식이 필요하다는 인사담당자의 말씀) 저런 이력서로 사람을 선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지 싶다. 얼굴 근육과 눈빛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여자들의 탁월한 인지 능력(뭐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에게는 보기 드문, 사회적으로 쇠퇴하고 억제된 능력이지만)은 면접할 때 쓸모가 있을 것 같다 -- 아줌마 여덟 명으로 면접팀을 구성해서 신선한 먹이감을 눈 앞에 가지고 놀며 점수를 메기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Q채널에서 입이 거친 처녀 몇 명이 신부학교에 들어가 고생하는 넌픽션 드라마가 나왔다. 신부 수업 백날 해봤자 '레이디'가 되긴 글른 아가씨들은 아줌마 셋의 가혹한 판정에 의해 쫓겨났다. 내가 아무리 잔인하다지만 저 아줌마들에 비하면 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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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하는 말이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내 눈알은 표정이 '풍부'해서 거짓말을 하면 누구나 제깍 알아차린다.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는 그래서 소설을 썼다. 소설은 딴 세상 얘기라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정말 활짝 펼쳐)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도 티가 안 나는 장점이 있지만 구상과 구현 등, 쓸데없는 노력이 많이 든다.
정사장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뜸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냐고 묻는다. 과거는 내 인생에서 가장 도움 안 되는 부분이다. 공들여서 설명하는 얘기를 한 시간쯤 듣다가, 여섯 대의 서로 별개인 서버가 경쟁하듯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시스템에 참을성을 잃고, 개념적으로 별게 없는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알기 쉽고 직관적으로 재구성해 주었다. 할 마음은 안 생겼다. 메추리와 몇 번 일해 본 적이 있는데 박봉에 시달리는 그 친구들은 공무원처럼 한가하게 일해서 뒷일을 감당키 어렵다. 물심 양면으로 황폐해진다. 무서운 똥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얼마 생각해요? 라고 묻길래 한 달에 700 주세요~ 네고는 안되요~ 라고 했더니 어 글쎄, 주겠단다. 어 그럼 안되는데. 어 시나리오대로 안 나가네? 하는 수 없이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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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황씨와 술 마시다가 미래가 어둡다는 류의 얘기를 했다. 그건 내가 4년 전 소설 쓴답시고 '작가적 입장'에서 -- 한동안 유행하던 디스토피아적 관점에서 -- 관찰하다가 자본가에게 쉽게 정보 수집과 돈벌이를 가능케 하고 소비자의 동의없이 지껄이는 냉장고나 엘리베이터나 옥외광고나 수퍼 진열대나 카운터나 하다못해 착착 돌아가는 교통 시스템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RFID나 적외선, 무선 등을 이용한 비접촉식 인지체계는 거리에서 벌거벗고 다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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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본가의 돈을 살금살금 착취해서(이런 로맨틱한 측면도 있다) 파키스탄 난민 아이들이 한 겨울에 얼어죽지 않도록 보태주려고 했다. 결심이 흔들릴까봐, 담요 살 돈을 미리 보내놓고 그 액수를 노력과 근성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내 마음의 평화와는 상관없다. 거리에서 틈틈이 무선랜에 접속해 날뛴 결과 이틀 동안 40$을 벌었다. 액수가 아름답다.
그런데, 그저께 밤에 그 동안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러 들어갔더니 이상한 동의서가 불쑥 튀어 나왔다. 아, 녀석들은 돌대가리가 아니구나. 기특하게도 사용자의 악의적인 조작으로 인한 수익 발생을 차단하는구나. 역시 사업 제대로 할 줄 아는 믿을만한 기업이야 라고 경탄하면서 아쉽지만 이제 나쁜 짓은 그만 해야지 생각했다. 으쓱, 아용우노맛.
인류를 휩쓸었던 세형돌날 구석기 혁명이 알류산 열도를 건넌 후 베링해 양쪽에는 오직 황인종만 사람같이 생긴 사람(잉우알렛)이라고 주장하는 이누잇이 살게 되었다. 그들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백곰에게 한 방 맞아 머리가 평원 위를 호를 그리며 멋지게 날아갈 때 즈음이면 세상이 뭐 다 그런거지 라는 뜻의 '아용우노맛'이란 말을 중얼거렸다.
3천대로 구성한 클러스터는 페타 바이트 단위의 인덱스를 만든다. 그런 클러스터가 30개나 있고 일 년마다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그 회사의 멋지고 훌륭하고 인공지능적으로 섹시한 시스템에 순수한 감탄사를 탄식처럼 내뱉은 후 -- 폐속으로 유황가스가 들락거리는 느낌이지만 -- 새 마음으로 다시 로긴했다. 로긴했더니 엊그제 번 41$이 그대로 있다. 황금 주말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몇 번 더 작업하면 수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최소한 파키스탄 아이들 30명을 강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을텐데.
후회스러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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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외계인들이 납치해 가야 완치가 가능한 여러 알 수 없는 성인병들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직장인 김씨 아저씨에게 들은, 애를 끊는 듯한 처절한 싯귀를 직장인 이씨 아저씨에게 해줬다: 日職 集愛 可高 拾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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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저씨는 메신저로 간만에 연락했다. 그는 로또에 당첨되었다. 뭐라고 자괴감을 드러내건 그가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십수년 글 쓴답시고 살았고 그 만큼 쓸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 아인슈타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친척이야(relatives) 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더니 댁은 안 쓰쇼? 라고 묻는다. 인생을 즐기다보니 소설 쓸 생각이 안 든다.
SF는 일종의 애티튜드가 없으면 쓰기가 불가능한 장르다. 내게도 그것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긴 했다. 고삐리 시절부터 SF 쓰려고 노력했다. 십여년 동안 글쓰기 연습을 죽어라고 했다. 문제가 좀 있어서 해결하려고 천 단어 미만으로 문장을 구사하는 -- 발가락이 가려워도 긁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종류의 --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꾸준히 삽질하여 몇 년을 더 연습한 결과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흡족했고, 흡족했으니까 중단했다. 아용우노맛이지. 이거 열 번 더 중얼거리면 백 번은 말한 셈이다.
번외로, 서점에서 한국문학 코너에 들러 책을 들춰 보다가 늘 떠오르는 생각인데, 한국문학은 황무지에서 변사체로 썩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