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거리

잡기 2005. 11. 18. 15:14
여자와 식사를 할 때 생길 수 있는 비극 -- 수긍이 간다.

정력 키우려다 파이프에 성기 박혀 고생 - 현지 언론은 이 청년이 어떤 이유로 파이프에 성기가 끼게 됐는지 말하지 않고 있으나 “정력을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소문을 듣고 이 같은 짓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전했다.

민족, 국가는 운명공동체다 라는 말을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보고 의문을 품었다. 성기가 파이프에 박혀 철물점에서 쇠톱으로 열심히 파이프를 자르는 중인 한국인에게 다가가, 당신과 나와, 한국은 운명공동체입니다. 라고 말하면 뭐라고 할 지 궁금하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전쟁의 참화가 덮쳐도 우리는 운명공동체에요. 그건 그렇고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도 당신과 내가 운명 공동체일까?

감정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학습과 경험에 의해 다듬어지고 섬세해진다. 얼음칼처럼 차갑고 날카로울 수도 있고, 풍부한 색채와 시원함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400만년 전의 원시림 비슷한 사람도 있다. 날더러 감정이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인간 네트웍을 통해 거래되는 그런 종류의 감정에 관심 없는 것은 사실이다. 연꽃을 보다가 연못을 잊듯이.

직지 사이트를 수리하고, 생각난 김에 링크를 정리하다가... koreacon.org에 들어가봤다. 멋지게 바뀌어 있었다. junksf.net 역시 해킹 당했다. 생각난 김에 아스키 에니메이션 스타워즈을 다시 보았다. 루크의 인생? 예쁘다고 생각한 여자는 자기 누나였고, 죽어라고 싸웠던 상대는 아버지였다.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냈다. 서점과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공부하고 밤에는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그러나 개연성 없는 순전한 의지일 따름이다. 나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사람들은 운명공동체일까? 너와 나의 소망과 의도와는 달리 운명이 그 스스로 움직이는 신적인(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힘으로 우리를 배신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시련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운명적인 시련을 큰 노력 없이 극복하는 길이 있다. 사업 접고 놀거나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촘스키가 예전에 분류한 타잎2 유한상태기계를 가르칠 방법을 궁리하다가 간단한 인터프리터와 컴파일러, 그리고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구현하는 프로그램들을 하루에 하나씩 짰다. 프로그래밍이란 혼란스러운 데이터열로부터 패턴을 찾는 과정이니까. FSM을 제대로 교육시킬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AGCT로 이루어진 핵산 염기 배열의 분지를 예측하여 그것을 압축하고 비교하는 예제를 구상했다. 구현하려고 보니 너무 복잡해서 인턴들에게 과제로 내주기는 부적합했다. 차라리 여러 알고리즘으로 NP 컴플릿 문제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낫겠다 싶다.

예전에 봉당 아저씨는 내가 광범위한 분야를 학습했지만 정작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는 전문성의 결여가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점을 제대로 파악했다. 전문분야가 없다. 오직 교양선택만 즐비하게 널렸을 뿐이다. 프로그래밍의 여러 필드는 문제에 접근하는 각기 다른 양식과 규칙을 가지고 있고, general problem solver가 되려면 발할라에서 활동하는 '갓핸드' 테루처럼 성형외과도 보고 내과도 보고 뇌종양도 제거하고 맹장 수술도 해야 한다.

오히려 특수한 전문성을 가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자나깨나 꿈속에서 마저도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려고 애를 쓰다가 vhdl test bench를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언어에 익숙해지는 부담없이 이전에 칩을 디자인한 자료를 가지고 그대로 테스트를 수행하는 것이다. 여러 분야의 '교양' 지식을 합종연횡하여 얻어지는 크로스오버나 뮤테이션 류다.

닥치고, 지금은 운명공동체에 몰두할 때다. 다들 약간씩 머리가 이상해져서 실실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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