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에 갔다가 같이 간 회사 직원들과 경품을 싹쓸이 했다. 뭔가 양 손 가득 쥘 것이 남는 만족스러운 세미나였다. 세미나 중에는 msn을 설치해 놓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는데 스물네살 먹은 중국 여자애가 나를 막무가내로 컨택 리스트에 추가하고는 한국 연애인들의 사진을 줄줄이 보내주면서 이들이 성형을 했는가, 안 했는가를 알고 싶단다. 특히 송혜교를 쳐 준다.
그에게 충분한 돈이 있으면 성형을 하겠는가? 물어보니 사고나 기타 이유로 피부가 얽히지만 않았으면 성형을 할 이유가 없다는 시시한 답변을 들었다. 중국 여자애들은 화장을 안 하지만 잘 빠지고 잘 생겼다. 하지만 한국 여자애들에게서 통 발견할 수 없었던 기품있는 자부심을 지녔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왠일인지 재산과 가문이 중요치 않게 된 자유연애 사회에서(특히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시각이 그렇게 순진하고 바보스러워졌다) 경쟁력으로 남을 만한 것이 고작 몸매와 얼굴 정도이고 그걸 일찌감치 깨달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일종의 자기만족과 사회적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선의 전략을 구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웃었다.
그럼 또다른 매력포인트인 지성은? Maureen Dowd의 글이 일으킨 얼마전 평지풍파에 관한 와이어드의 기사는 이랬다; 똑똑하면서도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들 -- 똑똑한 여성이 전략적으로 멍청함을 택하더라도 삶의 다양성을 영위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모린 다우드의 글에 대한 심한 공격과 반론들과 달리 이 기사의 내용은 긍정적이고 재미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마지막 문구에는 유머 감각마저 있었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전히 회사로 가야만 한다'
그게 아마도 저저번주 였던가? 지구가 실없는 공회전을 계속하는 바람에 날짜를 잊었다.
고기와 술이 있단다. 두말 없이 비단 아저씨네 파티에 갔다. 수익이 거의 안 나는 인력 노가다 서비스 업종에서 일 년째 고생하고 있는 그는 아직 자신이 가진 철학을 잊지 않았다. 참석한 새로운 면면 앞에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자기강화, 그러니까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배 나왔다.
박씨 아줌마는 자나깨나 만나기만 하면 날더러 결혼 잘 했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그의 남편은 아마 집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박씨 아줌마는 바라나시에서 봤다. 가트에서 타들어가는 시체를 보며 울었고 죽은 언니를 생각하며 훌쩍였다.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뛰노는 원숭이들을 구경하며 맥주를 홀짝이다가 자기가 덮칠 수 있게 내 숙소의 문을 열어두라고 협박했다. 문은 잘 잠궈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저씨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사천성의 음식맛이 죽여준다고 얘기하던 참이었다(하지만 불의 숨소리가 배인 중국 요리를 맛보기 위해 맥도날드 화장실에서 먹은 음식을 게우고 다시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며 하루 여섯끼식 먹어치우던 미치광이같은 맛따라 길따라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옆 자리에는 요리사가 앉아 있었고 얼굴이 벌개진 그 친구는 소믈리에 자격을 최근에 얻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 언젠가 와인 여행을 해 보잔다. 이름이 통 기억나지 않는 아저씨는 흔히 재수없는 타잎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난 그와 중국 얘기를 했다. 어디가 좋았냐고 묻는다. 사천성, 운남성.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사천성에서 중국 아가씨와 사귄 것 같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 아가씨들이 참 예쁘고 순진하고 수줍다는 등, 보기 드문 천혜의 서식환경에 아낌없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사님과 라사에서 카트만두까지 자전거 코스를 지도를 봐가며 검토했다. 비참한 얘기지만 내 체력에 아직 자신 없다. 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임씨 아가씨는 라오스에서 만났다. 파타야를 안주삼아 독한 라오스 위스키를 마셨다. 나는 사귀던 여자친구 얘기를 횡설수설 늘어놓았던 것 같다. 비엔티앙의 허름한 시장 골목을 헤메며 그녀의 생리대를 사주기 위해 노력했다. 절간에 들어가 중들과 놀았다. 몇 년전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일 년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그 얘기를 꺼내 신경을 건드렸다.
인도 아저씨 둘이 파티에 있었다. 샴은 몇 번 얼굴을 봐서 낯설지 않다. 인도계 인텔리라는 그는 예쁘장한 아가씨와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했다. 다른 사람은 IT 업계에서 일하던 친구다. 인도인의 꼬들꼬들한 영국식 억양이 왠지 정겹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 아저씨와 교육과 인력수급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일전에 만난 한사장님은 인도에서 인력을 수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단가문제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가장 큰 매릿이던 가격경쟁력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인도인들이 한국에서 일년쯤 일을 하다보면 한국인들의 연봉을 알게 되고 다음 연봉 협상은 보통 '현실적 수준의 타협'이라는 '난항'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IT 업종에 종사하는 인도인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릭샤왈라하고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종교 문화적 자기정당화 내지는 사기를 안 치고 모던하고 깔끔하다.
홍기 아가씨는 이집트에서 봤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술탄 호텔에 커다란 짐을 들고 두 동생들과 도착했다. 머리를 싸매고 주방에서 뭘 해먹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유럽과 이집트를 구경하고 유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유학생이던가?) 마침 시리아에서 돌아와 그것을 기쁘게 추억하고 있던 처지라 시리아로 가라고 말했다. 내가 준 시리아 정보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잘 다려진 우롱차처럼 예전에 없던 색기가 그의 전신에서 우러나왔다. 남자들은 그걸 불편하게도, 감사하게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난 그냥 재밌어 했다.
세바스 아저씨는 프로그래머다. 그는 업종을 바꾸고 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아시죠? 프로그래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암 알고 말고. 골방에 틀어박혀 계절이 바뀌어도 하는 삽질은 바뀌지 않고 회사 외에서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육체적으루나 영혼적으루나 바쁘고 피곤한 사람들. 나는 한국, 일본, 중국이 합작하여 새로 제작중인 신 실크로드 흉을 봤다. 이제 그들은 타클라마칸 사막 한 복판에서 gps를 들고 유적지를 찾아간다. 작년에 방문했던 유적지 대부분은 사막에 휩쓸려버렸다. 일본인 학자와 중국인 학자가 그나마 기둥만 남은 도굴된 폐허 앞에서 허탈해하며 몇 번씩 되뇌인다.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신 실크로드는 구 실크로드의 철지난 로맨티시즘을 울궈먹으려 했고 그 점이 맘에 안 든다고 말했다. 드라마 로마(rome)가 볼만하단다.
일레 아가씨는 얼굴 본 것이 몇 번 안 된다. 그는 대뜸 날더러 마누라 한테 음식투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직설적이고 알려진 바로 분위기 메이커다. 나긋나긋 춤 잘 추고 노래를 잘 했다. 입을 다물었다. 요즘은 줄기차게 야채만 복용해서 '채식주의자' 중에는 미식가가 있을 수 없다는 증오에 찬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고는 했다. 일레 아가씨 일동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폭력을 서슴없이 구사하는 싸가지없는 남편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점은 내 평판과 호응했다.
아내와 함께 터키를 여행했다는 친구는 파티에 모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그럴만도 했다. 장기여행자들의 진정한 존재감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 삥 뜯기고 사기 당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대자연의 위력에 경이와 공포를 느끼고 훈훈한 사람들의 정에 눈물 짓는 개개의 사연에 감화되지 않는 종류는 로보트 밖에 없으니까. 메인 생활과 자유로운 생활의 양립 가능성이라는 고전적인 딜레마에서 선택과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류의 역시 고전적인 얘기를 나눴다. '욕망하는' 자유는 댓가를 치루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확고한 목적의식과 감각차단을 통해 세계를 가시화된 지평 이내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김선배의 의지는 탁월했다. 하긴, 그의 가장 불쌍한 점이기도 했다.
많은 남자들에게 사랑받을 것이 틀림없다고 내가 서슴없이 지껄이던 아가씨도 참석했다. 그의 남친은 오토바이를 몰고 종횡사해 대지에 먼지바람을 피우며 돌아다니던 캐나다인(?)이었는데 언젠가 그가 쓴 책을 받아서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었다. 재미 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여전히 생글생글 잘 웃는 반가사유상을 닮은 이목구비가 눈길을 끌었다.
기자 아가씨는 문 밖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아가씨를 볼 때마다 캥기는 구석이 있다. 작년에 아내가 내 후배를 소개해 줬는데, 당일 나하고 함께 대낮부터 술 마시다가 얼큰하게 취해서 그 아가씨를 바람 맞췄다. 그 친구 잘못이라기보다는 내 잘못이 컸다. 그후에도 그 놈이 누나가 운영하는 술집에 들어가 깽판을 치는 등 좀 미안한 사정들이 생기고 말았다. 그런데 줄담배를 빨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심의 보잘것없는 불빛 사이로 투영되는, 너른 바다처럼 시원한 비전없이 늙어가는 우아함? 아니면 위산이 역류하는 마감의 공포?
아내가 소매를 끌어 파티장을 빠져 나왔다. 평소 아름답고 편안한 자유인 신분이었던 도자기 굽는 잘 생긴 친구가 양복을 입고 땀 나는 상견례를 마친 후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고(처녀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탄식과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연극 한다는 림카 아저씨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지독한 터키 위스키를 계속 완샷 하다가 책상에 올라간 참이다.
배를 채워 만족스럽다.
그에게 충분한 돈이 있으면 성형을 하겠는가? 물어보니 사고나 기타 이유로 피부가 얽히지만 않았으면 성형을 할 이유가 없다는 시시한 답변을 들었다. 중국 여자애들은 화장을 안 하지만 잘 빠지고 잘 생겼다. 하지만 한국 여자애들에게서 통 발견할 수 없었던 기품있는 자부심을 지녔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왠일인지 재산과 가문이 중요치 않게 된 자유연애 사회에서(특히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시각이 그렇게 순진하고 바보스러워졌다) 경쟁력으로 남을 만한 것이 고작 몸매와 얼굴 정도이고 그걸 일찌감치 깨달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일종의 자기만족과 사회적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선의 전략을 구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웃었다.
그럼 또다른 매력포인트인 지성은? Maureen Dowd의 글이 일으킨 얼마전 평지풍파에 관한 와이어드의 기사는 이랬다; 똑똑하면서도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들 -- 똑똑한 여성이 전략적으로 멍청함을 택하더라도 삶의 다양성을 영위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모린 다우드의 글에 대한 심한 공격과 반론들과 달리 이 기사의 내용은 긍정적이고 재미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마지막 문구에는 유머 감각마저 있었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전히 회사로 가야만 한다'
그게 아마도 저저번주 였던가? 지구가 실없는 공회전을 계속하는 바람에 날짜를 잊었다.
고기와 술이 있단다. 두말 없이 비단 아저씨네 파티에 갔다. 수익이 거의 안 나는 인력 노가다 서비스 업종에서 일 년째 고생하고 있는 그는 아직 자신이 가진 철학을 잊지 않았다. 참석한 새로운 면면 앞에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자기강화, 그러니까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배 나왔다.
박씨 아줌마는 자나깨나 만나기만 하면 날더러 결혼 잘 했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그의 남편은 아마 집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박씨 아줌마는 바라나시에서 봤다. 가트에서 타들어가는 시체를 보며 울었고 죽은 언니를 생각하며 훌쩍였다.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뛰노는 원숭이들을 구경하며 맥주를 홀짝이다가 자기가 덮칠 수 있게 내 숙소의 문을 열어두라고 협박했다. 문은 잘 잠궈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저씨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사천성의 음식맛이 죽여준다고 얘기하던 참이었다(하지만 불의 숨소리가 배인 중국 요리를 맛보기 위해 맥도날드 화장실에서 먹은 음식을 게우고 다시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며 하루 여섯끼식 먹어치우던 미치광이같은 맛따라 길따라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옆 자리에는 요리사가 앉아 있었고 얼굴이 벌개진 그 친구는 소믈리에 자격을 최근에 얻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 언젠가 와인 여행을 해 보잔다. 이름이 통 기억나지 않는 아저씨는 흔히 재수없는 타잎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난 그와 중국 얘기를 했다. 어디가 좋았냐고 묻는다. 사천성, 운남성.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사천성에서 중국 아가씨와 사귄 것 같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 아가씨들이 참 예쁘고 순진하고 수줍다는 등, 보기 드문 천혜의 서식환경에 아낌없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사님과 라사에서 카트만두까지 자전거 코스를 지도를 봐가며 검토했다. 비참한 얘기지만 내 체력에 아직 자신 없다. 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임씨 아가씨는 라오스에서 만났다. 파타야를 안주삼아 독한 라오스 위스키를 마셨다. 나는 사귀던 여자친구 얘기를 횡설수설 늘어놓았던 것 같다. 비엔티앙의 허름한 시장 골목을 헤메며 그녀의 생리대를 사주기 위해 노력했다. 절간에 들어가 중들과 놀았다. 몇 년전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일 년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그 얘기를 꺼내 신경을 건드렸다.
인도 아저씨 둘이 파티에 있었다. 샴은 몇 번 얼굴을 봐서 낯설지 않다. 인도계 인텔리라는 그는 예쁘장한 아가씨와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했다. 다른 사람은 IT 업계에서 일하던 친구다. 인도인의 꼬들꼬들한 영국식 억양이 왠지 정겹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 아저씨와 교육과 인력수급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일전에 만난 한사장님은 인도에서 인력을 수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단가문제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가장 큰 매릿이던 가격경쟁력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인도인들이 한국에서 일년쯤 일을 하다보면 한국인들의 연봉을 알게 되고 다음 연봉 협상은 보통 '현실적 수준의 타협'이라는 '난항'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IT 업종에 종사하는 인도인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릭샤왈라하고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종교 문화적 자기정당화 내지는 사기를 안 치고 모던하고 깔끔하다.
홍기 아가씨는 이집트에서 봤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술탄 호텔에 커다란 짐을 들고 두 동생들과 도착했다. 머리를 싸매고 주방에서 뭘 해먹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유럽과 이집트를 구경하고 유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유학생이던가?) 마침 시리아에서 돌아와 그것을 기쁘게 추억하고 있던 처지라 시리아로 가라고 말했다. 내가 준 시리아 정보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잘 다려진 우롱차처럼 예전에 없던 색기가 그의 전신에서 우러나왔다. 남자들은 그걸 불편하게도, 감사하게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난 그냥 재밌어 했다.
세바스 아저씨는 프로그래머다. 그는 업종을 바꾸고 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아시죠? 프로그래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암 알고 말고. 골방에 틀어박혀 계절이 바뀌어도 하는 삽질은 바뀌지 않고 회사 외에서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육체적으루나 영혼적으루나 바쁘고 피곤한 사람들. 나는 한국, 일본, 중국이 합작하여 새로 제작중인 신 실크로드 흉을 봤다. 이제 그들은 타클라마칸 사막 한 복판에서 gps를 들고 유적지를 찾아간다. 작년에 방문했던 유적지 대부분은 사막에 휩쓸려버렸다. 일본인 학자와 중국인 학자가 그나마 기둥만 남은 도굴된 폐허 앞에서 허탈해하며 몇 번씩 되뇌인다.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신 실크로드는 구 실크로드의 철지난 로맨티시즘을 울궈먹으려 했고 그 점이 맘에 안 든다고 말했다. 드라마 로마(rome)가 볼만하단다.
일레 아가씨는 얼굴 본 것이 몇 번 안 된다. 그는 대뜸 날더러 마누라 한테 음식투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직설적이고 알려진 바로 분위기 메이커다. 나긋나긋 춤 잘 추고 노래를 잘 했다. 입을 다물었다. 요즘은 줄기차게 야채만 복용해서 '채식주의자' 중에는 미식가가 있을 수 없다는 증오에 찬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고는 했다. 일레 아가씨 일동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폭력을 서슴없이 구사하는 싸가지없는 남편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점은 내 평판과 호응했다.
아내와 함께 터키를 여행했다는 친구는 파티에 모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그럴만도 했다. 장기여행자들의 진정한 존재감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 삥 뜯기고 사기 당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대자연의 위력에 경이와 공포를 느끼고 훈훈한 사람들의 정에 눈물 짓는 개개의 사연에 감화되지 않는 종류는 로보트 밖에 없으니까. 메인 생활과 자유로운 생활의 양립 가능성이라는 고전적인 딜레마에서 선택과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류의 역시 고전적인 얘기를 나눴다. '욕망하는' 자유는 댓가를 치루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확고한 목적의식과 감각차단을 통해 세계를 가시화된 지평 이내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김선배의 의지는 탁월했다. 하긴, 그의 가장 불쌍한 점이기도 했다.
많은 남자들에게 사랑받을 것이 틀림없다고 내가 서슴없이 지껄이던 아가씨도 참석했다. 그의 남친은 오토바이를 몰고 종횡사해 대지에 먼지바람을 피우며 돌아다니던 캐나다인(?)이었는데 언젠가 그가 쓴 책을 받아서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었다. 재미 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여전히 생글생글 잘 웃는 반가사유상을 닮은 이목구비가 눈길을 끌었다.
기자 아가씨는 문 밖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아가씨를 볼 때마다 캥기는 구석이 있다. 작년에 아내가 내 후배를 소개해 줬는데, 당일 나하고 함께 대낮부터 술 마시다가 얼큰하게 취해서 그 아가씨를 바람 맞췄다. 그 친구 잘못이라기보다는 내 잘못이 컸다. 그후에도 그 놈이 누나가 운영하는 술집에 들어가 깽판을 치는 등 좀 미안한 사정들이 생기고 말았다. 그런데 줄담배를 빨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심의 보잘것없는 불빛 사이로 투영되는, 너른 바다처럼 시원한 비전없이 늙어가는 우아함? 아니면 위산이 역류하는 마감의 공포?
아내가 소매를 끌어 파티장을 빠져 나왔다. 평소 아름답고 편안한 자유인 신분이었던 도자기 굽는 잘 생긴 친구가 양복을 입고 땀 나는 상견례를 마친 후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고(처녀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탄식과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연극 한다는 림카 아저씨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지독한 터키 위스키를 계속 완샷 하다가 책상에 올라간 참이다.
배를 채워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