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황교수가 사기쳐서 별로 이득 본 것 없을꺼라고, 그런 바보짓을 왜 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순진한 체 말하니까, 술 먹다 말고 의협심이 강한 청년이 황교수가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쳐서 그가 국가로부터 챙긴 것을 얘기해 주었다(과학적 진실에 관해 거듭 강조하지만, 어떤 과학자가 남들 보기에 명백하게 사기라고 할만한 짓을 했건 안 했건 그거 별로 중요한 것 아니다. 심하게 말해 황교수가 여러 사람들 마음 먹고 사기 쳤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원천기술인지 뭔지 왠 뚱딴지 같은 소리 그만 하고 그냥 과학계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게 그냥 좀 내비둬라 언론아). 의협청년이 말하길, '그런 사기꾼을 검증조차 안해 보고 무작정 믿어버린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그가 무려 5억원이나 받았다는데 교수 직위 박탈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죠..' 라고 자신의 소감을 피력한다.

순간 술자리가 썰렁해졌다.

...

고작 5억?

술자리에 앉아있던 당황스러운 표정의 두 사장님은, 제때 맞춰 평상시 굴리던 머리로 며칠 싸매고 제안서 몇 장 사기쳐서 끄적이는 것만으로 정부 돈을 3-4억씩 타 먹는다. 정부의 눈먼 돈 울궈먹은거, 자랑꺼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 이 나라의 머리 잘 돌아가는 벤쳐 사장님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짓으로 회사를 꾸려봤을 것이다. 그러더니 P 사장님이 말했다. '설마 그걸로 한 달이나 버티겠어?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한 2-300억은 먹었겠지. 일 년 동안 황교수 때문에 주가가 그렇게 오르락 하고 내외로 시끄러웠는데...' 맥주 한 잔 꿀꺽하며. '내가 하는 일보다 백배는 수익성이 있어보이더만' <-- 이런 생각 하시면서?

정말 5억 밖에 못 타먹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사기꾼 같은 사장님들 틈에서 거진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다시피한 의협청년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거들었다. '뭘요, 5억이면 충분하지요. 연구원들 한 달에 40-80 가량 받으면서 주 7일 근무해요. 황교수가 하는 연구란게 뭐 별다른 연구기자재가 들었던 것 같지도 않고... 젓가락질만 잘하면 되잖아요? 프로그래머가 손가락질만 잘하면 되는 거처럼' 사장님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반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만 하다. '40만원만 줘도 일주일 내내 일하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지? 사람 구하기 힘든데 내일은 학교 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이러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교수가 학생들 산학 보내서 받아온 돈을 제 통장에 입금시키고 그걸 다시 빼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다 걸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업체에서 달달이 200만원 받아오면 자기 통장에 넣게 한 후 80만원만 빼서 학생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먹는 것이다. 한 30년은 써먹었음직한 교수들의 이런 낡은 수법이 여전히 사용된다는 것이 무척 놀랍고 신선했다.

그런데 황교수가 정말 5억 밖에 못 먹은 것일까? 믿기지가 않는다. 십수년 전부터 밤낮으로 삽질 해서... 겨우 그거? 그걸 누구 코에 갖다 붙일까... 내가 요즘 일해주고 있는 직원이 다섯 명인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의 1년 운전 자금이 3억인데.

평균 임금 200만원인 근로자가 열 명인 회사의 일년 순수 인건비만 3억이다. 제경비, 부대비용을 합치면 5억 나온다. 정말 그거 밖에 못 타먹었다면 상아탑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던 바보 학자라서 세상 물정 몰랐다는 말 밖에 안된다. 아니면 그 청년이 잘못 알았겠지. 황교수 얘기를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몹시 짜증이 나는 관계로 웹질 조사는 안 했다.

5억도 큰 돈이며 당신이 말하는 그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에서 나는 1억 가지고 벌벌 떤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은 보시다시피 워낙 넓고 복잡하며, 다양한 종류의 사기꾼들이 함께 어깨를 부대끼며 도토리 키재기 하듯이 살아가고 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자면, 제한된 자원으로 경쟁하는 세계에서 정직도 일종의 (전략적) 사기라고 본다. 정말 제한된 자원인지, 경쟁인지는 물음표로 해두고.

아니야...
내가 순진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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