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ty shit

잡기 2006. 2. 17. 23:16
http://news.media.daum.net/edition/net/200602/13/ned/v11683755.html -- 원숭이도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황야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 시리즈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광범위한 영화를 한 단어로 축약하면 이렇다: '젠장' 그가 최근에 만든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도 젠장 정신은 변함 없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그랬고, 플레이 미스티 포 미 도 그랬다. 한번 젠장은 영원한 젠장인 것이다. 그런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버트 레드포드는 왜 생떽쥐베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지 않았을까? 연료통 게이지가 바닥을 가르키는 젠장할 상황에는 곁에 없을 사랑이나 신념이나 자비를 구할 신조차 소용없다.

이거선생님번호맞는가몰르겠네요~저이쁜진현이에요기억하시겟죠?오늘눈이대따많이왔어요~

조금 후...

선생님보고싶어용~~~♡♡

눈이 와서 80글자를 꽉 채워 수컷 선생님한테 문자질한 건가? '남편은 부재중이에요'라고 써서 보내려다 관뒀다. 장난끼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한 달 내내 바빠서 미뤘다. 잠깐 짬을 내 은행을 방문했다. 한미은행은 파업중인 것 같다. 창구 직원 몇 빼고 은행이 한산하다. 죄송합니다 지금 처리할 수 없겠네요, 아, 그것도요. 불평 안 했다. 댁들이 친절해서 다른 은행으로 안 가는 거에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오는 길에 파업 잘되길 빌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줌마가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린다. 댁보고 웃은 것 아뇨.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듯이 고통은 내재화된다.

'황금키위' 인지 하는 걸 사러 가다가 한국-멕시코 축구 방송이 눈에 띄었다. 길 옆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없던 최근 상황을 우울하게 생각하던 차, 그래 멈추자, 발길을 멈추고 축구 중계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았다. 멕시코인은 오랜 식민생활 탓에 유순하고 비굴한 민족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한 작자에게 밥맛 떨어졌던 기억이 났다. 그래도 사준 술은 비웠다. 난 합리적인 것 같다.

그 위대한 젊은 시절의 옥타비아누스가 엄마 치맛바람에 정신 못 차리는 우울한 꼬마애로 나오고, 거기다가 두 병사가 대체역사적 개그를 보여줘 히히히 웃었던 Rome을 다 보고, 재미가 없어서 그만 판을 접었으면 싶은 Threshold를 시큰둥하게 쳐다 보다가 새삼스럽게도 '인생은 불공평해' 라고 주장하는 unfair라는 재미없는 드라마를 억지로 보다가 접었다. 어디 시원한 드라마 없을까?

Serenity를 두 번째로 다시 봤다. 말콤 선장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본받고 싶은 작자다. 그가 얼마나 합리적인 사람인가 하면... 대화가 잘 안 통하면 지체없이 총을 뽑아 쏴 죽였다. 미국식 프론티어 정신의 절망은 무의미한 상징일 뿐이다. 상징의 힘이 그다지도 막강하다는 얘기를 부정한다. 그것은 인간이 부가한 것이다. 꽃들이나 새들은 그러지 않았다.

조이가 금고를 털다가 말했다. "당신 '영웅'의 정의가 뭔지 알아? 다른 사람들 다 죽게 만드는 거야" 조이 누님은 말콤 선장만큼 멋지지만 영화판에서는 '바람 속에 떠도는 가랑잎'이라던 제 남편이 산 채로 사람을 뜯어먹는 리버스의 공격에 어이없이 죽자 잠시 이성을 잃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하늘을 주름잡던 남편은 지상에 내려 앉자마자 당했다. 우리 모두는 그래서 가슴에 혈액에 산화된 녹슨 칼 하나씩을 품고 살게 된다.

Shield를 보기 시작했다. LA Confidential 처럼 매우 지저분한 드라마다. 서로 죽이겠다고 악을 쓰는 두 갱을 히히덕거리며 컨테이너 박스에 쳐 넣고 다음날 아침 컨테이너를 열어보니 한 녀석만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 나와 아침해를 보면서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실드에서 내 취향은 더치보이다. 더치보이가 어떻게 망가질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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