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하우스의 철학

잡기 2006. 2. 26. 23:56
저는 결혼했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 from House, M.D.

그렇긴 하지.



마하발라뿌람인가? 언젠가 아내는 (무의식적으로) 검은 깔리처럼 앉아있는 저 친구가 단지 여자를 얻어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가엾다고 말했다. 여자들이란... 싸늘하지만 상냥하게 쳐다보며 대꾸했다; (입 다물어. 알지도 못하면서.) 저 아이는 행복해. 아내는 개길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댁이 저 사람이 행복한 지 안 한지 어떻게 알아? 라고 말할 태세였다.

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하다'는 기준에 별로 흥미가 안 생겼다. '일반적인 기준'이란게 뭔데? 라고 물으면, 할 말 없다. 저 친구 역시 관계 속에서는 별로 건질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그냥 알았을 것이다. 심심한데 피리나 부는게 낫지. 나도 피리나 불까?

제 사진 나돌아다니는 걸 나만큼 싫어해서 적당히 심령처리했다.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역할을 해야 하므로 마리오넷처럼 굴기는 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면 안 해도 되서 기쁘긴 한데,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내가 걱정이 있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거나, 현 상황을 타계할 궁리를 한다거나, 또 무슨 못된 궁리를 하며 희희낙낙한다거나, 자기나 만남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등, 여하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대충 정리했다.

딴 생각을 하긴 했다; 어제는 회의실에서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으면 전갈자리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사람들이 웃을 때 때 맞춰 웃기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펜을 들고 토폴로지를 죽죽 그려 놓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나를 싸이코나 얌전한 연쇄살인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첫인상이 그렇다는데야... 말 다했다. 그러니까 자꾸 일반적인 기준 어쩌고 하면 화낸다?

뇌 속에 기생충처럼 살고 있는 '생각'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타지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것이다. 내가 그 방면에 '타고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수도사 멘델의 유전 법칙을 알았을 때(내가 어렸을 적에 본 멘델은 인자하게 생긴데다 과학에 대한 정열로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젊은이였는데 똥오줌 가릴 시기가 되어 뒷조사를 좀 해 보니 구라였다), 했던 일은 간단하고 명백한 팩트(이를테면 정보 진실성(?)의 최소 단위) 수백 개를 나열하고 집합으로 분류한 후 정말로 콩 심은데 콩이 나는지 집안에 전래된 유전형질의 발현 '강도'를 3대에 걸쳐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 짓을 열대여섯살에 해치웠고 암울한 결론을 내렸다.

으시시하게도 정말 그랬다.

정말 그래서 다섯살 때 집을 나가 논 한 가운데, 대머리에 몇 가닥 난 머리카락처럼 키가 큰 포퓰라 나무 밑에서 징징 짜대며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일을 여전히 기억했다. 8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나는 가족을 까맣게 잊고 인간이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심리적 경계를 어처구니없이 넘었다. 다섯살 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생을 거쳐 스쳐가는 기억들을 정리하다보면, 아니 실패를 반추하다보면, 내가 정말 저렴하게 실용 가치를 추구하는 건설적이고 철학적인 인간이긴 한가? 그냥 평범한 닭대가리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고는 했다.

닥터 하우스의 지론은 이랬다; 환자는 거짓말을 한다.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부분에 이르면 스스로에게 변명을 나불거리는 것이 꼴보기 싫어(그것들 대개가 우아하기 그지없다는 점에서) 하우스 선생의 또 다른 말을 그럴 때 써먹으며 스스로를 비웃었으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영점 조정이 안 된 원심분리기는 정말 슬퍼~

그렇게 해서 아가리에 총구를 틀어 박고 연사로 쏴죽이고 싶은 놈이 미 제국주의 한 놈만은 아니었다. 철없던 시절 나는 내 리스크 게놈을 증오했고 만만한 상대가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이유없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미워했다. 어머니의 어머니들도 잊지 않았다. 나는 소심한 A형 사회주의자라서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인류 모두를 저주할 자신마저 있었다.

한가한 얘긴 그만 하고, 오늘 밤엔 문득 무슬림 형제들이 정성 들여 만들어 판매하는 시원한 메카 콜라를 마시고 싶다. 메카 콜라의 요즘 선전 문구는 이랬다;

정치의식을 가지고 마시자!

절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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