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기사는 언론이라기보다는 감정 조절 능력이 없는 인격 파탄자의 유치하고 비열한 감정적 배설 행위" -- 영화계, 조선일보와 대립각

인격 파탄자? 내 얘기 같은데?


진단의학과의 수장이자 무결점 인격자 닥터 하우스. 한 눈에 봐도 호인 타잎이다. 진단의학은 환자를 상대로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마루타 실험을 하는 곳이다. 이런 의사라면 무의미하고 보잘 것 없는 내 생명을 맡겨도 되지 싶다. 그는 환자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제대로 된 엔지니어 환자를 만나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늘 환자의 생명을 걱정하고 밤낮으로 고민했다. 돈만 밝히는 사업가와의 직장내 권력투쟁에서도 투철한 자의식을 양보하지 않고 영약한 대리전을 통해 승리했으며 그를 좋아하는 병원 사람들, 환자들에게 자기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지 않아 섭섭하다는 불평이 담긴 팬레터를 산더미처럼 받는다.


유능한 의사라 일에 치여 살 것 같지만, 근무시간 중에는 간혹 짬을 내서 제네랄 하스피탈을 감상하며 의사의 도리를 배우거나 20살 차이가 나는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를 즐기는 등 정상적인 생활도 즐겼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바보 친구들이 있다. 의외로 행운아다.

닥터 하우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다양성을 가치관이랍시고 주장하는 세계에 실재하는 존재론적인 부조리다.

iternal sunshine on the spotless mind? 던가? 영화는 21세기 현대 문학의 주요 갈래라고 할 수 있는 SF, 판타지/무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고전 멜로물이었다. 인간의 상심은 본인이 원치 않는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는 감정이입의 주요 수단으로 오랫동안 변치 않고 울궈먹는 소재다. 운명선이 약간 비뚤어진거지 자기 탓은 절대 아니라고 고집 부리며 사회 체계 속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탈선과 범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고전 예술의 담화와 뭐 다를게 있어야지.

21세기는, 세계정부가 출현하고 전쟁이 사라지고(예정) 누구나 변비처럼 불편하고 필요없는 기억을 깔끔하게 지울 수 있으며(예정) 감기 등의 불치병이 치유되고(예정) 하늘로 출퇴근용 반중력 자동차가 날아다니며(예정) 아침은 베니스의 노상 까페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점심은 월면 거주지의 처가집을 방문하고(예정) 무료 의료 시스템과 굶주리는 아이들 하나 없이 가사노가다로부터 해방되어 많은 이들에게 부담스럽고 능력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은 자기만의 우아하고 창조적인 예술활동 놀이에 시간을 보내게 되는 등 21세기적, 아울러 22세기적 인간이 되기가 영 어려운 수구꼴통들에게는 어렵고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그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진정 멜로물이 아닐까? 상기한 21세기가 오기 전까지는 인간이 약하고 보잘것 없어 비맞고 돌아다니는 길잃은 강아지처럼 동정하게 해주는.

그래도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삶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겠지. 왜냐하면 수백만년동안 축적된 구체적인 증거가 있으니까. 코앞에 들이미는 그 증거는 21세기가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이자, 누구 말로는, '인간성에 대한 종교적인 신뢰감'이다. 산 넘어 산 이라는데, 나는 인간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핵폭탄 4700개면 경위도선을 잘 구획해 촘촘하게 떨구어 팔 다리나 뇌가 없는 돌연변이가 출현해 인간성 자체에 획기적인 개선도 가능하리라 본다.

보네것의 소설에서는 핵전쟁 이후 인간의 팔 다리가 모두 사라지고 뇌 기능이 축소되어 지나가는 상어에게 정기적으로 잡아먹히는 등 무자비한 포식자 하나가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다 발생하는 과거의 온갖 불상사로부터 해방되어 생태계의 균형이 그제서야 제자리를 찾는 등, 인간성의 장래를 낙관했다.

그건 그런데, '후지산 폭파 조짐이 보인다'같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소식을 곧이 곧대로 즐기지 못하고 일본 멸망 후 한국이 입게 될 심대한 타격을 생각하게 되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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