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aesthesia

잡기 2006. 3. 9. 19:04
life is easier when you lighten your head. 닭대가리가 되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라는 좋은 뜻일께다.

내 홈페이지에 접속이 안된다고 연락이 왔다. 유씨 아저씨가 관리하는 도메인이 날아갔다. 도메인 연장 신청을 하려 했으나 그 도메인을 관리하는 업체가 망했단다. 바빠서 복구를 미뤘다. 반성: 도메인 정도는 만들어두자. whois.co.kr에서 28000원 주고 2년짜리 도메인 이름을 받았다. pyroshot.pe.kr

홈페이지를 옮기고 이 김에 엔트리를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google.com에서는 홈페이지가 검색되지 않지만 google.co.kr에서는 종종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구글 한국은 로벗 배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나처럼 서칭엔진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사람들이나 알만한 것이겠지만, 따라서, 구글은 한국 실정에 맞춰 현지화도 할 줄 아는 업체인 것이다.

어쩌나? 홈페이지가 변경되었다고 알리긴 알려야겠지?

어린 시절 책에 쓰여진 단어나 말하는 단어로부터 색상을 느꼈다. 조금 학습하고 나서야 그것이 공감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글자의 색이 많이 바래진 상태였다. 대마초 피우면 음파가 색깔로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마초로는 안 되고 lsd를 빨아야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공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지개를 본 적은 없다. 색상의 파도, 몇몇 유려한 문장가의 글에서 풍부한 색상의 유동을 보았다. 마치 시선을 천천이 이동하면서 홀로그램 스티커로 난반사되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보는 것처럼. 게다가 글에서 호흡과 리듬을 같이 읽었으니 어지간히 잘 썼다는 글을 읽어도 재밌게 읽기가 힘들었다. 특히 시 나부랑이를 경멸하게 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그런 거지같은 글을 시라고 쓰는게 한심해 보인달까. 다른 사람에게 내 감상을 말하기는 힘들었다. 공감각을 지니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좀 더 글을 직관적, 감각적으로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작 나는 적록색맹이다.

묘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그나마 십중 대여섯은 보이던 것이 나이 들면서 점차 나빠지다가 이제는 테스트 용지의 숫자판이 완전히 안 보였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이제는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전차가 플랫폼에 진입할 때 흘러가는 역 표시 글자가 안 보였다. 몇 번이나 테스트를 반복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다.

노후 걱정은 안 했다. 때 되면 오드아이TM나 첫눈TM 같은 값싸고 패셔너블한 눈알들이 시장에 나타날 것이다.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잠깐 후설! 버클리! 멋대로 정하지 마! 라캉, 데리다! -- from Ergo Proxy.

쿨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