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 of lie

잡기 2006. 3. 19. 01:32
밀로셰비치의 사인: 인과응보. <-- 합리적인 소견이군.

Sick And Tired <-- 택시 타면 지만원 같은 기사 아저씨들과 즐겁게 재잘거리던 내용이지 싶다.


닥터 하우스한테는 이런 인간적인 면도 있다. 배우자.

어떤 원숭이 집단의 깃발을 찢으면 그 원숭이 집단이 미쳐 날뛰는 현상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나를 몹시 싫어한다고 믿어지는 친구가 어느날 추파를 던지며 공공연하게 그와 내가 안부와 웃음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랬다.

그는 일년에 한두 번 전화를 걸었고 내 안부를 주위에 전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잘 웃는 편이긴 하나 사정이 훌륭하게 안 좋아 독립심을 키워주는 모진 환경에서나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사람을 정겹게 웃게 만드는 재능은 없다.

산속에서 움막 짓고 살 때 다람쥐, 청솔모, 노루, 들개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다람쥐들은 내 눈 앞에서 도토리를 까 먹었다. 노루도 가끔 바위를 지나치듯이 흘러갔다. 노루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불을 피우고 지냈으니 지독한 생나무 연기로 훈제 내지는 방부처리가 잘 된 이 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산속같은 소년이었다.

짐승들과 사이가 좋았다. 따라서 여자들과도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과 구름처럼 먹고 먹힐 필요가 없이 서로가 위협이 되지 않는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였다. 성장 과정의 문제로(성장 과정의 문제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몹시 차가운 인상을 주는 아이였다. 죽음과 공포로 고단한 일상을 보낸 쿨한 소년, 대마 자생지에서 살아온 아이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도시에서 개폼 좀 잡으려고 담배 피는 아이의 차이랄까?

호주머니에는 빨랫줄, 딱총과 칼 한 자루, 성냥이 들어 있었다. 항상 산 속으로 기어 들어갈 준비가 된 상태였다. 머리속에는, 음, 특공정신을 담고. 내가 살던 20년 전은 병아리를 잡아 먹기 위해 키웠던 것 같다. 솔개가 가끔 그것들을 채가고 들쥐가 다리를 쏠았다. 일상적으로 참새를 잡아 먹었고 벌레는 간단히 구워 먹을 수 있는 좋은 간식꺼리였다. 가끔은 장수하늘소 같은 천연기념물도 먹어줬다. 매일 하나둘씩 뭔가가 소리없이 죽어 다양한 위장 속에 들어가 꿀럭거렸다. 들판에 자라는 풀과 나무 중 이름을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이름들은 마법이 아니었다. 먹을꺼리였다.

알아서 잘만 자라는 자연의 생장력을 무서워 한 나머지 씨를 먹지 않았다. 씨앗을 먹으면 피부에서 싹이 돋을꺼라 두려워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어린 시절이 사라졌다. 사람보다는 혼자 산속을 돌아다니던 것을 좋아하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더 차가워졌다. 책을 읽고부터 머리통을 부수면 깨알 같은 의문부호가 잔뜩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읽은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책에는 글자로 이루어진 아이가 등장했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고 한쪽 귀가 이상하고 두 눈알은 특정 조건에서 색깔을 구분하지 못할 뿐더러 디옵터 2.0이라는 대단한 근시에 늘상 두통에 시달리고 환청과 환시 등의 환각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혼자 중얼거리거나 낄낄 웃는 등, 시야가 심각하게 왜곡된 준 장애인이 경험하고 만지는 세계와 참 비슷해서 놀랐다.

아무튼 올해는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 다람쥐와 다시 안부와 웃음을 주고받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길 바라는 것은 똥굴러먹은 인생의 사치겠지만 도회적인 쿨함에서 풍기는 몸에 배인 역겨운 냄새 정도는 날려 버렸으면 싶다. 책을 통해 얻은 어떤 것들은 내 삶의 어두운 회랑을 비추는 작은 촛불과 같았다. 따라서 먼 어둠은 비추지 않을 뿐더러 더 어둡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야맹증 환자가 된 것이다. 비록 심하게 왜곡되었다고는 하지만 의문부호 포장지를 벗겨내면 코끼리 뒷다리를 코끼리 뒷다리라고 쪽집게처럼 알아 맞추는 어둠과 공포에 대한 내 감각은 믿을만 하다.

쌀국수를 먹는데 고수를 안 준다. 달라니까 주방장이 히죽히죽 웃으며 들고 나왔다. 맥주 한 병 시켜서 춘권을 안주 삼아 먹었다. 맛 없다. 머리를 식히려고 밤거리를 배회했다. 늦가을 산 속은 정말 추웠고 아무도 없는 그 어둠에서 끊임없이 작지만 영문 모를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오래된 낙엽을 들추고 그 사이를 작은 짐승들이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한밤중에 움직이는 대부분은 먹어도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픈 쥐들이다. 저들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하려고 움막에 떼로 몰려와 부러 찍찍 거렸다. 쥐들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 이 개새끼야 저리 꺼져! 하면 좁쌀같은 검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 난 개새끼가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승한테 말을 걸 정도로 어린 나는 몹시 순수했지만 디즈늬 스몰윌드에 등장하는 동물들 만큼은 현실성이 결여된(미친 양키들이 자기도 살아본 적이 없는 희안한 꿈동산의 정경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허튼 수작 쯤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리얼하게 어글리한 미키 마우스들과 밤마다 승강이를 벌이느라(그렇다, 피를 보게 된다) 디즈늬 만화를 평생 즐기지 못했고, 그것들을 때려 죽일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대마처럼 환각을 주는 글자가 마법이 아니듯이.

Medium (영매)를 2기쯤 보고 한 동안 West Wing 2기를 봤다. 그 다음에 The Shield를 마저 봤다. 실드의 선곡 솜씨가 훌륭하다. 몇 편에서인가 엔딩 송으로 들어봤던 음악이 흘러 나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세기말 마지막으로 들었던 포크송이다. 더 이상 음악을 찾아 듣지 않게 되었지만 mp3를 부러 구했다.

Flogging Molly, Alive Behind The Green Door, If I Ever Leave This World Alive (3:44)

인류가 자생하는 어느 깡촌에서건 시대를 초월해 음악이 없는 곳은 없었는데, 그것들은 대개 사슴뿔관을 쓰고 북 치고 춤추면서 인간의 빌어먹을 운명을 저주하거나 위로하는 등 공염불을 외울 때 주로 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 끄적여 놓은 것은 말하자면, 사회와 인간과 시대를 등지고 손수 지은 초라한 움막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쥐를 잡던 소년의 영혼을 위한 장송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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