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spring

잡기 2006. 4. 16. 21:18
바람이 몹시 분다. 대략 시속 25km쯤 되는 것 같다. 7m/sec 정도니까 머리털이 뒤죽박죽 헝클어지는 정도? 맞을꺼야. 산에 가려다가 마음이 변해 꽃사슴이 있다는 서울숲에 가보기로 했다. 바람을 등지고 강변로에서 시속 35km가 나왔다. 그럼 해 볼까? 43.5kmh가 나왔다. 야 대단한걸. 바람이 6kmh를 보태고 저번 주에 다섯 시간 공들인 '정비의 힘'이 나머지를 보탰다. 어렸을 적에 배를 못저어 이 여자 저 여자한테 구박당했는데(봄이면 공지천에서 보트를 탔다) 자전거 탈 때는 뭐라고 앞뒤에서 짹짹거리는 여자애들이 없어서 정말 좋다.

서울숲에 노루와 꽃사슴이 한가하게 똥 싸고 있다. 잎사귀가 안 달려 분위기가 몹시 황량하다. 볼 것 다 본 것 같아 자전거를 이리저리 돌려 짱박힐만한 곳을 찾았다. 오늘 도시락은 김밥과 오렌지 둘, 따뜻한 물과 교회에서 나눠준 부활절 달걀 하나.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준다고 일찍 일어나서 뭔가 잔뜩 준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시 이번 김밥도 내가 말았다. 무위자연에 여념이 없는(정말 여념이 없는) 아내는 김밥 말기 열 번 해도 엉성했고 늘 어떻게 마는지 잊어버렸다. 벤치에 앉아 허기를 때웠다.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으로 몹시 힘들고 지루했다.


항상 쉬어가는 반포대교 앞 공터. 비둘기들이 물 마시고 후드득 날아올랐다. 56km 주행했다. 튜블라 벨즈와 일 볼로를 들었다. 지구물리적으로 봄이 왔다. 버들잎이 15mm돋고 25kmh 짜리 좀 심한 봄바람이 분다.

정신없이 노를 젓다보면 머리로 피가 덜 가 아무 생각 없어진다. 반면, 사지에 피가 몰려 발가락과 손가락은 생각이 많아 진다. 사우나에 들어가 팔 다리를 들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누워 핏물을 돌렸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몸무게는 여전히 66.6kg, 66번 락커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먼지를 먹은 눈이 토끼처럼 빨갛다. 눈 앞 풍경도 불긋푸릇 디지하다.

갤럭티카를 마저 봤다. 아닌게 아니라 자막 없이 1기를 예전에 다 보았던 것 같다. 아마다 함장이나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각본가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사일런 클론이 함장을 쐈고 예언 따라 산 넘고 물 건너는 바보 대통령은 곧 죽을 목숨이다.


배틀스타 페가수스와 갤럭티카는 클론 부활선을 호위하는 사일런 모선을 작살내고 있다. 아다마 대령(?)은 피격후 사출 당해 저산소 환각 상태에서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화질 만큼이나 구린 전투씬.

2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바이퍼의 전투 씬은 스펙타클 면에서 점수를 주기 힘들다. 지가 무슨 아트한다고 카메라는 흔들어대고 지랄인지. 값 비싼 드라마 만들면서 고작 4만7천명 남은 인류가 처한 절명의 위기상황에 저마다 불편한 심기나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다. 왠간하면 사일론의 재활용 클론으로 보이는 연출가를 벌크헤드 바깥 천연 냉동고인 우주로 영구 방출하고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웠으면 좋겠다.

게임 홈월드를 드라마판으로 만든 것 같은 각본은(인류 전멸 후 얼마 안 남은 사람들, 살 곳을 찾아 열나 도주) 2기에서 다소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아마다 선장 아들 놈의 뻘짓과 늘 횡설수설하는 사일런 놈들이나 점술이나 믿는(아폴로의 화살을 찾아와서 12부족의 유산 앞에 서면 지구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나같은 천진한 SF팬을 이렇게 방자하게 유린할 수 있는 거야?) 순진하고(멍청한) 대통령을 보니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 하여튼 이 드라마에는 마음에 드는 철학을 가진 놈이 없다. 저 허접하지만 즐겨 보는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를 봐라. 거기 주인공들 정말 아무 생각 없잖아? 왜 생각을 하나. 인류가 정말 불쌍해 보이는 것은 쫓기고 망가지고 처참하게 부서지는 매우 처절하게 안 좋지만 기운 내서 꾸역꾸역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주는 것이지 사일런에게 부족한 사랑으로, 개개인의 사랑 타령으로 면피할 성질의 것이 아닌 거 같은데...

'낸시랭, 이색 퍼포먼스로 8개 도심 습격'에 달린 리플: 할 일 없는 지지배들이 길거리에서 노닥거리는 걸 예술이라고 하냐? <-- 그렇다. 예술이다. 낸시랭의 예술은 갠적으로 재미가 없다. 재밌는 것도 많은데 왜 맨날 그런 등신같은 카피나 하고 돌아댕기나 싶다. <-- 방금 것은 예술 비평이라고 한다.

예술은 패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고 시선의 독창성, 표현의 독창성, 사고의 독창성 빼면 기술 외에 남는 게 얼마 없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은 예술을 알아먹기가 어려운 관계로... 그래서 예술 비평이 필요한 것이다. 저 일반인처럼 똥오줌 분간하지 못하니까 뮤즈의 미소를 봤다고 사기치는 임포스터 클론이 설치는 것이지.

예술 비평이 필요하다니 원 세상에. 누가 보면 내가 미친놈인지 알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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