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누라가 깨워 이천의 도자기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 젠장 아홉시에 일어나라니... 아홉시경 아침이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좀비같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도자기 축제라... 내가 알 정도면 꽤 유명한 연례행사인 듯. 대략 140개의 부스가 있고 부스당 150만원씩 뜯어먹는 걸 보니 지자체에 꽤 짭짤한 벌이가 되는 것 같은데 도자기 축제의 운영 점수는 50점을 못 주겠다. 차량 통제, 연결 교통편, 비상시 통제 능력 등. 식당가에서 밥을 먹으려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비가 오자 행사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갑자기 비바람이 불었는데 마치 한여름 태풍 처럼 몰아닥쳐서 식당가 파라솔이 모두 자빠졌다. 공연은 취소되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비를 피할 처마를 찾아 황급히 움직였다. 뭐, 이 몸이 어딜 놀러가든 비바람이 몰아치는 자연재해는 기본이지. 밥 먹다 말고 파라솔이 뒤집혀서 대피했다.
집에 가려니까 날씨가 갰다.
그래서 변치않는 상식: 날씨, 우주, 그리고 자연은 늘 누군가를 엿먹이기 위해 편재한다.
도자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어 전시장을 전전하며 오직 한 가지 주제만 찾아 보았다. 이 컨셉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 맥주 피쳐병과 소줏병.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딱이다.
맥주잔과 막걸리 사발도 갖춰 놓았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런데 이 부스의 잔 무게가 범상치 않다. 실은 부스를 돌아다니며 잔 무게를 가늠했다 -- 소주 한 잔 분량이 담겼을 때의 완벽한 무게를 찾고 있었다. 잔 무게에 더해 53g의 액체를 담아 한 손에 들어 3도 각도로 팔굽을 구부렸을 때 가벼운 듯 가볍지 않으며 술자리에서 얼른 한 마디 하고 낼름 비워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약간의 불안정함과 떨림이 느껴지는 날카롭고 아슬한 중량감은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술에 닿는 잔 모서리의 감촉도 마찬가지. 약간 거칠고 한편, 부드러운 요철, 그리고 안개비에 흐릿하게 비치는 달빛을 닮은 모호한 촉감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옹기쟁이가 갖춰야 할 장인정신이지. 생각보다 술꾼, 아니 장인이 적어 섭섭하다.
술병은 병 목이 가늘고 그 배가 처녀의 아쉬운 듯 튼실한 가슴을 쥔 것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유지하여 한 손으로 병목을 쥐고 다른 손으로 배를 받쳤을 때 안에 든 액체의 유동과 질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 그래서 무거운 술병은 대부분 꽝이다. 따라서 병의 크기와 무게, 그리고 각 부분의 무게 균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주둥이의 곡부는 유량의 흐름을 조절하기 수월토록. 안타깝게도 꽃꽂이 통인지 술병인지 그저 서재를 장식하는 바보스러운 예술품인지 애매한 것들만 잔뜩 진열해 놓아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참나원,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틈날 때마다 가슴을 많이 쥐어봐야... 아는 사람이라서라기보다는 이 집 도자기들이 매우 마음에 든다. 찻잔이나 술잔이나 그게 그거지.
왠지 제삿상 분위기. 탁자 위에 놓인 사진은 마누라가 네팔에서 찍어준 도공의 것. 언제 봐도 매우 잘 찍은 사진이다.
아이가 나하고 눈을 맞추려고 했다. 대개 여자애들이 그랬지.
* 목적의식을 갖춘 천진한 표정으로.
* 입도 안 닦고.
* 날로 먹으려고.
살짝 무시하자 걸레로 내 등짝을 후려쳤다. 훗. 그건 무시당한 여자애들이 내게 보이던 전형적인 반응이었어. 젠장맞게 익숙하지.
오늘의 개그는 그만하고 돌아와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