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 helped you

잡기 2006. 4. 27. 13:45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이란 설문에 응답하니 '주위 사람들은 당신을 상큼하고, 발랄하고,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현실적이면서 늘 즐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든지 주위의 이목을 사로잡는 사람이지만 적당한 주제파악으로 교만해지지 않을 줄도 아는 사람이죠. 당신은 다정하고 친절하며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처진 기분은 업!시켜 주고 어려울땐 도와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좋군. 어제 술자리에서 만난 공무원 중 한 친구는(마누라는 집에서 놀고 변변한 일꺼리 없이 빈둥거리는 프리랜서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날 때려 주겠단다. 강원도 영동 놈이라서 그런가? 영동 놈들은 나 같은 영서 놈들이 쩨쩨하고 얌체스럽고 병신 같아서 늘 패주고 싶어했다. 아무튼 그게 '다정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아서 분위기 업! 시켜주는' 내, 변할 리 없는 첫인상이다.

갠적으로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아무의 성질을 돋구는 일 없이 언제 어디서나 투명인간처럼 있으나마나 한, 아무 도움이 안되는 하찮은 인간이 되길 희망한다.

현실은 그 반대라서 '사람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엊그제 병점역에서 차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쭈볏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기는 노가다하러 수원에 왔다가 어젯밤에 열나 술 퍼먹다가 뻗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지갑을 잃어버려 오도가도 못하고 역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민망하고 창피해서 말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피해서 말을 못 붙일 처지인데 왜 하필 '당신들'은 나한테 말을 거는 것일까? 벤치마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줬다. 예전에 무전여행 하던 시절에 '사람들'로부터 고마운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을 도우면 심심찮게 뒷구멍에서 욕을 먹었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나? 건방지다나? 잔대가리 굴린거지? 뭐 그런 이유. 심지어 그런 건방진 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므로 절대 불가하다고 믿거나 도움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했다. 남의 정신세계를 한눈에 간파하는 심오한 내력은 늘 감탄스럽지만 그런 꼴 보기 싫어 안 도울 수도 없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느끼는 불확실한 감정 한 가지만큼은 어렴풋이 알겠다. 네가 나보다 처지가 나으므로 너는 나를 도와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싫은 기색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무조건 -- 도울 때는 그런 예절과 법도가 있다.

자신이 쌓아올린 바보짓 무더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도울 필요가 있을까? 달리 말해, 멍청함을 도와야 하나? 상황과 관계의 역학을 빼버리곤 말할 수 없겠지.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 멍청함을 뒷수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 얼굴에 그게 표시가 나니까 밥맛 떨어지고 재수없는 거지.

따라서 다가올 2010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이렇다(한미 FTA보다 심각하다).

1. 이미지 변신
2. 표정 관리

성공하지 못하면 말 못하고 울기만 하는 공룡처럼 멸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처지는... 웃음.

웃지 마라! 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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