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에서의 점심(Breakfast on Pluto)의 소제목을 따서 제목을 달았다. 영화 제목이 한 눈에 봐도 인문계스러워 절대 SF로 착각하지 않았다. 날 때부터 여성으로서의 자아에 눈 뜬 주인공의 세 친구 중 하나는 달렉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다니던 저능아였고 다른 하나는 혁명에 넋이 나간 친구다. 개중 가장 정상적인 친구는 여자애였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되지 류의 코메디물인데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그닥 재미는 없었다. 영화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얼토당토 않은 장미빛 팬터지로 상대 성의 우월성을 부드럽게 타이르는 개소리에 신물이 넘어온다. 여성적 가치? 글쎄. 이 지저분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 가치가 아닌 거 같은데?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첫 15분 동안 한국의 여러 극화에서 출산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출산이 여성에게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 것처럼 나오던데, 어째서 출산이 가족의 기쁨이고 (인류의) 축제가 될 수 없는지 역설한다. 강연 주제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여러분' 이었는데 현실적으로는 꽤 부질없었고 미래를 바꿔야 할 그 여러분들을 제대로 설득한 것 같지 않았다. 듣자니 영 시시해서 pda로 뉴스나 읽었다.
잊지 말자. 어떤 정치로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흉칙하게 변한 한국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어미다. 교육이나 부동산이 적절치 못한, 잘못된 정책 문제 같아 보이나? 난 안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 '백합물'을 문맥으로 파악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전율을 느끼는 오타쿠로서의 나 자신이 말하건대, '어미 근성'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부어 싸이클로트론을 건설하거나 황량한 화성에 인간을 내려놓기 위한 노력을 출산휴가나 영원히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 국가의 양육 및 교육비 부담 문제로 바꿔놓을 수 있다. 개소문 닷 컴에서 어쩌다 읽은 글이 있는데 군 가산점을 없애버린 한국의 여성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양키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니들이 '출산의 고통'을 아냐고 묻고 니들이 양육과 애들 교육 문제로 자아 실현 못하고 '희생'하는 여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냐 이 개마초야 라고 물으면, 말하자면, 인생이 갑자기 환멸스러울 정도로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해지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머리 아프니까 그쯤 해 뒀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전쟁과 테크널로지에 미쳐 지내건 말건 여자는 아이를 기른다. 너희들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우주의 지평선 너머까지 탐색하고, 또 열반하겠다고, 저 혼자서 열반해서 천당에 가서 살건 말건 여자는 아이를 기른다.'
어렸을 적에 어떤 개마초같은 여자가 술집에서 대화 중 술잔을 쾅! 내려놓으며 나한테 저렇게 비장하게 말했다. 수천 년 동안 양육에 남자의 도움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던 것 같다. 팔짱을 끼고 들었다. 이해했다. 정말로 이해해서, 그냥 쓰시마섬에서 활동하는 아메바처럼 행복한 개새끼로 남기로 했다.
터키문화원인지 이스탄불 문화원인지에 얼떨결에 가서 제목을 알 수 없는 영화를 봤다. 얼핏 듣기론 '마음의 상처'라던가? 당신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한 시골 교사가 터키 개국의 신화이자 영웅인 아타투르크의 혁명 정신에 경도되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세상을 바꾸고자(실은 현실로부터 도망쳐서) 터키에서 가장 깡촌 소릴 듣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오랜 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을 맞이 해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가족사적 비극을 터키 근대문명이 겪어온 고난의 역사에 투사한다. 그의 얼마 안 남은 생애에 걸쳐 벌어질 피투성이의 아비규환을 모른 채 하늘은 푸르렀고 길은 아름다웠다.
영화는 심금을 울렸고 함께 영화를 보던 뒷자리의 귀여운 터키 아가씨들은 울었다. 투르크인은 남자다. 주인공이 땅문서 밖에 관심없는 자기 아들에게 주라며 문서를 건네고 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다 말고 말한다 '미안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이상의 희생자야' 그러면서, 그의 실수와 도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어째서 일이 이 모양이 되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생에 했던 일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울적하게 말한다. 그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어째서 일들이 그 모양이 되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슬픔을 나르는 무화과 나무에요' 하는 쿠르드 족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북한산을 에둘러 업힐을 연습했다. 모처럼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모르는 길에 잘못 들었다. 계속 가 보고 싶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갈까 말까 잔차를 세워두고 고민했다. 안 갔다. 다음 기회에.
날도 좋은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죽어라고 해서 바보가 다 되었고 딴지일보 보다가 생각난 김에 전주 지도를 뽑아 유명 식당 좌표를 여기저기 찍었다. trackmaker를 이용해 gps로 옮겨두고 화요일에 공장에 가서 하룻밤 새고 다음날 아내더러 전주로 내려오라고 말하고 버스를 탔다. 전주에 도착하자 마자 역전 근처의 가게에서 육수가 꽤 그럴듯한 국수를 먹고(이조국수, 2천원, 사리 무제한) 영화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하릴없이 빈둥거리다?한울집에서 쓰리걸리 완스타(9천원, 막걸리 세되에 사이다 한병 타 놓은 것)를 먹고 마셨다. 달착지근한 막걸리 맛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13가지 안주꺼리가 정말 감동적이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가하게 전주시내를 배회했다. 전주 시청 앞에 홍등가가 길죽하게 펼쳐져 있다. 민원에 지친 시민들을 배려한 것인가? 지정학적 위치가 정말 감탄스럽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경기전 마당에서 만든 4천인분짜리 비빔밥을 줄서서 배급받아 먹었다.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마지막 황손이란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시민의 질서의식을 간곡하게 고취시켰다. '어떤 또라이 새끼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에 불을 질렀어요. 이게 도대체 제대로 된 세상입니까? 제발 질서를 지킵시다' 라고. 전통주 박물관에서 술 두어 잔 얻어먹고 경기전으로 돌아와 철쭉이 예쁘게 핀 근처 잔디밭 나무 그늘에서 양말 벗고 한 숨 자다가 성미당에서 8천원짜리 비빔밥을 먹었다. 성미당의 그 유명한 비빔밥은 맛은 좋았지만 8천원 짜리 값어치는 아닌 것 같다. 서빙이 꽝이라 추천할만한 식당도 되지 못했다. 전날 밤 발견한 도넛 가게에서 찹쌀 도넛과 꽈배기를 사 먹었다.
아내가 워낙 쉽게 만족해 하루 3끼식, 6끼를 그저 먹고 마신다는 계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전주영화제를 핑계로 갔지만 영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기차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전주역에 도착했다. 돌아다니는 동안 gps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사흘 후 집에 도착하니 모바일폰, pda, 노트북, gps의 전원이 거의 다 나갔다. 다음 번에 전주를 지나치게 되면 '싸고, 양 많고, 맛있다'는 전주 음식을 제대로 즐겨볼 테다. 단, 8천원짜리 비빔밥은 빼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행복의 비결을 아냐고 물었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아내는 단순하게 살면 되지 하고 평소 철학인 무위자연을 대꾸했다. 쓰시마섬에서 활동하는 아메바처럼 말이야? 내가 좋은 거 알려줄께. 행복해지고 싶으면 말이야, 필요한 것을 잘 갖추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 해. 라고 말했다. 전주 시내에서 걸어다니다가 어떤 가게 앞에 쓰여진 문구였다. '좋은 말이네?' 라고 말한다. '좋은 말이지' 라고 대꾸했다.
단오, 석탄일, 어린이날이 겹친 5월 5일, 석가모니에게 언제나 잔정을 느끼고 그의 사상과 철학에 공감하는 편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내 꿈은 어서 빨리 자라 열반에 드는 것이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여자가 끼면 열반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은 하지 못 했지만 그 마음 잘 안다). 그래서 절에 가서 공양했다. 개척교회같은 작은 절이라 비빔밥, 된장국, 부침개, 과일 한 접시로 이루어진 공양 음식은 참 훌륭했다.
소화도 시킬 겸 공양 한 번 더 할까 해서 옆 불광사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역시 작은 곳이라 분위기가 좋다. 반찬이 그저 그래서 밥은 되었고, 떡을 얻어 먹었다. 석가모니나 예수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떡도 나눠주지만 뉴턴역학이 지배하는 사상종교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야 말로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다. 그들은 인류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줬다.
v for vendetta라는 영화였던가? 하회탈을 쓴 작자가 '그렇게 총알을 먹였는데 어떻게 안 죽을 수가 있지?' 라며 울상을 짓는 원수의 목뼈를 부러뜨리며 이렇게 말한다; faith is bulletproof.
Dragon's World -- A Fantasy Made Real (2004)을 봤다. 재밌다. 대나무숲에서 어슬렁거리며 돼지 사냥에 열중하는 용은 개중 압권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투쟁하며 모진 삶을 살아가던 용들은 지구상에 거의 전 종을 멸종시켰다고 추측되는 거대운석의 낙하 이후 바닷속에서 익룡으로 살아가다가 다리 여섯개 달린 돌연변이로 난데없이 '진화'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대나무숲에 적응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자기가 사냥하려던 돼지들을 겁줘 쫓아버리자 화가 치민 용이 돼지가 꿀꿀 거리는 소리를 흉내내어 호랑이를 유인하여 잡아 죽인 후 위장에 사는 특수한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한 수소 가스와, 평소 섭취하던 암석으로부터 추출한 백금을 용매로 화염을 일으켜 호랑이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데(용들은 생고기보다는 불갈비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숲 속에서 이를 쳐다보던 신생 인류는 용이 무서워 벌벌 떨지만 불의 가치를 재빨리 깨닫고 불을 훔친다 -- 제작자의 유머감각이 곳곳에서 돋보이는 꽤 재밌는 영화지만 애들이 보면 정말 드래곤이 실재했다고 믿을 것 같은 영화다. 저정도의 개그 솜씨면 말하는 나무토막을 갖다놓은 듯한 연기가 설마 형편없기 때문일리야 없고 의도된 연출일 꺼라고 굳게 믿을만 했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첫 15분 동안 한국의 여러 극화에서 출산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출산이 여성에게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 것처럼 나오던데, 어째서 출산이 가족의 기쁨이고 (인류의) 축제가 될 수 없는지 역설한다. 강연 주제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여러분' 이었는데 현실적으로는 꽤 부질없었고 미래를 바꿔야 할 그 여러분들을 제대로 설득한 것 같지 않았다. 듣자니 영 시시해서 pda로 뉴스나 읽었다.
잊지 말자. 어떤 정치로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흉칙하게 변한 한국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어미다. 교육이나 부동산이 적절치 못한, 잘못된 정책 문제 같아 보이나? 난 안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 '백합물'을 문맥으로 파악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전율을 느끼는 오타쿠로서의 나 자신이 말하건대, '어미 근성'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부어 싸이클로트론을 건설하거나 황량한 화성에 인간을 내려놓기 위한 노력을 출산휴가나 영원히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 국가의 양육 및 교육비 부담 문제로 바꿔놓을 수 있다. 개소문 닷 컴에서 어쩌다 읽은 글이 있는데 군 가산점을 없애버린 한국의 여성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양키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니들이 '출산의 고통'을 아냐고 묻고 니들이 양육과 애들 교육 문제로 자아 실현 못하고 '희생'하는 여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냐 이 개마초야 라고 물으면, 말하자면, 인생이 갑자기 환멸스러울 정도로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해지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머리 아프니까 그쯤 해 뒀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전쟁과 테크널로지에 미쳐 지내건 말건 여자는 아이를 기른다. 너희들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우주의 지평선 너머까지 탐색하고, 또 열반하겠다고, 저 혼자서 열반해서 천당에 가서 살건 말건 여자는 아이를 기른다.'
어렸을 적에 어떤 개마초같은 여자가 술집에서 대화 중 술잔을 쾅! 내려놓으며 나한테 저렇게 비장하게 말했다. 수천 년 동안 양육에 남자의 도움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던 것 같다. 팔짱을 끼고 들었다. 이해했다. 정말로 이해해서, 그냥 쓰시마섬에서 활동하는 아메바처럼 행복한 개새끼로 남기로 했다.
터키문화원인지 이스탄불 문화원인지에 얼떨결에 가서 제목을 알 수 없는 영화를 봤다. 얼핏 듣기론 '마음의 상처'라던가? 당신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한 시골 교사가 터키 개국의 신화이자 영웅인 아타투르크의 혁명 정신에 경도되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세상을 바꾸고자(실은 현실로부터 도망쳐서) 터키에서 가장 깡촌 소릴 듣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오랜 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을 맞이 해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가족사적 비극을 터키 근대문명이 겪어온 고난의 역사에 투사한다. 그의 얼마 안 남은 생애에 걸쳐 벌어질 피투성이의 아비규환을 모른 채 하늘은 푸르렀고 길은 아름다웠다.
영화는 심금을 울렸고 함께 영화를 보던 뒷자리의 귀여운 터키 아가씨들은 울었다. 투르크인은 남자다. 주인공이 땅문서 밖에 관심없는 자기 아들에게 주라며 문서를 건네고 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다 말고 말한다 '미안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이상의 희생자야' 그러면서, 그의 실수와 도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어째서 일이 이 모양이 되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생에 했던 일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울적하게 말한다. 그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어째서 일들이 그 모양이 되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슬픔을 나르는 무화과 나무에요' 하는 쿠르드 족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북한산을 에둘러 업힐을 연습했다. 모처럼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모르는 길에 잘못 들었다. 계속 가 보고 싶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갈까 말까 잔차를 세워두고 고민했다. 안 갔다. 다음 기회에.
날도 좋은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죽어라고 해서 바보가 다 되었고 딴지일보 보다가 생각난 김에 전주 지도를 뽑아 유명 식당 좌표를 여기저기 찍었다. trackmaker를 이용해 gps로 옮겨두고 화요일에 공장에 가서 하룻밤 새고 다음날 아내더러 전주로 내려오라고 말하고 버스를 탔다. 전주에 도착하자 마자 역전 근처의 가게에서 육수가 꽤 그럴듯한 국수를 먹고(이조국수, 2천원, 사리 무제한) 영화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하릴없이 빈둥거리다?한울집에서 쓰리걸리 완스타(9천원, 막걸리 세되에 사이다 한병 타 놓은 것)를 먹고 마셨다. 달착지근한 막걸리 맛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13가지 안주꺼리가 정말 감동적이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가하게 전주시내를 배회했다. 전주 시청 앞에 홍등가가 길죽하게 펼쳐져 있다. 민원에 지친 시민들을 배려한 것인가? 지정학적 위치가 정말 감탄스럽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경기전 마당에서 만든 4천인분짜리 비빔밥을 줄서서 배급받아 먹었다.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마지막 황손이란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시민의 질서의식을 간곡하게 고취시켰다. '어떤 또라이 새끼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에 불을 질렀어요. 이게 도대체 제대로 된 세상입니까? 제발 질서를 지킵시다' 라고. 전통주 박물관에서 술 두어 잔 얻어먹고 경기전으로 돌아와 철쭉이 예쁘게 핀 근처 잔디밭 나무 그늘에서 양말 벗고 한 숨 자다가 성미당에서 8천원짜리 비빔밥을 먹었다. 성미당의 그 유명한 비빔밥은 맛은 좋았지만 8천원 짜리 값어치는 아닌 것 같다. 서빙이 꽝이라 추천할만한 식당도 되지 못했다. 전날 밤 발견한 도넛 가게에서 찹쌀 도넛과 꽈배기를 사 먹었다.
아내가 워낙 쉽게 만족해 하루 3끼식, 6끼를 그저 먹고 마신다는 계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전주영화제를 핑계로 갔지만 영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기차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전주역에 도착했다. 돌아다니는 동안 gps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사흘 후 집에 도착하니 모바일폰, pda, 노트북, gps의 전원이 거의 다 나갔다. 다음 번에 전주를 지나치게 되면 '싸고, 양 많고, 맛있다'는 전주 음식을 제대로 즐겨볼 테다. 단, 8천원짜리 비빔밥은 빼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행복의 비결을 아냐고 물었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아내는 단순하게 살면 되지 하고 평소 철학인 무위자연을 대꾸했다. 쓰시마섬에서 활동하는 아메바처럼 말이야? 내가 좋은 거 알려줄께. 행복해지고 싶으면 말이야, 필요한 것을 잘 갖추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 해. 라고 말했다. 전주 시내에서 걸어다니다가 어떤 가게 앞에 쓰여진 문구였다. '좋은 말이네?' 라고 말한다. '좋은 말이지' 라고 대꾸했다.
단오, 석탄일, 어린이날이 겹친 5월 5일, 석가모니에게 언제나 잔정을 느끼고 그의 사상과 철학에 공감하는 편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내 꿈은 어서 빨리 자라 열반에 드는 것이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여자가 끼면 열반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은 하지 못 했지만 그 마음 잘 안다). 그래서 절에 가서 공양했다. 개척교회같은 작은 절이라 비빔밥, 된장국, 부침개, 과일 한 접시로 이루어진 공양 음식은 참 훌륭했다.
소화도 시킬 겸 공양 한 번 더 할까 해서 옆 불광사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역시 작은 곳이라 분위기가 좋다. 반찬이 그저 그래서 밥은 되었고, 떡을 얻어 먹었다. 석가모니나 예수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떡도 나눠주지만 뉴턴역학이 지배하는 사상종교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야 말로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다. 그들은 인류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줬다.
v for vendetta라는 영화였던가? 하회탈을 쓴 작자가 '그렇게 총알을 먹였는데 어떻게 안 죽을 수가 있지?' 라며 울상을 짓는 원수의 목뼈를 부러뜨리며 이렇게 말한다; faith is bulletproof.
Dragon's World -- A Fantasy Made Real (2004)을 봤다. 재밌다. 대나무숲에서 어슬렁거리며 돼지 사냥에 열중하는 용은 개중 압권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투쟁하며 모진 삶을 살아가던 용들은 지구상에 거의 전 종을 멸종시켰다고 추측되는 거대운석의 낙하 이후 바닷속에서 익룡으로 살아가다가 다리 여섯개 달린 돌연변이로 난데없이 '진화'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대나무숲에 적응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자기가 사냥하려던 돼지들을 겁줘 쫓아버리자 화가 치민 용이 돼지가 꿀꿀 거리는 소리를 흉내내어 호랑이를 유인하여 잡아 죽인 후 위장에 사는 특수한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한 수소 가스와, 평소 섭취하던 암석으로부터 추출한 백금을 용매로 화염을 일으켜 호랑이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데(용들은 생고기보다는 불갈비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숲 속에서 이를 쳐다보던 신생 인류는 용이 무서워 벌벌 떨지만 불의 가치를 재빨리 깨닫고 불을 훔친다 -- 제작자의 유머감각이 곳곳에서 돋보이는 꽤 재밌는 영화지만 애들이 보면 정말 드래곤이 실재했다고 믿을 것 같은 영화다. 저정도의 개그 솜씨면 말하는 나무토막을 갖다놓은 듯한 연기가 설마 형편없기 때문일리야 없고 의도된 연출일 꺼라고 굳게 믿을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