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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06. 6. 2. 00:23
* 시도지사 민노당 김종철
* 구시군장 열우당 고연호
* 시도의원 무소속 최경준
* 구시군의원 무소속 최준호
* 정당은 모두 민노당.

6장의 로또같은 것인데, 단 하나도 안 맞았다. 며칠 동안 후보자의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공약의 구체성, 실천가능성을 위주로 후보를 선정했다. 선거 쇼핑인 셈. 제품의 실용 가치와 가격대 성능비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 서울시장을 빼고는 후보자들의 토론이나 공약과 정책에 대한 인지도/실천의지/구체적 추진 가능성 따위를 검증할 자료가 부족하여 아줌마들이 수소문으로 냉장고 구입하는 것과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지 않다. 상상력이 부족한 정치인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서울 시장 후보로 김종철을 뽑았는데, 강금실같은 인간이 서울 시장 보다는 대권 후보로 한번 뛰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정치는 비록 독을 삼켜도 철학과 비전과 꿈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웨스트윙을 너무 많이 봤나?


초음파의 반사파 음영을 3차원으로 구성하는 3차원 초음파 투영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진 귀퉁이에는 4차원 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게 해서 4차원 아스트랄로피테쿠스(Astralopithecus) 같은 아이 얼굴을 감상했다. 흠. 얼굴 생김새가 자야바르만 7세를 닮았는걸?

2주 전 아이의 몸무게는 720g 이었다. 어떻게 계산하는지 궁금하다. 평균 체질량으로 체적을 가지고 어림잡는 걸까? 720g은 고깃집에서 삼겹살 3인분 분량인데 아직은 '구제해야 할'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알 턱이 없는 핏덩이다. 아직 골이 덜 찼다.

아이는 생후 2개월이 될 때까지 시각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얼굴을 분간하지 못한다. 촛점을 잃은 멍한 눈으로 공허하게 쳐다볼 따름이다. 그들의 뇌에서 시각과 관련한 시냅스 접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오직 냄새와 소리, 그리고 촉감에 반응한다. 그들은 타고난 반사 작용을 통해 주위를 인식하고 경험하여 어리석은 범주화를 행한다. 알만한 성인은 알겠지만 학습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끊임없이 뉘우치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이번 선거를 통해 '세상에 나만 옳은게 아니지' 라는 것을 뉘우치는 것처럼.

불광중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투표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을 돌아 효자동으로 향했다. 며칠 전에 산에 올랐지만 갑자기 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길은 자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길이다.

무성한 밤나무가 드리운 시원한 그늘길을 걸어 도착한 밤골 매표소의 아저씨가 흥분해서 말하길, 200장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표가 동이 났다며 입장권이 없어 더 이상 팔 수 없으니 그냥 올라가란다. 그러면서 누가 입장권 검사하면 버렸다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아저씨, 그건 아니에요. 쓰레기 불법 투기로 벌금 물어야 되요.

1600원짜리 입장권을 사려면 천 원짜리 지폐를 두 장 내고 400원을 거슬러 받아야 한다. 지폐는 동전보다 가볍다. 동전은 짤랑거리고 무게도 많이 나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불편하다. 주머니에 동전이 많이 짤랑거리면 육체는 물론 영혼마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백만원짜리 수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는 영혼이 가벼웠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래서 영혼이 가벼워지려면 동전보다는 고액권으로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효자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떤 개척교회의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02-xxx-0691. 전화번호가 참 멋졌다. 영육구원이라니.

구시군의원 선거에서 의원들 공약의 공통점은 불광동 주민들이 북한산 올라갈 때 입장료를 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호젓하다. 앞서는 사람도,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오늘만 벌써 200명이 지나간 길이다.

불광역, 연신내역, 구파발역 중 한 곳에서 내려 704번 또는 34번 버스를 타고 효자동 효자비 나 성황당 앞에서 내린다. 효자비에서 내리면 입장료 안내고 올라가는 길이 있다. 성황당 앞에서 내리면 버스 진행방향으로 잠깐 걸으면 밤골 매표소가 나온다.

불광역 -> 밤골 매표소 -> 갈림길에서 좌측 (사기막 매표소 방향) ->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사기막 매표소 방향) -> 철조망 끝나는 지점에서 우회전 -> 송전탑


전망 좋은 곳. 보기보다 으시시. 잠시 땀을 식히면서 서늘한 바람을 쐬었다.


해골 바위가 내려다 보이고, 좌측의 잘린 부분 부터 순서대로 인수봉, 숨은 벽, 백운대. 숨은 벽은 깍아지른 듯한 암릉이다. 한숨 지었다.


숨은 벽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두려워서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올라오는 길에 죽을 뻔 해서 서늘해진 영혼을 다독이기 위해 열심히 밥 먹는데 어떤 아가씨들이 다가와 옆에서 밥 먹어도 되냐고 '용기를 내어' 묻는다. 예.


숨은벽으로 향하는 암릉길. 바람이 부니까 심장이 서늘해진다. 숨은 벽은 백운대, 인수봉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아내가 올 봄에 지나간 '효자동 코스'가 아마 여기가 맞을 것이다. 휴식년제가 얼마 전에 끝났다.


윗 사진을 확대한 것. 해골 바위 아래에서 밥 먹는 곳까지 경사 40 가량의 30m 릿지 코스는 미처 보지 못하고 해골 바위 부근에서 좌측으로 내려와 '재보던 곳'에 이르렀다. 경사 60도 가량, 대략 15m를 사뿐 사뿐 뛰어가면 소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내린 바위 밑둥에 닿을 수 있는데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다가와 여기 길이 맞다고 한다. 그가 갈 때까지 기다렸지만(그럼 먼저 가 보세요) 머뭇거리더니 돌아간다. '재보던 곳'을 갈 수 있으려면 왠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 마당 바위(해골 바위) -> 암릉 능선 -> 숨은벽 우회로 -> 좁은 틈 -> 인수봉과 백운대 사잇 계곡 -> 인수봉 암벽 등반 장소

인수봉과 백운대 사잇계곡에 길이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써서 원숭이처럼 헉헉 대며 올라갔다. 사람들 지나간 흔적이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어째 등산로는 아닌 것 같다. 바위틈에 오줌을 누웠다. 계곡 끝까지 올라가니 암벽 등반팀들이 여럿이 모여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땀을 식히며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효자동 숨은 벽 코스가 정말 훌륭하다.

-> 우측 백운대 방향 -> 위문 -> 용왕문 -> 대동문 ->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대동문까지 걸었다. 물이 다 떨어져서 갈증이 심했다. 마침 나타난 샘에서 바가지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영혼이 뽀드득해지는 느낌이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멨는데 남녀가 돗자리 펴놓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하우스 쪽이 경치가 좋다는 얘길 언젠가 들은 적이 있어 그리로 내려갔다. 발끝에 힘을 주고 근육이 수축, 이완하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그래서 내리막길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담배진으로 뒤덮인 허파꽈리로 흡수되는 적은 양의 산소 때문에 근육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오래전부터 느꼈다. 일정 정도 이상의 강도높은 운동을 하면 산소 부족으로 두통이 생겼다. 담배를 줄이지 않으면 긴 여행에 무리가 생길 것이 뻔하다.

다섯 시간 동안 아크로바트를 하며 돌아다녔더니 온 몸이 노곤하다. 작년 겨울 배에 낀 기름은 거의 사라져 몸에 기름기가 얼마 없다. 보쌈과 막걸리를 사 들고 집에 돌아와 마누라에게 먹였다.

일의 조정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타협도 필요하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산소 부족에 허덕이며 비꺽이는 육신을 좀 더 허우적거려야 할 것 같다.

Google Earth 북한산 좌표 KML file --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있던 자료를 구글 어스용으로 변환했다.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 트래킹 포인트를 모아놓은 것. 파일로 저장한 다음 구글 어스로 로드. 생각해 보니 이걸 gtm 포맷으로 변환해야 GPS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구나.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귀찮아서 관뒀다. 나중에 나한테 필요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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