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매니아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맵 매칭을 하는 저런 종류의 작업은 내 구미에 맞는다. 알게 된 김에 또 다시 부질없는 웹질을 했다. Poz G300을 찾아다녔다. 가격은 아무 옵션 없이 35만원까지 나와 있다. 포즈 G300을 지나치게 극찬한 나머지 사무실의 한 직원이 얼마전에 구입했다. 그래서 사무실에는 G300을 가진 사람이 둘이나 있었고 기계 실물도 쓸만했다. 조디악을 팔면 20만원은 건지겠고, 15만원 + SD 메모리 2G 짜리(5만원) 하면 20만원을 더 추가해야 한다. 20만원에 802.11b와 SiRF III GPS는 의미가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보았다. 모르겠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 아무튼, '등산매니아'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5일 동안의 황금 연휴가 시작되는 6/2. 5/1~6/1까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인데 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공장을 오락가락하는 처지라 바빠서 서류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었다. 세무서에 전화를 해보니 어제 마감되었단다. 왜 안내 고지서를 안 보내줬냐고 물었더니 안 보내 준단다.
세무서에 찾아가니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없다. 한참 기다려 세무2과에 들어가서 담당자라는 젊은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마감을 넘겼으므로 종소세 신고는 불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전고지 의무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는 국세청에 email을 등록해 놓았는데 종합소득세 신고 안내에 관한 서류나 email 한 통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년하고 제작년에는 보내줬는데 올해는 왜 안보내주는가? 라고 점잖게 물었다. (세무서에도 콜센터 클로버 아가씨가 있는건가? 뭔 말을 하건 '안된다'고 하고 '없다'고 말하고 '죄송합니다' 라며 잔잔하게 개기는?) 그래도 안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봅시다, 그럼 내가 올해 처음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해서 세무행정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세무 고지 한 번 안 해주고 뒤늦게 세금 신고 안했다고 중과금 고지서를 당신들이 보내 주면 모르던 나만 바보잖아요?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책임자쯤 되는 아저씨가 보던 신문에서 눈을 돌리고 관심있게 쳐다보았다.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했다. 이번에는 애원이다. 이번에 세무 신고를 못하면 저는 앞으로 2개월 동안 해외출장을 갈 지 모르는데(뻥이지) 돌아오면 무조건 벌금 물어야 하는거죠? 제가 좀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데 좀 봐주세요. 바보 아가씨한테는 말이 안 통했지만 아저씨는 말이 통했다. 단말기를 두들겨 소득액을 확인시켜 준다. 맞아요? 예. 그러더니 계산기를 두들겨 서류를 대신 작성해준다.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넵. 올해도 어김없이 환급금 없이 과세되는 기타소득자다. 그래도 8%씩 뜯기는 직장인보다 3.3% 뜯기는 프리랜서가 낫다. 마감을 넘겼지만 어제 날짜로 신고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가 끼어든다. 다음에는 늦지 마세요? 네(댁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안 늦을께요).
저녁 무렵, 멍하니 프로그램을 작성하다가 자전거로 서산에서 해남까지 자전거로 달려보려고 계획을 잡아 보았다. 서산에서 안면도를 거쳐 하루, 대천 -> 정읍 이틀, 정읍 -> 목포 3일, 목포 -> 해남 4일, 해남 -> 땅끝 마을 5일, 땅끝 -> 강진 6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7일이 걸린다. 이 코스는 작년에도 검토해 보았는데 다시금 궤적과 웨이포인트를 세심하게 다듬었다. 7일이나 걸리는 코스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해남, 강진, 목포만을 포함한 궤적을 검토했다. 백운사, 다산초당, 미황사, 대흥사, 초호 해수욕장을 에두르는 코스다. 땅끝은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어차피 통과해야 할 장소다. 그래도 주행에 3일이 걸린다. 6/3일 오전 1시,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6/3 아침에 아내가 오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잊었냐고 묻는다. 물론 잊고 있었다. 신날 것 같은 해남 자전거 여행은 접어두고(남도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말투가 시비조라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에 갔다. 성당에서의 지루한 예식이 끝나고 그 둘은 저녁 비행기를 타러 간다.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에서 자동차를 사서 독일까지 한 달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둘 다 허름한 배낭여행자들인데 이번에는 한두 푼 아끼는 궁상 그만 떨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신부는 거적데기같은 숄을 둘러쓰고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배낭여행자였다. 나도 즐겨 두르고 다녔는데 그걸 망또라고 불렀다. 슬쩍한 항공사 담요를 망또처럼 두르고 말 타고 설산을 달릴 때는 나 자신이 딜비쉬처럼 여겨졌다. 아무튼 거지 꼴이었던 둘은 인도의 어떤 절에서 아내의 주선으로 눈이 맞았다. 둘은 이번 만큼은 럭셔리하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차를 샀는데, 왠간하면 돈을 아끼기 위해 차에서 잔다고 말한다. 벼룩 한 마리 없는 차에서 망또를 덮고 잔다니, 정말 21세기스럽게 럭셔리하다. 그런데 한 달이라... 얼 빠진 신랑 어깨를 두들기며 '수고하라'고 말해줬다. 암. 노새가 따로 없지.
집에 돌아와 못해도 사흘이 걸리는 해남 코스는 잊어버리고 이틀 짜리 코스를 궁리해 보았다. 어디 좋은데 없을까? 인적 드물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강원도. 십수 년 전 강원도 여기저기를 걸어다닌 기억이 난다. 애매한 갈림길과 길 없는 길을 참 많이 걸었다. 4년 동안 걸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만큼은 안 되지만.
머리 속에 전구가 반짝했다. 평창강이 흐르는 평창-영월, 동강이 흐르는 정선-영월, 주천강이 흐르는 영월-제천 구간은 기억에 꽤 괜찮았던 곳이다. 아름다운 곳이긴 한데, 지금 쯤은 길이 뚫렸을까? 내친 김에 알맵과 홀씨를 띄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길이 별로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긴 자갈밭이다. 기슭에 줄을 동여매고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경로를 그려본 뒤 고도차를 확인하려고 구글어스로 둘러 보았다. 오... 이거 노다지일세. 조물주가 자전거를 위해 특히 공들인 지형이랄까? 거리는 각각 60km 안팎, 강변을 따라가므로 고저차가 심하지 않다. 하루 거리에 딱 알맞다. 수영복만 걸치고 돌아다니다가 여차하면 강에 뛰어든다!
일단 평창-영월 구간을 점찍었다. 버스로 3h30m 달리면 평창에 도착. 하룻밤 민박에서 묵고 아침 일찍 출발, 평창강을 따라 60여 km를 달려 느긋하게 영월로 내려간다. 저녁 버스를 타고 2h이면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 빙고다.
6/4 일요일. 전화가 왔다. 내일 공장에 내려와 줄 수 있냐고 묻는다. 바빠서 못 내려간다고 말했다. 다시 비상 대기 상태인가? 일을 제껴두고 놀러 갈 수가 없다. 오늘 저녁 출발해야 하는데... 평창 코스는 다음으로 미뤘다. 저녁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못 가게 된 것이 섭섭하지만 코스 궤적과 웨이포인트는 이미 완성해 두었다.
일단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는 길을 미리 알아두자는 생각으로 강변로를 달렸다. 동서울터미널까지 32km, 1h40m 걸린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된다. 사놓고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자전거 가방을 이번에 사용해 볼까?
불광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역 앞에서 자전거를 분해한다. 퀵 릴리즈 레버를 들면 두 바퀴가 분리된다. 바퀴와 프레임을 자전거 가방에 넣은 다음 어깨에 두르고 지하철을 탄다. 강변 역까지 PDA로 오늘 뉴스와 잡지 따위를 보며 간다. 물품 보관함에 자전거 가방을 보관한다.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다. 평창에 도착. 민박 집을 찾아 저녁 거리를 배회한다. 수퍼에서 소주 한 병 사다가 오징어를 안주삼아 먹는다. TV에는 볼만한게 없다. 책은 가져오지 않았다. 천정에 아이콘과 그림을 그린다. 잠든다. 새벽 여명에 일찌감치 깨어났다. 이슬이 맺힌 자전거 안장을 털어낸다. 한적한 길을 따라 자전거를 몰고 간다. 물안개와 산안개가 묘연히 피어오른다. 새벽이 시려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다람쥐가 허겁지겁 도로를 가로지른다. 해가 돋으면서 금방 날이 더워진다. 개울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물 속에 들어가 미역처럼 흐느적거린다. 고개를 몇 넘자 땀이 돋는다. 강에 몸을 담그고 담배를 뻐금뻐금 피운다. 핸들에 웃옷을 벗어 걸어놓고 달린다. 길이 끊겼다. 자전거를 어깨에 매고 폭이 좁아진 강을 건넌다. 책 박물관, 벌레 박물관 따위에서 실없이 시간을 보내고 영월에 도착한다. 배가 고프다. 곤드레밥을 먹을까 시장통에서 감자전에 올갱이 국수를 먹을까... 오후 6시 무렵 서울행 버스를 탄다. 동서울 터미널로 돌아와 자전거 가방에 다시 자전거를 넣는다. 집에 돌아와 옥상에 올라가 돼지갈비를 구워 먹는다.
이렇게 해서, 5일 동안의 황금연휴를 순전히 머리로 여행했다. 심지어, 일본의 후쿠오카-오사카 구간도 갔다왔다.
나는 입으로 걷는다 -- 얜 또 뭐야? 제목이 기분 나쁘네.
5일 동안의 황금 연휴가 시작되는 6/2. 5/1~6/1까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인데 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공장을 오락가락하는 처지라 바빠서 서류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었다. 세무서에 전화를 해보니 어제 마감되었단다. 왜 안내 고지서를 안 보내줬냐고 물었더니 안 보내 준단다.
세무서에 찾아가니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없다. 한참 기다려 세무2과에 들어가서 담당자라는 젊은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마감을 넘겼으므로 종소세 신고는 불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전고지 의무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는 국세청에 email을 등록해 놓았는데 종합소득세 신고 안내에 관한 서류나 email 한 통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년하고 제작년에는 보내줬는데 올해는 왜 안보내주는가? 라고 점잖게 물었다. (세무서에도 콜센터 클로버 아가씨가 있는건가? 뭔 말을 하건 '안된다'고 하고 '없다'고 말하고 '죄송합니다' 라며 잔잔하게 개기는?) 그래도 안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봅시다, 그럼 내가 올해 처음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해서 세무행정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세무 고지 한 번 안 해주고 뒤늦게 세금 신고 안했다고 중과금 고지서를 당신들이 보내 주면 모르던 나만 바보잖아요?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책임자쯤 되는 아저씨가 보던 신문에서 눈을 돌리고 관심있게 쳐다보았다.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했다. 이번에는 애원이다. 이번에 세무 신고를 못하면 저는 앞으로 2개월 동안 해외출장을 갈 지 모르는데(뻥이지) 돌아오면 무조건 벌금 물어야 하는거죠? 제가 좀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데 좀 봐주세요. 바보 아가씨한테는 말이 안 통했지만 아저씨는 말이 통했다. 단말기를 두들겨 소득액을 확인시켜 준다. 맞아요? 예. 그러더니 계산기를 두들겨 서류를 대신 작성해준다.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넵. 올해도 어김없이 환급금 없이 과세되는 기타소득자다. 그래도 8%씩 뜯기는 직장인보다 3.3% 뜯기는 프리랜서가 낫다. 마감을 넘겼지만 어제 날짜로 신고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가 끼어든다. 다음에는 늦지 마세요? 네(댁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안 늦을께요).
저녁 무렵, 멍하니 프로그램을 작성하다가 자전거로 서산에서 해남까지 자전거로 달려보려고 계획을 잡아 보았다. 서산에서 안면도를 거쳐 하루, 대천 -> 정읍 이틀, 정읍 -> 목포 3일, 목포 -> 해남 4일, 해남 -> 땅끝 마을 5일, 땅끝 -> 강진 6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7일이 걸린다. 이 코스는 작년에도 검토해 보았는데 다시금 궤적과 웨이포인트를 세심하게 다듬었다. 7일이나 걸리는 코스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해남, 강진, 목포만을 포함한 궤적을 검토했다. 백운사, 다산초당, 미황사, 대흥사, 초호 해수욕장을 에두르는 코스다. 땅끝은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어차피 통과해야 할 장소다. 그래도 주행에 3일이 걸린다. 6/3일 오전 1시,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6/3 아침에 아내가 오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잊었냐고 묻는다. 물론 잊고 있었다. 신날 것 같은 해남 자전거 여행은 접어두고(남도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말투가 시비조라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에 갔다. 성당에서의 지루한 예식이 끝나고 그 둘은 저녁 비행기를 타러 간다.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에서 자동차를 사서 독일까지 한 달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둘 다 허름한 배낭여행자들인데 이번에는 한두 푼 아끼는 궁상 그만 떨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신부는 거적데기같은 숄을 둘러쓰고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배낭여행자였다. 나도 즐겨 두르고 다녔는데 그걸 망또라고 불렀다. 슬쩍한 항공사 담요를 망또처럼 두르고 말 타고 설산을 달릴 때는 나 자신이 딜비쉬처럼 여겨졌다. 아무튼 거지 꼴이었던 둘은 인도의 어떤 절에서 아내의 주선으로 눈이 맞았다. 둘은 이번 만큼은 럭셔리하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차를 샀는데, 왠간하면 돈을 아끼기 위해 차에서 잔다고 말한다. 벼룩 한 마리 없는 차에서 망또를 덮고 잔다니, 정말 21세기스럽게 럭셔리하다. 그런데 한 달이라... 얼 빠진 신랑 어깨를 두들기며 '수고하라'고 말해줬다. 암. 노새가 따로 없지.
집에 돌아와 못해도 사흘이 걸리는 해남 코스는 잊어버리고 이틀 짜리 코스를 궁리해 보았다. 어디 좋은데 없을까? 인적 드물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강원도. 십수 년 전 강원도 여기저기를 걸어다닌 기억이 난다. 애매한 갈림길과 길 없는 길을 참 많이 걸었다. 4년 동안 걸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만큼은 안 되지만.
머리 속에 전구가 반짝했다. 평창강이 흐르는 평창-영월, 동강이 흐르는 정선-영월, 주천강이 흐르는 영월-제천 구간은 기억에 꽤 괜찮았던 곳이다. 아름다운 곳이긴 한데, 지금 쯤은 길이 뚫렸을까? 내친 김에 알맵과 홀씨를 띄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길이 별로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긴 자갈밭이다. 기슭에 줄을 동여매고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경로를 그려본 뒤 고도차를 확인하려고 구글어스로 둘러 보았다. 오... 이거 노다지일세. 조물주가 자전거를 위해 특히 공들인 지형이랄까? 거리는 각각 60km 안팎, 강변을 따라가므로 고저차가 심하지 않다. 하루 거리에 딱 알맞다. 수영복만 걸치고 돌아다니다가 여차하면 강에 뛰어든다!
일단 평창-영월 구간을 점찍었다. 버스로 3h30m 달리면 평창에 도착. 하룻밤 민박에서 묵고 아침 일찍 출발, 평창강을 따라 60여 km를 달려 느긋하게 영월로 내려간다. 저녁 버스를 타고 2h이면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 빙고다.
6/4 일요일. 전화가 왔다. 내일 공장에 내려와 줄 수 있냐고 묻는다. 바빠서 못 내려간다고 말했다. 다시 비상 대기 상태인가? 일을 제껴두고 놀러 갈 수가 없다. 오늘 저녁 출발해야 하는데... 평창 코스는 다음으로 미뤘다. 저녁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못 가게 된 것이 섭섭하지만 코스 궤적과 웨이포인트는 이미 완성해 두었다.
일단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는 길을 미리 알아두자는 생각으로 강변로를 달렸다. 동서울터미널까지 32km, 1h40m 걸린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된다. 사놓고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자전거 가방을 이번에 사용해 볼까?
불광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역 앞에서 자전거를 분해한다. 퀵 릴리즈 레버를 들면 두 바퀴가 분리된다. 바퀴와 프레임을 자전거 가방에 넣은 다음 어깨에 두르고 지하철을 탄다. 강변 역까지 PDA로 오늘 뉴스와 잡지 따위를 보며 간다. 물품 보관함에 자전거 가방을 보관한다.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다. 평창에 도착. 민박 집을 찾아 저녁 거리를 배회한다. 수퍼에서 소주 한 병 사다가 오징어를 안주삼아 먹는다. TV에는 볼만한게 없다. 책은 가져오지 않았다. 천정에 아이콘과 그림을 그린다. 잠든다. 새벽 여명에 일찌감치 깨어났다. 이슬이 맺힌 자전거 안장을 털어낸다. 한적한 길을 따라 자전거를 몰고 간다. 물안개와 산안개가 묘연히 피어오른다. 새벽이 시려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다람쥐가 허겁지겁 도로를 가로지른다. 해가 돋으면서 금방 날이 더워진다. 개울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물 속에 들어가 미역처럼 흐느적거린다. 고개를 몇 넘자 땀이 돋는다. 강에 몸을 담그고 담배를 뻐금뻐금 피운다. 핸들에 웃옷을 벗어 걸어놓고 달린다. 길이 끊겼다. 자전거를 어깨에 매고 폭이 좁아진 강을 건넌다. 책 박물관, 벌레 박물관 따위에서 실없이 시간을 보내고 영월에 도착한다. 배가 고프다. 곤드레밥을 먹을까 시장통에서 감자전에 올갱이 국수를 먹을까... 오후 6시 무렵 서울행 버스를 탄다. 동서울 터미널로 돌아와 자전거 가방에 다시 자전거를 넣는다. 집에 돌아와 옥상에 올라가 돼지갈비를 구워 먹는다.
이렇게 해서, 5일 동안의 황금연휴를 순전히 머리로 여행했다. 심지어, 일본의 후쿠오카-오사카 구간도 갔다왔다.
나는 입으로 걷는다 -- 얜 또 뭐야? 제목이 기분 나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