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am. 새벽에 추워서 깼다. 텐트에서 버너를 켰다. 부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의 EXIF 정보에 타임스탬프가 찍힌다. 집에 돌아가면 EXIF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디카의 또다른 용도를 개발해 낸 것 같아 흐뭇하다.
6.15am. 산 중턱에 해가 떠오르고 까마귀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어슴프레 아침이 찾아왔다. 비가 안 온다!
6.28am. 아침은 역시 라면으로. 어묵 두 장을 얹어 변화를 주었다. 어묵이 무척 맛있다. 한국에서 처럼 포장용기에 파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두부처럼 만들어서 파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가격이 상당하다. 라면을 다 먹고 설겆이를 한 후 코펠에 물을 끓이고 애플 티를 우렸다. 충분히 식은 다음 어제 다 마시고 빈 음료수 병에 담았다. 오늘 마실 물이다. 자전거를 타면 하루에 물을 2리터 이상 마셨다. 사막에서도 물을 거의 안 먹던 내가 그 정도면 보통 사람은 3-4리터 이상은 마셔야 할께다.
캠핑하면서 밥을 지어 먹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쌀은 한 주먹 반 정도가 대충 일인분이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인스탄트 국 몇 개 사고, 천원에 두 봉지씩 파는, 물에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카레, 짜장 등의 소스를 사가지고 다니면 싼 값에 그럭저럭 다양한 식단을 꾸밀 수 있다. 맨밥에 고추장 비벼먹어도 되고.
여기 마트의 야채 코너에서 양파, 당근 따위를 보았을 때 야채밥을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야채밥이야 쉽지. 감자나 고구마, 버섯 따위를 쌀과 함께 끓여도 괜찮다. 사실 캠핑 음식은 간단하고 쉽다(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가는 캠핑과 다르다). 카레 짜장 소스는 밥을 지을 때 둘둘 말아 코펠에 함께 넣어두고 밥이 다 되면 개봉해 밥에 부어먹으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한두 홉 정도의 쌀로 짓는 밥은 평지에서 15~20분이면 조리가 끝난다. 밥 하고 나서 플레이트에 밥을 덜어놓고 밥알이 붙어 있는 상태 그대로 인스턴트 국거리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코펠에 밥을 부으면 간단한 국밥이 된다. 아침에 점심에 먹을 계란이나 감자 삶아 두거나 아침에 밥을 넉넉히 한 다음 남은 밥은 소금과 섞어 주먹밥을 만든다.
여행할 때 미역처럼 영양가가 풍부하면서 보관, 이동이 손쉬운 식재료도 없다. 마른 미역 한 봉지면 1-2주 동안 질리게 먹을 수 있다. 야채에 고추장 넣고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는 고추장 찌게도 있다. 돼지갈비 고추장 볶음은 돼지갈비에 전날 저녁 먹던 소주 좀 붓고 고추장 섞고 단과일 아무거나 으께 넣고 양파, 당근, 마늘 따위를 넣어 몇 시간 잼겨 놓았다가 볶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리조또도 만들어 먹는데. 이쯤되면 생존을 위해 억지로라도 밥을 꾸역꾸역 먹는 것이 아니라 '럭셔리 서바이벌'이 된다.
그런데 아침부터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다.
7am. 이 닦고 세면 하고 텐트를 걷었다. 짐을 챙겨놓고 자전거 상태를 살폈다. 어젯밤에 체인에 기름을 듬뿍 먹여두어 체인 상태는 양호하다. 브레이크 패드의 안쪽 허브 나사 위치를 변경해 손아귀로 반쯤 브레이크 레버를 당겼을 때 앞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 정도의 브레이크 이격을 확보했다.
뒷 브레이크 패드는 너무 닳아 이격을 좁혀도 브레이크가 잘 먹지 않는다. 오늘은 앞 브레이크만 써도 상관없을 것 같다. 뒷 짐받이에 짐을 싣고 체중을 뒤로 옮기면 뒷브레이크를 적게 잡고 앞브레이크를 잡으면 될 것 같다. 잠자가다 꿈속에서 브레이킹에 관해 좀 더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치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파라슈트가 펼쳐져 감속을 하듯이 몸을 활처럼 둥글게 구부려 공기저항을 증대시키면 비슷한 감속 효과가 나지 않을까? 우비를 걸치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8.30am 관리인 아저씨가 화장실에 들러 짐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사요나라'를 외치고 떠났다. 9am. 날이 개이니 기분이 상쾌하다. 신화의 마을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되니 점심 전에 도착할 것이다.
쓰시마는 예전에 왜구들의 전진기지였다. 일부는 쓰시마에 거주하고 일부는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 지방에 거주하며 중앙 정부의 지배력이 약해져 내외로 곪아터진 조선에 노략질을 일삼았다. 대마도에서 쌀의 재배가 어려워 노략질 말고는 여기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쌀이 있어야 초밥을 만들어 먹을 것이 아닌가! 웃음. 쓰시마 주민들은 심하게 말해 생계형 해적들의 후손이다. 쓰시마는 요즘 한국과의 선린우호, 화의와 평화를 가치있는 정책으로 삼았다. 기실 쓰시마는 일본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섬이고 쓸만한 부존자원이나 중대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다 대부분의 수입을 한국의 관광객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인지 한국과의 화의와 평화는 의미있는 정책처럼 보인다. (부정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왜구 후손들의 마을이라고 생각하니 풍경이 새삼스럽다. 가난한 어촌 주민들치고는 복지수준이 높다. 이 작은 섬에 병원과 소학교, 중학교 등의 교육시설이 거의 2km마다 있고 문화센터와 편의시설이 온 사방에 널려 있다. 비록 도쿄나 인근 부산 만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젊은이들이 없어도, 부존자원과 개발여력이 없어도 여생을 부족함없이 살만한 환경이지 싶다. 그게 꼭 일본과 한국의 경제력 차이만큼이겠지?
오징어 배치고는 전등 수가 너무 적어 보이는데? 쓰시마는 낚시꾼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인듯 하다. 전에 어디서 보니 쓰시마에 가면 하루 배를 빌려 참돔을 수십 마리씩 낚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낚시꾼들이 허풍이 좀 센 편이지만). 사장님을 설득해서 쓰시마로 낚시 관광을 오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데 젠장 여긴 대체 어디지? 개짖는 소리만 요란한데.
야마네코 조심. 야마네코=산 고양이=삵쾡이. 쓰시마의 천연기념물인 듯 곳곳에서 보이는 표지판. 게들이 도로를 건너다가 납작하게 짜부러진 모습은 많이 봤지만 삵쾡이 시체는 통 보지 못했다. 제한속도 표지판이 있지만 차들이 워낙 느리게 달린다. 도로폭이 좁고 구불구불해 80kmh를 안 넘는 듯. 삵쾡이의 개채수가 100여마리 밖에 안 남았다는 말을 거의 믿지 못하겠다. 야생 고양이들의 대단한 번식력을 감안하면...
길가에 앉아 짐을 정리하는데 꽃밭에 손바닥만한 나비가 앉았다. 앗, 이놈은... 이놈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9.40am.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길가에 앉아 쉬었다. 혹시 비가 올지 몰라 뒷짐은 쓰레기 봉투로 감싸놓았다. 앞가방은 QAMM 사에서 나온 카메라 가방인데 몇 년 전 처음 출시되었을 때 운좋게 할인가로 싸게 구매했다. 핸들이 묵직해져 조향이 잘 안되는 단점과 핸들바에 고정시키는 고리가 바엔드에 안 맞아 별도의 찍찍이를 사용하는데 힘이 약해 충격을 받으면 종종 풀어지는 것, 방수가 안되는 것 빼고는 가방 자체는 훌륭하다.
훌륭한 이유: 비를 맞아도 금새 마른다. 주머니가 많아 물건 관리가 편하다. 내용적이 크다. 만약 뒷 짐받이를 제대로 된 것을 장착하면 뒷 짐받이에도 장착이 가능하다.
QAMM 홈페이지에서 QR 레버에 장착이 가능한 뒷 페니어를 3만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뒷 짐받이는 자전거를 구매할 당시 구입한, 재질이 알루미늄으로 된 것인데 뒷짐이 무거우면 싯 포스트가 팩 돌아버려 아주 귀찮다. 싯 포스트가 돌아 싯 방향이 틀어지면 양 다리 패달링에 변화가 생겨 엉덩짝 한쪽 근육이 땡긴다. 게다가 10kg 미만의 짐만을 실을 수 있고 충격을 받으면 상하로 흔들려 여러모로 불편했다. 돈 주고 산 게 아까워서 아직 못 버리고 있다.
382에서 샛길로 빠져 고갯길을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땀이 뻘뻘 흘러 나왔다. 절벽이 무너져 돌조각들이 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차량 통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용하지 않는 도로인 것 같다. 빽빽한 삼림 탓에 시야가 도로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지 말고 니이(도시이름)을 거쳐 들어올 껄 그랬나? 한참 GPS를 바라보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가(GPS에 입력한 적이 없는 소로다) 신화의 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왼쪽은 신화의 마을. 오른쪽은 니이 시내로 향하는 길.
와타즈미 신사에 도착. 신화의 마을은 작은 고개 너머에 있다. 해신을 모시는 신사로 다섯 개의 문중 두개는 밀물 때 물 속에 잠긴다. 쓰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세번째 문. 일본의 건국신화가 서려있단다. 설화 인용:
하늘의 신 니니기(彌徵藝)의 아들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가 잃어버린 형의 낚시 바늘을 찾아 바다를 헤매다가 용궁까지 가게 되어 용왕의 딸 도요다마히메(豊玉姬)와 결혼하여 3년간 지낸 후 낚시 바늘을 찾아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아내는 만삭이어서 같이 뭍으로 나오지 못했다. 며칠 뒤 풍랑을 타고 도요다미히매는 여동생 다마요리히메(豊依姬)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뭍으로 나와서 바닷가에 손수 집을 짓고 들어가며 남편에게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남편은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이 약속을 어기고 안을 들여다보니 큰 뱀이 괴로워 나뒹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화가 난 도요다마히메는 낳은 아이를 해변에 그대로 버려 둔 채 용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아이가 우가야우기아에스신이고 그 신이 다시 이모벌 되는 다마요리히메와 결혼하여 낳은 사람이 신에서 인격화된 진무텐노(神武天皇)로 일본의 초대 천황이라는 건국신화가 있다.
이곳에는 바다에서부터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신사에 이르고 바닷물이 신사에까지 닿아 있는데 사실은 제사를 지내던 장소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가운데까지 도리이가 직선으로 다섯 개가 늘어서 있어 가히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을 연상케도 한다. 현재 와다쓰미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히고호호데미와 도요다마히메로서 하늘과 바다가 영합한 축복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도리이가 우리나라 쪽으로 뻗어 있어 고대 우리나라 사람이 이곳으로 온 것을 신처럼 모시지 않았을까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신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리이 말고도 용비늘이 떨어졌다고 용비늘 비슷한 울툭불툭한 돌이 있는 곳에 종이로 금줄을 만들어 쳐 놓고, 신성시하고 있었고, 손 씻고, 입 씻고 몸을 정결히 하고 들어오라는 바위샘도 꾸며져 있었다.
와타즈미 신사. 다른 각도에서 본 첫번째, 두번째 문. 흡사... 중국 지우자이거우의 호수 한 가운데 있던 정자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바다 속에 신사의 문을 설치한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이 여자는 누굴까. 앞에 동전 접시가 놓여있다. 100엔짜리도 눈에 띈다. 욕심이 생겼지만 동전을 집어둘지는 않았다.
선착장에서 셀카. 10.30am. 아소베이 파크에서 여기까지 1시간 30분. 도로가 마르니 타이어 접지력이 좋아져서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일이 없어 좋았다. 대부분 382 국도를 따라와서 커브가 완만하고 굴곡도 적어 도로는 평이한 수준. 아소베이 파크로부터 쉬지 않고 밟으면 30-40분 이내에 여기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
옥션에서 각각 14000원씩 주고 산 져지 상/하의는 몹시 쓸모가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살갗에 찰싹 달라붙는 져지는 민망해서 입기가 꺼려졌는데 져지를 입으니 확실히 편하다. 엉덩이의 두꺼운 패드는 안장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해 주고 기저귀처럼 불알을 감싸는 쿨맥스 패드는 열과 땀의 배출이 잘된다.
져지 하의를 입을 때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져지를 입기 전에는 쿨맥스 팬티를 입고 그 위에 반바지를 걸쳤는데 아무리 쿨맥스 팬티라지만 한참 자전거를 타고 가면 불알이 척척해지는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런 복장을 장시간 착용하면 엉치뼈 부근이 살살 아파온다. 져지의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상하의 한 벌에 보통 10만원은 우습게 나가 하이테크 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21세기 테크노거지 생활을 하던 나는 애써 져지를 외면하고 있었다. 대체 져지가 왜 그렇게 비싼 거야? 이유가 없잖아?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 거진 선수복이나 다름없는 화려한 져지를 입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져지를 입으려면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는 생각은 한강 강변로에서 자전거를 자주 타면서 사라졌다. 잘 타는 사람들에 비하면 평속 25kmh는 별로 대단한 것이 못되지만(잘 타는 사람들은 30kmh 이상 나온다. 평지 주행 평속 30kmh 란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3년 넘게 타도 그게 안 된다. 평균속도 35kmh 이상이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간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짐승' 취급하는 것 같다) 왠만해서는 그런 '선수복장'을 추월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여겨지는 최근 상황 때문에 '내가 이제 당당하게 1~2kmh의 속도차에 연연하며 져지를 입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 것도 사실이다.
아까 왜구, 왜구 했는데 왜인들이 고기도 잡고 틈틈히 노략질도 하던 배가 와타즈미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야.. 말로만 듣던 그 배를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농담이고, 설화의 주인공을 영접하기 위한 배일 것이다.
와타즈미 신사 내부. 건축 형태도 지진많은 나라치고 좀... 아니지 싶은...
무려 한글로 설명이 나오는 가이드 패널. 오른쪽 상단에 태양광전지가 보인다. '신화의 마을'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동네라고 말한다.
와타즈미 신사 앞. 신사 앞에 왠 스모장? 신사에 들어가기 전 형식적이나마 스모를 하고 들어가야 한단다. 누구하고? 도깨비하고?
신화의 마을 캠핑장 입구는 쇠사슬로 막혀 있었다. 아무도 없냐고 소리쳤지만 인근 산에 부딫혀 메아리가 되서 돌아올 따름이다. 거참 분위기가 신비스럽기 짝이 없군.
화장실은 있는데 샤워장이 없다. 수도꼭지는 죄다 뽑아놓았다. 즉 물이 나오는 곳은 화장실 뿐이다. 한 30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트럭이 한 대 도착한다. 자판기 음료 캔을 채운 후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황황히 사라진다.
이거야 원. 이 무거운 짐을 끌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해서 불필요한 짐을 풀어 상설 텐트 속에 감춰 두었다. 햇볕으로 땀에 절은 얼굴과 팔 다리에 물을 묻히고 간단한 짐만 자전거 뒷짐받이에 묶어둔 채 신화의 마을 캠핑장을 벗어났다. 니이 시내를 관통해 382 국도를 타고 잠깐 내려갔다가 39번 국도로 갈아타 엔쓰지를 거쳐 미네에 들러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앞에서 오마에하마 공원으로 향한다는 계획. GPS의 경로 트랙백이 가능하므로 굳이 지도를 살펴보며 주행하지 않아도 된다. 햇살이 따갑다. 11.40am 출발.
1.20pm. 48번 지방도에서 미네로 들어서기 전 작은 개울에 멈췄다. 몹시 덥기도 하고 물이 맑아서 잠시 발 담그고 쉬어 가련다. 발만 담궜다가 손도 담궜고 머리도 거꾸로 담구고 에라 모르겠다 급기야 물 속에 온 몸을 담궜다. 우아! 정말 시원하다.
웃통을 벗어 젖히고 물 속에 드러누워 30분쯤 히히덕 거리며 놀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가로지르는 개울이란 이런 것일께다. 자전거를 멈추면 개울이고, 달리면 울창한 숲이고.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나타나고. 쓰시마 만큼 자전거 여행하기 좋은 곳이 있을까? 있긴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로 이어진 길. 비록 바다는 없지만 참 호젓하고 좋은 길이다. 언제 시간내서 갔다와야겠다.
판타지 소설에서 야영할 때 토끼고기와 함께 삶아먹을 때 자주 등장하는 야생 양파? 아니면 구근식물의 일종?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 로즈매리, 코리안더 등등. 버터 한 덩이, 치즈 한 덩이, 밀 한 푸대만 들고 동부에서 황금을 찾아 서부를 향해 떠났다가 굶어죽은 사람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미네에 도착. 니이보다 작은 마을. 아소베이 파크에서 관리인에게 니이에 자전가 가게가 있는지 물었다. 있단다. 미네에는? 미네에는 없을 꺼란다. 신화의 마을에서 니이 시내로 나와 돌아다녀봐도 자전거 가게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날씨도 맑으니 브레이크 걱정을 잊어 버리자. 타이어 그립이 좋아 헤어핀에서 어느 정도 고속 회전이 가능하다. 그래도 안전 운행.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평지라 자전거가 제법 잘 나간다.
Video: 쓰시마 미네에서 오마에하마공원 주행
작은 터널이 나타났다. 고갯마루에는 언제나 터널이 있었다. 터널이 나타났다는 것은 고갯마루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흡사 무슨 법칙이라도 되는 양 항상 맞아 떨어져 신기하다. 일본 도로망의 규칙성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터널과 달리 아주 오래 전에 지은 듯한 이 터널의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천정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그 소리가 이끝에서 저끝까지 낭랑하게 울렸다. 팅-잉잉, 팅-잉잉, 팅통-팅동-팅동, 팅-잉잉, 아침에 정비를 열심히 해 기름을 잘 먹여놓은 자전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늑하고 서늘한 터널, 위험하지 않은 터널 -- 뒤에서 차가 덮칠듯이 달려들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지 않는 터널.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터널. 천천히 즐기면서 통과했다. 터널이 길고 조명이 어두우면 전조등을 켜야 한다. 맞은 편의 밝은 쪽 때문에 눈 아래에 암맹이 형성되 바닥의 요철이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자전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382번 국도도 가끔은 좁아지는 편인데, 이런 지방도나 소도로에서는 터널 폭이 좁아 차 한 대 지나가면 간신히 지전가 한 대 지나갈 여유 밖에 없다.
터널을 통과하고 잠깐 주행하니 다시 해안 도로가 나타났다. 바닷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기는 쓰시마의 북쪽, 그러니까 한국의 남부 해안과 마주보는 면이다. 아소만이나 쓰시마의 동쪽 해변과 달리 파도가 제법 쳐서 제대로 바다 분위기가 난다.
오마에하마 공원 도착. 야영장.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물이 나온다. 오른쪽의 빨간 지붕의 화장실도 정상 작동한다. 관리가 허술한지 잡초가 우거져 있지만 화장실은 깨끗하다. 쓰시마에 와서 느낀 점이지만 화장실 옆에서 자도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화장실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없고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일본 여행할 때 공원의 화장실에서 샤워도 하고 화장실 옆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한다는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오마에하마 공원 앞 자갈 해변. 바다에서 기어 올라온 갖은 표류물 때문에 해변이 지저분하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바다 앞에 자갈 무덤 쌓아놓고 소원을 비나보지? 해변이 지저분해서 물이 맑은데도 발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자갈밭이라 맨발로 돌아다니긴 힘들어 보인다.
공원을 빠져나와 옆길을 돌아 전망대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도 많고 할 일은 없고. 햇빛이 짱짱하니 오늘은 제대로 관광모드다.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자전거 타고 지나온 길이 잘 보인다. 여기는 해발 80m. 끌바 안하고 여기까지 단숨에 올라오니 숨이 턱에 찬다. 올라오면서 헉헉대는 비디오도 찍었다. 소리가 묘해서 나름 19금이다.
Video: 오마에하마 공원 전망대 향하는 길
야생 조류의 숲 근처에 있는 추모비. 조선에서 오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거친 조류와 파도에 떼죽음을 당해 이 비를 세웠단다. 별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
내 관심사는 저 맞은편에 틀림없이 있을 한국땅까지 휴대폰 전파가 닿느냐, 여기서 한국까지 휴대폰이 터지나 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동안 휴대폰의 배터리를 아끼려고 꺼 두었는데 켜 보았다. 안테나가 2-3개 잡힌다. 시험삼아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안테나는 잡히는데 신호가 안 간다. 휴대폰을 껐다.
추모비 옆의 NTT docomo 안테나 시설물을 둘러친 철책 문을 향해 무인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움직임을 감지하여 누군가 시설물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것일께다. 그러려면 카메라를 안 보이게 설치해야지 저렇게 뻔히 보이게 설치해 두면 옆으로 돌아 다른 쪽으로 타 넘어 들어가 카메라 선을 뽑아버리면 그만이잖아? 시험 삼아 앞에서 헤벌쭉 웃으며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카메라가 움직임을 감지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나를 쫓는 기색이 없다. 저거 전원은 들어가기나 하는 걸까? 한국의 도로 이곳 저곳에 설치되어 있는 가짜 과속 방지 카메라처럼 순전히 위협용 목업이 아닐까...
일본의 유명한 영화 촬영지였다는 곳. 하! 여기서 저기까지는 고도차가 대략 100m. 내려갔다가 샛빠지게 다시 기어 올라갈 이유가 없으니 관광지고 뭐고 그냥 지나치자! 다운힐에 헤어핀이 많다. 브레이크를 살짝 살짝 잡았다. 소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소똥을 밟았다. 소똥이 덜 말라 미끌미끌하다. 물컹거리면서 미끄러지자 머리털이 쭈볏 곤두선다.
이즈하라에 무료 족욕탕이 있는데 못 가봤다. 왠지 마음 아프다. '무료'인데.
어라? 이게 어떻게 된거지? 아까 안 올라가기로 한 길로 올라가야 하잖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갔다. 저 반대편에서 신나게 내려왔는데 탄력 한 번 못 받고 처음부터 순 패달질로 그 만큼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 구경이라도 하고 가는건데 -_- 절로 노래가 나오는군.
3pm.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피둥피둥 살찐 황소. 흡사 serious sam에 나오는...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지축을 울리며 달려올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뭘 먹었길래 저렇게 근육이 우락부락한 것일까. 그러고보니 아까 내가 밟은 소똥이 바로... 황소가 빤히 노려본다. 흡사, 이봐, 거긴 길이 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 경사가 가파르고 계속되는 헤어핀 구간이라 어쩔 수 없이 끌바.
끌바하면서 찍은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의 모습. 해수욕장에 들를 생각은 없고 저 중간에 살짝 보이는 길 모퉁이를 돌면 미네로 가는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왠걸. 그 길은 막혔다. 끊겼다. 오우미노사토 해수욕장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탓인지 수풀이 우거져 있고 길이 막다른 골목이다. 어쩔 수 없이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기어비 1:1로도 숨이 가쁘다. 오르다 말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힘들 바엔 해수욕장에서 놀다 가자. 다시 내려왔다.
저 바다 너머는 한국이다. 바닷물이 정말 맑다.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에서 혼자 생쑈를 하며 놀았다. 벌거벗고 물 속에 들어갔다. 뭐 보는 사람도 없으니. 성년이 지난 후 벌거벗고 물놀이를 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동해의 무릉도원 계곡에서, 중국의 창산에 말 타고 놀러갔을 때, 도미토리의 여자 샤워실에서 모르고 샤워하다가 벌거벗은 여자들과 마주친 정말 인상깊었던 기억 정도? 그래도 사진 찍을 때 아랫도리는 걸쳤다. 동영상도 찍었는데 카메라가 기울어 한참 쇼를 하고 난 후 플레이를 눌러보니 하늘만 찍혀 있었다. 거참. 다시 할 수도 없고.
해변에서 놀다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4pm 무렵 개울가에 옷가지를 빨고 힘겹게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황소와 마주쳤던 곳에 다시 이르렀다. 왠 할아버지가 인사를 한다. 곤니찌와. 곤니찌와라니. 그거 점심 인사인데 저녁에 해도 되는건가? 부에나스 노체스가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워낙 이 나라 저 나라 인삿말을 배워 인사할 때면 몹시 헷갈린다. 아주 미치겠다. 옷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겸면쩍어서 허겁지겁 지나갔다. 어쩐지 저 소새끼가 바닷가에서 나혼자 생쑈한 걸 노인네한테 일러바친 것 같은 쪽팔리는 기분이다. 근처에서 까마귀도 까악까악 울어댔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가 올 것 같다. 도로는 끊임없는 오르락 내리락이다. 땀이 뻘뻘 흘러 내렸다. 고개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네까지 쭉 뻗은 내리막. 신나게 내려갔다. 미네에서 쓰시마 패밀리 파크 쪽의 해변 도로를 따라갔다. 하루종일 별로 먹은 것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배가 고프다. 자판기에서 레모네이드와 로얄밀크티로 배를 채웠다. 로얄밀크티는 인도에서 먹던 짜이와 맛이 같았다. 설탕을 덜 탄 듯 싶지만. 그리고 소로로 접어들어 줄곳 해변도로를 달렸다. 평탄해서 꾸준히 시속 25kmh가 나온다.
탄력을 있는 대로 받아 평지에서 속도가 무려 30kmh를 오락가락 한다. 저 멀리 고릴라 두상을 닮았다는 섬이 보인다. 쓰시마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구름이 많이 끼었고 5pm이니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다. 힘차게 패달을 밟았다.
다시 오르락 내리락, 산 중턱을 싸고 도는 헤어핀 코스가 이어진다. 내리막길에서 고속 주행하다가 맞은편의 차를 보았다. 내쪽에서는 안쪽으로 90도 꺽어지는 코스다. 각을 줄이기 위해 차선 중앙으로 주행하고 있었다. 순간 방심해서 자전거 방향을 튼다는 것이 오른쪽, 그러니까 차쪽으로 틀어버렸다. 한국과 달리 차량의 진행 방향이 도로 왼쪽인데 지난 3일간 익숙해졌다고 믿고 있었지만 의식과 다르게 무의식적으로 평소처럼 도로에서 위험할 때는 오른쪽 구석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전거가 지지직 미끄러진다.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보인다. 자동차 왼쪽 본넷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탄력을 회복한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며 자동차와 오른쪽 길 틈새 사이로 지나갔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만 참 빌어먹게도 지금 브레이크가 제대로 안 먹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완벽한 사고 케이스다. 차창을 통해 공포에 질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아줌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방금 한 것이 자전거 드리프트다. 솔직히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타이어 타는 냄새만 살짝 맡았다. 희안한 것은 저 드리프트를 맨정신에서는 성공시켜 본 적이 없다. 공포 때문에 근육이 위축되어 브레이크를 너무 일찍 밟던가 너무 늦게 밞아 자전거가 휘청대기 일쑤였다.
뒤늦게 솟구친 아드레날린으로 머리가 멍하다. 내가 미쳤구나. 아아... 터널을 통과했다. 곧 니이 시내가 나타났다. 수퍼에 들러 쇼핑했다. 아직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다. 아줌마는 얼마나 놀랬을까? 그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속도가 빨랐더라면, 그 자동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면 나는 헤드라이트 모서리에 다리를 부딫히면서 (슬로우모션으로) 자전거 차체가 급격하게 왼쪽으로 틀어졌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지면서 몸이 회전하여 한 바퀴 휘리릭 돌고 차체의 왼쪽 유리창에 오른팔을 부딫힌 다음(쾅!) 도로 오른편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젤리를 샀다. 100엔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쳤다.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다니자.
생선까스도 샀다. 이제 주행 중에 mp3 귀에 꽂고 다니지 말자.
밥도 한 공기 샀다. 딴 생각하지 말자. 밥에 집중하자.
내가 정말 죽을라고 환장했지. 꽁치 간장 조림도 샀다.
아사히 생맥주 500ml. 5%, 김치 한 봉지. 김치에 어찌나 설탕을 많이 탔는지 달달해서 먹고 나면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이게 무슨 김치야... 기무치지.
아무도 없는 캠핑장에서 안주, 반찬, 밥, 생맥주를 배불리 먹고 마셨다. 6.20pm.
관리인은 안 오려나 보다. 관리사무소 근처에 차가 한 대 섰다가 내 기척을 느꼈는지 황급히 사라진다. 캠프장에 바로 붙어 있는 일본 정원과 가옥 한켠에 불이 켜졌다.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왔다. 비가 올까 염려스러워 정자 안에 텐트를 쳤다. 화장실에서 땀에 절은 져지를 빨았다. 자전거에 기름칠을 다시 했다. 브레이크 패드의 이격을 좀 더 좁혔다. 이제 거의 한계다. 사고 기억은 잊어버리자. 소심해 지면 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7.50pm. 밥과 맥주를 다 먹었다. 원래는 조금 남겨 아침에 라면에 밥 말아먹고 반찬하려던 것인데 긴장하고 흥분한 탓인지 김치 약간을 빼고 그 많은 양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신화의 마을 캠핑장 전경. 뒷쪽에는 아이들 놀이기구와 캠프 파이어장. 화장실 따위가 있다. 오토 캠핑장과 함께 미리 쳐진 천막을 대여하기도 하나 보다. 천막 안에 들어가보니 냄새가 퀴퀴하고 습해서 도저히 안에서 자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저 맞은편 끝은 선착장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다.
8pm. 해가 완전히 졌다. 개구리 합창 소리가 왼쪽에서 들린다. 오른쪽에는 반딧불이가 깜빡이며 날아다닌다. 반딧불이를 대체 얼마만에 보는거냐... 삭막한 도시 생활이라니... 장작을 몇개 꺼내 캠프 파이어나 해 볼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돈도 안 내고 캠핑하는 중인데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의 이목을 끌어 좋을게 뭐 있겠나 싶다.
먹은 것이 별로 없어 그동안 완전 소화가 되었는데 오늘은 3일 만에 화장실에서 큰일을 봤다. 일 보는 동안 모기들이 엉덩이와 불알을 물었다. 거참 긁기 민망한 곳을 물어버리네.
9pm.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이 비교적 맑아서 인지 별로 춥지 않다. 눈을 붙였다. 12시쯤 깨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반딧불이가 좀 더 늘었다. 개구리는 우렁차게 울다 말다를 반복한다. 캠핑장을 산책했다. 2am. 폭우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다. 4am. 쏟아지는 빗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