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로

잡기 2007. 8. 25. 12:25
종합소득세를 엄청 내고 나니 어이 상실. 한 달 새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여러 악재와 무더위로 기분은 다운되고 그야말로 급핀치에 몰린 것 같은데 간신히 버티는 이유는 이 우주에 편재하는 나선력(spiral power) 때문이지 싶다. 그렌 라간 22화를 보고 맛이 갔다. 작화품질이 고르고 음악 좋고, 스토리 무난하다. 가이낙스가 간만에 작품 하나 만들었다. 그야말로 수습이 안되게 막가는 이 극화의 결말이 슬슬 걱정될 지경이다. 이게 일요일 8:30am 애들 보는 만화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사람과 짐승의 두 가지 길이
비틀려 만나는 나선도
어제의 적으로 운명을 깨부수고
내일의 길을 이 손으로 붙잡는다!
숙명합체 그렌라간!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

22화에 등장하는 위의 문구에 심오한 영감을 얻어 맥주 마시다 말고 사장님에게는 M&A와 ODM을 제안했다. '어제의 적으로 운명을 깨부수고.. 숙명합체를 이뤄 내일을 도모한다' 뭐 그런 의지... 기업활동은 그 자체로 놀이문화 열혈인 것이다!

좌우구분도 잘 안되고 권력을 얻자는 건지 이름을 남기자고 발버둥을 치는 것인지 뚜렷한 비전과 희망이 없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실망할 것은 없지만 가끔 가다가, 말 잘하고 내 마음에 꼭 맞는 좌익, 그저 똥오줌 못 가린다는 차원에서가 아닌 사민주의를 지지할 이유가 있는 지능과, 죽어서 1억을 남기는 우익 보험 류도 이제 한국에서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정치권을 욕하기 앞서, 스무디 킹은 이렇게 말했다; be good to youself

사무실 직원들과 민주적으로 합의해 문국현에게 몰빵하기로 했다. 목표는 4일 근무다!!!
 
소울이는 남들 얼굴을 뚜러지게 쳐다보거나, 제흥에 겨워 춤을 추는 것 외에 뚜렷한 지적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숙명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발달의 뚜렷한 징후는 두 차례 밖에 보지 못했다(아니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가)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아이의 숙명이다. -- 미야베 미유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미유키의 전 4권에 달하는 '브레이브 스토리'를 읽었는데 대체 뭘 읽었나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그런 면에서 참 인상적인 소설이다.

술집에서 D-war 얘기중, 군중심리의 동조 현상에 관한 얘기가 나와(한 밤중에 귀뚜라미가 찌질찌질  동조를 맞춰 우는 것이나 반딧불이의 깜빡임 따위)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싱크'를 찾아 읽었다. 과학교양서라기 보다는 수필에 가까웠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300여개에 달하는 레퍼런스를 미주로 달아놓고 자신에게 영향을 준 과학자(또는 지인)의 소개와 연구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다가 마지막 장에는 그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여지없이 '일반인'의 수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수식이나 그래프로 설명하면 몹시 간단한 것을 장황한 말로 늘어놓으니 읽다가 두 번쯤 졸기도 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는 경험을 이렇게 서술했다;

.... 흥분해서 윈프리에게 편지를 썼다. 어디로 가야 수리생물학 대학원 과정을 밟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2주일 후 퍼듀 대학 주소가 찍힌 편지를 받았을 때 내 심장은 빠르게 고동쳤다. 윈프리의 친필 답장이었다.

스티븐 스트로가츠: 물론, 당연히 내게 와야만 하네.

꿈이 실현된 것이다. 그때쯤 윈프리는 나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생물학부에 있었다. 그리고 생물학 석사 학위는 내 계획에 없었다. 나는 수학 전공이 아닌가. 그러면 여름방학 때 일을 같이 하면 어떨까? 그래서 가능성을 물어보는 수줍은 편지를 보냈다. 2주 후 답장이 왔다.

자네의 1981년 12월 1일 편지를 받은 지 5분 후

친애하는 스티븐
이번 주 내게 돈이 한 뭉치 떨어졌다네. 그래서 여름방학 일자리는 오케이네. 급여를 줄 수 있네...
내 실험실은 공간이 널찍하다네. 멋진 주변 기기를 다양하게 장착한 애플 컴퓨터도 두 대 있네. 연구할 주제는 위상수학일세. 자보틴스키 수프의 3차원으로 꼬이고 매듭이 있는 파동의 수수께끼를 연구하는 걸세. 그리고 야간 아르바이트로는 이 파동을 심장 근육에 적용하는 문제를 연구할 걸세(심장마비 돌연사에 대한 내 논문이 내년 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실릴 걸세. 그걸 보면 이해가 될 것으로 믿네). 이런 분야들을 자네와 공동으로 연구하게 되면 정말로 기쁘겠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걸세.
자네가 이 제안을 거절하기 전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자네에게 여름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부추기지 않을 작정이네. 부디 거절하지 말기를 바라네.

감정에 이끌려서, 아서 윈프리

1982년 여름 윈프리의 여구실에 도착했을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코네티컷 주에서 인디애너 주까지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에 아버지가 함께 따라왔다.

연구실은 조용했다. 대학원생이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전에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나 말고 함께 일할 연구자가 있냐는 질문에 윈프리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다른 학생들이나 공동 연구자의 이야기를 꾸며낼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아무도 없다네. 아마도 내가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지.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내 연구실의 인구밀도는 1일세. 동첨할 사람은 자네가 유일하네. 이런 사살이 나에 대한 자네의 신뢰감을 저하시키는가?"

이공계식의 처절함과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이런 내용 때문에 정작 보고 싶었던 동조에 관한 중요한 내용들은 주마간산 격이다. 역자도 한 몫했다. 이런 대목;

캘리포니아 공대의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크와 프랜시스 크릭이 최근 발표한 공동 논문 '내부의 좀비'를 보자. "의식은 뉴런들이 1000분의 1초 수준에서 동조 발화하는 것을 수반한다. 이에 비해(뉴런들의 1000분의 1초 수준 동조와: 옮긴이) 관련되지 않은 발화는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뇌 속에 그 특별한 윙윙 소리(의식을 말한다: 옮긴이)를 발생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추론이다.  ... 자기 자신의 의식, 스스로의 자기 인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를 표현할 단어를 나는 지금 더듬거리며 찾고 있다. 수많은 물 분자와 단백질과 지질,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이 망할 놈의 물건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나를 마주 쳐다보고 (거울 속에서: 옮긴이) 있다. ... 만일 의식이 어떤 종류의 신경 동조의 부산물이라면, 그렇다면 동조에 대해 단지 생각하는 것만도 동조 자체의 엄청난 활동(1000분의 1초 단위의 분주한 동조의 연속: 옮긴이)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므로.

387p가 되어서야 역자는 갑자기 친절해지기로 결심했는지 문맥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쓸모가 없는 역자주를 여럿 달아 놓았다.  옮긴이의 말에는 '변명과 제안'이 적혀 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자로서 자연과학 분야의, 그것도 비교적 전문적인 교양서를 옮긴데 대해 변명을 하고 싶다... 옮기는 과정에서 역자의 과학적 소양이 총체적으로 점검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분야별 전문 용어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으리란 우려가 남는다.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다지 전문적인 과학교양서는 아니다. 하지만 스트로가츠의 오락가락 하는 문장이 정제되지 않고 남아 역자도 오락가락해서 책의 문맥 파악하는데 애를 먹은 것도 사실이다. 후기에 적어놓은 역자의 우려와 달리 나는 작자만큼이나 그 책을 소개하고 번역한 역자를 대접해준다. 책을 고르는 안목, 책을 감동적으로 읽고 번역해야겠다는 결심(인류애지 뭐겠나?), 번역은 잘 안되었지만 과학교양(또는 마땅히 일반 상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등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밌게 읽은 책이면 같은 역자의 책을 찾아본다. 후기 인지 변명인지를 읽은 후  지속적으로 그 분야 내지는 과학교양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인터넷 서점에서 뒤져보았다. 역자는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번역했다. 평가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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