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갔던 지리산 종주 코스가 알고보니 화대종주였다.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종주. 무척 힘들고 엿같고, 추운데다 빗물이 넘쳐 계곡길이 물에 잠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트레킹을 했기 때문에 지리산 종주는 생각이 깊은 사나이들이나 즐기는 레포츠라고 생각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해야지 싶어 구글에서 '지리산 종주'로 검색해보니 71만개의 문서가 나왔다. 지금은 7살 먹은 아이도 다닌다. 사실 구글 검색하고 나서야 내가 갔던 길이 보였다. 당시에는 반야봉에 오르지 않았다. 반야봉이란게 있는 줄도 몰랐다. -_-
이번 지리산 산행은 십수 년 전 종주와 여러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 등산 스틱도 한 쌍 구입했다. 몇 주에 걸쳐 북한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부족한 체력을 보충했다. 35리터짜리 배낭도 샀다. 그때 산장 처마에서 간신히 비를 피하며 새벽이 오길 뜬 눈으로 기다리며 서성이던 것이 생각나 침낭 커버도 구입했다.
9월 5일 새벽 3:30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 지리산행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례구역에 내린다. 역 건너편에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배낭을 버스 짐칸에 부리고 재빨리 올라탔다. 구례공영터미널에 일단 들렀다가 4:00에 성삼재로 출발한단다. 미처 구하지 못했던 헤드랜턴을 터미널에서 구입했다. 준비하지 못한 것들은 터미널에서 거의 모두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 상인들이 새벽부터 가게를 열어 놓았는데 없는게 없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버스에 올랐다. 구례구역에서 구례공영터미널까지 버스 운임은 1000원. 10분 쯤 버스가 달려 3:40에 도착. 4:00에 터미널을 출발해서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에 도착하니 4:30. 중간에 무슨 절에서 입장료 라고 몇 천원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새벽이라서인지 매표소(?)를 그냥 통과한다. 버스는 성삼재까지 헤어핀을 포함한 구불구불한 길을 잘도 달린다. 듣자하니 두당 만원이면 1100m에 이르는 성삼재까지 곡예주행을 하는 롤러코스터 택시를 탈 수 있다나?
성삼재. 출발 직전. 날이 쌀쌀해서 오버 트라우저 대신 옥션에서 9900원 주고 산 바람막이 옷(단체 주문용?)을 입었다. 많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어시간 후면 빗물이 질질 새는 16만원짜리 고어텍스 오버 트라우저는 아까워서 안 산다)
오리온 별자리가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인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별이 쏟아지는 새벽'이다. 짐 무게가 의외로 가볍다. 며칠 전 옥션에서 구입한 35리터 배낭에 짐을 담다가 동행하기로 한 황씨에게 짐 무게를 물어보니 14kg가 넘는단다. 황씨와 식량을 나눠 가져 가려고 했지만 무게가 그렇다니 하는 수 없이 새로 산 작은 배낭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배낭 여행을 할 때마다 들고 다니던 45리터 배낭을 꺼내 짐을 다시 쌌다. 오랫만에 그 배낭을 짊어지니 옛날 생각이 났다. 짐 무게는 약 14kg 가까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짐이 가볍게 여겨진다.
여명 무렵 성삼재에 도착.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가는데 황씨가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워 헉헉 거린다. 짐을 좀 잘못 싼 것 같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내버려 뒀다.
노고단 도착. 황씨더러 수퍼에서 '씻어나온 쌀'을 사오랬더니 집에서 쌀을 씻어왔다. 12시간이 지난 쌀에서 쉰내가 난다. 이틀 동안 먹을 쌀인데 몇 시간 더 들고 다니면 다 쉴 것 같아 가지고 온 쌀 전부 미리 밥을 지었다. 한 끼는 아침으로 먹고 코펠 두 개에 나눠 두 차례에 걸쳐 밥을 지은 다음 내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보니 황씨는 산에서 캠핑 경험이 없다.
9월 5일 새벽 3:30 기차가 구례구역에 도착. 지리산행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례구역에 내린다. 역 건너편에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배낭을 버스 짐칸에 부리고 재빨리 올라탔다. 구례공영터미널에 일단 들렀다가 4:00에 성삼재로 출발한단다. 미처 구하지 못했던 헤드랜턴을 터미널에서 구입했다. 준비하지 못한 것들은 터미널에서 거의 모두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 상인들이 새벽부터 가게를 열어 놓았는데 없는게 없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버스에 올랐다. 구례구역에서 구례공영터미널까지 버스 운임은 1000원. 10분 쯤 버스가 달려 3:40에 도착. 4:00에 터미널을 출발해서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에 도착하니 4:30. 중간에 무슨 절에서 입장료 라고 몇 천원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새벽이라서인지 매표소(?)를 그냥 통과한다. 버스는 성삼재까지 헤어핀을 포함한 구불구불한 길을 잘도 달린다. 듣자하니 두당 만원이면 1100m에 이르는 성삼재까지 곡예주행을 하는 롤러코스터 택시를 탈 수 있다나?
성삼재. 출발 직전. 날이 쌀쌀해서 오버 트라우저 대신 옥션에서 9900원 주고 산 바람막이 옷(단체 주문용?)을 입었다. 많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어시간 후면 빗물이 질질 새는 16만원짜리 고어텍스 오버 트라우저는 아까워서 안 산다)
오리온 별자리가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인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별이 쏟아지는 새벽'이다. 짐 무게가 의외로 가볍다. 며칠 전 옥션에서 구입한 35리터 배낭에 짐을 담다가 동행하기로 한 황씨에게 짐 무게를 물어보니 14kg가 넘는단다. 황씨와 식량을 나눠 가져 가려고 했지만 무게가 그렇다니 하는 수 없이 새로 산 작은 배낭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배낭 여행을 할 때마다 들고 다니던 45리터 배낭을 꺼내 짐을 다시 쌌다. 오랫만에 그 배낭을 짊어지니 옛날 생각이 났다. 짐 무게는 약 14kg 가까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짐이 가볍게 여겨진다.
여명 무렵 성삼재에 도착.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가는데 황씨가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워 헉헉 거린다. 짐을 좀 잘못 싼 것 같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내버려 뒀다.
노고단 도착. 황씨더러 수퍼에서 '씻어나온 쌀'을 사오랬더니 집에서 쌀을 씻어왔다. 12시간이 지난 쌀에서 쉰내가 난다. 이틀 동안 먹을 쌀인데 몇 시간 더 들고 다니면 다 쉴 것 같아 가지고 온 쌀 전부 미리 밥을 지었다. 한 끼는 아침으로 먹고 코펠 두 개에 나눠 두 차례에 걸쳐 밥을 지은 다음 내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보니 황씨는 산에서 캠핑 경험이 없다.
6:20. 산안개가 피어올라 여러 산을 포근히 감싼다. 지리산, 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런 류의 이미지는 대체로 신물나게 본 것이지만. 돼지령과 임걸령을 그냥 지나치고 임걸령 샘가에서 잠시 쉬며 간식꺼리로 가져온 건빵과 땅콩 캐러맬을 먹었다.
건빵의 열량은 100g당 125kcal, 땅콩 캐러맬은 100g당 400kcal, 스니커즈는 36g당 140kcal. 150g짜리 라면 하나가 520kcal니까 4개에 천원 주고 사 온 땅콩 캐러맬 한 봉지의 열량이나 3개에 천원하는 스니커즈 100g의 열량은 대단한 것이다. 지구력이 필요한 장기 산행에서 에너지 전환이 쉬운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챙겨 먹어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약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지나면 절반 이상이 열량으로 소비되므로 중간중간 잊지 말고 꾸준히 먹어야 체력 손실과 저혈당에 따른 무력감을 방지할 수 있다. 해바라기씨, 육포 등 비상식과 행동식은 이것저것 준비해 두었지만 무게를 감안해 과일이나 오이 따위는 가져오지 않았다.
짐을 합쳐 14kg 짜리 배낭. 매트나 침낭커버, 스틱, 3일치 2인분 식량 따위 이번 산행을 위해 이것저것 산 것만 16만원 어치. 짐이란 자고로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은 거다. 매트는 폭이 워낙 커서 어깨 넓이 까지만 바닥을 커버할 수 있도록 잘라냈다. 의외로 짐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예전에 시간 관계상 그냥 지나쳐갔던 반야봉 정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나도 산에 오르는 아저씨들처럼 상하 등산복을 사서 갖춰 입었다. 색깔이 영 꽝이라 몰골이 동네 아저씨 같다. 그래도 속건성 섬유 재질이라 발수와 통풍이 우수하다. 진작부터 입을 껄. 이리 좋은 줄 몰랐네. 색깔이나 모양이 좀 개선된 것들이 있으면 여름에 면 티셔츠 대신에 입고다니면 좋을 것 같다.
반야봉 꼭대기 부근에서 수많은 벌들을 보았다. 그래서 지리산 꿀이 유명한가 보다. 벌들과 하는 짓이 비슷한 개미도 구경했다 -- 여왕 개미의 처녀 비행을 보았다. 오뉴월 다 지나고 갑자기 개미떼들이 새까맣게 대기를 뒤덮고 있어 얘들이 철 모르고 날뛰나 싶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무성한 조릿대와 잡목림 때문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저 골짜기를 뚫고 지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멀리 보이는 저 마을까지 대략 15~20km는 될 것 같다. 족히 하루 이상 거리로, 그런 시도 자체가 엄두가 안 난다.
내년 여름엔 강원도 오지 탐방을 한 번 해볼까? 캠핑 기어를 갖추고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오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야 GPS가 보편화되었으니까(오늘 산행 중에 Garmin 60CSX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 오지 탐험이 예전처럼 궁상스럽고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오지 탐험을 고생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지형도가 있어야 한다. 어차피 길 따위는 없으니까.
저 멀리 천왕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24km 남았다. 평지와 달라서, 정말 징하게 멀어 보인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리산 능선길이 교묘하게 북쪽 사면을 따라 나 있어 햇볕이 많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모자 쓸 일이 별로 없다.
삼도봉 도착. 우연찮게 다람쥐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올라가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여 '지리'산이란다. 그래서인지 다람쥐 마저 똘똘해 보인다.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지만 지상과 달리 이곳 기온은 24도 안팎. 꽉 끼는 신발에 두꺼운 등산 양말을 신고 있으니 새끼 발가락이 끼어서 살살 아파온다. 이대로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짐 무게 때문에 황씨 표정이 좋지 않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간신히 연하천 대피소에서 도착했다. 아침에 한 밥을 인스탄트 육개장 국물에 말고 반찬으로 김치 꽁치 조림을 곁들였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친 몸에 허겁지겁 탄수화물과 소금을 채워 넣었다. 캠핑은 꽤 오랫만이지만 해 보니 옛날에 혼자 돌아다니며 밥해 먹던 기억이 나서 잠시 목이 메였다. -_-
황씨가 많이 지쳐서 대피소 인근 숲 속에 짱박혀 매트 깔고 세속에 찌든 어리석은 몸을 뉘였다. 산새들이 짹짹 울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맑은 햇살이 흘렀다. 시원한 바람이 지친 몸을 위무한다. 황씨는 금새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쉬다가 일어났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공기가 맑아서 인지 덜 피로하다. 새끼 발가락이 아파서 두꺼운 등산양말을 벗고 면으로 된 얇은 목양말을 신었다.
총각샘과 이름 없는 샘을 gps에 입력해 두었는데, 두 샘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기로 했다. 총각샘은 수량이 워낙 적은데다 주위 환경이 열악해 식수로 쓰기 부적합해 보인다. 아무튼 병목으로 물을 넣을 방법이 없다. 총각샘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하마터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두번째 샘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절벽을 만나 포기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죽을 뻔하며 시간을 보낸 셈.
17:20 미리 숙박을 예약해 둔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오는데, 샘을 찾는다는 둥 쓸데없는 짓을 하고도 1시간 30분 만에 도착. 이 속도라면 지리산 종주를 20시간 이내에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5킬로미터 종주 코스 중 첫날 10.5km 가량 걸었다.
대피소에 워낙 사람들이 많아 탁자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배수로 부근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준비했다. 라면 두개에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스팸을 고추장 푼 물에 볶아 황씨가 준비해온 소주에 안주 삼아 먹었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우린 그냥 거지 같았다 -- 그 이유의 대부분이 내가 옛날 캠핑하고 돌아다닐 때 워낙 거지꼴로 다녀서 그런 것 같다.
18:00 예약 체크를 한다. 구석 자리를 배정받았다. 예약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오지 않았거나, 벽소령을 통과하여 지나간 때문인지 자리가 많이 남아 대기자들이나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도 잠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8:30 좀 넘자 제법 공기가 쌀쌀해졌다. 19시 무렵에는 바깥 기온이 14도로 떨어졌다. 날이 흐려 침낭에 누운 채 별을 보며 잠들긴 글렀다. 비박하지 않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20시부터 잠을 청했다. 황씨는 눕자 마자 곯아 떨어졌다. 그가 워낙 심하게 코를 골아서 귀마개를 빌려 귀를 틀어 막았음에도 0시 무렵까지 뒤척이다가 견디지 못해 침낭을 싸들고 침실을 빠져나와 휴게실에 자리를 피고 잠을 청했다.
어제 저녁 늦게 출발해 새벽 4시까지 기차 안에서 거의 못 자고 12시간을 내리 걸었으면 꽤 피곤할텐데 선잠이 잠깐 들다 말다를 반복했다.
지리산에서 찍은 꽃들:
건빵의 열량은 100g당 125kcal, 땅콩 캐러맬은 100g당 400kcal, 스니커즈는 36g당 140kcal. 150g짜리 라면 하나가 520kcal니까 4개에 천원 주고 사 온 땅콩 캐러맬 한 봉지의 열량이나 3개에 천원하는 스니커즈 100g의 열량은 대단한 것이다. 지구력이 필요한 장기 산행에서 에너지 전환이 쉬운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챙겨 먹어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약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지나면 절반 이상이 열량으로 소비되므로 중간중간 잊지 말고 꾸준히 먹어야 체력 손실과 저혈당에 따른 무력감을 방지할 수 있다. 해바라기씨, 육포 등 비상식과 행동식은 이것저것 준비해 두었지만 무게를 감안해 과일이나 오이 따위는 가져오지 않았다.
짐을 합쳐 14kg 짜리 배낭. 매트나 침낭커버, 스틱, 3일치 2인분 식량 따위 이번 산행을 위해 이것저것 산 것만 16만원 어치. 짐이란 자고로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은 거다. 매트는 폭이 워낙 커서 어깨 넓이 까지만 바닥을 커버할 수 있도록 잘라냈다. 의외로 짐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예전에 시간 관계상 그냥 지나쳐갔던 반야봉 정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나도 산에 오르는 아저씨들처럼 상하 등산복을 사서 갖춰 입었다. 색깔이 영 꽝이라 몰골이 동네 아저씨 같다. 그래도 속건성 섬유 재질이라 발수와 통풍이 우수하다. 진작부터 입을 껄. 이리 좋은 줄 몰랐네. 색깔이나 모양이 좀 개선된 것들이 있으면 여름에 면 티셔츠 대신에 입고다니면 좋을 것 같다.
반야봉 꼭대기 부근에서 수많은 벌들을 보았다. 그래서 지리산 꿀이 유명한가 보다. 벌들과 하는 짓이 비슷한 개미도 구경했다 -- 여왕 개미의 처녀 비행을 보았다. 오뉴월 다 지나고 갑자기 개미떼들이 새까맣게 대기를 뒤덮고 있어 얘들이 철 모르고 날뛰나 싶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무성한 조릿대와 잡목림 때문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저 골짜기를 뚫고 지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멀리 보이는 저 마을까지 대략 15~20km는 될 것 같다. 족히 하루 이상 거리로, 그런 시도 자체가 엄두가 안 난다.
내년 여름엔 강원도 오지 탐방을 한 번 해볼까? 캠핑 기어를 갖추고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오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야 GPS가 보편화되었으니까(오늘 산행 중에 Garmin 60CSX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 오지 탐험이 예전처럼 궁상스럽고 처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오지 탐험을 고생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지형도가 있어야 한다. 어차피 길 따위는 없으니까.
저 멀리 천왕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24km 남았다. 평지와 달라서, 정말 징하게 멀어 보인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리산 능선길이 교묘하게 북쪽 사면을 따라 나 있어 햇볕이 많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모자 쓸 일이 별로 없다.
삼도봉 도착. 우연찮게 다람쥐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올라가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여 '지리'산이란다. 그래서인지 다람쥐 마저 똘똘해 보인다.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지만 지상과 달리 이곳 기온은 24도 안팎. 꽉 끼는 신발에 두꺼운 등산 양말을 신고 있으니 새끼 발가락이 끼어서 살살 아파온다. 이대로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짐 무게 때문에 황씨 표정이 좋지 않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간신히 연하천 대피소에서 도착했다. 아침에 한 밥을 인스탄트 육개장 국물에 말고 반찬으로 김치 꽁치 조림을 곁들였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친 몸에 허겁지겁 탄수화물과 소금을 채워 넣었다. 캠핑은 꽤 오랫만이지만 해 보니 옛날에 혼자 돌아다니며 밥해 먹던 기억이 나서 잠시 목이 메였다. -_-
황씨가 많이 지쳐서 대피소 인근 숲 속에 짱박혀 매트 깔고 세속에 찌든 어리석은 몸을 뉘였다. 산새들이 짹짹 울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맑은 햇살이 흘렀다. 시원한 바람이 지친 몸을 위무한다. 황씨는 금새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쉬다가 일어났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공기가 맑아서 인지 덜 피로하다. 새끼 발가락이 아파서 두꺼운 등산양말을 벗고 면으로 된 얇은 목양말을 신었다.
총각샘과 이름 없는 샘을 gps에 입력해 두었는데, 두 샘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기로 했다. 총각샘은 수량이 워낙 적은데다 주위 환경이 열악해 식수로 쓰기 부적합해 보인다. 아무튼 병목으로 물을 넣을 방법이 없다. 총각샘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하마터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두번째 샘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절벽을 만나 포기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죽을 뻔하며 시간을 보낸 셈.
17:20 미리 숙박을 예약해 둔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오는데, 샘을 찾는다는 둥 쓸데없는 짓을 하고도 1시간 30분 만에 도착. 이 속도라면 지리산 종주를 20시간 이내에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5킬로미터 종주 코스 중 첫날 10.5km 가량 걸었다.
대피소에 워낙 사람들이 많아 탁자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배수로 부근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준비했다. 라면 두개에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스팸을 고추장 푼 물에 볶아 황씨가 준비해온 소주에 안주 삼아 먹었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우린 그냥 거지 같았다 -- 그 이유의 대부분이 내가 옛날 캠핑하고 돌아다닐 때 워낙 거지꼴로 다녀서 그런 것 같다.
18:00 예약 체크를 한다. 구석 자리를 배정받았다. 예약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오지 않았거나, 벽소령을 통과하여 지나간 때문인지 자리가 많이 남아 대기자들이나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도 잠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8:30 좀 넘자 제법 공기가 쌀쌀해졌다. 19시 무렵에는 바깥 기온이 14도로 떨어졌다. 날이 흐려 침낭에 누운 채 별을 보며 잠들긴 글렀다. 비박하지 않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20시부터 잠을 청했다. 황씨는 눕자 마자 곯아 떨어졌다. 그가 워낙 심하게 코를 골아서 귀마개를 빌려 귀를 틀어 막았음에도 0시 무렵까지 뒤척이다가 견디지 못해 침낭을 싸들고 침실을 빠져나와 휴게실에 자리를 피고 잠을 청했다.
어제 저녁 늦게 출발해 새벽 4시까지 기차 안에서 거의 못 자고 12시간을 내리 걸었으면 꽤 피곤할텐데 선잠이 잠깐 들다 말다를 반복했다.
지리산에서 찍은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