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written

잡기 2009. 8. 6. 00:16
중국 잠자리가 창공을 가리고 중국 매미가 나무를 뒤덮었다. 장관이다. 끄리가 베스를 잡아먹고, 가물치가 황소개구리를 잡아먹듯이 일시적인 생태계 교란은 자연이 알아서 또다른 평형 상태를 찾아갈테니 방송의 호들갑과는 달리 별 걱정 안 한다. 그런데 해파리는 조금 두렵다. 최근 몇 년 동안 무지막지한 해파리 떼가 전 세계의 무수한 해변을 동시다발적으로 침공 중이다.

황씨가 술 마시다 이런 얘기를 했다: 신체 중 딱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성장을 멈춘단다. 역으로 말해 인체 중에는 성장을 계속하는 부위가 있는데, 그게 바로 귀란다. 그 맥주집이 제공하는 생맥주가 하이트 맥스 생맥주라는데 맥스 맛이  안 났다. 안 그래도 먹는 맥주가 맥스 뿐이라 다른 맥주와 쉽게 구분이 된다.맥스 스페셜 2009를 마셔보고 싶지만 세븐 일레븐에 들를 일이 없어 기회를 놓친 것 같다. 아내는 코스트코에서 맥스를 한 박스 사왔다. 별 불만은 없지만, 다른 맥주를 마셔볼 기회가 사라졌다. 황씨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점점 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 성장이라는... 알레고리로 알아들었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성장을 계속하는 기관은 심장이다.  심장은 점점 무거워지고 양심의 질량 역시 날이 갈수록 증가한다.  귀든 심장이든 이것들은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다. 그쯤 해 두자.

다큐프라임의 '설득의 비밀'에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알아야 할 세 가지 사실을 정리해 준다. 잘 들어주고, 설득은 논쟁이 아니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러고보면 대인관계를 관 속에 묻고 못 박은 후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 적이 없다. 인생은 각자 자기들이 알아서 살면 된다. 피아간의 아름다운 거리를 확보한 채. 흡사... 똥을 피하듯?

똥을 밟았다 치고...  달착륙 조작설을 반대하는 증거는 이제는 너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는 한물간(?) 음모론이라 요새는 그런 거 써서 성의있는 응답을 얻기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달착륙 조작설의 신빙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없는 얘기도 지어내며 심혈을 기울였는데, 신실하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서 그런 작업이 무의미해졌다.

음모론에 관한 설명을 보니, 최면에 잘 빠지는 것처럼 음모론에 쉽게 넘어가는 체질이란게 존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인 노력을 들여야 작용하는 긍정적 피드백은 암울한 세상에서 자신의 멀끔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게으름과 고독과 고통의 연쇄를 끊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자기암시의 주술이다.

마누라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잘 믿지 않는다. 심지어는 콩이 메주가 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봐도 잘 믿지 않는다. 나같이 믿음이 결여된 사람들을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고백록에서 이런 조언을 했다;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신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전에 그런 질문을 할 사람들이 갈 지옥을 만들었다. -- 그래서 대대수 과학자는, 사이코패스, 악당, 독재자, 살인마와 함께 지옥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프로그래머도.

세상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의외로 살만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자기 긍정 -- 세상은 (보잘 것 없는) 당신의  판단에 따라 살기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독특한 시공간이 아니다.

내가 노력하면 세상이 바뀌던가 공공에 기여하게 된다던가 적어도 자신은 기쁘게 된다는 것 -- 그것들을 계량할 방법이 자의적이거나,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행복의 총계의 경우와 같다) 자기 기분만이라도 나아지면 썩 좋을텐데, 이것마저 자신의 정신세계에 의도적 조작을 가한 것이라면? 사회 봉사로 땀을 흘리는 것이나 정신이 멍해질 때까지 땅 파는 것이나 정서 효과는 매우 비슷하지만 전자는 본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훈훈하게 해주니 누구나 추천할 따름. 노력은 계량되기 어렵고, 성과 역시 계랑되기 어려운데 둘의 상관 관계를 말해 무엇하랴.

EBS의 개념 프로그램, 다큐프라임에서 올초, '인간의 두 얼굴' 시즌2를 방영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또는 저렇게 행동하는가? '착각' 때문이다. 작년 '인간의 두 얼굴' 시즌1은 윤리가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설령 그것이 심리학 교재 등에서 흔히 설명하는 실험을 재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재미나 즐거움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다큐프라임이 지속적으로 장안에 화제가 되는 워낙 대단한 프로그램이라 대체 누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나 궁금해서 조사해 보기도 했다.  PD 십수명이 TFT를 구성해서 상큼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호기심을 끌만 하고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지금도 열심히들 만든다.

컨텐츠 외에 누가 만들었는지 보통은 신경쓰지 않는 편. 평생  무수한 교향곡을 작곡한 악성 베토벤 마저도 걸작은 고작 3개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다큐프라임은 내가 본 40여편 중 무려 7편씩이나 흥미진진했다. 적어도 누가 만들었는지 이름은 알아야 할 이유가 된다) 베토벤은 그나마 다른 사람보다 대단히 높은 확률이지만, 창작자가 평생을 삽질해봤자 쉽게 걸작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봐야 할 것은 무척 많은데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의 철학은 도대체 무엇일까? 따위부터 창작자의 별 시답지않은 시시콜콜한 인생사까지 파헤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박식한 오타쿠 친구가 있으면 술자리에서 슬쩍 화두를 던져주기만 해도 뼈다귀를 물러 달려가는 개처럼 정열적으로 요점을 설명해주니 오타쿠 한 명으로 인해 술자리가 더더욱 감칠맛 나니까 그런 편리를 도모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지 싶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귀에 선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에 애정을 가지면 그것의 똥구멍마저도 감사히 핥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말인데, 다큐프라임의 '인간의 두 얼굴' 시즌  3,4,5는 강박증과 집착, 그리고 중독을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 감사히 똥구멍을 핥고야 마는 대표적인 자가 약물 중독 현상이자 일상적인 집착/강박인 falling in love 도 흥미로운 소재꺼리가 될 수 있으니까.

아무튼, 달착륙 조작설은 어린이들의 지능 계발에 도움이 되는 레크레이션 활동(동화 구현 같은)이라 여겼는데 요즘은 마치 창조론처럼 광신도가 생기는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the Sun지에 나오는 가십 정도지, 달착륙이 거시 규모  자본 이동이나... 입에 풀칠하고 살기에 미미한 영향마저 끼치지 않는 관계로 정말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온라인에서 한물간 음모론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두세 번째 아이덴티티로써 정신세계가 무척 자유로운 뉴에이지 또라이를 만든 다음 꽃 보살피듯 정성스레 가꿔가는 것에 뭐라 할 말이 없다. -- 농담을 착각한 후, 착각한 자신을 긍정해 버린 다음 자기 똥구멍을 핥는 일에 집착하는데야 뭐...

주말에 비가 온다길래 물놀이는 글렀고, 마침 괜찮아 보이는 투어 코스를 추천해줘서 아이를 데리고 노원구청에서 하는 공룡전을 보러 갔다. 엄청난 인파 -- 초딩 monster wave. 전시실에서 티라노사우르스가 정체불명의 용각류 새끼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안 그래도 요즘에는 타르보사우루스 따위 육식공룡이 먹고 살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공룡 다큐 따위를 보여주면 애가 기겁을 한다.

툭하면 심술을 부리는 울보가 감정이입을 배울 무렵이 되었나? 아이에게 글자 하나 안 가르치고 있지만 보상과 처벌을 똥개 훈련시키 듯 할 때는 내 자신이 좀 야비하게 느껴졌다. 성격 형성의 주요 파트가 거의 끝났다(만 2-3세 무렵에 형성됨). 이제 되든 안되든 그 성격으로 평생 살아갈 것이다. 아내에게 아이 성격 보정에 관해 알려주지 않은 것을 어떤 면에서는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내가 다른 많은 여자들처럼 아이 문제로 속 썩일 가능성은 높았다. 고집이 아내를 닮았으니까.

딸아이와 여행할 기회가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얼마 되지 않겠지.

아이가 아마도 평생 기억하게 될 아빠의 모습을 새기는 작업을 근 2개월 가량 정성들여서 했다. 말하자면 아빠에 대한 원형 기억을 임프린트 하는 일 --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경험을 정서와 혼합하여 해마에 질기고 오래가는 시냅스 가닥을 형성하는 것인데(농사에 시기가 있듯이 애 키우기에도 단계가 있는 것 같다) , '너는 앞으로 아빠 도움없이 혼자 살아야 한다. 아빠는 네 인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엄마도 마찬가지!' 라는 메시지를 각인시켜 주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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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과학공원에서 찍은 이구아노돈. 특징적인 엄지 손가락이 아니었으면 무슨 공룡인지 알 턱이 없는데, 공룡의 피부는 일부가 화석으로 남아 피부 텍스쳐가 조금은 알려졌지만 색깔은 전혀 알 수 없다. 마치 원래는 채색되어 있던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석상이 세월이 흘러 탈색되어 후대에는 색깔을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되면서 흡사 고대 그리스 석상은 다 이렇게 생겼다고 일반에 받아들여진 것처럼? 채색한 공룡 모델은 그래서 순전히 상상만으로 아그리파에 피부톤을 칠하고 눈동자를 그린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공룡 삽화 또는 상상화의 대부분이 연도별로, 또는 알려진 사실에 따라 채색이나 체형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십년 전에 본 그 놈이 지금 본 이 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공룡 피부가 우중충한 국방색을 벗어나 덜 지루하달까... 이구아노돈 옆의 브론토 사우르스(아파토 사우르스)는 최근에 38톤에서 18톤으로 다이어트 당했다. 같은 용각류 중 디플로도쿠스는 후세인들에 의해 내키는대로 등에 비늘이 돋은 것도 있고 돋지 않은 것도 있으며, 브라키오사우르스의 특징중 하나인 길고 튼튼한 앞다리와 경사진 몸통과 엄청난 몸무게 역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옆의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는 앞에서 본 두개골 모양이 어쩐지 낯설었다. 넌 뭐냐? 이 이구아노돈은 흡사 목장에서 고기를 얻기 위해 방목해서 키우는 가축같은 생김새랄까... 왠지 적응이 안된다... 돼지 사육의 최적 중량은 100kg 가량으로 알고 있다. 그 이상 키우면 먹은 사료만큼 살로 가지 않는다.

아이한테 뭐 먹고 싶어? 물으니 칼국수를 먹고 싶단다. 칼국수 따위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가 돼지나 이구아노돈처럼 토실토실 살이 좀 올라야 할텐데... 이상, 아빠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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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주에는 아이를 데리고 선유도공원에 갔다. 합정역에 내리니 비가 와서 비 그칠 때까지 잠시 쉴 겸, 합정역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마포만두에서 갈비만두를 먹었다. 특이한 만두다. 선유도공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떤 애니메이션이 연상되는 분위기, 썩은 콘크리트를 감싸며 무성히 숲을 이룬 곳. 담쟁이는 빨라도 6-10년을 자라야 벽을 뒤덮는다. 선유도공원에는 이번이 처음, 데이트하러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밤에 오면 분위기 좋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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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공원 분위기 탓인지 모델을 데리고 사진 찍으러 많이 오는 것 같다. 아이는 조그만 물 공원에서 물보라를 튀기며 주위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만의 세계에 빠져 놀았다. 아내 말로는 혼자 노는게 아빠를 닮았단다.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꺼먼 달리트 사이클 릭샤 왈라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를 몰고 가는데, 자전거 뒤편의 차양 달린 편한 의자에는 브라만 계급의 철없는 부잣집 딸내미가 팔자 좋게 앉아 과자를 먹으면서 바깥을 기웃거린다. 가끔 릭샤왈라에게 '천천히! 천천히!' 소리를 지르면서. 그런 오해나 편견이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사진 따위를 일체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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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놀러갔다. 북한산 산책길 개울에서도 아이는 혼자 즐겁게 잘 놀았다. 장차 고독한 여행자가 되려면 혼자 노는 것이 중요한 자질이 될 수도 있다. 튜브를 들고 있는 아이는 체적이 작은데다 지방량도 적고 운동량이 적으니 물에 들어가면 늘 떤다. 물에서 안 나오려 하는 걸 억지로 끌어냈다.

입술이 새파래진 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저 먼 바위 아줌마 셋이 부러 참견해 별 생각없어 보이는 젊은 아빠에게 큰 소리로 충고했다: '아저씨! 아이가 쉬 마려운가봐요. 얼른 소변보게 해 줘요!' 대꾸했다. '아이가 추워서 그래요' 그러자 세 아줌마가 이구동성으로 지지않고 말한다. '아니에요. 쉬 마려운 거에요' 추위 탓에 방광이 오그라들어 몸을 비비 꼬고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고 있는 거지만 계속 우기다가 아이가 덜컥 오줌이라도 싸면 우기는 바보 아빠가 되는 건 순식간이라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오줌 눌 곳을 찾았다. 아이는 오줌을 눗지 않았다.

아줌마들에게 철철 넘치는 애정과 감과 달리 내가 주로 알아먹는 것은 데이타 정도다. 데이타로도 인간에 관한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고 je ne sais quoi 개개인의 별처럼 반짝이는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다. 애정이 없는 싸이코패스가 납치한 남의 집 아이를 더 잘 키울 수도 있다. 내가 그렇다는 얘긴 아니지만, 어떤 때는 30년 후 평범한 아줌마가 되느니 차라리 아이를 스폭처럼 키워 애완견 데이타와 함께 알파 사분면으로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들곤 했다.

기수 서수 구분도 아닌데, 소설에서 숫자로 써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은 꼭 문자로 썼다. 여섯시 십육분 처럼. 읽기가 아주 지저분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불편하다. 최근 들어 흡사 짜고 하기라도 한 것처럼 읽는 책마다 그랬다. 입말처럼 써야 하기 때문이지 라고 말할 것 같은데(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숫자로 보는 것이 훨씬 직관적이란 거 모르나. 학습 덕택에 숫자는 브로카로 읽는 것이 아니다. 인지적으로 숫자는 발음하는(발음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게다가 피트, 마일, 갤런 따위 단위도 도량형 변환을 하지 않고 적을 때도 있다. 무식한 소설 나부랑이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과학교양서가 그 모양이면 안되지 싶은데? 한국 독자가 전세계에서 표준미터법을 공공연히 무시하는 딱 두 나라의 시민 -- 양키나 잉글리시라도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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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세계 걸작 다큐. 50년 후의 미래. 도시 편. 미치오 가쿠가 나와 나레이션을 한다. 50년후의 도시: 고령화 사회, PDA를 능가하는 3D 퍼스널 아바타, 스마트 카와 스마트 로드... 컴퓨터라이즈된 도시 행정. 50년후 도시에 뭔가 빠진 것 같은데... 타이틀이 도시니까, 그냥 심시티 플레이를 보여주는게 훨씬 나았을 듯. 도시 편에서 만큼은 미치오 가쿠 아저씨 안목이 경로당에 쳐넣을 수준이었다.

그런데 '에너지'편은 재밌었다. 궤도 엘리베이터, 효율 83%짜리 태양전지, 화성, 은하계 여행 운운하면서 기술로 이 추악한 세계를 구원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추악한 세계를 구해서 그보다 나은 추악한 세계를 건설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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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계에 투사되는 3D 가상 이미지는 수많은 SF에서 울궈먹는, 말하자면 이제는 진부해서 하품이 나오는 아이템이다. Basquash!에도 물론 나왔다. 하지만 언제봐도 멋진 화면빨. 뭐 이런 괴물같은 애니가 다 있지? 일본 애니 같지 않다고, 언리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일본에서 돈대고 만들었지만 주요 파트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손 댔을 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무슨 글을 읽은 것으로는 (배경이나 인맥 류의 오타쿠스런 이야기엔 관심이 없어 확실친 않지만) 프랑스 사람들을 미원처럼 한 스푼쯤 얹었다던가... 그래서 감칠맛이 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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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타카: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의 비극은 둘 밖에 없다. 하나는 돈이 없는 비극, 다른 하나는 돈이 많은 비극. 세상은 돈이다. 돈이 비극을 낳는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해보자는  진지한 일본 드라마. 비극에 관한 속좁은 관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네르바가 추천해서 유명해졌으며, 평범한 극에 연출. 귀에 감기는 음악. 내용이 잔잔해서 졸립다.

David Mitchell, 유령이 쓴 책: 그가 지금까지 쓴 책은 넘버 나인 드림, 클라우드 아틀라스, 블랙 스완 그린이다. 유령이 쓴 책을 제외하고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아 아쉽다. 유령이 쓴 책이 그의 데뷔작인데, 데뷔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글빨이 살아있다. 종횡사해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동하는 불노불사의 유령이 여러 도시와 시대를 거치는 이야기.
홍콩: 지난 몇 달간, 나는 여자 셋과 함께 살았다. 한 명은 유령이었고 이제는 여인이 되었다. 한 명은 여인이었고 이제는 유령이 되었다. 한 명은 유령이었고 언제나 유령일 터였다.
문장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성산: 부처님은 삶에서 용서가 꼭 필요하다고 종종 내게 말씀해주셨다. 동의한다. 하지만 용서받은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한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이다.
그러게 말이다.  이런 대목처럼, 서양인 작가 치고 동양의 구전이나 배경에 관한 이해가 의외로 놀랍다. 설령 일본인 아내를 얻어도 이런 것은 스스로 사랑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나처럼 데이타에 집착하는 반 사이코패스던가. 젠장 칭찬하려고 써놓은 게 어쩌다 보니 반은 욕이 되었군.
몽골: 배낭여행자와 나 둘 다 기생생물이다. 나는 숙주의 머릿속에 살면서 기억을 조사하며 세상을 이해한다. 배낭여행자는 자기 소유가 아닌 숙주의 나라에서 살며 배우기 위해 또는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그 문화와 풍경을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실체가 없고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고독의 분비액을 씹는다.
 여행, 여행, 여행.... 자기가 누군지 모른 채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기생 유령. 내가 여전히 하고 싶어하는 것은 배낭여행이다. 그외의 여행 방식은 별로 고려하고 싶지 않다.
페테르부르크: "한 여행자가 천사와 함께 여행을 떠났죠. 둘은 여러 층으로 된 집에 들어갔어요. 천사가 문을 하나 열자, 방 안에는 벽을 빙 둘러 길고 낮은 벤치에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죠. 방 중앙에는 음식이 쌓인 식탁이 있었고요. 사람들은 각자 아주 긴 은 숟가락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 키만한 숟가락이죠.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려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숟가락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음식이 계소ㅓㄱ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모두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이 충분한데도 다들 배가 고팠죠. 천사가 설명했어요. '이게 지옥입니다. 이 방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먹으려고만 할 뿐입니다' 이윽고 천사는 여행자를 데리고 다른 방에 갔어요. 처음 방과 정확히 똑같았고, 단지 이번에는 사람들이 자기가 먹으려고 하는 대신 자기 숟가락으로 방 반대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있었죠. 천사가 말했어요. '이 방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생각해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이 먹을 수 있게 되죠. 여기가 천국입니다.'"
타티아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무런 차이도 없어요."
"차이가 없어요?"
"아무 차이 없어요. 천국과 지옥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단 한 가지만을 원했어요. 자기 배를 불리는 거죠. 하지만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더 협력을 잘 했죠. 그게 다예요." 그렇게 말하고 타티아나는 소리 내어 웃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표정을 보고 타티아나가 덧붙였다. "정말 미안해요, 마르기리타..."

총 맞은 할리우드 갱스터가 복도를 기어가듯 시간은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린 시절에 저런 교훈극을 보고 읽고 듣고 자란 세대가 훗날 그들 교훈극의 부조리를 교정할 적절한 기회를 얼마나 얻었을까? '총 맞은 할리우드 갱스터가 복도를 기어가듯 시간은 슬금슬금 다가왔다' 비주얼이 팍 가슴에 와닿는 멋진 표현이다.
런던:
철학과 교수가 아이에게 묻겠지. "왜 넌 존재하지?" 아이는 코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질긴 욕망과 찢어진 콘돔 때문입니다."
 
무엇을 읽고 있는 걸까? 이쪽으로 조금만 그걸 기울여보렴, 사랑스러운 이여... 나보코프! 그럴 줄 알았다. 저 여자에게는 뇌가 있다!
 
언젠가 포피는 바람둥이가 피해자라고 말했다.
"왜 피해자야?"
"다른 방식으로는 여자와 소통할 능력이 없으니까."
 
"우리는 모드 쓰인대로 사는 거야, 이 친구야. 그리고 그건 단지 우리 기억뿐만이 아니야. 우리 행동도 마찬가지라고. 우리는 자기 삶을 자기가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주변에 있는 힘에 의해 미리 쓰여 있는 거야. ... 그리고 마지막 조언은... 나는 책을 끝마쳐야 하는 사람한테 전부 해주는 말인데, 나보코프는 읽지 말게. 나보코프를 읽으면 자기가 얼간이 글쟁이 같은 기분이 든다네."
그렇다. 나보코프를 읽으면 자신이 얼간이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보면 나보코프에 대해 느끼는 몹시 격한 감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듯.

판타스틱 여름호 효용 평가:

머리말 x
비둘기들은 지옥에서 온다 x
야경꾼 x
개들의 묘지 .
고양이 x
괴기사진작가 x
버스정류장 소녀 x
나의 공포체험 .
사람들은 어째서 근심걱정을 버리고 공포물을 즐기는가? .
SF&판타지 도서관을 찾아서 .
숨결 .
그림자 잭 o
곤륜 .
독랑 .
레진 vs 쿄코, 두 스타블로거의 솔직화끈 토크 x
저승에서 온 소환장: 중세 중국인의 생과 사 o
아서왕 전설 o
책+alpha 소개하는 만화 .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문학과 대중문학 o

판타스틱 여름호를 다 읽어본 느낌은 별로... 였는데 이렇게 점수를 메겨보니 전체 기사 중 무려 57%나 견딜만 했다. SF 라고는 달랑 하나 뿐이면서 '장르문학' 한다는 잡지치고 성적이 괜찮은 거 아니야?

숨결: 아르곤 가스의 압력차를 무리하게 에너지와 열역학 제 법칙에 대입하느라 글이 횡설수설해서 이게 테드 치앙이 제정신으로  쓴 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뭐 원래 별로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다. 그렉 이건의 야경꾼은 실망스럽다.

김씨 아저씨가 그림자 잭을 번역하지 않는다고 몇 년 전에 말해서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났다. 사람들더러 젤라즈니의 진수를 보려면 신들의 사회와 그림자 잭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쉐도우잭에는 트릭스터의 엑기스가 담겨 있다. 그 '분야'의 분수령이다. 뭐 경험이 일천하여 언제든지 이런 속좁은 생각은 뒤집히겠지만.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낄낄 거리면서 읽었다. 기사의 인삿말에 따르면 주류문학에서는 찌질이 취급 받고 장르문학 판에서는 듣보잡인 본인이 자기가 왜 판타스틱에 기사를 써야 하는지 나름 의미부여를 하더라. 남들 다 아는 얘기에 데이터를 정성껏 결들였다. 장르문학 열심히 즐기면서 나중에 이쪽 비평도 해 보길 기대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SF 번역 시장이 얼마나 개인화되었고 변태스럽게 일그러졌는가 같은. 서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원서 몇 권 읽은 것으로 자신들이 세계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유치한 행위는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는 한, 우리로서는 그 책을 이 세상에 없는 책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역으로 말해, 이는 어느 나라 언어로 쓰였건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면, 그것은 한국문학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얘기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비평가 집단인 것 같다. 비평가 집단은 내가 아는 독자와는 아주 다른 영감탱이인 것 같다. 주류 문단과 비평가들이 얼마나 찌질한지 차분하게 욕을 늘어놓는 걸 보면 이 아저씨 의외로 강심장인 거 같다. 하여튼 그래서 대다수 독자들이 비평가를 보면 듣보잡 찌질이로 여기게 된 것이 아닐까?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비평을 해대니.

읽을게 없어서 배가 고픈 나머지, 외국 SF를 부러 찾아 읽는 나같은 SF 오타쿠 및 독자 개개인은 어떠한 수상쩍은 범주(예: '우리')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세계적인 감각을 뽐내는 것을 게을리 할 생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제는 고사했다고 확신하는 과거의 한국 SF 팬덤의 찌질함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국제적인 수준'이었다.

눈에 띄는 낭비: '레진vs쿄코, 두 스타 블로거의 솔직화끈 토크' 술자리 한담을 캡쳐해서 올려놓은 것 같다.  재미가 없어도 덤덤 넘어가는 평범한 기사와 달리, 이런 것도 기획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체 19개의 기사 중 이 기사는 30p로 총 551p 짜리 책에서 5%의 비중을 차지한다. 장르문학지란 것이 여성 잡지나 하이틴 잡지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틀렸을 것이다. 그간 판타스틱이 해왔던 찌질스러운 기사꺼리들을 종합해 보면 애당초 하이틴 여성 장르잡지를 지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판타스틱에 BL, 백합물이 실릴까? (또는, 실린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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